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계속해서 침대 주변을 맴돌며 이상한 짓을 반복했다. 묵직한 시간이 흘렀다. 그녀는 입으로 연신 흐느낌을 내뱉으며, 침대 시트를 손끝으로 쓸어내리거나, 소민의 손목 언저리를 가볍게 매만지거나하며, 15분정도의 시간을 보냈다. 참으로 지옥 같은 시간이 흘렀다. 시체는 몹시 흉측하게 부패되어 있었는데도, 가족이라 그런 건지 그녀는 정말로 담담해 보였다. 그녀는 특이했다. 처음 시체를 마주했을 때도 그녀는 놀라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꼭 많이 봤던 것처럼.
그녀는 이제 침대 곁을 붙잡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침대 손잡이를 잡은 손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바닥이 차가울 텐데도, 그녀는 미동도 없이 침대 맡에 얼굴을 묻었다. 스르르 내려온 머리가 그녀의 얼굴을 뒤덮었다. 그녀는 “언니, 흐윽.” 하는 소리를 내며, 등을 들썩였다. 무거우면서도 딱한 슬픔이 느껴졌다.
마신은 점점 저려오는 다리를 느꼈다. 앉은 것도 선 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로, 15분을 넘게 서있으려니까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내가 도대체 여길 왜 따라와 가지고! 그는 울컥 차오르는 화를 느꼈다. 사신의 간곡한 부탁이 아니었으면 이런 곳에 오지도 않았을 텐데. 그는 아까 전 자신에게 매달리다시피 부탁을 하던 사신의 얼굴을 떠올렸다.
‘한번만 도와줄 수 없을까?’
사신은 금방이라도 울 듯한 얼굴로, 마신의 바지가락을 부여잡았다. 그는 싫다고 거부의사를 밝히려 했으나,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압도되어 아무 말도 하질 못했다.
‘이번만 부탁할게.’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던게 이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탄식이 샜다. 참으로 바보 같은 선택이었다며 그는 스스로를 자책했다. 어차피, 난 남들이 볼 때 경찰이니까 그냥 나가버릴까? 문득 그런 생각까지 들기는 했지만, 코앞에 자리 잡은 흉측한 시신을 보고 금세 마음을 접었다. 왠지 모르게 혼자 집에 돌아가기가 무서운 탓이었다.
“저, 이제 나오시죠.”
끼익, 문이 열리는가 싶더니 아까 전 그 경찰이 얼굴을 불쑥 내밀고 말했다. 그녀는 작게 “네.”하는 대답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또각또각, 높은 하이힐이 아슬 하게 움직이며 시선을 사로잡았다. 경찰은 자신도 모르게 넋을 놓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문가에 다다른 그녀가 휙 뒤를 돌더니, 언니의 시신을 빤히 바라보았다.
“잘 있어, 언니.”
그녀는 울먹임이 가득담긴 목소리로 그 말을 내뱉고는 금세 밖으로 향했다. 쿵, 문이 닫히는 소리와 저벅저벅 멀어지는 발소리 속에서 마신이 문을 휙 밀며 튀어나왔다.
“아, 정말 죽는 줄 알았네.”
그는 잔뜩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 뿐만 아니라 창욱과 사신도 힘들었는지, 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아 멍한 시선을 쏟고 있었다. 시체보관실엔 짙은 정적이 맴돌았다. 후들거리는 다리가 그들의 고난을 말해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창욱은 땀이 잔뜩 배인 이마를 손으로 대충 닦아내며 말했다.
“아니, 도대체 왜 이 밤중에 언니의 시신을 보러 온 걸까요?”
그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자연스레 사신과 마신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그러자,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헝클인 마신이 답했다.
“그야, 언니가 그 정도로 보고 싶었나보지.”
마신은 퉁명스러운 말투로 대답했다. 몸이 어찌나 힘든지, 흉측한 시체는 이젠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마신은 셔츠자락을 펄럭이며, 사신을 향해 말했다.
“얼른 과거 보고, 튀자.”
마신은 손가락으로 시신을 가리켰다. 그러자, 잠시 넋을 놓고 있던 사신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
이술은 마신의 집 앞에서 한참이나 망설였다. 분명, 이곳이 맞았던 것 같기는 한데 좀처럼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공연장으로 되어있는 마신의 공간은 아담하면서도, 왠지 모를 차가운 분위기를 풍겼다. 그녀는 문고리에 손을 대었다가, 파박 튀는 전류를 느끼며 금세 손을 떼어냈다.
“정말 이런 곳에 사는 거야?”
