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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레나의 은밀한 계약
작가 : 아란
작품등록일 : 2017.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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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옥과 진창 사이
작성일 : 17-07-31     조회 : 274     추천 : 1     분량 : 4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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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레나는 로이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고 머리를 부여잡았다. 5년간의 결혼생활을 떠올리려 했지만, 기억은 듬성듬성했고 뇌를 쥐어짜는 듯한 두통이 느껴졌다..

 로이는 세레나의 대답을 들을 필요가 없었다는 듯이 일상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오늘은 마담 랑또의 다과회가 열린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당신을 대신해, 내가 직접그녀를 만나 초대장을 받아뒀죠.”

 

 세레나는 로이에게 아무런 반응을 보여주지 않았다. 멍하니 천정을 바라보는 세레나의 귀에 로이의 부드러운 음성이 꽂혔다. 과거에도 로이의 음성은 이렇게, 사려 깊었다. 5년전, 작은 아버지 알렉이 납치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겁에 질려 그에게 연락했을 때에도, 그러했다.

 

 “요즈음, 침실에서만 머물지 않았습니까? 날이 따뜻하니 다과회에 참석하는 것도 좋을 겁니다. 꼭, 다녀오세요.”

 

 세레나가 듣던 말던 로이는 말을 이어갔다.

 

 “다른 부인들도 많을 테니 분위기도 괜찮을 겁니다.”

 

 그는 언제나 다정하다. 놀랍게도, 얼굴 한 번 찌푸리는 법이 없었고 화를 내는 일이 없었다. 이런 것이 사랑인가? 세레나는 즉시 고개를 저었다. 사랑을 겪지 못했지만, 바보는 아니었으니까. 로이와 그녀의 관계는 이상했다. 시작부터 이상했고, 결혼 생활도 이상 것 투성이였다.

 

 “역시 오늘도 제 말대로 할 거죠? 세레나.”

 

 로이의 확신에 찬 음성을 들으며, 세레나는 회피하던 자신의 마음을 끌어 앉았다. 이제, 더는 안 된다.

 그녀 스스로도 몰랐던 용기와 의지가 발끝부터 피어 올랐다.

 세레나는 로이의 눈동자를 마주했다. 푸른색 눈은 보석처럼 반짝였다. 눈꼬리가 살짝 쳐진 순한 눈이었지만, 오똑한 콧날과 언제나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있는 단정한 입매 탓에 인상이 유약해 보이지 않았다.

 로이는 믿음직한 남자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세레나는 떨리는 입술을 열었으나, 쉽게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마른 입술만 핥으며 망설였다.

 갑자기 심장이 쿵쿵 뛰고, 식은땀이 흘렀다. 마른 목구멍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 낯설게 느껴진다.

 

 “로이.”

 

 간신히 그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로이의 눈이 크게 확장되고 있었다. 몇 년간 세레나는 로이가 질문하기 전에는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그래서, 놀라는 것이리라. 로이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세레나를 불렀다.

 

 “말해요, 세레나.”

 

 세레나는 문득 작은 아버지가 납치되고 난 이후의 일들을 떠올렸다. 작은 아버지 알렉은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고, 이후 작은 어머니 샤론은 무던히도 세레나를 괴롭혔다. 이전처럼 드레스를 찢고, 보석을 뺏어가는 정도가 아니었다. 신체적인 학대가 시작되었다.

 억울했던 그때의 기억은 결코 잊을 수 없으리라.

 샤론을 등에 업고 시녀장 마틸다는 가장 먼저 유모 게니아를 괴롭혔다. 노쇠한 유모가 죽고, 세레나는 혼자가 되었고, 샤론은 그때부터 세레나를 폭행하기 시작했다. 도와주는 이는 없었다.

 몸에 상처가 늘어갈수록, 세레나는 항상 긴 옷을 입고 다녔다. 당시 친구였던 로이에게도 말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말한단 말인가?

 세레나는 하루하루가 힘들었다. 계속되는 폭행에 분노와 의지도 사그라들었고, 그것이 자신의 삶과 운명이라고 여기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로이가 장미꽃 한 다발을 들고 세레나에게 찾아왔다.

 

 - 내가 당신을 구원 하겠습니다.

 

 로이의 말에서 후광이 보였다. 그의 입이, 눈이, 얼굴에서 희망이 넘실거렸다. 로이의 한 마디 한마디에는, 세레나의 새로운 삶이 담겨있었다. 그에게 비록 약혼녀가 있었지만, 세레나는 마지막 동아줄을 놓고 싶지 않았다.

 사실은 비겁한 선택에 불과했지만.

 

 ‘로이, 이런 건 진짜 결혼 생활이 아니에요.’

 

 세레나는 마음을 굳게 다잡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 이혼해요.”

 

 나이프가 접시를 긁는 기괴한 소리가 식당을 울렸다. 멈칫 손을 멈춘 로이는 다시 스테이크를 썰고 있었다. 세레나는 로이가 고개를 들기를 기다렸다. 그의 눈에 충격으로 흔들릴 것아 여기며.

 그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지만, 어딘가 충격에 빠진 모습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녀는 이상한 느낌을 밀어두고,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잠시 뒤, 로이는 나이프를 제자리에 내려 놓으며, 세레나의 눈을 응시했다. 말려있는 입꼬리와 다르게 눈은 웃지 않았다.

 

  “더는 듣고 싶지 않군요, 세레나. 잊었나 본데, 당신에겐 나 밖에 없어요.”

