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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사
작가 : 유지
작품등록일 : 2017.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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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장 빛과 어둠
작성일 : 17-07-28     조회 : 331     추천 : 0     분량 : 4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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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신은 이제 한계에 다다라 있었다. 마력이 10% 떨어진 상황에서 더 이상 주술을 쓰는 건 무리였다. 그는 점점 흐려지는 정신을 느꼈다. 안 돼, 제발. 계속해서 되뇌는 말들엔 그의 간절함이 담겨있었다. 머지않아 악마는 힘을 회복할 것이었다. 그가 사용한 ‘빙(氷, 얼음)’ 이라는 주술은 임시방편일 뿐 악마에게 큰 타격을 주지 못할게 뻔했다. 그는 꾸역꾸역 몸을 일으켜 세웠다. 저 멀리 쓰러져있는 그녀는 몸을 조금씩 꿈틀거리며, 정신을 찾고 있는 듯 했다.

 

  하, 제길. 그는 정말이지 벼랑 끝에 몰려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젠 더 이상 그 어떤 방법도 떠오르질 않았다.

 

  크아악! 코를 붙잡고 사방을 뛰어다니며 고통스러워하던 악마는 점차 기운을 찾는 듯 보였다. 하, 이제 어쩌지. 어딘가로 벗어나기만 한다면 될 텐데! 그는 간절하게 소망했다. 근데 어떻게 가지? 갈 수 있는 방법이…. 그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그는 아 하는 탄성을 냈다. 맞다 바로 그거! 그는 급히 뒷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만년필을 꺼내들었다. 전에 자신이 악마와 싸움으로 인해 마력을 소진하고 쓰러져 누워있던 날, 마신이 자신에게 주었던 선물이었다.

 

  ‘순간이동 만년필이야.’

  ‘순간이동?’

  ‘응, 그 위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내가 있는 곳으로 오게 돼. 딱 한번만 사용할 수 있는 거니까 꼭 위험할 때만 사용해야해.’

 

  그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마신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리는 듯 했다. 악마가 한눈을 판 사이, 그녀를 끌어안고 이 만년필을 꾹 눌러 마신이 있는 공간으로 순간이동을 한다면, 악마는 절대 따라오지 못할 것이었다. 어둑어둑 했던 하늘이 점차 밝아오고 있었다. 이른 아침이 되면, 달이 떨어지듯 악마의 힘도 급격하게 떨어질 것이다. 밝은 기운을 받으면, 악마는 힘이 약해졌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은 빛과 불을 제일 두려워하며, 무서워하는 대상으로 삼았다. 아침이 오면 어두운 기운들이 사라진다는 것도, 그래서 생긴 말이기도 했다.

 

  ‘네가 감히 나를 공격해?’

 

  악마는 금세 정신을 차렸다. 번뜩이는 눈엔 커다란 분노가 가득했다. 그는 이를 악물고 그녀를 향해 뛰어갔다. 턱 끝까지 숨이 차오르고, 등 뒤에선 저절로 식은땀이 흘렀다. 딱 한걸음, 이술과 딱 한발자국을 남겨둔 상태에서 그는 힘없이 넘어져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다.

 

  ‘거기서!’

 

  크게 소리를 친 악마가 그의 뒤를 밟았다. 악마의 손끝에서 피어오른 시커먼 연기가 커다란 손으로 변해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쾅, 세게 넘어지며 바닥에 찧은 무릎위로 피가 철철 흘렀다. 그는 점점 더 흐려지는 정신을 느꼈다. 하지만, 이 정도에서 멈출 수는 없었다. 제발, 제발. 조금만 더. 그녀와의 거리는 이제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태였다. 조금만 더, 손을 조금만 더 뻗는다면 금방이라도 닿을 수 있었다.

 

  ‘넌 이제 끝이야.’

 

  악마는 분노가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가 땅바닥을 기어 올라갈 때마다 그의 발목을 붙잡은 검은 손이 그를 다시 끌어내리며, 그녀와 거리를 다시 멀어지게 만들었다. 악마는 그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자신의 발밑에서 끙끙거리며 굴복하는 그의 모습이 정말 보기 좋지 않은가? 그는 곧 살려 달라 애원할 사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끔찍한 손이 그를 끌어내릴 때마다, 딱딱한 아스팔트위로 그의 피부가 쓸리며 붉은 혈을 비추었다. 이미 옷은 거의 다 찢겨져나가 살을 반 이상 드러낸 상태였고, 잔뜩 흐른 피가 그 옷을 적시고 있었다. 그는 덜덜 떨리는 손끝으로 그녀를 붙잡기 위해 애를 썼다.

 

  ‘여자를 구하려는 모습이 참으로 눈물겹군.’

 

  킬킬 거리는 웃음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그는 이제 금방이라도 정신을 잃을 듯 했다. 조금만 틈이 생긴다면, 아주 조금만, 그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그는 결국 어쩔 수 없는 선택을 떠올렸다.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더 이상 방법이 없었다. 제발, 이것이 잘 먹힐 수 있도록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끙끙대며 아스팔트 위를 기어 올라가던 그가 갑자기 휙 뒤를 돌아 손끝으로 원을 그리며 외쳤다.

