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자 주제에 어디서 함부로 주둥일 놀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계현경과 윤해랑은 뒷좌석에 앉아있고 앞자리에 앉은 기사는
둘의 눈치만 슬금슬금 살폈다.
화가 나면 무언갈 집어던져야 화가 풀리는 성미 때문인지, 옆에있던 가방을 기사에게 던졌다.
“어머니!!”
해랑은 지겹다는 표정을 지으며 계현경에게 눈을 치켜떴다.
“죄송합니다 기사님”
“아닙니다”
하지만 이내 순응한 듯 해랑은 기사에게 대신 사과를 건냈다.
기사는 익숙한 듯 가방을 피해 노련히 운전을 계속 해나갔다.
해랑은 가방에 떨어진 계현경의 가방의 짐을 다시 옮겨담아 어머니에게 다시 돌려줬다.
“넌 화도 안나니? 어디서 근본없는게 굴러와서 감히 누구 앞이라고 까불어”
“어머니 진정하세요”
해랑은 부들거리는 계현경의 손을 두손으로 꼭 잡았다.
이내 계현경은 편을 들어주지 않는 해랑에게 짜증났는지 해랑의 손을 뿌리쳤다.
계현경이 이내 수그러들자, 해랑은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며 오늘 봤던 그녀를 떠올렸다.
분명, 2년전에 봤던 그녀가 맞았다. 아니 확신할수 있었다.
그리고 이 만남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도 말이다.
**
[2년전 어느날]
일년에 한번은, 나도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언제나 사람답게 마음편히 지내고 싶었지만, 11살이 되던 해 한국에 오면서
나의 생활은 완벽히 뒤바꼈다.
“여전하네”
배낭 하나만 매고 해랑의 고향인 베이징 스차하이(什刹海)로 어머니의 눈을 피해 찾아왔다.
매해 청명절(중국의 설날)마다 어디계신지 모를 친아버지와의 추억 때문에 늘 이곳을 찾았다.
맑은 하늘과 흩날리는 버들가지들. 넓은 호수가 어우러져 청명절과 어울리는 풍경이였다.
나이 서른이 다가올만큼 살아왔지만, 이곳에서 옛날 추억을 회상하는건 전혀 지겹지 않았다.
챙겨온 카메라를 꺼내 호수의 전경을 열심히 찍었다.
“이때가 좋았는데”
홀로 벤치에 앉아 방금 찍었던 사진들부터 시작해 사진을 넘기며 옛날 추억들을 돌려봤다.
시간은 점점 거꾸로 돌아가 2000년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볼때마다 씁쓸하고도 평화로웠던 어린시절이 떠올라 복잡미묘한 감정이 느껴졌다.
“이 사진..”
아버지와 떨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찍었던 사진에서 사진을 넘기던 손가락이 멈췄다.
중국의 유명한 영화감독이였던 아버지와 한때 꽤 유명한 여배우였던 어머니.
성공에 눈이 먼 어머니는 돈많고 유능했던 아버지를 내 남자로 만들었다.
어머니는 꿈을 위해 아버지를 만났지만, 어쩌다 실수로 둘 사이에 아이가 생기게 되었다.
결국 헐리웃으로 가보겠단 꿈은 잠시 접고, 그 사이에서 나온 아들 이셴과 행복하게
지내는 듯 싶었다.
“이렇게 사는거 지긋지긋해서 못해먹겠어”
셴이 커가면 커갈수록, 어머니의 욕심은 다시 커졌다.
배우가 되고싶었지만 될수 없었던 그녀의 욕심은 나쁘게 변형되어갔다.
창창했던 시절에 저질러진 실수 때문에 점점 평범한 아줌마가 되어가는 것 같았다.
그녀는 평범하게 살게 하는 무능한 남편이 너무 미웠다.
결국 우울증을 앓다 이내 바깥으로 돌아다니며 다른 남자를 만나길 수십차례 반복했다.
“나 남자생겼어”
“누군데”
이셴이 11살이 되던 어느날, 셴의 어머니는 그에게 이혼서류를 내밀며 한마디 던졌다.
“있어. 한국에 pa그룹 회장님”
“너답구나 애보기 부끄럽지도 않냐?”
“셴은 한국으로 데려갈거야. 내 아들이라도 최고로 키울거거든
여기서 나처럼 평범하게 자라는거 보고싶지 않으니까”
이셴의 아버지 역시 가난한 사람은 아니였지만,
한국의 거대그룹 회장과는 비교할 수 없는 처지였다.
