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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 (NEMESIS)
작가 : HANNAH
작품등록일 : 2017.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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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NEMESIS) 1
작성일 : 17-07-31     조회 : 282     추천 : 0     분량 : 4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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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HWAN)〕

 

 

 

 

 

 유난히 그날따라 바라본 하늘은 색이 바래있었고 하나 둘씩, 하이얀 눈송이가 떨어져 뺨에 흐른다.

 

  아, 눈이네.

 

  당황하는 사람들의 얼굴은 빨간 사이렌 불빛에 물들었고 비명 소리도, 허둥대는 둔탁한 발걸음 소리도 이내 내리는 눈 파편에 먹혀버렸다. 손끝에서부터 천천히, 힘이 빠져나는 것을 느꼈다. 이젠 아픔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마침내, 가련한 육체가 고통을 견디다 못해 신경을 끊어버린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만약 누군가 나의 마지막 날에, 그런 생각은 하고 싶진 않았지만, 제목을 붙여 준다면 아마 이렇게 부르진 않았을까.

 

  운수 좋은 날.

 

  하긴야 누가 이 어린 나이에 내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또 예견하겠냐만 그래도 나는 적어도 뼛속까지 차갑고 딱딱한 이 시멘트 바닥 위에서 이토록 요란하게 사그라지게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다.

  나는 그 누구에게도 들리진 않았겠다만은 작게나마 코웃음을 쳤다. 적어도 머릿속으로는 그렇게 했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을 이렇게 장식하는 걸 알았더라면, 연이었던 좋은 운에 그리 즐거워하지도 않았을 텐데. 유난히 이유 없이 들떠, 아침부터 마치 행운의 신이 나와 함께 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유치함에 스스로에게 비웃기까지 했다.

 

  나는 본디 분수에 맞는 욕심을 부리는 사람이라, 행동으로 옮기진 않았지만 도박이라도 한다면 한바탕 거하게 땄을 거라는 생각마저 들곤 했다. 다시 말해서, 오늘 하루는, 지금에서야 이런 해석을 풀어놓는 것이지만, 세상이 내게 준 마지막 위로금처럼 내가 줄곧 원했던 일이 다 이뤄졌던 날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마치 색이 알록달록한 안대를 써 기쁜 광대가 앞이 절벽인지도 모르고 즐거워 날뛴 꼴 같은 마냥. 버리기 직전 아이에게 사탕이라도 쥐어주는 것처럼. 이럴 줄 알았더라면, 결국 이럴 줄 알았더라면 최소한 종교라도 갖는 거였는데.

 

  서글픈 삶이라고 생각했다. 꺼지기 직전의 촛불이 가장 밝다고 했었다. 이전에는 미처 몰랐었다. 내가 이토록 삶에 대한 미련이 있었는지. 잊고 있었던,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일들, 앞으로 하고 싶었던 것들, 그리고 끝내 이제는 영원히 이룰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열망이,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 외 그 어느 것도 움직일 수 없음에도, 밀랍처럼 딱딱하게 굳은 입만큼은 녹아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살겠다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누군가 나를 구해주러 올까? 나는 정말로 여기서 끝일까? 어쩌면 여긴 사람들이 많은 대로변이니까, 나를 구해줄 사람이 많을지도 몰라. 내가 병원으로 이송하기 직전까지 버텨낼 수는 있겠지.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별거 아닐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저 이런 사고 자체가 처음이라, 사실은 별거 아닌데 유난 떠는 거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정말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공포가 벌레가 되어 나의 몸을 기어오른다.

 

  제발, 누군가 나를 구해줘. 무엇이든지 다 할 자신이 있어. 아픈 것은 너무 싫어. 내가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 거지? 나는 남들만큼의 부지런함과 게으름 그리고 조금의 운으로 나름 괜찮은 성과를 내는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리고 나 외에도 거의 대부분이 그러하겠지만 성인(聖人)처럼 살진 못해도 그렇다고 크게 원한 살 일은 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아니, 장담한다.

 

  그래, 누군가 나를 차도로 밀쳐버리기 전까지는.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아직까지도 등에 엉겨 붙어 있는 낯선 이의 온기. 그리고 이질적으로 코끝에 아른거리는 이질적인 사과 향. 나를 밀친 그 사람에게서 나는 향일까? 게다가 보통 사람들보다도 소름 끼치게 따뜻했던 손길에 아, 나는 전에 이런 일을 당할 만한 짓을 했었는지 돌이켜본다. 그래서, 그래서 순간적으로 돌아본 그 사람은 웃고 있었던 것일까. 마치 드디어 해내었다는 듯이, 그 사람의 얼굴, 신장, 행색 모두 기억 나지 않았지만 뿌옇게 흐려 보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귀까지 찢어질 것 같이 웃는 입 꼬리 만큼은 선명하릴 만큼 머릿속에 각인되어있다.

 

  아냐, 아냐. 난 이런 일을 당할만한 짓 한 적 없어. 절대로. 그런데 내가 왜 지금 이 꼴을 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그리고 도대체

 

  누구야?

