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기세
“왓 더 퍽!!!!”
검은 연기가 다시 사람의 형체가 되어 나타나면 자이로의 아지트에 도착해있다.
클로에는 분을 참지 못했다.
“왜... 뒤로 꽁무니 뺀 거죠?”
“비꼬지 마 클로에. 다 이유가 있으니까.”
“도대체 무슨 리즌!”
“태풍이 오면 피해가야 하는 법이지.”
“흑마법이 부두술에 밀린다는 말하고 싶은 거예요? 그렇다면 정말 실망이네요.”
“비꼬지 마 클로에. 내가 널 살려준 건 너가 가진 스킬이 쓸모가 있기 때문이지 너를 위해서가 아니니까.”
“남자들이란... 아주 여자를 이용해먹을라고만 한다니까.”
“뭐 그건 남자나 여자나 피차 마찬가지 아닌가?”
자이로는 자리에 앉아 곰방대를 물고 담배를 태운다.
곰방대에서도 검은 담배 연기가 피어 올랐다.
“크노카일십자단이 나타났어...”
“뭐라구요? 그때 그... 무자비한 놈들???!”
“그래. 놈들 중 하나가 이미 우리가 노리던 유저에게 접근했지. 돌격대장 아르덴.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방패를 무기처럼 휘두르는 놈이야.”
자이로가 말한 태풍은 부두술사 쪽을 말한 것이 아니었다.
크노카일십자단-
자이로의 정보망에 따르면 최근 언더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용병단 중에 하나였다.
클로에도 빈틈이 없는 그들의 전투를 멀리서 스코프로 목격하고 놀란 적이 있었다.
“아직 그들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더군.”
“그래서 질라게프를 그놈들과 붙여놓으시겠다?”
“세상에 손 안 대고 코 풀 방법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역시 자이로님 답네요. 태풍을 피하자는 건... 아직 크노카일과 싸울 타이밍은 아니란 의미인가요?”
“아직 싸우기에 충분한 사혼석을 모으지 못했어. 그래서 너의 역할이 더더욱 필요한 거구.”
자이로의 곰방대에서 담배 연기가 계속 피어오른다. 연기에 의해 내부에 어둠이 짙게 내리깔렸다.
“클로에 네가 오늘처럼 미끄러지지만 않는다면 사혼석으로 흑마법을 연성할 수 있는 시일이 더 당겨질 수도 있었겠지.”
“왜 한 마디 더 안 하시나 했네요~ 근데 도대체 그놈의 흑마법은 언제까지 완성을 기다려야 하는지 모르겠네에?”
“흐흐흐흐... 뭐든, 한 순간에 이뤄지는 건 없는 법이지.”
자이로는 클로에의 말에 웃었다. 짧은 웃음이었지만, 클로에가 느끼기에 그 웃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확신이 있었다.
“그나저나... 질라게프가 그 아르덴이란 남자를 상대할 수 있을까요?”
클로에게 자이로 앞에서 맞담배를 태우며 물었다.
자이로는 클로에의 물음에 음흉하게 미소 지으며 대답한다.
“뭐, 어디까지나 크로카일 그자가 도착하기 전까지라면 가능한 얘기겠지.”
***
쾅!!! 쾅!!!!! 쾅!!!! 쾅!!!!!!!
수비에만 쓰일 줄 알았던 방패를 전방에 휘두르니 고어들이 채 힘도 못 쓰고 나가 떨어진다.
방패를 이용한 남자의 광역 공격에 전방의 고어들이 한 번에 쓸려갔다.
“머야.. 이 새끼... 갑자기 나타나서 졸라 멋있자나...?”
이 세계에 와서 처음으로 보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의 놀라운 힘이었다!
연우와 플로이를 포위했던 고어들은 제대로 힘도 못 쓰고 남자의 위세에 쓸려나갔다.
크웨에에에엑 크웨에에에에에엑-
남자는 마법 방패로 괴수들의 공격을 완벽하게 수비해낸다. 동시에 고어를 후려치며 돌진하는 힘 역시 압도적이다!
공수의 완벽한 조화!
크웨에에에에엑- 크웨에에에에엑-
연우는 아르덴의 움직임에서 완벽한 밸런스를 보았다. 진정한 일당백이란 이 남자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님 좀 짱인 듯?”
“알고 있습니다.”
“!!!!”
아르덴은 연우의 말에 무시하게 답하고 고어들의 몸을 방패 끝의 날카로운 날로 생선 토막 썰 듯이 정교하게 썰어버린다.
연우는 그 모습을 보고 충격을 먹었다.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그 비루한 몸부림은 뭐였던 것인가...
이 남자에게 배우고 싶었다. 이 세계에서 제대로 싸우는 방법을!! 진심으로 배우고 싶었다.
그런데 그때!
하늘에 어둠이 짖게 내리깔린다. 그리고 흩어져서 싸우던 고어들이 한데 뭉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거대한 거인 괴수의 모습으로 또 한 번 진화했다.
동시에 홀로그램 상으로 측정되는 전투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크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나쁘지 않은데요? 일일이 죽일 필요 없이 한 방에 죽이면 되니까.”
하지만 아르덴은 당황하지 않고 여전히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위를 올려보며 말했다.
연우도 아르덴이 당장에 방패를 날려 저 고어의 못생긴 대가리를 땅바닥으로 떨어트릴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그때!!!
“크으으으으으윽!!!!”
아르덴이 무릎을 꿇고 쓰러진다.
“!!!!!?”
“무슨 일이에요!!!”
플로이가 자세히 보면 남자의 아킬레스건에 날카로운 침이 박혀 있다.
