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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피로스
작가 : 아마란스
작품등록일 : 2017.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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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프의 마을로 가는 길 (8)
작성일 : 17-07-31     조회 : 300     추천 : 0     분량 : 5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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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이크 부대의 맨 앞에서 막 돌격 명령을 내리려던 적 부대의 장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엎어져버린 것이었다. 쓰러진 그의 목덜미의 한 가운데에 긴 화살 하나가 관통해 있었다.

 - 쉬익

 그것을 시작으로, 전열에 있던 병사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일정한 간격으로 바닥에 픽픽 쓰러졌다. 하나같이 같은 위치에 화살이 관통한 모습.. 그야말로 귀신같은 활솜씨였다.

 파이크 부대의 병사들도 사태를 파악하고 화살이 날아든 방향을 살폈지만 뒤쪽엔 그저 수해가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화살을 쏜 자의 모습을 찾으려야 찾을 길이 없었다. 더군다나 그들이 손에 든 것은 파이크 하나뿐이라 설혹 화살이 날아오는 것을 발견했다 해도 막을 수가 없었다. 병사들이 우왕좌왕하는 짧은 시간 사이 또다시 몇 명이 화살을 맞고 쓰러졌고, 겁에 질린 병사들은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한꺼번에 나무그늘을 향해 우르르 몰려갔다.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하던 사리에가 입가에서 휘익 바람소리를 냈다.

 “귀신같은 작자네요. 어떻게 숲의 나무들 사이로 저렇게 정확한 사격을..”

 “나무사이로 쏜 것이 아니요. 나무 사이로 적을 확인 한 뒤 하늘을 향해 화살을 쏘아 올렸소. 목에 박힌 화살의 각도로 미루어 볼 때.. 거의 백오십 보(步)정도 떨어진 곳에서 화살을 쏜 것 같소.”

 “백오십 보나 떨어진 곳에서 저렇게 정확한 사격을 한다고요? 말도 안돼요.”

 “사격실력만이 아니오. 대장, 부관.. 그 다음은 백인장과 십인장을 쏘았소. 지휘계통을 단번에 무너트리고, 다음엔 일부러 전열의 병사들을 쏴서 공포심을 불러일으켰소. 누군지 모르겠지만.. 전술에 익숙한 자의 솜씨요.”

 “어찌됐든.. 간신히 한숨 돌릴 수 있겠네요. 이왕 구하러 올 거면 빨리 좀 올 일이지.”

 사리에는 팔다리에 생긴 크고 작은 상처들을 살피며 인상을 찌푸렸다. 특히 손등에 생긴 상처를 살피는 그녀의 얼굴은 무척이나 진지했다. 파디스는 약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덧날까봐 걱정하는 거요?”

 “아뇨. 흉터가 생길 까봐 근심하고 있어요. 개시도 안했는데 상품에 흠이 가 있으면 나중에 팔 때 가격이 떨어진단 말예요.”

 “여유 있어서 좋군. 하지만 지금은 결혼생각은 잠시 미루고 발 앞에 떨어진 화살이나 좀 주워 주시오.”

 “발 앞의 화살..?”

 사리에는 그제야 자신의 발 앞에 박혀있는 화살을 발견하고 흠칫 몸을 움츠렸다. 이어 그녀는 전방의 숲을 향해 불끈 주먹을 휘둘렀다.

 “아니, 맞으면 어떻게 하려고 이런 장난질을 하는 거야!”

 “그렇게 가까이 쏜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오. 화살에 쪽지 같은 게 없소?”

 확실히 화살의 깃대엔 작은 쪽지가 하나 매여 있었다. 사리에는 무심코 화살을 주워 쪽지를 풀려고 했지만, 그녀의 오른쪽 어깨만이 움직였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금 서글픈 표정으로 화살을 파디스에게 건넸다.

 “아직까진 익숙해지지 않네요. 꼭 움직일 것만 같은데.”

 “미안하오. 내 조금만 서둘렀어도..”

 “됐어요. 당신 탓이 아니니까. 뭐라고 쓰여 있어요?”

 “고대어요. 직역하자면.. ‘설마 유적으로 돌아올 바보들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하지만 이 프리아님의 전설적인 활솜씨로 길을 열어줄 테니 감사히 여기며 서쪽의 바요르카로 이동하도록.’ 정도요.”

 “뭐, 뭐라고요! 이런 건방진..!”

