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사실 이건 너무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사신이 본 그녀의 과거로는 말이 돼는 일이기도 했다. 사신은 몇 번이고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파노라마 필름처럼 스쳐지나가는 과거의 기억 속에서 그는 아까 전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는 길을 가던 언니를 불러 세운 뒤, 그녀를 살해했다. 그 모든 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소민은 그 날 곁에 있던 사람이 자신의 동생이었기에 조금의 의심도 품지 않았을 게 분명했고, 그러다보니 저항한번 해보지 못했을 것이 확실했다. 동생은 언니를 도심 한복판으로 데려갔다. 도대체 왜 그곳으로 데려갔는지는 의문이었지만, 그녀는 그런 짓을 저질렀다.
그녀는 참으로 이상했다. 혼자서 무언가를 중얼거리는가 싶더니, 머지않아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그는 소민의 기억 속에서 왠지 모를 고통과 절망, 그리고 엄청난 슬픔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어둠으로 잔뜩 물들은 과거 속에서 그는 울컥 치밀어 오른 뜨거움을 겨우 삼켜냈다.
마신은 좀처럼 사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말도 안돼. 그의 얼굴은 경악으로 물들어있었다. 소리없는 아우성을 치던 마신이 머리를 벅벅 쓸어 올리며, 주변을 정신없이 왔다갔다 하며 초조한 모습을 보였다. 아니, 그럼 아까 그 여자가 자신의 친언니를 죽였단 말이야? 허, 하는 기가 찬 숨이 샜다.
“네가 잘못 본거 아냐?”
마신이 물었다. 사신도 멍한 표정으로 마른세수를 하고 있었다. 이미 넋을 놓아버린 창욱은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 보였다. 사신은 하아 하는 짙은 한숨을 내쉬더니, 힘겹게 고개를 저었다.
“내가 봤을 땐, 그 여자였어.”
“아니, 근데 그게 말이 돼?”
마신이 버럭 소리를 치며 물었다.
“자신이 죽인 친언니를 굳이 이 밤중에 보러 온다고?”
마신은 좀처럼 이해를 하지 못했다. 아니, 죽인 건 둘째 치고, 왜 굳이 친언니를 보러 이 밤중에 여기까지 찾아오겠는가? 그것도 이 무시무시한 시체보관실에. 그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큰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왜 친언니를 죽인거지? 그렇게 큰 원한이라도 있던 건가? 답을 알 수 없는 물음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그를 고문시켰다. 마신은 몹시도 지쳐보였다.
“나도 그게 의문이야.”
사신이 말했다. 그의 얼굴엔 지친 기색이 가득했다. 겨우 정신을 차린 창욱이 무거운 걸음으로 사신에게 다가왔다. 그의 눈빛엔 슬픔이 담겨있었다. 죄를 진 것도 아님에도, 사신은 차마 그 얼굴을 바로 보지 못했다.
“확실하죠?”
창욱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사신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자세한건 제가 조사할게요. 경찰이니까….”
창욱은 말끝을 흐렸다. 아무리 이성을 잡으려고 해도, 마음대로 되질 않는 모양이었다. 알 수 없는 정적이 맴돌았다. 셋은 좀처럼 입을 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시린 정적이 흐르고, 복도 너머로 짙은 어둠이 쏟아져 내렸을 때, 셋은 꾸역꾸역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
이술은 계속해서 공연장 주변을 맴돌았다. 아까전, 풀숲으로 사라진 무언가를 찾아 이리저리 뛰어다녀봤지만 헛수고였다. 도대체 뭐지? 그녀는 알 수 없는 음산한 기운을 느꼈다.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참 기이한 일들을 많이 겪어보긴 했지만, 이런 기분 나쁜 기운이 느껴지는 건 처음음 겪는 일이었다.
아, 아니다. 두번째인건가?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 그녀는 얼마 전 만났던 남자를 떠올렸다. 자신을 보호해주려 했던 남자, 그리고 그 남자를 공격하던 악마. 모든게 한없이 끔찍했다. 그녀는 그 모든 게 꿈이길 바랬지만, 몸 곳곳 남은 상처들은 그 모든 게 꿈이 아닌 현실이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눈앞이 아찔했다. 이술은 목 언저리를 손으로 매만졌다. 그때, 악마가 자신의 숨통을 조이던 느낌이 생생했다. 정말 이대로 죽어버릴 줄 알았던 그 상황속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뜻밖의 희망을 만났다. 사신이라고 했었나? 그녀는 희미해진 정신사이로 자신을 지키려 애쓰던 남자를 떠올렸다.
그 남자는 참으로 이상했다. 자신을 도와준 것도, 자신을 지키려 애를 쓴 것도 모두 이상한 것들 투성이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그런 그가 몹시도 익숙하다는 것이었다. 분명 처음 본 사람임에도, 어디서 많이 봤던 사람처럼 편안했고, 믿음직스러웠다.