그녀는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때, 정신을 차리고 허겁지겁 빠져나올 때만 해도 이런 곳이 집이라는 걸 눈치 채지 못했었는데 이제 기억을 더듬어 다시 찾아와보니, 참으로 가관인 모습이었다. 어떻게 사람이 공연장에서 살고 있는 거지? 그녀는 그 것이 정말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공연장 주위를 빙빙 맴돌았다. 아무리 문을 두드리고, 소리를 쳐도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집 안엔 아무도 없는 것이 뻔했다. 그녀는 어두워지는 하늘을 느꼈다. 그러다, 문득 시커먼 어둠이 그녀 앞을 스쳐지나갔다.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어둠은 재빠르게 움직여 공연장 주위를 맴돌더니, 금세 옆에 있던 풀숲으로 사라져버렸다. 도, 도대체 뭐지? 그녀는 덜덜 떨리는 몸을 느꼈다. 얼마 전 만났던 악마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그녀를 두려움에 빠지게 만들었다.
“설마, 아니겠지?”
심장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거세게 쿵쿵 뛰었지만, 그녀의 호기심을 막을 수는 없었다.
*
사신은 크게 심호흡을 한 후, 시체의 앞으로 다가갔다. 두근거리는 심장이 터질 듯 부풀어 있었지만, 어떻게든 이 일을 끝내야했기에 참아 넘겨야만 했다. 그는 조심스레 손을 뻗어 그녀의 손목을 쥐었다. 그러자, 머리 위로 수많은 장면들이 스쳐지나가며 알 수 없는 기운들이 주변을 사로잡았다.
번쩍 빛이 보이더니, 머지않아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정소민, 그녀는 한 술집에서 일하는 듯 보였다.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고, 헐벗은 여자들이 남자들의 곁으로 다가가며 웃음을 흘렸다. 소민은 몹시도 어두운 표정으로 몸을 일으켜 한 남자의 품에 안겼다. 크하하, 터지는 큰 웃음사이로 왠지 모를 눈물이 흐르는 듯했다.
그녀는 그날 밤, 술에 잔뜩 취해있었다. 왜이렇게 많이 마셨는지 모를 정도로 인사불성 한 상태였다. 높은 하이힐에 얇은 발목이 자꾸만 꺾이며, 기괴한 걸음걸이를 만들어냈다. 발목이 팅팅 부어오르는지도 모른 채, 그녀는 바보 같은 웃음을 흘렸다. 날은 점점 더 밝아오고 있었다. 새벽이 온 듯 했다. 그녀는 절뚝절뚝 걸어가다가, 한 여자와 크게 부딪쳤다. 그녀는 그 여자의 얼굴을 제대로 보기 위해 애를 썼으나, 희미해진 시야엔 그 얼굴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와 부딪친 여자는 잠시 망설이더니, 금세 후다닥 달아나버렸다. 소민은 왠지 모를 허탈함을 느꼈다. 내가 더러운가? 픽 하는 웃음이 샜다. 아 맞다, 난 더럽지. 금세 정신을 놓아버릴 듯싶었다.
그녀는 이제 무거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수많은 주택들을 지나, 골목길로 들어서다가, 금세 도로 한복판으로 향했다. 그녀는 어디로 가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비틀거리는 걸음이 점점 느려지고, 그녀가 누군가의 부름으로 인해 뒤를 돌았을 때, 기억은 거기서 암전이 되었다.
마신과 창욱은 숨을 죽인 채, 사신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왠지 모를 분위기에 압도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정적이 흐르고, 머지않아 사신이 식은땀을 흘리며 괴로워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빛이 그의 몸에서 새어나왔다. 눈이 멀 정도의 환한 빛은 시체보관실 안을 꽉 채우더니, 금세 사그라져버렸다. 사신은 숨을 헐떡이며 뒤로 물러섰다.
“뭐가 보였어?”
마신이 급히 그에게로 다가오며 물었다. 저절로 침이 꼴깍 삼켜졌다. 멍한 표정으로 거친 숨만 내쉬던 사신이 이마에 흐른 땀을 대충 닦아냈다. 그는 비틀거리는 다리를 겨우 움직여 뒤에 있던 벽에 기대었다. 창욱과 마신의 시선은 계속해서 사신을 향하고 있었다.
“친동생이 언니를 죽일 수 있을까?”
“예?”
사신이 물었다. 그러자, 화들짝 놀란 창욱이 눈을 크게 뜨며 답했다.
“아니, 뭐. 정말 끔찍한 원한관계가 아닌 이상 그럴 리가 없지 않을까요?”
“말도 안 돼!”
마신은 눈을 크게 뜨며 펄쩍 뛰었다. 어떻게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는 그 사실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했다. 정적이 맴돌았다. 셋은 모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의 말을 통해 대충 짐작할 수 있었지만 아무도 그에대해 확답을 내리지 않았다. 그건, 그 진실이 너무 끔찍해서였다.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어.”
마신이 말했다. 그의 얼굴엔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왠지 모르게 배어나온 땀을 손으로 대충 훔쳐낸 그가 침을 꼴깍 삼켰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묻고 싶었지만 물을 수가 없었다. 잠시 동안 생각을 정리하던 사신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근데, 그런 일이 일어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