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방패
방법이 없었다. 살아서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이. 좀 더 신중했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고어의 날카로운 손톱이 연우의 몸을 가른다.
“끄으흐윽.....”
그 한 방에 연우의 HP가 뚝 떨어진다. 하지만 이대로 허무하게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연우는 어떻게든 공격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상처를 입은 상태에서 고어의 등에 올라탔다.
그리고 총알이 없는 샷건을 들고 고어의 등 뒤에서 휘둘러 뚝배기를 깐다.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크웨에에에에엑!!”
뚝배기 깨지는 각인가? 라고 순간 기대했지만, 개뿔.
레벌이 올랐어도 연우의 파워는 아직 고어에게 꿀밤 수준인 듯하다.
고어가 등 뒤에 있는 연우를 잡아 바닥에 집어던져 버렸다.
“끄어어어어허억.....”
플로이가 어떻게든 힐로 연우의 체력을 겨우겨우 채워주고 있었지만, 플로이의 마나도 이제 거의 다 떨어졌다.
“아오!!! 도망치자고 했잖아요!!”
“이 새끼가. 형한테 짜증내냐? 쫌 기다려바!”
“한심해서 그래요!”
연우는 꼬맹이 앞에서 말문이 막혔다. 지금 상황에서 플로이에게 딱히 반박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순간의 쾌락을 좇아 모든 상황을 최악으로 만든 것은 분명 연우였으니까.
지금 플로이에게서 형을 위한 따뜻한 위로의 한 마디가 따위가 나올 상황이 절대 아니었다.
남아있는 HP도 남아있는 힐도 없다. 한 대만 더 쳐 맞으면 이제 게임 오버다.
“하... 뭐 나도 이렇게 될 줄 알았나.”
그오오오오오오오-
그때 고어 중에서도 가장 큰 고어가 숨을 크게 들이킨다. 이내 배가 빵빵하게 부풀어 오르더니... 플로이를 노려본다.
계속해서 연우에게 힐을 해주고 있던 것이 꽤나 거슬렸나보다.
플로이를 향해 뭔가를 내뱉는다!
투우우우우우-
“피해!!!!!”
연우가 플로이에게 몸을 날려 바닥으로 함께 뒹군다.
플로이가 있던 자리가 검은 액체에 의해 녹아내렸다. 몸에 있는 소화액을 이용한 스킬이었다!
“이 자식이!!!!”
큰일이다. 고어는 싸우면 싸울수록 점점 진화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지금 연우에 손에 쥐어져 있는 건 총알 하나 없는 샷건이 전부였다.
한 번의 작은 방심과 실수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다시 연우를 옥죄여오고 있었다.
“하... 야마도네... 진짜아....”
연우는 이장과의 싸움에서도 순간 방심한 결과를 톡톡히 치렀지만, 이번에 또다시 일을 그르치고 말았다.
플로이가 말한 것처럼 진짜 한심한 상황이었다.
고어가 다시 숨을 크게 들이쉰다.
이번에는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투우우우우우우-
***
“카운터 프로텍트!!!!”
쾅!!!!!!!!!!!!!
그때! 누군가가 스킬을 시전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거대한 방패가 플로이와 연우를 향해 날아오는 검은 액체를 막아냈다.
“하아아아아압!!!!”
모든 것을 녹아내릴 것만 같았던 놈의 소화액은 신비로운 기운에 둘러싸인 방패를 녹이지 못하고 옆으로 흘러내린다!
그리고 남자는 방패를 나려 고어의 머리통을 그 자리에서 잘라버렸다. 남자가 날린 방패는 부메랑처럼 다시 돌아와 남자의 오른손에 안착한다.
크웨에에에에에에엑-
방패에 목이 잘린 고어는 놀랍게도 방패에서 나온 어떤 신성한 기운에 의해 연기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방패에 의한 공격에 고어가 그 자리에서 단번에 산화되어 버린다!
“괜찮아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여러분과 같은 유저 아르덴이라고 합니다.”
연우와 플로이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남자를 쳐다보았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고 일단 여길 빨리 빠져나가도록 하죠.”
아르덴의 말이 맞았다. 지금 담소나 나누고 있을 때가 아니다.
“사... 사방이 다 포위되어 있어요!”