아름다운 외모 만큼이나 악독하게 욕심이 많은 그녀는 결국 돈많은 재벌과 엮여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었다.
“셴, 엄마 따라 갈래? 네가 원한다면 여기 남아도 좋다”
“전..”
셴은 너무 어린나이라 엄마와 떨어지는게 무서웠다.
자상한 아버지가 있었지만 아직까진 엄마와의 관계가 더 가까울 나이 11살.
결국 아버지를 버리고 엄마를 따라가 이셴 이란 이름을 버렸다.
그리고 새로운 이름을 얻었는데, 그게 바로 윤해랑이였다.
“잡생각이 많아지면 사진이 잘 나오지 않아”
결국 이혼을 하고 어머니를 따라가기 전날, 아버지는 사진찍길 좋아하는 셴에게
최고급 카메라 하나를 선물했다.
유명 감독임에도 불구하고 그날따라 생각이 많았는지 초점이 맞질 않는 아들과
함께찍은 사진을 보며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였다.
“이제와서 뭘 어쩌겠어요 아버지. 이미 다 끝났는데”
해랑은 사진속 아버지에게 넌지시 말을 던졌다.
이혼 후, 모든 작품활동을 중단하고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 아버지를 볼때마다 가슴이 메였다.
기억속 바래진 아버지를 생각하자 눈시울이 붉어져 흘러내리려는 눈물을 애써 삼켰다.
우울한 생각을 멈추려 스차하이의 난간에 팔을 기대 다시 아버지의 선물인 카메라를 들었다.
멀리 비치는 버드나무에 초점을 맞추고 사진을 찍으려 셔터를 눌렀다.
[띠링띠링]
“비켜요 비켜!”
한 여자가 자전거를 타고 엄청난 속도로 해랑을 향해 돌진했다.
해랑은 당황한 나머지 그녀를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부딪혀버렸다.
이때 해랑이 들고있던 카메라가 물속으로 풍덩 하고 빠져버렸다.
“어? 어?? 카메라 카메라 어디갔어”
“어머 어떡해.. 죄송해요 자전거 브레이크가 고장이나는 바람에 그만..”
해랑은 그녀와 부딪혀 넘어진것엔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오로지 카메라를 찾아 두리번 거리다 강물에 빠져 둥둥 떠있는 카메라를 발견했다.
“헉 내 카메라!!”
“정말 죄송해요.. 얼마에요? 제가 변상해드릴게요”
“아 저거.. 돈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 그런 물건이 아니에요”
해랑은 다리를 동동 구르며 떨어진 카메라와 그녀를 번갈아 보며 침착하게 말하려 했지만
흥분한 나머지 목소리가 커졌다.
“아씨 어떡하지.. 하.. 일단 이거 잠시만 들고있어요”
여자는 짐짝만한 등산가방을 해랑에게 넘겨주곤 다리에서 강을 향해 다이빙을 했다.
“미쳤어요?! 거긴 왜들어가요”
“괜찮아요 저 수영잘해요”
강물에 들어가 고개만 빼꼼이 내미는 여자는 유유히 카메라를 향해 수영을 했다.
카메라를 손에 쥐곤 강둑에 정박되어 있는 오리배를 향해 수영했다.
“정신나간 여잔가? 미치겠네”
해랑은 가방을 들고 발을 동동 구르다 그녀가 잡은 오리배쪽으로 뛰어갔다.
주변 사람들은 전부 한마디씩 수군거렸다.
그녀가 배를 잡고 올라타 강둑으로 올라가자 해랑이 손을 잡아 육지로 끌어올렸다.
“다친데 없어요? 거기서 뛰어내리면 어떡해요”
해랑은 놀란 토끼눈을 뜨며 여자에게 채근하며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관심은 오로지 카메라였다.
한손으로 잡고 카메라 한쪽을 탁탁 치며 물을 빼보려 했지만 나오질 않았다.
그리곤 해랑에게 카메라를 내밀며 수줍게 말했다.
“여기요 .. 정말 죄송해요”
여자는 해랑의 눈치를 보며 카메라를 돌려주었다.
해랑은 여자가 갑자기 강물로 뛰쳐 들어가는 모습에 적잖히 당황했다.
막무가내같은 행동에 한소리를 하려 했지만,
쫄딱 젖어 추운지 입술이 파래진 여자를 보니 당황했던 느낌은 사라지고 걱정스러워 졌다.