 

 막연히 품었던 의구심이 확신으로 되돌아왔다. 로이가 약혼녀를 버리고 그녀와 결혼한 진짜 이유가 있다. 세레나는 머리를 굴리려 애썼다. 그 당시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으나, 세레나의 머릿속에는 흉포한 샤론과 마틸다에 대한 기억뿐이었다.

 로이의 얼굴에서는 거짓말처럼 미소가 사라져있었다. 쳐진 눈매 안에서, 푸른 눈동자가 시린 물처럼 싸늘한 냉기를 뿜는다.

 

 “세레나, 나는 당신을 구원한 사람입니다.”

 

 세레나는 얼굴에 그렸던 희미한 미소마저 지워버리고 말았다.

 

 “잊지 말아요, 당신을 구원한 사람이 나란 걸.”

 

 어린아이에게 일러주듯 찬찬한 말투로 씹어 뱉는 로이의 입꼬리는 웃고 있었지만, 눈은 여전히 사늘하여 세레나는 어딘가로 달아나고 싶었다.

 구원?

 정말 나를 돕고자 하는 마음으로 5년이나 살을 맞대고 산 것일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머릿속에 떠오르는 의문을 정리하던 세레나는 로이의 말에서 미묘한 것을 잡아냈다.

 로이는 그 스스로를 ‘구원자’로 여기고 있었다. 세레나는 ‘구원’이라는 단어를 그저 진정으로 돕기 원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로이는….

 세레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반박하려던 그녀는 로이의 얼굴을 보고 곧장 입을 닫았다. 자상함을 덧씌운 얼굴이었지만, 굳게 다문 입매에서 완강함이 느껴졌다.

 

 세레나는 로이를 다그쳤다.

 

 “내게 청혼했던 이유가 뭐에요? 와 나랑 결혼하려고 했어요?”

 

 그러자 그가 단호한 목소리로 세레나의 말을 끊어버렸다.

 

 “당신도 알고 있지 않습니까?”

 

 평이한 어조로 대답하며, 로이는 냅킨으로 입을 닦고서 옆에 내려 둔다. 평소와 다를 것이 없으나, 세레나는 로이의 손끝에부터 머리 끝까지 집요하게 쫓았다.

 

 “단지 날 돕기 위해서라고요?”

 “그럼 당신은 왜 청혼을 받아들였습니까? 약혼녀가 있는 남자를 받아들인 건 당신이에요. 나와의 결혼을 선택한 것도 당신 자신이고.”

 

 로이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며 세레나의 말문을 막았다. 그리곤 느릿하게 웃으며 그녀의 눈을 응시했다. 세레나가 항상 다정하다 여겼던 미소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세레나는 매우 낯선 얼굴을 한 로이의 입이 열리는 것을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약에 면역이라도 생겼나 보군. 역시 양을 늘려야겠어.”

 

 툭 내뱉는 말에, 갑자기 온 몸이 떨렸다.

 약이라는 단어 하나에,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하던 것들이 짜맞춰지기 시작했다.

 천천히 되살아나는 기억 속에서 로이의 묘한 표정이 보였다. 시작은 가는 물줄기였으나, 이윽고 파도처럼 기억이 몰아 닥쳤다.

 모든 것의 시작은 로이가 가져다 준 ‘마법의 물’이었다. 세레나는 마법의 물을 먹고 정신을 잃어버렸던 첫날의 일을 떠올렸다.

 

 - 세레나, 모든 시름을 잊게 해줄 ‘마법의 물’입니다.

 

 결혼이 옳은 선택이었는지 고민하고 있던 세레나의 속을 꿰뚫는 로이의 말에, 세레나는 망설임 없이 그 물을 마셨다.

 이후에도 세레나는 몇 번이나 마법의 물을 들이켰고, 정신을 잃고 되찾기를 반복했으며 몸은 점점 약해가기만 했다.

 평범한 귀족영애치고 힘이 세던 세레나는 결국 병약하고, 정신이 온전치 못한 여자가 되었다.

 마법의 물을 마신 다음날의 일은 거의 기억나지 않았고, 드문드문 자투리만 기억했다.

 세레나는 어렴풋이 ‘마법의 물’의 정체를 깨달았다.

 

 ‘마법의 물이 아니라 마약이었어!’

 

 그 순간 날카로운 소리가 식당을 울렸다.

 접시를 떨어트린 시녀의 얼굴이 사색으로 물들었다. 세레나는 떨고 있는 시녀의 얼굴에서 또 다른 기억의 끝자락을 잡았다.

 곧, 기억의 폭풍이 불어 닥쳤다.

 식사를 끝낸 후에 항상 ‘마약’을 내밀던 시녀가 있었다. 구불구불한 붉은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묶여 있었고, 시녀가 가진 장신구 치고는 화려했던 머리핀이 눈에 띄던.

 세레나는 눈이 마주친 시녀를 보며, 방긋 웃었다. 그러자 창백하던 피부가 허옇게 뜨기 시작한다.

 

 ‘내가 널 죽일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겁내? 내 정신을 죽이고, 내 육체를 약하게 만든 것은 너였잖아.’

 

 시녀는 세레나가 마약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기를 강요하며, 때로는 강제로 세레나의 입에 밀어 넣기 까지 했다. 약효로 정신을 놓을 때면 섭취 전 후의 기억이 흐려지기 일수였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이었겠지. 세레나는 이를 갈았다. 그녀가 간혹 정신을 차렸을 때 시녀는 어디론가 사라졌고, 그러면 로이가 돌아왔었다.

  검붉은 액체가 들어있는 잔을 들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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