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사혼석
“누나...”
플로이는 안나를 안고 있었다. 안나와 함께했던 추억은 눈물이 되어 두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플로이와 안나는 어렸을 때부터 둘도 없는 사이였다.
플로이는 다른 텐족보다 떨어지는 능력 때문에 그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지만, 안나 만큼은 항상 곁에서 플로이를 위로해줬다.
“누나... 죽을 만큼 아픈 거 말고... 죽고 싶은 만큼 아파본 적 있어?”
“그게 무슨 소리야 플로이.”
“죽을 만큼 아픈 건 몸이 아픈 거고, 죽고 싶을 만큼 아픈 건 마음이 아픈 거래.”
“플로이...”
“나... 요즘 마음이 좀 아픈 거 같은데 어떻게 해 누나...?”
그때 안나는 플로이에게 아무런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그저 플로이를 계속 안고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플로이에게 한 마디만 말했다.
“누나한테 와... 내가 언제든 안아줄게.”
안나는 플로이가 다른 친구들에게 치여 마음을 다쳐 올 때마다 플로이를 안아줬다. 플로이의 얘기를 들어줬다.
아픈게 안 아프지는 않았다.
근데 누나가 안아주면 좀...
덜 아팠다.
그렇게 안나는 죽고 싶을 만큼 아팠던 플로이의 마음을 조금씩 치유해갔고, 플로이는 점점 밝은 아이로 성장해갔다.
플로이가 엄마를 그리워할 때도 안나는 플로이 곁에 있었다.
“누나... 내 엄마는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글세... 왜? 엄마 만나고 싶어?”
“응... 정말 많이.”
“언젠간 만날 수 있을 거야.”
“진짜?”
“그럼~ 그때까지 내가 엄마 해줄까?”
“에이 그런 게 어딨어. 나 애 아니거든.”
“내가 다 업어 키웠는데 뭐~ 어때? 새 엄마는 아니구... 임시 엄마?”
“
“싫다니까아!! 애기 취급하지 마. 나도 이제 다 컸으니까.”
농담처럼 나눴던 얘기였지만, 사실 안나는 플로이에게 엄마 같은 존재였다.
힘들 때마다 플로이는 안나의 품에서 쉴 수 있었다.
그리고 안나는 언제나 플로이를 곁에서 응원해줬다.
“넌 꿈이 뭐야?”
“꿈?”
“그래. 남자가 꿈이 있어야지.”
“음... 누나가 언제든 기댈 수 있는 남자가 되는 거?”
“에이~ 누나는 약한 남자 별로 안 좋아하는데...”
“또 애 취급한다! 나 엄청 강해...나중엔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해질 거야!”
“진짜?”
“그래. 나중에 나한테 시집와라?”
“뭐, 강한 남자가 되면 생각은 해 볼게.”
“정말?????!! 약속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플로이는 어린아이처럼 팔짝팔짝 뛴다.
안나는 플로이가 귀여운 듯 바라보며 웃었다.
플로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생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안나가 했던 짧은 대답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했다.
“그래. 약속.”
그날 플로이와 안나는 서로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
플로이에게 안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을 비추는 한줄기 빛이었다.
그 빛이 있었기에, 무서운 어둠을 헤쳐갈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빛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생의 빛이 죽음이란 칠흑의 어둠으로 뒤덮이고 말았다.
“누나.... 누나..........미안해....... 미안해 정말...”
플로이가 흘리는 눈물이 죽은 안나의 뺨 위로 떨어진다.
플로이는 선택을 했다.
그리고 그 선택의 대가를 받아들여야 한다.
안나가 플로이를 안아줬던 것처럼 플로이도 안나를 마지막으로 안아줬다.
이제 플로이는 안나가 없는 세상을 살아가야만 했다.
“고마웠어. 언젠가 다시 만나. 누나...”
플로이는 그렇게 안나와 작별했다. 안나를 묻고 돌아서기가 정말 쉽지 않았지만, 플로이에겐 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다.
반드시-
플로이는 안나를 묻고 연우에게로 갔다. 연우는 멍하니 하늘을 올려보고 있다.
어둠이 걷히고 난 뒤의 하늘은 거짓말처럼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연우는 다가오는 플로이를 보며 물었다.
“울었냐...?”
“안 울었는데요..”
“울었는데 뭐.”
“남자는 울지 않아요.”
연우는 눈물 자국이 가득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는 플로이가 귀여웠다.
“새끼... 남자다운 척하네?”
“척 아니거든요.”
“그래. 앞으로 두고 보지 뭐.”
연우는 내심 아픔을 딛고 성장한 플로이가 기특했다.
게다가 절체절명의 순간에 터진 플로이의 회복 스킬!
그 스킬이 아니었다면 연우는 그 자리에서 뭉개져 사려졌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잘 가셨어요?”
“응... 하늘 위에 묻었다.”
연우 손가락을 하늘 위로 가리켰다. 하지만 플로이는 하늘이 아니라 땅바닥을 내려보고 있었다.
“누군가 할아버지와 마을 사람들을 이용했어요.”
괴물로 변한 마을 사람들이 죽은 자리에는 붉은 글씨로 쓰여진 부적들이 떨어져 있었다.
누군가의 의도된 소행이 분명하다.
“사람의 마음을 이용해먹는 게 세상에서 제일 악질적인 거지.”