 “진정하시오. 어디까지나 직역일 뿐이니까. 그리고 저 정도 솜씨면 전설이라고 해도 그다지 과장은 아닐 것이오.”

 “전설이고 나발이고 어찌됐든 우리를 바보라고 욕한 거잖아요!”

 “유적으로 다시 가자고 했을 때 당신도 똑같은 말을 내게 했던 것 같은 기분이 드오만..”

 “그땐 그때죠! 내 저 작잘 만나기만 해봐라.”

 파디스는 더 이상 이야기를 해봤자 시간낭비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검에 묻은 피를 털어 검집에 집어넣고 앞장서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사리에가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그를 뒤따르며 물었다.

 “그런데 바요르카가 어디죠? 그런 지명은 처음 듣는데.”

 “사요르요. 예전에는 바요르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는 기록이 있소.”

 “예전..? 대체 얼마만큼이나 옛날 일이죠?”

 “바르토스왕국이 세워지기 전까지니까.. 한 500년쯤 전에 그리 불렸을 것이오. 그나저나 사요르라니 얄궂군. 바로 얼마 전까지 숨어있던 곳이었는데.”

 “그리고 내가 호되게 당한 곳이기도 하죠. 그런데, 이렇게 느슨하게 가도 괜찮아요? 파이크 부대는 물러섰지만 원래 우릴 추격하던 병사들은 계속 우릴 쫓고 있을 텐데.”

 “당신도 인정해야 할 거요. 그 자가 전설적인 활솜씨라고 했던 게 반쯤은 사실이라는 것을.”

 “설마..?”

 “그 설마요. 파이크 부대가 물러나는 것과 거의 동시에 뒤쪽의 추격도 느슨해지는 것을 느꼈소. 그것이 만일 같은 자의 솜씨라면.. 그야말로 활의 궁극에 달한 자라고 봐야 옳을 것이오.”

 사리에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멍한 표정으로 파디스의 등을 쳐다보았다.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뭔가를 중얼거렸지만 파디스에게까지는 잘 들리지 않았다. 파디스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뭔가 말했소?”

 “아니.. 별거 아니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

 “굉장히 신경 쓰이오만.”

 “후.. 요 며칠간 당신과 함께 다니면서 난 내 자신이 너무나도 나약하게 느껴졌어요. 그런데 방금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죠.”

 “흐음?”

 “난 강해요. 분명히. 아마도 인간으로서 갈고 닦을 수 있는 궁극에 거의 도달했을 거예요.”

 “사실이오.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나와 검을 마주했던 사람들 중 세손가락 안에 들 정도요.”

 “음. 역시나. 그래서 혼자 감탄사를 내뱉었던 것뿐이에요.”

 “감탄사..?”

 “그리 좋은 말은 아니었는데. 듣고 싶어요?”

 파디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사리에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이 괴물들. 이라고. 백오십 걸음 밖에서 부대 두 개를 퇴각시키는 인간이나, 그 부대가 퇴각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는 인간이나 둘 다 괴물이지 뭐예요.”

 “하하하, 괴물이라. 하지만 말이오. 사리에, 그대도 가까운 시일 내에 도달하게 될 거요.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그 시점에 말이오.”

 “이봐요, 파디스. 인간의 한계를 넘는 바로 그 순간부터 괴물이라고 불리게 되는 거라고요. 난 그냥 인간으로 남겠어요.”

 “그 시점은 스스로 넘으려 해서 넘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원치 않는다 해서 넘지 않을 수 있는 것도 아니오. 장담하건데 당신은 곧 그 시점을 넘게 될 것이오. 이건 내길 해도 좋소.”

 “흥. 아부해도 아무것도 안 나와요. 그리고 그렇게 되면 난 또다시 당신과 왕자를 노릴지도 모른다고요.”

 “아차, 이런 불충이 있나.”

 왕자라는 말을 듣자마자 파디스는 급히 품속에서 엘라인 왕자를 꺼내 안았다.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와 비명소리가 뒤섞인 전장의 한가운데를 헤치고 나왔는데도 엘라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안히 잠을 자고 있었다. 아마도 계속해서 치열한 전장을 거치며 익숙해진 것이리라. 그 덕분에 파디스가 왕자에게 신경을 빼앗기는 일 없이 전투를 이어나갈 수 있기는 했지만, 이런 어린아이가 비명소리에 익숙해졌다는 사실은 과히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슬퍼해도 모자를 지경이었다.