“으 자전거.. 빨리 갖다줘야겠다”
여자는 바닥에 내팽겨진 자전거를 들어올려 다시 갖다주러 걸어갔다.
아직은 3월의 쌀쌀한 날씨라 추워서 자전거를 들고가는 손이 덜덜 떨렸다.
해랑은 아무래도 여자가 걱정됬다.
“같이 가요”
해랑은 추워서 달달 떠는 그녀에게 입고있던 자켓을 걸쳐줬다.
여자는 살짝 놀란 눈치인지 숨을 스읍 하고 들이쉬었다.
그리곤 해랑은 길게 뻗은 손으로 여자의 작은 어깨를 잡았다.
“일단 이거 입어요. 감기걸리겠어요”
“고..고마워요”
그녀는 어색한 걸음으로 자전거 대여소까지 도착했다.
자전거를 갖다주고 나서 자켓을 벗어주려 하자 해랑이 다시 어깨를 잡아 어디론가 이끌었다.
당황한 여자는 해랑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디가시는 거에요..”
“숙소가 어디에요. 데려다줄게요”
“괜찮아요 저 혼자 갈수있어요”
“감기걸려요 이러고 가면”
해랑은 그녀의 어깨를 잡고 주차해놓은 주차장으로 데리고 갔다.
해랑의 두 손이 어깨를 감싸고 있으니 여자는 조금 따뜻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몇걸음을 걷자 해랑이 렌트한 차 앞에 다다랐다.
“숙소가 어디에요?”
“저.. 칭화대요”
“칭화대면 여기서 너무 먼데 어쩌다 여기까지 왔어요”
“오늘 교환학생 마지막날이라.. 여행온다고 좀 멀리까지 나왔어요”
해랑은 숨을 깊게 내뱉곤 살짝 고민에 잠겼다.
칭화대까지는 2시간 거린데 두시간내도록 젖은옷을 입게 내버려둘수 없으니까 말이다.
아무리 히터를 틀어준다 해도 추울 것 같아 신경이 쓰였다.
“일단 타요”
“그럼.. 신세 좀 질게요”
“칭화대 안가요”
“네? 그럼 어디가시게요?”
“타보면 알아요”
해랑은 조수석으로 여자를 태우곤 운전석으로 돌아가 시동을 걸었다.
여자는 목적지가 어딘지도 모른채 해랑의 차에 몸을 실었다.
**
해랑은 차를 몰고 베이징 시내로 나왔다.
여자는 처음보는 곳인 듯 두리번 거리며 신나했다.
“우와 진짜 건물도 크고 신기한게 너무 많네요”
물에 젖은 생쥐꼴인건 잊어버린건지 천진난만하게 웃는 여자가 신기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추워서 떨다가 좀 살만해진건지 생기를 되찾은 그녀가 단순해보였다.
해랑은 황당한 웃음을 지으며 한 공중목욕탕 앞에 차를 세웠다.
“여긴 어디에요?”
“일단 여기서 씻고와요. 옷은 구해다 드릴게요”
“네? 안 그러셔도 되요 옷도 거의 다 말랐고..”
옷이 말랐다고 웃옷을 펄럭거리니 탈수되지 않은 세탁물처럼 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보며 하경은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
“얼른요 갔다와요. 옷은 제가 카운터에 맡겨놓을게요”
“아 아니.. 그래도 이건 좀..”
해랑은 난감해하는 여자를 보곤 차에서 내려 직접 조수석의 문을 열어주었다.
그러자 여자는 더 난감했는지 쭈뼛거리며 겨우 차에서 내렸다.
“브라 사이즈 몇이에요?”
“예???”
여자는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크게 뜨며 소리를 빽 하고 질렀다.
그리곤 양 팔로 가슴을 가리며 해랑을 쳐다봤다.
“아니.. 속옷도 다 젖었잖아요. 싫으면 축축한거 입고 계시던가요”
“아..어.. 아.. 하하.. 저.. 귀좀..”
여자는 해랑의 귀에 아주 작게 75C라고 말했다.
해랑은 이 상황이 너무 웃겨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입을 가리며 풉 하고 웃음을 뱉었다.
“우..웃지마요”
“미안해요 왠지 상황이 너무 웃겨서 카운터에 옷은 맡겨 놓을테니 씻고 나와요”
여자는 민망했는지 목욕탕 안으로 휙 들어갔다.
해랑은 그런 여자를 보고 웃으며 차로 되돌아갔다.
