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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레나의 은밀한 계약
작가 : 아란
작품등록일 : 2017.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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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되찾은 기회
작성일 : 17-07-31     조회 : 286     추천 : 0     분량 : 4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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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이것은 분명 행운이다. 그러나 머리가 지끈거렸다. 기분은 최악을 찍고도 모자라 구렁텅이로 내달린다. 그런 세레나의 상황과 관계없이 경비대원은 화색을 감추지 못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는 라쉘티아 백작가의 사건이라는 말만 듣고, 누군가 알렉사 로이 경을 사칭했나 싶었습니다.”

 “미타 경…….”

 

 미타 경은 사슴을 닮은 눈을 깜박 거리며 로이를 향한 반가움을 드러냈다.

 로이는 그녀에게 어설픈 미소를 보냈으나, 밀어내지는 않았다. 아까 본인만 믿으라던 말에 걸맞은 건실한 모습은 사라지고, 무도회장에서나 만났던 귀족자제의 모습으로 돌변한 채였다. 파티에서 만난 영애들이 로이의 외모를 찬양하면서도 난색 표했던 이유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이는 세레나에게는 다른 의미로 친절했었다. 그녀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행동을 했던.

 세레나가 한숨을 쉬려는 찰나, 미리엄 리시오스가 단호한 말로 대화를 잘라버렸다.

 

 “잡설은 치우고 상황부터. 그리고 미타 경, 당신이 경비대 대장인 것은 알겠지만 이 사건은 우리 기사단에 배정될 예정이라서.”

 “어머, 대단하고도 유명하신 미리엄 리시오스 경이 계셨군요.”

 “그 유명한 사람에는 로산느 미타 당신도 포함되어 있었지, 아마?”

 “무슨 말씀이세요?”

 추잡스러운 복장을 한 미타 경은 큰 눈을 깜박거리며 요조숙녀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납치 사건은 저희 소관이에요. 미리엄 리시오스 경은 그대로 퇴근하시면 되겠어요. 순백의 하얀 제복에 얼룩이라도 묻으면 어쩌시려고 여기까지 오셨는지요?”

 “그럼 기사단으로 사건을 인계해주고 미타경이 꺼지면 되겠군. 아, 먼저 도착한 건 우리 쪽이니 넘겨줄 것도 없겠군. 미타 경은 구경이나 하고 가던지. 기사단의 조사를 참관하는 것도 경의 경력에는 크게 도움이 될 테니까.”

 

 그는 소문에 어울리는 냉정한 인사로 사정을 봐주지 않은 독설을 토해냈다. 오만한 표정으로 입 꼬리만 살짝 올린 채였다.

 

 “그리고 로이 알렉사 경은 처음 만나는 군. 제 3기사단 소속이었던가?”

  “그렇습니다, 단장님.”

 “아니아니. 알렉사 경이. 아, 알렉사 경이라 불러도 괜찮겠지?”

 

 로이는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세레나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샤론을 쳐다보며 팔짱을 꼈다. 어디까지 갈 셈인지 관람해줄 참이다.

 

 “알렉사 경이 나한테 단장이라고 부를 필요는 없지. 경의 단장은 밀흘렘 단장이 아닌가? 밀흘렘이 알면 싫어할 거야.”

 “단장은 그러실 분이 아닙니다.”

 

 로이는 밀흘렘 단장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장갑이라도 던질 분위기였다. 미리엄 리시오스는 대꾸하지 않고 로산느 미타를 쳐다보았다.

 

 “미타 경은 언제까지 있을 셈이지? 정말 눈치도 없군.”

 “미리엄 리시오스 경. 여기가 파티장이 아닌 것을 다행으로 알아요. 그랬다가는 내 날카로운 굽에 발등이 아작 날 테니!”

 

 미타는 이를 벅벅 갈며 미리엄 리시오스에게 항의했으나, 혼자만의 외침이었다. 미리엄 리시오스는 예의 무심한 시선으로 메인홀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2층 계단을 향했다.

 

 “납치 사건은 경비대 소관이에요. 비록 귀족가문에서 일어난 사건이지만 범인이 평민인지, 귀족인지 여부는 아직 파악하기 전이니 우리도 공동으로 사건을 맞죠.”

 “누구 맘대로?”

 “범인이 귀족으로 밝혀지면 우리도 물러나겠어요. 미안하지만, 요즘 상인들을 대상으로 한 납치사건이 연달아 일어나는 바람에 그대로 물러날 수가 없어요.”

 

 미타 경은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납치사건의 최초 피해자가 빈민가 출신이었거든요.”

 잠시 대답이 없던 미리엄 리시오스가 무심하게 대꾸했다.

 

 “그래서?”

 “리시오스 경이 오만하다는 것은 잘 알겠지만, 이번에는 제 의견에도 귀를 기울여….”

 “그쪽은 그쪽 사건이나 따라가. 정말 라쉘티아 백작의 납치사건과 연관되어 있으면 결국 만나겠지.”

 

 미리엄 리시오스는 단칼에 말을 자르고는 등을 돌렸다. 세레나는 덕분에 미리엄과 정면으로 마주치고 말았다. 속내를 간파하려는 듯 감정이 담기지 않은 냉정한 시선이 세레나를 훑었다.

 미타 경의 말은 고집스럽게 이어졌다.

 

 “분명 범인들은 점점 신분이 높은….”

 “내가, 세 번이나 말하지 않았나?”

 

 공기가 쩍 얼어 붙을 만큼 낮은 온도의 목소리는 알력 다툼에 짜증을 낼 뻔한 세레나 조차도 입을 다물 만큼 사나운 기세를 담고 있었다.