 

  “화(火, 불)”

 

  마력 5% 소진, 현재 마력 5%. 악마는 악! 하는 비명을 질렀다. 손끝에서 피어오른 밝은 빛이 악마를 향해 돌진했다. 검은 날개에 아주 작은 불씨가 붙어 순식간에 화르륵 타올랐다. 이때다! 그는 숨이 꼴깍 넘어가는 것을 느끼며, 재빨리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아슬아슬한 손끝이 이술의 손에 닿자 그는 그 손을 꽉 쥐었다. 작은 불씨를 급히 끈 악마가 사신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는 흐려지는 정신 사이로, 급히 만년필 윗부분의 버튼을 꾹 하고 눌렀다. 펑, 소리와 함께 흩어진 연기사이로 악마의 절규가 울려퍼졌다.

 

 

 *

 

  마신의 마술쇼는 점점 더 무르익고 있었다. 시작할 때부터 기이한 마술을 보여준 그는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의 신기한 마술들을 연이어 성공시키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었다. 마신은 조금 더 색다른 마술을 준비했다. 인간들에게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주술의 신기한 면모였다. 그는 인간들에게 주술을 대놓고 보여주면 안 된다는 주술사 조항을 알고 있었지만, 이미 마술사의 직업으로 녹아들어있는 상황에서 머릿속에 그깟 조항이 들어올 리가 만무했다. 그는 씨익 웃으며, 나비넥타이 위로 손을 올렸다. 이번 마술은 천장에서 떨어지는 비를 순식간에 눈으로 바꾸는 마술이었다. 그는 반대쪽 손끝으로 원을 그리며 외쳤다.

 

  “우(雨, 비)”

 

  순식간에 천장에서 비가 쏟아져 내렸다. 억수 같은 장대비가 아닌, 촉촉하고 기분 좋은 이슬비였다. 관객들은 눈을 크게 뜨며 촉촉이 얼굴을 적시는 비를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 듯 보였다. 그는 사람들을 향해서 윙크를 날렸다. 금세 꺄악! 터지는 환호성에 온 몸에 찌릿한 전기가 흘렀다. 그는 다시한번 손끝으로 원을 그리며 외쳤다.

 

  “설(雪, 눈)”

 

  그러자, 천장에서 내려오던 비가 갑자기 눈으로 바뀌더니, 바닥으로 천천히 떨어져내렸다. 말도 안돼! 경악을 지른 사람들이 떨어지는 눈을 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손에 닿자 사르르 녹아버리는 것이 확실히 눈이었다. 공연장 안에 엄청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는 씨익하고 웃어보였다.

 

  “이제 마지막 마술입니다.”

 

  그는 마지막 피날레를 준비했다. 바로, 마술쇼의 꽃 변신술이었다. 변신술은 그가 관객들 눈앞에서 수많은 사람들로 변신하는 마술이었는데, 그가 가장 잘하는 주술이기도 했다. 그는 이번엔 조금 더 색다르게 커튼 뒤에 숨었다가 변신해서 다른 사람으로 나오는 형식으로 사람들을 놀래줄 생각이었다. 무대 뒤에서 가지고 나온 긴 벨벳소재의 커튼이 마신의 몸을 반 정도 가렸다. 그는 기분 좋은 미소를 흘리며, 손끝으로 원을 그렸다. 요즘 가장 핫한 대세 연예인 ‘공유’ 의 모습으로 변신하려 할 때, 갑자기 쾅! 소리와 함께 누군가 공연장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뭐, 뭐야?”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다.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내린 사람에 관객들은 수군거리기 바빴다. “저, 저 사람은 뭐야?” 관객들의 얼굴엔 당황스러움이 가득했다.

 

  커튼 뒤에 숨어있던 마신은 급히 시야를 가리고 있던 커튼을 살짝 열었다. 아니, 이게 도대체. 그는 눈을 끔뻑 거리며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애를 썼다. 작게 열린 그의 시야로 피떡이 되어 있는 사신과 그의 품 안에 안겨있는 한 여자가 보였다. 사신이가 어떻게 여기에? 그리고 저 여자는 누구야? 그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그저 입을 떡하니 벌리고 있었다.

 

  “너, 너”

  “꺄악!”

 

  그가 입을 떼려는 사이, 갑작스레 사람들에게선 환호성이 튀어나왔다. “우와, 대박! 완전 다른 사람으로 변했어!” “저 여자는 뭐야? 저 여자도 마술사인건가?” 관객들은 그 모든 황당한 상황이 그의 마술쇼의 한 부분인 것으로 착각한 듯 보였다. 순식간에 수많은 박수갈채가 쏟아지며, 관객들은 그의 마술 아닌 마술을 칭찬했다. 이럴 수가. 그의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

 

  끼익, 문이 열렸다. 빨간 머리에 파란색 원피스를 입은 그녀가 발목이 꺾일듯한 높은 하이힐을 신고, 느긋한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들어선 그 곳은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유일한 빛이라곤 투명한 유리창 안으로 쏟아져 내리는 달빛 뿐이었다. 그녀는 빛으로 어둠을 밝히는 것 대신 희미한 달빛을 가리는 것을 택했다. 새하얀 손이 부드럽게 움직이며, 유리창 커튼을 닫았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어둠이 그 공간을 물들였다. 적막, 그 적막 속에서 그녀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씨익 올라가는 입꼬리엔 왠지 모를 섬뜩함이 느껴졌다. 어둠은 점점 더 그녀를 잠식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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