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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사
작가 : 유지
작품등록일 : 2017.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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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장 도대체
작성일 : 17-07-28     조회 : 332     추천 : 0     분량 : 4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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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욱은 그야말로 미칠지경이었다. 그도 그럴만 한 것이 불과 몇 시간전에 아주 끔찍한 진실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금방이라도 정신줄을 놓을 것만 같았다. 갑자기 다가온 거짓 같은 진실은 자꾸만 그를 고문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수가 있는걸까? 아니, 이런 일이 정말 세상에 존재하긴 하는걸까? 그는 눈앞에서 현실을 보고도 믿지 못했다. 아니, 믿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친동생이 친언니를 그렇게 잔인하게 죽일 수 있단 말인가?

 

  대충 듣기론 친언니와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고 했다. 뭐, 자주 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가끔보고 같이 쇼핑을 다니고 밥을 먹을정도로 꽤나 가까운 사이라고 들었던 기억이 남아있었다. 그런데, 도대체 왜? 도대체 왜 그런걸까?

 

  눈앞이 캄캄했다. 사신의 말을 믿고 싶지 않으면서도, 믿을 수 밖에는 없었다. 그래, 사실 생각해보면 정말로 이상한 것 투성이었다. 죽은 사체에서 반항의 흔적이 없다는 것도 그랬고, 이 밤중에 언니를 보러 시체보관실까지 찾아온 친 동생의 행동을 봐도 수상한 점이 가득했다. 왜 그걸 눈치채지 못했을까? 후, 한숨을 내쉰 창욱이 벅벅 마른세수를 했다.

 

  답을 알 수 없는 물음들이 둥둥 떠다녔다. 창욱은 크게 심호흡을 한 뒤에야 경찰서 안으로 향했다. 오늘도 형사과 사무실 안은 복작복작했다. 수많은 범죄자들이 들락날락거리며, 공간을 더욱 더 탁하게만 만들었다. 창욱은 익숙하게 자리를 찾아가 앉았다. 서류더미가 가득 쌓여있는 그의 책상 위엔 양말과 칫솔 하다못해, 속옷까지 놔뒹굴고 있었다. 그는 손으로 그 것을 쓱 밀어 옆으로 치웠다. 조그만한 공간이 나자, 그는 그 위로 이마를 쿵 하고 박았다.

 

  “하 어떡하냐.”

 

  그야말로 답은 알지만,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사신에게 기껏 모든걸 알아냈건만, 그것들을 증명할 자료가 충분하질 않았다. 가족들이 부검까지 거부한 상황에서 더 이상 할 거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이마를 쿵쿵 계속 박았다. 머리가 지끈했지만, 머릿속이 더 지끈했기에 아픈줄도 몰랐다.

 

  “증거를 찾아야하는데.”

 

  정소진이 친언니를 죽였다는 사실을 입증하려면, 증거를 찾아야만했다. 하지만, 도심한복판에 일어난 사건 때문에 왠만한 증거들은 다 치워버리거나, 없어진 상태였고, 경찰들 모두 끔찍한 사건을 덮으려 애를 쓰고 있는 탓에 증거를 잡기엔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증거가 없다면,”

 

  그는 잠시 망설였다.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는 딱 하나의 방법만이 존재했다. 바로, 범인의 입에서 나온.

 

  “자백.”

 

  그는 눈을 번뜩였다. 갑자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후다닥 밖으로 뛰어나갔다. 후딱 들어왔다가 또 다시 후딱 사라지는 창욱을 본 형사들이 혀를 쯧쯧찼다. 제가 드디어 미쳤구나, 한심한듯 보는 시선 사이론 왠지 모를 안쓰러움이 가득했다.

 

 

 *

 

  아침이 밝았다. 이술은 벌떡 몸을 일으키자마자, 급히 밖으로 나섰다. 그녀의 양 손에는 면장갑이 끼워져 있는 상태였다. 그녀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느꼈다. 이번에 그에게 확인만 한다면, 분명 앞으로는 문제 없이 살 수 있을게 뻔했다. 그녀는 공연장 주위를 빙빙 맴돌았다. 수많은 문들 가운데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가 없는 탓이었다. 입술이 질끈 물렸다. 잠시 망설이던 그녀가 가장 큰 초록색 문을 열었다. 그러자,

 

  “우와.”

 

  탄성이 새어나왔다. 그 곳은 마신이 마술을 하는 공연장이었다. 소규모 공연장임에도, 그 안은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꾸며져있었다. 벨벳 소재의 자주색 커튼과 넓은 무대 그리고, 아기자기한 좌석까지. 그녀는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태어나서 이렇게나 예쁜 공연장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

 

  그녀는 사신이 무대에 떨어졌을때, 정신을 잃고 있던 터라 공연장을 와본건 2번째 였음에도 눈치채질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좌석 사이를 지나갈때마다, 펼쳐져 있던 좌석이 저저로 접히며, 색색의 조명이 피어올랐다. 조명들은 천장 위로 모이더니, 머지않아 무지개색으로 합쳐졌다. 그녀는 입을 떡하니 벌렸다.

 

  “뭐하는 거야?”