플로이의 말에 남자는 주변을 둘러본다.
그리고 방패를 정방에다가 대고 소리친다.
“걱정 마요.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아르덴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고어들을 향해 방패를 들이대며 소리친다!
“옵티머스 실드!”
그러자 들고 있던 방패 앞에 그 방패를 감싸는 커다란 마법 방패가 생성됐다.
“제 뒤로 바싹 붙어요! 빨리!!”
연우와 플로이는 아르덴의 말에 따라 마법 방패 뒤로 몸을 숨겼다.
“간다아아아아아!!!!”
그러자 마자 아르덴은 방패를 앞에 두고 고어 무리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한다!
당황한 고어들은 손톱으로 찔러보려 하지만, 손톱이 단단한 방패에 부숴져버린다.
검은 액체를 다급하게 뱉어보지만, 마법 방패가 소화액을 완벽하게 차단한다!
“하아아아아아압!!!!!”
아르덴은 마법 방패를 앞에 대고 고어들의 중심부에 길을 내고 있었다.
고어들이 아무리 방패를 뚫어보려 하지만, 절대 뚫리지 않는다!
크웨엑 크웨에에에에에에엑!
하지만 아무리 방패라 하더라도 사면을 다 막을 수 없다.
방패 뒤쪽에 있는 고어들이 손톱으로 아르덴의 뒤를 노린다!
“어림없다!!!!!!”
허를 찔리는가 싶었지만, 아르덴은 바로 뒤돌아 공격을 막고 방패를 휘둘러 고어들의 손과 발을 무차별적으로 잘라버린다.
크웨엑!! 쿠에에에에에엑!!!!!
경이로운 움직임이었다. 절제되어 있으면서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모든 공격을 막아내고 있다.
난공불락!
한마디로 빈틈이 없다!
아르덴은 고어들의 공격을 완벽하게 차단하고 연우와 플로이를 보호하면서 보이지 않던 길을 만들어서 뚫고 가고 있었다.
쾅!! 쾅!!!! 쾅!!!!!! 쾅!!!!!!!!!!!!!!!!
***
여자처럼 화장을 하고 귀밑부터 입까지 새빨갛게 칠한 남자, 질라게프는 빨간 입술로 막대를 오물거리고 있었다.
“저 자식은... 도대체 뭐지...?”
질라게프는 갑작스레 등장한 이름 모를 남자 때문에 당황했다.
남자는 압도적인 힘으로 질라게프의 고어들을 순식간에 해치우고 있었다. 고어들이 다시 재생하지 않는 걸로 보아 마법 무기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런... 이거 아무래도 제가 직접 나서야 일이 해결되겠군요. 상당히... 귀찮게 됐어요.”
“크윽... 어쩔 셈이야.”
여전히 질라게프의 독침이 들어있는 막대는 클로에의 목 주변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그 말은 질라게프가 클로에의 목숨줄을 쥐고 있단 뜻이었다.
“어쩔까요...?”
“사... 살려줘.”
“글쎄요... 제가 클로에님을 살려줘서 얻는 이득이 뭐죠? 없죠?”
“나한테 있는 사혼석도 다 줄게. 믿어줘. 사... 살려만 주면...”
“사혼석... 지금 가지고 있어요?”
“....”
“없죠? 그럼 아무 의미 없어요. 그냥 죽으세요. 득 될 거 하나 없는 인생 더 살아서 뭐해요.”
“지... 질라게프!!!”
“찡그린 얼굴이 아주 예쁜데요? 근데 이걸 어쩌나... 저한텐 미인계도 안 통하는 거 잘 알잖아요. 전 남자가 좋거든요..”
후욱-
질라게프는 막대를 불어 독침을 클로에를 향해 쏘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클로에가 그 순간에 검은 연기가 되어 흩어진다.
그리고 순식간에 클로에가 눈앞에서 사라졌다.
“어....라...?”
질라게프는 그 자리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 누가 뒤를 봐주고 있나 했더니 자이로님이셨구나아~“
이것은 분명 자이로의 기술. 동료를 검은 연기로 만들어 상대의 어떤 공격도 통과되게 만드는 강력한 회피 스킬이었다.
“오랜만이군 질라게프.”
자이로가 질라게프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옆으로 연기가 사람의 형태로 변하더니 클로에게 나타난다.