이술은 달리기도 하고, 걸음걸이를 세보기도 하며 시간을 떼웠다. 사람이라도 한명 지나가면 좋으련만, 어떻게 이 공연장 주변은 사람 하나 없이 휑했다. 왠지 모르게 한기가 돌았다. 그녀는 소름이 돋은 팔뚝을 쓱쓱 매만지며, 공연장 입구에 철푸덕 주저앉았다. 도대체 언제 오는 거야. 답답함에 한숨이 샜다.
*
사신은 오늘도 마신의 집에서 신세를 지기로 했다. 얼마전부터, 미인과 미연에게서 연락이 없던 탓이었다. 집에 들어가 보면 쉽게 알 수 있었겠지만, 집 문은 굳게 잠겨 진 상태였다. 사신은 몇 번이나 문을 두드리고, 그 문을 열려고 했지만, 얼마나 꽉 잠겨있는지 문은 좀처럼 미동도 보이질 않았다. 그는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둘은 여전히 연락 두절인 상태였다. 미연과 미인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었다. 전에도 사신에게 말을 하지 않은 채, 둘이서 일본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기에 사신은 이번에도 분명 그런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미인과 미연의 부재가 설명이 되질 않으니까.
마신과 사신은 터벅터벅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시체보관실을 벗어나자마자, 후다닥 뛰어가 사라져버린 창욱에게선 연락이 없었다. 정적이 맴돌았다. 둘은 갑작스레 다가온 끔찍한 현실에 좀처럼 말을 잇지 못했다.
푹 숙여져 있던 고개가 퍼뜩 들 건, 공연장 앞에 누군가의 실루엣이 보이면서였다. 어둠 속에 앉아있던 그녀는 잠에 빠진 듯, 몸을 흔들흔들하며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마신은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을 쳤지만 사신은 왠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설마? 하는 생각에 가까이 다가가 보자, 역시나 하는 얼굴이 보였다. 사신은 뜨거운 이마를 부여잡았다.
“저기요.”
사신은 급히 그녀의 어깨를 툭툭 쳤다. 이술은 화들짝 놀라며 퍼뜩 고개를 들더니, 잠시 주위를 살폈다. 멍한 그녀의 눈엔 초점이 보이질 않았다. 사신은 하, 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일어나요.”
“여기서 뭐하는 거야?”
뒤에서 마신이 불쑥 소리를 쳤다. 깜짝 놀란 이술은 급히 몸을 일으키며, 사신의 뒤로 몸을 숨겼다. 사신은 작게 미간을 찌푸렸다.
“여긴 왜 왔어요?”
사신은 몸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술은 작게 몸을 떨더니, 크게 심호흡을 했다. 두려움에 가득 찬 몸짓이 어쩔 줄 몰라 하며 애처롭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왠지 모르게 약해지는 마음을 느꼈다.
“왜 오긴 왜왔겠어! 미안하니까 사과하러왔겠지.”
마신이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싸늘한 그의 행동이 무서웠는지, 그녀는 좀처럼 말을 잇지 못했다. 마신은 답답함에 가슴만 퍽퍽 두드렸다. 사신은 그녀의 양 어깨를 부드럽게 부여잡으며, 눈을 마주쳤다. 파르르 떨리고 있던 몸이 그의 손길에 의해 점점 부드러워져만 갔다.
사신은 그녀를 보며 왠지 모를 안쓰러움을 느꼈다. 그때, 악마에게 당한 일로 마음이 정리되지 않았을게 뻔했다. 분명 엄청나게 놀랐을 거고, 무서웠을 것이며, 잠을 제대로 이루지도 못했을 것이다. 우연히 그 사건에 끼게 된 그녀에겐 참으로 슬픈 소식이였지만, 아마 그녀는 앞으로도 그런 일을 당하게 될 수도 있었다. 어둠의 기운이 잔뜩 묻은 인간은 악귀나 악마들이 가장 좋아하는 영혼에 속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어둠의 기운이 몸에 퍼져있으면 그 영혼을 집어삼키기가 쉬웠기 때문이었다. 그는 하아 하는 안타까운 숨을 내쉬었다.
“저, 저를 왜 도와 준거에요?”
이술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사신은 아, 하는 탄성을 냈다. 왜 도와주었기는 당연히.
“제, 제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면.”
“네?”
“절 도와주시지 않았을 거죠?”
그녀는 자꾸만 알 수 없는 말들만 늘어놓았다. 가만히 그 얘기를 듣고 있던 마신은 금방이라도 그 답답함을 해결하려했으나, 사신이 눈짓으로 그것을 막은 탓에 괜한 바닥에 발을 구르며 툴툴 거리고 있었다. 사신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짓을 했는데요?”
그가 물었다. 그러자,
“사람을 죽였어요.”
그녀가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