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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사
작가 : 유지
작품등록일 : 2017.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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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장 불안함
작성일 : 17-07-28     조회 : 358     추천 : 0     분량 : 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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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이지, 말이 안되는 일들의 투성이었다. 마신은 헛헛 하는 웃음을 흘리며 속으로 잔뜩 이를 갈았다. 도대체 저 여자가 뭐라고 짓껄이는거야? 그저 이 현실이 꿈만 같이 느껴졌다. 처음부터 이상한 여자라는걸 알고 있었는데, 진짜 미친여자였던거야 뭐야?

 

  묵직한 시간이 흘렀다. 아무말도 못한채 멍하니 서있는 사신을 본 그가 하 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사신의 성격상 저런 말을 들으면, 쉽게 못넘어갈게 뻔했다. 분명 무슨일인지 들어주려하거나, 아님 해결해주려하겠지. 그는 벌써부터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사신이 원래부터 마음이 약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긴 했지만, 이번엔 좀 정도가 지나친 듯했다. 아무리 그래도 알지도 못하는 여자를 받아들인다는게 영 성미에 차질 않았다. 아니, 아는 사람도 아니고, 고작 몇번 얼굴 본 여자의 얘기를 들어준다고? 도대체 왜? 마신은 목까지 차오른 짜증을 겨우 참아냈다.

 

  그 여자는 참으로 특이했다. 사신이 어디서 데려왔는지는 어렴풋이 알 수 있었지만, 그녀에 대해 아는건 그게 다였다. 그녀의 이름은 뭔지, 어디에 사는지, 나이가 뭔지. 아무것도 아는게 없었다. 굳이 그녀에 대해 아는걸 정리하자면, 저 허여멀건 얼굴과 성격이 특이하다는 것? 뿐이었다. 마신은 정말이지 답답해서 미칠지경이었다. 계속해서 정적이 도는 내내, 여자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고, 사신은 멍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을뿐이었다.

 

  도대체 뭐하는거야? 마신은 울컥 짜증이 치솟는걸 느꼈다. 도대체 왜 저 여자의 속사정까지 들어줘야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차라리, 친한 사람이면 말을 안하지. 기껏 본거라고는 한번뿐인 여자가 왜 사신에게 그런 말을 하는지 까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도대체 우리한테 왜그러는거야? 마신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느꼈다.

 

  결국 참지 못한 마신이 사신에게로 다가갔다. 어깨를 툭툭 두드리자, 멍한 시선이 그를 향했다. 마신은 잠시 미간을 찌푸리다가, 하아 하는 한숨을 내쉰뒤에 그에게 말했다.

 

  “가자.”

 

  그는 빨리 이 자리를 뜨고 싶었다. 오늘 하루종일 겪은 일들만으로도 피곤해 미칠지경이었다. 그런데, 저 여자가 하는 말까지 듣는다면 더 견디지 못할게 뻔했다. 가만히 마신을 바라보던 사신이 꾸역꾸역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저 여자의 말을 듣는건 무리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마신은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마신은 주술을 사용해서 문을 열었다. 커다란 유리문으로 된 공연장 입구가 그의 손길에 의해 손쉽게 열렸다. 마신은 그 안으로 들어서며, 사신을 향해 손짓했다.

 

  “뭐해, 빨리와.”

  “아.”

 

  사신은 잠시 멈칫하며, 그녀를 살폈다. 이술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어쩌지? 사신은 어쩔 줄 몰라 발을 동동 굴렀다. 지금은 정말로 쉬고싶긴 했지만, 그녀를 두고가는건 마음에 내키질 않았다. 잠시 고민하던 사신이 결국 그녀의 손목을 부여잡았다.

 

  “같이 가요.”

 

  그녀의 고개가 퍼뜩 들렸다. 왠지 모를 탁한 눈빛이 그를 향했다. 사신은 그녀에게 같이 들어갈 것을 권했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는 듯 하더니 머지 않아 고개를 끄덕였다.

 

  “뭐, 뭐하는거야!?”

 

  마신은 버럭 소리를 쳤다. 빨리 들어오라고 했더니, 저 여자까지 주렁주렁 달고온 사신 덕에 뒷골이 땡기는 기분이었다. 하하, 어이가 없는 헛웃음이 샜다. 하루종일 개고생이네 정말, 잔뜩 짜증을 낸 마신이 “마음대로 해!”라는 싸늘한 말을 뱉고는 공연장 안으로 휙 자취를 감추었다. 사신은 하아 하는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아무래도, 삐진 마신을 풀어주려면 한참의 시간이 걸릴 듯 했다.

 

 

 *

 

  미인은 정말이지 이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된거지? 그녀 앞에 서있는 검은 형체는 이 모든게 꿈이 아닌 현실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미인은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킬킬대는 검은 형체가 그녀에게 다가오며 씨익 끔찍한 미소를 흘렸다. 미인은 저도 모르게 반지를 꼭 쥐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흘러가는건지,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었다.