“참 특이한 여자야”
끊임없이 피식거리며 차를 몰아 베이징 시내에 있는 백화점으로 차를 돌렸다.
그녀에게 잘 어울릴만한 옷이 무엇일까 고민하며 말이다.
**
한시간 뒤, 여자는 해랑이 사준 원피스와 고급스러운 버버리 코트를 입고 킬힐을 신었다.
옷은 예쁜데, 어울리지 않게도 자기 상체만큼 큰 등산가방을 등에 매고 나왔다.
무언가 어색한게 있는지 입꼬리만 올리고 해랑을 찾는 모습이 웃겼다.
“여기에요”
차문 밖으로 손을 올려 여기라고 표시하자 여자는 그제서야 알아보곤 차를 향해 달려왔다.
조수석에 앉자마자 해랑의 예상대로 여자는 불편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저기.. 저기요..”
“예 타세요”
해랑의 옆자리에 조심스레 앉은 그녀에게선 은은한 망고향이 났다.
살짝 덜마른 듯 한 어깨까지 오는 생머리는 해랑의 눈길을 자꾸 사로잡게 만들었다.
해랑이 어떤 눈으로 보든말든 관심없던 여자는 입었던 코트를 벗었다.
“이거 너무 비싸보여요.. 코트는 가지고 가세요.. 얼마정도 드리면 될까요?”
“그거 줘도 나 못입어요”
“환불해 주세요. 가격텍도 일부로 안뗐어요”
여자가 해랑에게 가격텍을 보여주자 해랑은 가격텍을 툭 떼버렸다.
‘berberry’라고 적혀있는 텍이 떼지자 여자는 눈을 동그랗게 해랑을 바라봤다.
“으앗! 이거 내책임 아녜요 그쪽이 뗀거에요”
“가격텍 안뗀거 있음 줘요 제가 떼줄게요 이럼 환불 안해도 되죠?”
“아니 도대체 이렇게 비싼건 왜샀어요? 옷은 시장에 싼것도 많잖아요”
“전 싼건 취급 안해요”
해랑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이며 코트를 하경에게 걸쳐주었다.
이 여자 때문에 카메라가 물에 빠지긴 했지만,
어쨌든 그녀가 아니였음 카메라를 영영 잃어버릴수도 있었다.
이 추운날 물까지 들어가 건져온 여자에게 시장바닥에서 싸구려나 입히고 싶진 않았다.
“아니 그래도 너무 비싸요. 이걸 아무렇지도 않게 받으면 너무 뻔뻔하잖아요”
“그럼 어떻게 해드려요?”
“이거 얼마에요? 제가 받은 코트 원피스 속옷 신발까지 다 계산해주세요”
“굳이 그러고 싶으시다면야 알겠어요. 영수증 좀 볼게요”
해랑은 지갑을 꺼내 영수증을 보며 입으로 암산을 했다.
수북히 쌓인 영수증을 보자 여자는 침을 꼴깍 삼켰다.
“다 합치니까 17,030위안 정도 나오네요, 한 280만원정도 되는데 지금 주실래요?”
“뭐요?”
여자는 해랑의 손에 들린 영수증을 휙 뻇어들고 한 장씩 계산을 했다.
정직한 계산이였단걸 알고 나선 여자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리곤 등산가방 안에있는 축축히 젖은 옷을 다시 꺼내들고 차를 나가려 했다.
“뭐에요 어디가요?”
“저 갈아입고 나올게요 꼭 환불해주세요”
“그거 다시 입겠다구요?”
“옷은 말리면 마르잖아요. 이 옷들 필요없어요”
해랑은 나가려는 여자의 팔목을 잡고 의자에 다시 앉혔다.
“이미 한번 입었는데 환불은 안될걸요?”
“뭐에요? 저한테 묻지도 않고 마음대로 이렇게 비싼거 막 사서 주면 어떡해요!
안입었다고 우기면 되요 다시 갈아 입고 올게요 기다려요“
해랑은 인생 최초로 ‘서민’을 직접 눈앞에서 봤다.
그의 기준엔 280만원 정도는 딱히 큰 돈이 아니였다.
그냥 주면 받으면 되는데 청량한 양심이라도 있는것마냥 옷을 돌려주려는 그녀가 신기했다.
“나 돈 많아요 굳이 다시 안돌려줘도 되요”
“그쪽이 돈이 적건 많건, 난 이건 못받아요”
“왜요? 길가다 주웠다고 생각해요”
“말이나 되는소릴 해요. 누가 이렇게 비싼 명품을 길에 갖다버려요”
“제가 그랬다고 생각해요 그럼”
“하 이봐요”
여자는 차에 시동을 걸려는 해랑의 팔목을 잡았다.