 항의하는 미타 경에게 일갈하는 동안에도 미리엄 리시오스의 은회색 눈동자는 여전히 세레나에게 꽂혀있었다.

 

 “확실히 윌프레 공작가의 피를 잇기는 했군.”

 

 소개도, 인사도 없이 대화가 시작되었다. 세레나는 거추장스러운 예식이 없어 좋아해야 할지 불쾌해야할 지 헷갈렸다. 평소라면 틀림없이 속이 편했겠지만….

 

 “무슨 의미죠?”

 “백작이 납치된 상황에서도 매우 침착하여 모든 귀족 영애들의 귀감이 될 법하다는, 의미?”

 

 세레나는 지금의 말 다툼이 귀찮았다.

 

 “네, 감사해요.”

 

 무미건조한 대꾸에 메인홀의 기온이 서늘해지는 듯 했으나, 세레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비옷의 물기를 짜던 기사들 마저 경직된 표정을 지으며, 느릿한 속도로 고개를 돌렸으니 말 다한 셈이다.

 그렇게 엉망이 된 분위기에서 유일하게 태연한 미소를 띄운 세레나는 기어코 방긋 웃으며 쐐기를 박았다.

 

 “소문대로의 분이시네요. 만나서 반가워요, 리시오스 경.”

 “경?”

 “그럼 제가 단장님이라고 불러드려야 할까요? 놀랍게도 제가 기사학교를 다닌 적이 없어서…. 그건 힘들겠군요.”

 

 미리엄 리시오스는 대답하는 대신, 조용히 세레나를 쳐다보았다. 세레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그의 눈빛을 외면했다. 시선이 닿는 얼굴이 뜨거워진다. 로이를 제외하고 남자의 시선을 오랫동안 받는 것이 처음이기 때문일까? 아버지께서 살아있을 적 파티에 참여했을 때도 이토록 부담스러운 시선을 받은 적이 없었는데. 세레나는 슬쩍 눈을 굴렸다가 미리엄 리시오스의 시선과 다시 부딪치고 말았다.

 놀랍게도 그의 눈빛은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세레나는 다시 침을 삼키며 마른 입술을 혀로 쓸었다. 심장이 쿵쿵 뛰고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왜 이러는 거지? 긴장으로 온 몸이 굳어갔다. 회귀전에도, 내가 이랬던가?

 

 “영애가 어떻게 부르던, 내게 허락을 받을 필요는 없지.”

 

 알렉이 납치되던 장면을 목격했을 때 보다 맥박이 빨라졌다. 아무렇지 않게 받아 쳐야 했는데 대답할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도대체 왜 이렇게 반응하는 거야? 세레나는 속으로 신경질을 부리면서도 겉으로는 웃기 위해 애썼다. 작은 아버지의 납치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찾아온 기사에게 예의를 갖춰야 하니까. 세레나는 이 상황에서 가장 잘 어울리는 태도를 고심했다.

 그리고 입을 열려는 찰나, 미리엄 리시오스가 세레나의 손을 쥐고 부드럽게 잡아당겼다. 세레나는 자신의 생각에 놀라 혀를 깨물었다. 부드럽게 라니! 미리엄 리시오스가 잡은 손에서는 온기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정도로 힘이 빠진 손길이었다.

 

 “한때, 윌프레 공작과 당신의 어머니인 발레나 윌프레를 존경한 사람으로서, 사죄를 청하오.”

 

 미리엄 리시오스는 이마를 세레나의 손 등에 가볍게 가져다 댔다. 부드러운 군청색 머리카락이 덩달아 흘러내려 손 위를 스쳤다. 미리엄 리시오스의 얼굴이 멀어지고, 마침내 손이 자유를 찾은 순간에도 세레나는 숨을 멈춘 채였다. 생각하지도 못한 정중한 행동이었다. 뱉으려는 말까지 잊어버리고, 입안에서 의미를 찾지 못한 단어들이 떠다녔다. 머릿속이 온통 새하얗게 백지가 되어버렸다.

 세레나는 상황에 왜 이렇게 연결된 것인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로이가 불쑥 튀어나와 말을 잃은 세레나의 앞을 가렸다. 미리엄 리시오스의 눈이 가늘어지는 것을 끝으로 로이의 넓은 등이 시야를 가로막았다.

 

 “지금의 행동이 더 실례입니다, 리시오스 단장님. 그렇지 않아도 납치사건 때문에 놀란 영애입니다.”

 “경이 세레나 라쉘티아 백작영애의 약혼자인줄은 몰랐군.”

 “…그녀의 오랜 친우입니다.”

 

 로이의 목소리가 떨렸다. 세레나는 옆으로 한발자국 물러났다. 그리고 대치하는 두 남자를 바라보았다.

 점점, 그녀는 자신이 회귀했다는 사실을 믿어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납치사건의 현장에서 펼쳐지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쾌감이 느껴졌다.

 

 ‘납치된 사람을 염려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니!’

 

 귀족이 된 후 알렉은 항상 주목 받는 것을 즐겼다. 그런 그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본인이 납치된 상황에 적극적이어야 할 기사들의 무책임한 대화에 화를 냈을 것이다.

 

 ‘납치된 이 순간에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당연히 모두가 알렉을 납치한 범인을 추적하리라 믿을 터. 하지만 알렉은 결국 죽은 채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세레나는 이후에 샤론이 행할 일들을 떠올렸다. 그녀는 세레나를 학대하고, 백작가의 재산을 빼돌릴 것이다.

 

 '이번엔 기필코 샤론을 막고 복수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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