 

  가슴 언저리 부근이 조금씩 타 들어간다. 이제 와서 그 사람을 찾아낼 수 없을 뿐더러 딱히 화난다던가, 반드시 나를 이렇게 만들 사람을 찾으라는 감정은 못 느낀다. 그저 멍하고, 내가 여기서 뭐 하는 거지 궁금할 나름이다. 그저 어서 빨리 이 시간이 지나갔으면 좋겠다고만 생각했다. 온 몸은 땅바닥에 녹다 굳은 듯 무엇 하나 움직일 수 없었고 애석하게도 점점 정신마저 몽롱해져만 갔다.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던 것일까? 이런 결론이 도달하기까지의 개연성과, 삶에서의 복선이 무엇이었는지 애써 떠올려보고자 하였지만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내가 무엇을 했어야만 이런 결과가 생기지 않았을지. 그저 운이 없었다? 내가 시간을 되돌려 그 어떤 짓거리를 하더라도 피할 수 없었을깐 의미인가. 그렇다고 치부해버리기엔 내 스스로가 너무 가엽게만 느껴진다.

 

  나는 조심스럽게 숨을 몰아 쉬었다. 갈비뼈, 허파 부근이 저릿했다. 하지만 이에 아랑곳 하지 않는 입김은 눈 같이 하얗고 하지만 더 투명하게 피어나 허물없이 사라졌다.

 

  웃었다.

  분명 얼굴은 따라주지 않았겠지만 적어도 나는 웃었다고 생각한다. 마치 한숨처럼, 내 인생은 이렇게 끝나는 거구나.

 

  그 때였다.

 

 "아아. 정말 너로구나."

 

  웅성거리는 소음 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슴이 서늘해질 만큼, 애달프고도 상냥한 목소리였다.

 

 “미안해.”

 

  나는 천천히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시선을 움직이고자 했으나 생각처럼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요란한 소음이 점점 멀어짐을 느껴갈수록 그녀의 목소리만큼은 더더욱 선명해진다. 누구지? 당신이, 당신이 날 구하러 왔나요? 당신이라면 날 구해줄 수 있나요? 탐스럽게 내리던 눈은 곧 진눈깨비로 변했는지 어쩐지 따뜻한 빗방울이 내 얼굴을 얼룩진다.

 

  인기척을 느낄 새도 없이 낯선 이가 나의 머리맡에서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곤 나의 얼굴을 쓸어 내린다. 그녀의 따듯한 손길에 마음이 편해짐을 느낀다. 눈가에 얼룩진 물들이 뺨 한 켠으로 떨어지자 비로소 나를 어루만지는 이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 아름다운 사람.

 

  흐릿해진 시야에 그녀의 윤관을 색으로만 구분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길고 까만, 그리고 조금 구불거리는 머리카락이 그녀의 얼굴을 반쯤 가려 전체적인 그녀의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그녀가 나를 내려 보고 있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잘 못 본 것이 아니라면, 아주 환한 웃음과 함께. 눈처럼 하이얀 낯빛. 낯선 그녀가 빗물에 흠뻑 젖은 나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그녀의 손길이 피부에 닿은 순간 따뜻한 체온이 역류해오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러는 동시에 마치, 겁에 질린 어린 짐승이 본능적으로 약탈자의 존재를 감지하는 것처럼, 가슴 속의 납덩이가 철렁 내려앉음을 느꼈다.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비록 내가 현재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것도 생사의 갈림길에서 축 늘어져 있는 것 외엔 할 수 없지만, 석연치 않은 것이 가슴 속 한 구석으로 다가와 자리 잡고 있었음을 느꼈다.

 

  사실 나는 예민하다든가 감정적임으로부터 거리가 있었던 터라, 파르르 떨려오는 이러한 감정이 낯설게 다가와 사뭇 불쾌하기까지 여겨졌다. 그러나 나는 그 원인이 무엇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싫었다. 그게 어떤 느낌인진 모르겠으나 거기에 굳이 말을 끼워 붙이자면

 

  도피, 회피 그리고 미안함.

 

  후에 나는 이 날을 돌이켜본다. 이 순간, 여기서 모든 것이 끝으로 종결되는 것이야말로 결론적으로는 낫지 않았을까, 라고 후회 아닌 후회를 하였다. 이때는 분수에 맞지도 않았고 내 능력 밖의 선물을 받기 전이었지만 본디 사람의 감이라는 건, 어쩌면 세상을 창조한 이께서 사랑하는 그리고 어리석은 피조물을 위해 한 때 하사하다 거두어 가신 선물의 잔재 같은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까지 들어맞지 않았으리라.

 

  그녀의 등 뒤에 검고 알 수 없는 희미한 물체가 길게 뻗어나갔다. 뭔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그 무언가를 인지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그것의 정체를 미처 생각해보기도 전에 이름 모를 낯선 그녀의 손길이 나의 눈가를 덮었다. 나는 저항할 새도 없었다. 기분 나쁜 것이 계속 나의 뺨에 떨어져 턱 선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녀는 그것을 곧 닦아내 주었다.

 

 “잘 자. 잠시나마 행복한 꿈을 꾸기를.”

 

  그 한마디에, 나는 구원이라도 얻은 듯 마음이 편해짐을 느낀다. 나를 구해준 사람. 오늘의 하루가 나의 마지막 날은 아닐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가슴에 품으며, 매달리며. 나는 천천히 눈꺼풀을 깜빡이다 조용히 덮었다.

 

 “아아, 나는 너를 이렇게 하는 것이 옳았던 것일까.”

 

  그녀가 한숨 쉬듯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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