클로에가 질라게프를 향해 저격총을 겨누며 말했다.
“쉣!!! 죽는 줄 알았잖아.”
“살려준 값은 치러야겠지?”
“뭐야... 결국 또 머니야? 알았으니까. 지금 당장 저 새끼부터 죽여!!!”
질라게프는 클로에를 바라보며 여유롭게 웃는다.
“가소롭네요. 클로에. 정말 저를 죽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죽여버리겠어...”
“글세, 지금 누가... 누굴 죽인다는 거죠?”
***
클로에는 분노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지만, 질라게프는 미동도 없다. 자이로가 보기에 먼저 흔들리는 쪽이 이미 패배했다.
질라게프... 보통 내공이 아닌 자다. 클로에가 쉽게 처리할 수 있는 레벨이 아니었다.
“자... 그럼 어찌할까요.. 우리끼리 여기서 피 좀 볼까요?. 사냥감을 반으로 나눌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죠.”
질라게프가 자이로에게 막대를 천천히 조준하며 물었다.
하지만 자이로는 그러한 액션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사냥감은 넘기도록 하지.”
“자이로!! 무슨 소리야! 다 잡은 걸 왜 던져?”
클로에는 황당하다는 듯 자이로를 쳐다보며 물었지만, 자이로에게는 다른 생각이 있는 듯 보였다.
“대신 우리들이 여기를 빠져나갈 수 있게 해줘야겠지.”
그제서야 숲의 그림자 아래 숨어있던 다른 부두술사들이 하나둘 몸을 드러낸다.
질라게프 혼자가 아니었다.
사방팔방에 숨어있는 부두술사들이 활로 자이로와 클로에를 조준하고 있었다.
“우리들이라... 역시 자이로님이시군요.”
하지만 부두술사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 반대편에서 온몸에 붕대를 두르고 있는 자이로의 부하들도 모습을 드러낸다.
“항상 한 수 앞을 고려하시지요.”
“서로 피 봐서 싸울 필요 없지 않겠는가.. 둘 중 하나는 완전히 없어질 텐데 말이야.”
“크크... 외통수를 피하면서 판을 뒤로 미루시겠다... 역시 자이로님이시군요.”
“누가 외통수인지는 아마도 붙어봐야 알겠지?”
질라게프가 자이로를 노려본다.
“질라게프... 우리의 적은 따로 있지 않은가?”
질라게프는 그 말에 잠시 눈알을 굴리며 생각하더니 한 손을 들고 신호한다.
그러자 뒤에 있던 부하들 모두가 모두가 천천히 활을 내려놓는다.
자이로도 그것에 맞추어 한 손을 들자 그 부하들이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다음에 보면 기필코 죽여버리겠어!”
클로에가 분을 참지 못하고 이를 앙다물며 말했다.
하지만 질라게프는 여전히 태연하다.
“여자로 태어난 걸 감사하게 생각해요. 아니였으면 내가 어떻게 했을지 모르니까요~”
“저 자식이!!! 끝까지!!”
“담에 또 봐요. 항상 뒤 보고 다니고.”
클로에에게 윙크하는 질라게프!
자이로는 부들부들 떠는 클로에의 어깨에 손을 얹고 함께 검은 연기가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자이로가 사라지자 웃고 있던 질라게프는 정색하며 자이로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본다.
“유저를 이렇게 쉽게 내주더니... 또 무슨 속셈을 꾸미고 있는 건가요... 자이로님...”
뭔지 모르겠지만, 자이로에게는 부명한 의도가 있다. 질라게프의 눈알이 빠르게 굴러간다.
자이로는 동료나 부하의 목숨 따위를 구하기 위해 손해 보는 장사를 하는 자가 아니다.
질라게프는 알고 있다. 자이로도 자신과 같은 과라는 것을.
“뭔가 있는데 말이지...”
분명히 있다.
유저를 자신에게 넘긴 이유가.
“그럼 어디... 자이로 당신이 어떤 속셈을 가지고 있는지 직접 확인해보도록 하지요.”
질라게프가 한 손을 들어 신호하자 뒤에서 부하들이 다시 나타난다.
그리고 연우와 플로이 그리고 아르덴이 있는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부터... 진짜 사냥을 한 번 시작해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