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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사 옥선생
작가 : 연지주자
작품등록일 : 2017.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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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 살려줘
작성일 : 17-09-05     조회 : 455     추천 : 0     분량 : 4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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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희는 멍하니 보호자 대기실 의자에 앉아 사람들이 바삐 걸어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중에는 젊은 커플들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손을 꼭 잡은 사람들. 서로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가는 연인들. 사람들은 정말 다 행복해 보인다.

  사람들은 연애를 다들 잘 만 한다. 근데… 다들 어떻게 서로 좋아하게 되는 걸까? 어떻게 연애를 시작하는 걸까?

  어울리지 않게 그런 사색을 하며 설희는 한 손으로 턱을 괴고 밖을 계속 바라보았다.

  옥 선생이 고백을 한지 꼭 5일이 지났다. 너무나 충격적이고 강렬한 사건이었던 지라 설희는 하루하루가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고백 한 날, 그리고 그 다음날 추가로 다시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그리고 나서는 옥 선생의 호감표현이 뚝 끊겼다. 정말 그런 일이 있긴 있었던 것일까 의심이 될 정도였다.

  연애가 너무 어려워…

  옥 선생은 너무 여유 있는데, 설희 혼자 안절부절 못했다. 손끝이 마주칠 때마다, 좁은 통로에서 그와 스쳐 지날 때마다, 설희는 긴장되어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혈압이 오르는데, 막상 고백한 옥 선생은 너무나 편안한 표정으로 설희를 쳐다봤다.

  이쯤 되면 옥 선생이 날 좋아해서 고백한 건지, 아니면 날 놀리려고 고백한 건지 모르겠어.

  괜히 시무룩해진 설희는 밖을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엉덩이를 털며 일어섰다. 매니저가 안에서 걸어나오며 설희를 불렀다.

 

  “ 설희씨, 벌써 옷 다 갈아 입었어요? “

  “ 네. 매니저님도 준비 하셨어요? “

 

  오늘은 설희가 취직하고 한달 넘게 병원에 통 나오지 않던 외삼촌, 돌마래 동물병원의 원장이 병원에 나와 회식을 하는 날이었다. 병원 전체 회식은 처음이었기에 나름 긴장도 됐지만, 다른 것보다도 옥 선생과 또 술을 마신다는 점이 긴장됐다.

 

  지난번 옥 선생과 술 마셨을 땐…

 

  매니저와 말을 하다 말고 설희의 얼굴이 달아오르자, 매니저가 이상한 듯 설희의 안색을 살폈다.

 

  “ 어디 아파요? 볼이 빨간데. “

  “ 아, 아니요. “

 

  옥 선생이랑 키스 했던 걸 떠올리느라 얼굴이 빨개졌다고는 말 못해서 그저 고개만 숙였다. 이상해, 내가 너무 이상해.

  이랬던 적 없는데. 옥 선생만 생각하면 가슴이 울렁거렸다. 짜증도 나고, 화도 났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 사람을 생각하면 행복해져야 하는 거 아니야? 근데 설희는 옥 선생을 떠올리면 뭔가 불안하고 안타까운 느낌이 들었다. 역시 옥 선생은 연애 상대로 아닌 건가?

  옥 선생은 나를 보며 어떤 느낌이 들까?

  설희가 옥 선생 생각을 하는데 옷을 갈아입은 옥 선생이 저벅저벅 걸어 나왔다. 그런 옥 선생을 보고 설희는 입술을 잘근 잘근 깨물었다.

  내가 혹시… 얼굴만 보고 좋아하는 타입인가?

  옥 선생이 그렇게 자신을 불안하게 하고, 옥 선생만 생각하면 흔들거리는 느낌이 들어 결코 행복하지 않은데, 옥 선생의 모습을 보면 왜 나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보게 되지?

 

 *

 

  오늘의 옥 선생은 흰 차이나 칼라 셔츠에 감색 바지를 입었다. 약간 드레시한 느낌의 셔츠가 옥 선생님이 움직일 때마다 부드럽게 상반신을 감쌌다.

  회식으로 온 술집에서 맞은 편에 앉아있는 옥 선생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왜 자꾸만 옥 선생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는지 화까지 났다. 그런데 그렇게 옥 선생을 쳐다보는 것은 설희 하나 뿐은 아니었는지, 최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 옥 선생, 오늘 특별히 얼굴에서 빛이 나네? 셔츠때문인가, 뭐 좋은 일 있나? “

  “ 좋은 일은요, 뭘. “

 

  옥 선생이 툭, 이야기하자 최 선생이 꺄르르 웃었다.

 

  “ 하여튼 옥 선생은 붙임성만 좋았어도 여자들한테 인기가 훨씬 더 많았을 텐데. 저 얼굴에, 저능력에 여친 없는 거 보면 좋아하는 여자는 더 괴롭히는 거 아니야? “

 

  왜 이 이야기에 내가 긴장되지.

  최 선생의 말에 설희가 침을 꼴깍 삼켰다. 그러자 옥 선생의 시선이 최 선생님에게서 서서히 설희에게로 옮겨왔다.

  왜, 왜 날 보지?

 

  “ 글쎄요. 좋아하는 여자는 더 괴롭혔었나? “

 

  분명히 최 선생님에게 말하는 건데, 왜 날 보고 말을 하지.

  설희는 테이블 밑에서 주먹을 꼭 쥐고 숨을 멈추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옥 선생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그때, 원장선생님, 설희의 외삼촌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 자자, 우리 회식 자리가 얼마만이지? 한 세달만이던가? “

 

  살았다. 외삼촌의 한마디가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옥 선생과, 그런 옥 선생과 설희를 재밌다는 듯 쳐다보는 최선생님 사이에서 구출된 느낌이 들었다.