 

  불쑥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문 앞에 잔뜩 화가난 얼굴로 서있는 사람은 다름이 아닌 마신이었다.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누구 맘대로 공연장에 함부로 들어오는거야? 울컥 화가 치솟아 올랐다.

 

  “아, 아니요 저는 그저.”

  “그 장갑은 뭐야?”

 

  이술은 말을 다 잇지 못했다. 터벅터벅 그녀의 곁으로 다가온 마신이 그녀의 양손에 끼워진 면장갑을 보며, 의아한 시선을 보냈다. 그녀는 아, 하는 탄성을 낼뿐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만 한 것이 지금 마신에게 자신이 저주받은 손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게 된다면, 분명 이것저것 해봐야할 실험을 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급히 손을 뒤로 숨겼다. 마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대답해, 그게 뭐지?”

 

  마신은 강압적인 목소리로 말을 했다. 흠칫 놀란 이술이 뒤로 뒷걸음질을 쳤다. 한발짝 멀어질 수록, 두발짝 가까워지는 마신 탓에 머리가 어질했다. 등 뒤로 벽이 닿았다. 그녀는 망했다. 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리내.”

  “네?”

  “당장 그 장갑 이리내라고.”

 

  그녀는 눈을 크게 떴다. 마신의 얼굴에는 화가 가득했다. 도대체, 저게 뭐길래 자꾸 숨기는거야? 설마, 악마나 악귀가 담긴 저주의 장갑 아니야? 머릿속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울컥 화가 치밀어올랐다.

 

  악마나 악귀가 담긴 저주의 장갑은 아주 끔찍한 주술도구에 속했다. 흔히 말해, 저주 인형과도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저주의 장갑을 손에 낀 후, 주술사를 만지게 되면 주술사의 일부가 타들어갔다. 손을 대기만해도, 엄청난 기운이 뿜어져 나와 주술사를 갉아먹는 것이었다. 얼마전, 저주의 장갑을 보관하고 있던 주술사협회에서는 그 장갑을 잃어버렸다. 그건 누가 훔쳐간 것이기도 했다.

 

  그는 왠지 모를 불안함을 느꼈다. 결국 화를 참지 못한 마신이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녀의 팔을 휙 앞으로 가져왔다. 그는 어떻게든 장갑을 빼앗으려 애를 썼다.

 

  “왜, 왜이러세요!”

  “내놓으라니까!”

 

  언성은 점점 더 높아져만 갔다. 빼앗기지 않으려는 이술과 빼앗으려는 마신 사이에 뜨거운 공기가 흘렀다. 둘이 한참 실랑이를 하고 있을때, 문이 벌컥 열리고 사신이 그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뭐하는 짓이야!”

 

  사신은 버럭 소리를 쳤다. 그의 눈에는 강제로 이술의 물건을 빼앗으려 하는 마신의 모습이 보일 뿐이었다. 재빨리 다가온 그가 마신과 이술을 떨어트려놓았다. 차가운 공기가 흐르고, 사신은 잔뜩 화가난 목소리로 말했다.

 

  “오마신, 너 도대체 왜그래?”

  “너야말로 왜그래?”

  “오마신.”

  “이 여자 지금 겨우 2번 봤어, 알게 된것도 겨우 며칠이야. 근데 넌 10년 본 나보다 저 여자의 편을 드는거야?”

 

  마신은 얼굴을 잔뜩 구겼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사신은 하아 하는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거 아니야.”

  “아니라면 뭔데? 넌 자꾸 저 여자편만 들잖아. 저 여자가 뭐일 줄 알고?”

 

  그래, 솔직히 따지고 보면 마신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아직, 통성명도 못한 그녀가 무엇일지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그녀는 마녀일수도, 악마일수도, 하다못해 같은 주술사일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정체를 모르는 그녀의 편을 든다는건 마신의 입장에서 충분히 서운할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해도, 그 여자는 연약했다. 마신은 주술사이고, 충분한 힘이 있었지만 여자는 그렇지 않아보였다. 그건 그녀가 여자여서가 아니라, 그녀에게서 풍기는 기운으로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녀에게선 미묘한 힘이 느껴졌지만, 그건 그저 사용할 수 없는 겉보기에 불과했다. 장식용이란 말이었다. 그는 그녀가 그 힘으로 고통받고 있는걸 알았다. 쓰지 못하는 힘은 오히려 독이었다.

 

  “저 여자 이상한 장갑을 가지고 있어.”

 

  마신이 하아 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사신은 퍼뜩 고개를 들어,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정적이 맴돌았다. 그녀는 저 멀리로 시선을 던지며, 애써 모른척을 하고 있었다.

 

  “그 장갑이 혹시 저주의 장갑이 아닐까해서 빼앗으려한거야.”

 

  착찹한 숨이 샜다. 왜 이와중에 사신에게 변명 아닌 변명을 해야하는지도 몰랐다. 사신은 아, 하는 탄성을 냈다. 잠시 망설이던 그녀가 갑작스레 사신의 팔을 꽉 부여잡았다.

 

  “뭐하는거야!”

 

  마신은 소리를 쳤다. 헉, 하는 숨이 샜다. 닿는 살갗사이로 뜨거운 체온이 느껴졌다. 쿵 심장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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