 말없이 엘라인의 머리를 쓰다듬는 파디스의 뒷모습에서는 쓸쓸한 기운마저 느껴졌다. 왠지 그 모습을 보는 것이 싫어 사리에는 걸음을 서둘러 파디스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변하지 않네요, 이 아이는.”

 “엘라인 전하를 함부로 부르지 마시오.”

 “괜찮잖아요? 아이라고 불릴 수 있는 건 행복한 거라고요. 왕실의 핏줄이랍시고 맨 시녀들에게 둘러싸여 전하 소리만 들으면서 받듦만을 받다보면 인간적인 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사람으로 자라난단 말이에요. 난 그렇게 자라난 사람 한명을 지켜봐왔기 때문에 잘 알고 있어요.”

 “난.. 솔직히 걱정되오. 어린 시절의 기억은 일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 마련인데.. 이렇듯 피와 무기만을 보아온 엘라인 전하께서 과연 어떤 영향을 받게 되실지.”

 “보긴 뭘 봐요? 싸울 땐 항상 품속에 넣어 아무것도 못 보게 하면서.”

 “그러나 비명소리와 무기 부딪치는 소리. 그리고 피 냄새는 막을 수가 없소.”

 “딴 건 몰라도 피 냄새는 막을 수 있겠네요. 이렇게 옆에 서 보니까 알겠어요. 파디스 당신, 굉장한 냄새가 난다구요.”

 사리에의 말에 파디스는 자신의 팔을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아 보았다.

 “아무 냄새도 안 나는데?”

 “자기가 자기냄새를 어떻게 맡아요. 정말.. 왕성에서 탈출한 담부터 옷 한 번도 안 빨았죠?”

 “옷을 빨 틈이 어디 있겠소. 사요르에서 옷을 얻어 입은 이래 한번도..”

 “믿을 수 없어! 기사라면 최소한의 품위는 지켜야죠. 아이 이리 줘 봐요. 원.. 피부병 걸릴까 무섭네.”

 사리에는 기겁해서 엘라인을 빼앗아 들었다. 그 서슬에 잠이 깬 엘라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사리에를 빤히 지켜보았다. 늘 보이던 수염 덮인 얼굴이 아니라 약간 불안한 표정이었지만, 엘라인은 이내 사리에를 향해 작은 손을 들어 올리며 방긋 웃어보였다. 사리에가 손가락으로 엘라인의 뺨을 간질이자 엘라인은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그 모습을 보는 사리에 에게도 슬며시 미소가 걸렸다.

 엉겁결에 왕자를 빼앗긴 파디스는 처음에는 긴장하여 사리에를 주시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긴장은 풀어졌다. 마침내 그는 사리에 로부터 경계를 풀고 앞장서서 나아가기 시작했다.

 “한쪽 팔만으로 힘들지 않겠소?”

 “검도 휘두를 수 있는데 이런 어린아이 하나 못 안겠어요. 그리고 엘라인도 퀴퀴한 남자냄새 나는 당신 품속에 갇혀 있는 것보다 나한테 안기는 편이 더 좋을 거예요. 앞으로 전투중이 아니면 엘라인 왕자는 내가 안고 다닐게요. 괜찮죠?”

 “좋을 대로 하시오. 그런데.. 몸을 못 씻기는 피차 마찬가지였던 것 같은데?”

 “당신이랑 같이 취급하지 말아요. 이래 뵈도 자기 전에 수건으로 몸을 닦아내고 잔다고요.”

 “정말이오? 전혀 못 느꼈는데?”

 “당연하죠. 그럼 당신 눈에 보이게 할 것 같아요?”

 “하하.. 아니오. 하지만 나의 눈을 속이다니 정말 굉장한 기술이오. 마치..”

 “마치..?”

 “귀신같은 솜씨랄까.. 아니면 인간의 경지를 벗어난 솜씨랄까.”

 사리에는 눈을 역세모꼴로 뜨고 파디스를 노려봤다.

 “이제 보니 아까 내가 한말, 가슴에 담고 있었군요? 왜, 아주 대놓고 괴물이라고 말하지 그래요?”

 “하하하! 사양하겠소. 괴물이라고 놀림 받던 한 여자가 알고 보니 굉장한 마녀여서 자신을 놀리던 인간들을 모두 괴물로 만들어 버렸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어서 말이오. 하하하하!!”

 “아니, 이 인간이! 거기서! 거기 안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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