연우가 침이 날아온 방향 쪽을 보면 얼굴에 이상한 화장을 하고 귀밑에서 입술까지가 시뻘건 남자가 나무 위에서 막대를 물고 있는 것이 보인다!
“저놈은 뭐지....?”
“이런... 힐이 되지 않아요!”
플로이는 서둘러 남자에게 힐을 넣으려 했지만, 힐이되지 않는다.
남자의 HP가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안 돼... 이건... 독침이야!!!”
그때! 거인이 육중한 발로 아르덴을 걷어차려 한다!
“방패 뒤로 숨어!!!!!!!!!”
아르덴은 무릎에 독침이 박히고 의식이 흐려지는 상황속에서 필사적으로 방패로 공격을 막아냈다.
쾅!!!!!!!!!!!!!!
하지만 충격을 받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흐아아아아아아악!!”
***
세 남자는 고어의 공격을 받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하나로 뭉쳐진 고어는 흩어져 있을 때보다 훨씬 더 강력한 데미지의 공격을 구사했다.
“저놈이 뒤에서 조종하고 있어. 저 자식이야. 마을 사람들을 이렇게 만든 것도 다...”
고어는 부두술사 질라게프의 명령에 따라서 움직이고 있었다,
플로이는 그 모습을 보고 이를 앙다물었지만, 상황을 타개할 마땅한 수단이 없었다.
“빌어먹을...!”
질라게프는 플로이와 눈이 마주친다. 그리고 거대 고어를 플로이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명령한다.
“죽여버려.”
플로이가 거슬리는 건 당연했다.
전투에 있어서 힐러는 가장 우선적으로 제거되야 하기 떄문이었다.
“플로이!!!”
연우는 플로이를 구하기 위해 고어를 향해 뛰어갔다.
“제발...!!! 로또샷이든 뭐든 좀 터져라!!!!”
연우는 있는 힘껏 고어를 향해 곰을 날렸을 때를 떠올리며 주먹을 휘둘렀다!!!
퍼어어어어억-
하지만 오히려 고어의 발길질 한 방에 또 나가떨어진다.
“끄어허허허허허억”
“형!!!!!!!!”
“제기랄!!!!!”
연우는 어떻게든 로또샷이라도 터지는 마음으로 주먹을 휘둘렀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고어의 공격을 받고 지금 오장육부가 다 터진 것만 같다.
“도대체 이 힘은 어떻게 해야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거야!!”
연우는 이 상황이 너무나 억울하고 또 다시 좌절했지만, 억울해서 좌절한다고 세상은 봐주는 거 눈꼽만치도 없다.
고어는 이제 무방비 상태의 플로이를 향해 간다.
그리고 거대한 주먹으로 조막만한 플로이를 향해 무지막지한 주먹을 날리는데...
“하아아아아아아아아압!!!!!”
“크웨에에에에에엑!”
툭-
주먹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플로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아르덴이었다.
괴수의 주먹이 날아오는 순간 아르덴이 방패를 휘둘러 주먹을 잘라버린 것이다!!!!
***
“허억... 허억.... 허억.........”
하지만 아르덴의 상태는 지금 매우 위중했다. 온몸에 독이 퍼져나가고 있는 상태였다.
“하아... 하아.. 하아... 으흐흐흡!!!”
아르덴은 거칠게 심호흡을 내쉬더니 숨을 잠시 멈추고 한 손으로 아킬레스건을 관통한 독침을 뽑아냈다.
푸욱-
“끄허어어어어어억...”
침을 뽑자 피가 물 흐르듯이 뿜어져 나온다.
무리다-
플로이가 보기에 아킬레스건에 큰 부상을 입은 아르덴은 그냥 서 있기도 어려워 보이는 상태였다. 서둘러 독부터 치료해야 한다. 지금 치료하지 않으면 죽는다!
하지만-
아르덴은 한 손으로 방패를 다시 정면에 세우고 일어섰다.
“저 남자... 뭐지....?”
기세.
질라게프가 보기에도 놀라운 광경이었다. 지금 방패를 땅에 지팡이처럼 지탱한 채로 위태롭게 서 있는 남자의 몸은 완전히 망가져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남자의 아킬레스에 쏜 독은 맞는 순간 보통 사람이라면 바로 의식을 잃을 정도의 아주 강력한 맹독이 들어간 침이었다.
그런데-
고어와 맞서고 있는 남자의 기세는 조금의 누그러짐도 없었다.
그 알 수 없는 기운이 이미 완전히 넘어가 버린 것처럼 보이는 승부를 다시 팽팽하게 조이고 있었다.
“죽고 싶다면 죽여주지.”
질라게프에겐 반갑지 않은 상황이었다. 승부는 흐름이다. 흐름을 놓치는 순간 아무리 유리한 상황도 걷잡을 수 없는 소요돌이에 빠져버리고 만다!
어서 이 상황을 단칼에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으... 응??????”
그런데 그때! 질라게프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액션이 나왔다.
독 안에든 쥐에게 마지막 일격을 날리려던 참이었다. 그 한 방이면 놈을 죽이는 것으로 이 싸움을 깔끔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 아르덴이 먼저 움직인다?
“선제공격...?
아르덴은 최악의 상황속에서 오히려 고어를 향해 움직인다.
질라게프는 예상하지 못했다.
저런 무너지기 직전인 몸을 가지고 먼저 공격을 해오리라고는...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르덴은 알고 있었다. 불리한 상황이라고 해서 조금이라도 물러나는 순간이 죽음임을.
오히려 죽음 속으로 뛰어 들어야 살 수 있음을!
“흐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