한손으로 힐을 벗어 운전석에 있는 해랑의 무릎에 턱 하고 올렸다.
“뭐하는 짓이에요”
“나는 못받아요 이런거. 받을만큼 뻔뻔하지도 않구요 그러니까 제발 가져가세요”
“그렇게도 불편해요?”
“네 제가 한게 뭐가있다고 이렇게 비싼걸 받아요? 이건 정당하지 못해요”
여자가 부담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해랑에게 입고있던 원피스까지 주려 원피스지퍼를
열었다.
해랑은 놀라며 벗으려는 여자의 손을 잡았다.
“왜이래요 원피스까지 벗을 필요 없잖아요”
“이것도 비싼걸꺼 아녜요”
“저 돈많다니까요?”
“아니 돈많은 사람이 이런 싸구려 렌트카나 끌고다녀요?
나한테 왜이러는진 모르겠지만, 거짓말도 정도껏 치세요”
해랑은 여자의 말에 풉하고 웃음이 터졌다.
자기 주변엔 돈많은건 어떻게 알고 항상 주변에 거머리처럼 몰려들어 뭐하나 얻어먹기
바쁜인간들 밖엔 없었다.
언제나 철판깔고 명품만을 고집하는 여자들만 만나와서 그런지 눈앞에 있는
양심적인 서민이 귀여워 보였다.
“뭘 어떡하면 믿을래요? 내가 돈많은지 나 지금 몸에 걸치고 있는것만 해도
이 차 한 대값은 나올건데요”“이것 보게, 뭔가 있어 당신 나한테 뭐 하려고 이러는거지?
빚내서 명품 사주면 누가 고마워할줄 알아요?”
“정말이라니까요? 난 내 카메라 찾아준게 고마워서 사주려고 한건데 정말 싫어요?”
“네 못받겠어요”
여자는 끝끝내 해랑의 호의를 거부했다.
보통 여자들은 명품사주면 만난지 얼마 안됬어도 감사합니다 하며 넙죽 받던데.
살면서 처음보는 반응에 이 여자에 대해 알고싶어졌다.
호기심이 생긴 해랑은 차에 시동을 걸더니 핸들을 잡았다.
“뭐에요 어디가요?”
“그럼 그 옷이랑 그쪽 시간이랑 바꿔요. 저랑 같이 밥이나 한끼 먹으러가죠”
“네?”
여자는 어어 거리며 차 문을 열어보려 했지만 이미 차선으로 나와 나갈 수 없었다.
“그게 무슨소리에요? 갑자기 뜬금없이 왠 밥이에요”
“그쪽 바쁜일 없으면 저랑 같이 데이트 하자구요”
여자는 앙다문 입술을 풀고 해랑의 눈을 쳐다봤다.
장난치는 것 같은 눈은 아닌데 돌직구로 데이트 신청한건가 싶어 얼굴이 빨개지려 했다.
이 상황이 쑥쓰러웠는지 눈을 아래로 내리깔며 대답했다.
“왜요 저랑 같이 밥도 못먹겠어요?”
“아니 그게아니고 불공정 거래잖아요 이건”
“나 호구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냥 그쪽 시간 280만원 주고 샀다고 생각해요”
“제가..무슨 대단한 사람이라고.. 이게 말이 되요?”
여자는 말꼬리를 흐리며 개미굴로 들어가듯이 대답했다.
해랑은 그런 여잘 보곤 다시 운전을 했다.
“그럼 된걸로 하고, 이름이 뭐에요”
“저 룽얼이에요”
“한국이름 없어요?”
“여기 중국이니까 중국이름으로 해요 그쪽은 이름 뭐에요?”
“재밌으시네 전 이셴이라고 해요”
정말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해랑에게 처음으로 활짝 웃음을 지었다.
해랑은 당차게 웃어보이는 룽얼이 귀여워졌다.
“근데 우리 어디가는거에요?”
룽얼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해랑에게 물었다.
“가보면 알아요”
해랑은 매번 올때마다 혼자였던 여행에 새로운 동행자가 생긴 것 같아 묘하게 설렜다.
오늘같이 우울한 날, 잠깐이나마 웃음을 준 룽얼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해랑은 벙져있는 룽얼을 태운채 매년 혼자 들리는 그곳으로 차를 몰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