 

 

 *

 

  소진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또각또각 아찔한 걸음을 옮길때마다, 남자들의 시선이 진득하게 따라붙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내리는 짐승같은 시선들에 온 몸에 쾌감이 느껴졌다. 그래, 좋아. 그녀는 왠지 모르게 기분이 업 되는 것을 느꼈다.

 

  소진은 수많은 골목을 지나,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그녀가 가는 길들은 많이 와본 사람이 아니면 모를 정도로 꼬불꼬불하면서 몹시 복잡한 경로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술집 골목, 노래방 골목, 아파트 골목 등을 지나, 더 깊숙한 어둠속으로 향했다. 그녀가 걸어가는 내내, 짙은 향수냄새가 풍기며 길게 뻗은 그림자가 그녀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그녀는 마지막 골목을 지나, 산속에 위치한 작은 창고로 향했다. 그곳은 매우 어둡고, 음침했으며, 알 수 없는 한기를 풍겼다. 연신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그녀가 익숙한 손놀림으로 창고의 자물쇠를 풀었다. 끼익, 하며 열린 그 공간엔 무언가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녀는 작은 핸드백 속에 넣어두었던 향수를 꺼내, 창고 안으로 칙칙 뿌렸다. 고약한 냄새와 향수 냄새가 섞이며, 더 끔찍한 냄새를 풍겼지만,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듯보였다.

 

  쾅, 창고 문이 닫히고, 그녀는 그 곳에 작은 전구를 켰다. 주황빛을 내는 전구는 어둠을 밝히며, 주변 사물을 인지하게 만들었다. 창고 안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흉측한 것들이 가득했다. 그것들은 유리병 안에 들어있었는데, 모두 다 원래의 형태를 유지하게 하기 위해, 방부제로 덮어놓은 상태였다. 그녀는 천천히 움직이며, 손끝으로 그것들을 하나하나씩 쓸어내렸다. 손톱끝에 유리병이 닿자, 틱틱 하는 소리와 함께 정적을 깨트렸다. 그녀에게선 여전히 콧노래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

 

  이술은 왠지 모르게 두근거리는 가슴을 느꼈다. 그도 그럴만 한 것이 이렇게 큰 공연장에 와본 것은 처음이였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저주받은 손으로 인해 바깥생활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런 공연장에도, 그 흔한 영화관에도 가본적이 없었다. 그런 그녀의 눈앞에 펼쳐진 마신의 집이자 공연장은 완전 신세계와 다름이 없었다.

 

  사신은 그녀를 맨 마지막 방으로 안내했다. 뭐가 어떻게 되었든 간에 지금은 많이 늦었고, 그녀를 혼자서 집에 돌려보내기엔 몹시도 위험했다. 얼마 전, 악마의 공격을 받았었기에 혼자서 이 밤중에 돌아다니게 만드는건, 그야말로 죽어라 하는 마음으로 보내는 것과도 다름이없었다. 아마, 그 사실을 마신도 알고 있었기에 짜증을 내면서도 묵인해준걸지도 몰랐다.

 

  마신은 매번 짜증을 내고, 버럭 소리를 치긴 했지만 실제 마음은 굉장히 여리고 따뜻했다. 그건, 그가 평상시에 하는 행동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는 그 누구보다도 사신과 미인을 잘 챙기기 위해 애를썼다. 미인과 사신 모두 그에게 진 빚이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것을 보면 그의 성격이 어떤지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신은 매번 그런 마신에게 고마웠다. 고맙다는 말을 전하긴 했지만, 그걸로도 부족할 정도로 마신은 그에게 생명의 은인과도 다름이 없었다.

 

 

  “우와, 너무 예뻐요.”

 

  벌컥, 마지막 방의 문이 열리자 그녀는 입을 떡 벌리며 말했다. 꼭 우주처럼 꾸며놓은 방안은 별과 같은 조명과 커다란 달 모양의 벽지, 그리고 새하얗고 폭신한 침대가 놓여있었다. 매번 손님이 올때 대접하기 위해 마신이 만들어놓은 방이기도 했다. 그녀는 언제 울적했냐는 듯, 몹시 기분좋은 표정으로 벽지 주변을 매만졌다. 까슬한 벽지의 촉감이 너무도 좋았다.

 

  “오늘은 여기서 자요.”

 

  사신은 말했다. 아, 하는 탄성을 낸 그녀가 물끄러미 사신을 바라보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사신은 왠지 모르게 떨려오는 가슴을 느꼈다. 그건, 그녀의 미소를 보았을때 느껴진 감정이었다. 아무말도 못한채,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던 사신이 흠칫 뒤로 물러섰다.

 

  “고마워요.”

 

  그녀는 말했다. 사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급히 문고리를 잡았다. 왜이렇게 심장이 두근거리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건 설레임이라는 감정도 있었지만, 왠지 모를 불안함이라는 감정까지도 섞여있는 것만 같았다. 그는 이상한 불안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그에게 다가가려다가,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혹시라도, 손이 스치게 된다면 몹시도 위험했다. 멍하니 서있는 그녀를 향해, 사신은 잘자라는 인사를 건네고는 쾅 문을 닫았다. 머릿속이 자꾸만 멍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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