 

  “ 오늘 회식은, 물론 우리 설희가 들어온 것 축하할 것도 있지만, 공지사항이 있어서입니다. 흠흠, 저 우리 최선생이, 갑작스럽지만 다음 달로 병원을 그만두게 됐어요. “

 

  외삼촌에 말에 모두들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고 보니 최 선생님의 잔에는 다른 사람들 처럼 맥주가 아닌 사이다가 담겨있었다. 설희도 바로 옆에 앉은 최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그런 설희에게 최 선생님이 방긋 웃어보였다.

 

  “ 저.. .사실은 제가 임신 5개월이에요. “

  “ 어머, 축하해요! 최선생님! “

 

  작년에 결혼한 최 선생님은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 좀 더 빨리 여러분께 말씀드릴 수도 있었지만, 나이가 있어서… 안정되면 말씀드리려고 했어요. 원장님께는 이미 말씀드렸구요. “

  “ 정말 잘됐다, 축하드려요. “

 

  사람들의 축하들이 쏟아지고 외삼촌이 흐뭇한 듯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 그래서 다음달 초에 최 선생님 가시기 전에 새로운 수의사도 들어올 거니 다들 잘 부탁해. “

  “ 어떤 분이 들어오시는 데요? “

 

  매니저의 질문에 최 선생이 미소 지으며 옥 선생을 봤다.

 

  “ 옥 선생은 아는 사이지? 최이현이라고, 옥 선생이랑 같은 연구실이었다던데. “

 

  옥 선생이 최이현이라는 이름에 인상을 찌푸렸다.

 

  “ 최이현이요? “

  “ 응, 옥 선생보다 두 학년 후배일 텐데 기억 안 나? “

 

  옥 선생이 기분이 나쁜 지 썩 밝은 표정이 아닌 상태로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답했다.

 

  “ 압니다. “

  “ 사이 별로 인 가봐? “

  “ 별로일 게 있나요. 그냥 후배죠. “

 

  그렇게 말은 했지만 옥 선생의 표정이 일그러져 있는 것 보니 껄끄러운 사이인듯 보였다. 설희는 그런 옥 선생을 보고 한숨 지었다.

  돌마래 동물병원이 평화로운 것은 최선생님이 있기 때문이었다. 늘 둥글둥글하고 차분한 최 선생님이 평소 좀 날카로운 옥 선생님을 다독이고 편하게 해줘서 살만했다. 근데 옥 선생님과 사이 나쁜 수의사가 온다니, 절로 머리가 아파왔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멀리서 이야기를 하던 외삼촌이 설희 쪽으로 걸어왔다.

 

  “ 설희야, 너 잘하고 있지? “

  “ 네? “

 

  워낙 병원에 안 나오는 존재감이 거의 없는 외삼촌이었지만, 일단은 원장선생님이다. “ 잘 하고 있습니다 “ 라고 말하고 싶은데, 바로 앞에 설희가 맨날 사고 치는 것을 보고 있는 옥 선생님이 있는 지라 뭐라 말 할 수가 없었다.

 

  “ 저… 잘 하려고 하고 있어요. “

 

  설희의 말에 외삼촌이 크게 웃었다. 뭐가 웃기지?

 

  “ 설희, 너 일 열심히 해야돼. 맨날 연애만 하지 말고. “

 

  무, 무슨 말이지?

 

  뜬금없는 외삼촌의 말에 놀라 설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외삼촌을 바라보았다.

 

  “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

  “ 에이, 다 들었어. 너랑 옥 선생, 사귄다며? “

 

  외삼촌에 말에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숨죽이고 설희를 바라보았다.

  죽고 싶다. 어떻게.. .어떻게 알았지? 말도 안돼. 옥 선생님이 고백하고 나서 아무에게도 말 안했는데? 아니, 애초에 사귀지 않는데?

  혹시 옥선생이…

  설희가 의심스런 눈초리로 옥선생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옥 선생은 맥주잔을 든 채로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멍하니 외삼촌을 바라보는 얼굴을 보아하니 옥선생도 모르는 일인 것 같았다.

 

  “ 그런…말도...아…”

 

  그런 말도 안되는…이라고 말하려다 옥 선생이 화를 낼까봐 설희는 잠시 말을 쉬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 누가 그런 소릴 해요? “

  “ 네 엄마가 그러던데. 훤칠하고 잘생긴 옥 선생이 집에 인사왔었다면서. 설희 일 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참 빠르네. “

 

  엄마… 가만 안둘꺼야… 폐륜이라 해도 소용없어… 가만 안둬…

  옥선생이 이사때 도와주러 온 것을 어떻게 집에 인사온 걸로 바꿔서 외삼촌에게 말할 수가 있지? 경악한 설희의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외삼촌은 말을 이었다.

 

  “ 그래도 잘됐어. 우리 옥 선생이 병원 일을 맡아서 봐주면 되겠어. 나도 슬슬 은퇴할 때가 되었으니 조카 사위에게 물려줄 때가 됐지. “

 

  조카사위…

  원산폭격수준이었다. 설희는 손을 들어 외삼촌의 소매를 잡았다.

  제발 그만… 그만하세요. 삼촌… 창피해서 죽을 것 같아요.

  그러나 너무 놀라서인지 말은 나오지 않았다. 늘 밝고 긍정적인 외삼촌이 정말 왈가닥인 엄마와 남매가 맞는지 궁금했는데, 의외의 장소에서 삼촌과 엄마의 비슷한 점을 발견했다. 설희의 입에서 기괴한 소리가 나고, 다른 사람들은 키득거리며 설희와 옥 선생님을 바라보는데, 옥 선생님의 입에서 단호한 한마디가 나왔다.

 

  “ 싫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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