“마주치면 죽일 수 있는 명분이 확실하죠?”
날이 서 있는 플로이의 말투-
플로이의 눈빛은 전에 봤을 때보다 날카로워져 있었다. 이런 꼬맹이한테서는 그다지 보기 싫은 눈빛이다.
독기-
연우는 플로이에게 더 뭐라 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도 플로이의 마음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말할 수 없어서였다.
어설픈 위로는 개소리만도 못하다.
“저 복수할 거예요...”
“복수...? 할아버지를 이용한 놈들...?”
“그놈들도 있구요...”
“....”
“저 아주 멀리 떠날 거예요...”
“어딜...?”
플로이는 연우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슬프면서도 사나운 남자의 눈빛이었다.
“아버지를... 죽이러요.”
연우는 그 말을 듣고 순간 가슴이 턱- 막히는 듯 했다.
하지만 이내 바로 플로이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움켜쥐듯 쓰다듬었다.
이 말밖엔 더 이상 생각나는 말이 없었다.
“그래... 같이 가자.”
***
클로에의 저격총은 연우를 겨누고 있었다.
“고어를 상대로... 대단한데?”
클로에는 불에 타서 사라진 이장의 모습을 떠올리며 되뇌였다.
이장은 이성을 거의 상실한 상태였고, 오로지 증오와 집착만이 숙주의 몸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었다.
고어는 인간의 마음속의 가장 어두운 에너지를 흡수하며 기생하는 놈들이다.
어느 순간엔 그 어둠의 에너지를 폭발시켜 숙주를 지배하게 되고, 그 이후에는 오로지 사혼석만을 얻기 위해서 움직인다.
“정말 여기서기 함정을 파놨네...”
이장 뿐만 아니라 이 마을 전체가 고어화되어 있었다.
“이건 분명.....”
저주의 힘으로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는 부두술사의 짓이 분명했다.
결국, 감염된 텐족 마을 전체가 유저를 죽여 사혼석을 얻기 위한 함정이었다.
“사혼석 한 번 얻어보겠다고 다들 난리네 정말~”
이 세상에는 사혼석을 노리는 자들이 너무나도 많다. 유저 입장에서는 사방이 모두 다 적인 격이다.
사혼석은 유저를 죽여야만 얻을 수 있는 신이 내린 돌이었다. 죽은 유저의 능력에 따라 사혼석으로 엄청난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누구나 그 돌을 원하고 유저를 사냥하려 한다.
“부적을 썼다 이거지...”
클로에는 계속 조준경을 주시했다. 놀라운 힐 능력으로 싸움을 반전시킨 플로이가 조준경 안으로 들어왔다.
“그나저나~ 유저의 능력을 각성해내다니 그레이트 하네. 근데... 혼종에게도 사혼석이 있으려나...?”
클로에는 혼종에게서도 사혼석이 나온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일단은~ 둘다 잡아가야 할까나~”
클로에는 다시 저격총에 얼음 마법탄을 장전하여 플로이와 연우를 한 번에 잡을 요량으로 겨눴다.
유저와 혼종 모두를 얼려서 자이로에게 데려가면, 돈을 더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부두술사에 의해 텐족 마을이 저주에 걸린 정보 역시 공유할 필요가 있다.
클로이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곳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곳에서 여유롭게 천천히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흐음~~ 기다린 자에게 복이 있나니이~~”
싸움을 치르느라 힘이 빠진 지금이야말로 유저를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원 플러스 원. 땡큐베리감사..”
그런데 방아쇠를 마저 당기려는 순간! 클로에는 등골이 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생각할 틈도 없이 본능적으로 몸을 비틀어 피한다!
팟-
틀자마자 클로에의 머리가 있던 방향에 독침이 박힌다!
“왓 더 퍽!!!!!”
클로에가 주변을 빠르게 훑어보았지만, 어디서 날아온 독침인지 알 수 없다.
저격이 주능력인 클로에로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조금의 기척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그때 목 주변에 다시 서늘한 감각이 느껴졌다.
곧 클로에는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누군가 목에 입으로 불 수 있는 막대를 대고 있다.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는 막대지만, 맹독이 발린 독침이 들어 있어 부는 즉시 쉽고 빠르게 클로에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무기였다.
그리고 들려오는 그놈 목소리.
“움직이면 죽어요. 키키키킥”
“어... 언제부터야?”
“말해도 죽어요. 키키키키키킥”
“......”
보통내기가 아니다. 감각을 곤두세우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뒤를 빼앗기고 완전하게 제압당했다.
“죽기 싫으면 닥치고 있어요. 지금 부적이 다 망가져서 기분이 정말 나쁜 상태거든요.”
이 목소리....!!
클로이는 그 목소리를 알고 있었다. 텐족 마을 사람들 마음속에 트리거를 심어 고어로 변하게 마든 장본인.
부두술사 질라게프의 목소리였다.
“사혼석은... 내꺼랍니다.”
질라게프는 다른 한 손으로 망원경을 쥐고 연우와 플로이가 있는 쪽을 내려본다.
“누구도... 한 번 들어오면 절대 빠져나갈 수 없어요.”
연우와 플로이가 어디론가 움직이고 있는 사이...
꿈틀꿈틀-
죽어 있던 고어들이 다시 깨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