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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피로스
작가 : 아마란스
작품등록일 : 2017.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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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스타타 향기 (1)
작성일 : 17-07-31     조회 : 290     추천 : 0     분량 : 5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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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가 서쪽으로 질 무렵, 앞서 나아가던 프리아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 일행을 기다렸다. 일행이 자연스럽게 그녀 주변으로 모여들자, 그녀는 주변의 숲을 한 바퀴 돌아본 뒤 품속에서 자그마한 반지를 하나 꺼내 손에 끼웠다.

 그러자, 지금까지 수해로 보였던 부분이 신기루처럼 흔들거리며 또 다른 영상이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분명히 같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두 가지 세계가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모습은 무척이나 이질적인 것이었다. 놀라운 것은, 그렇게 다른 모습의 두 세계였음에도 일부의 나무들은 완벽하게 일치하는 듯 보인다는 점이었다.

 프리아는 그런 세계에 안쪽으로 먼저 발을 들려놓고는 일행들에게 따라오라고 손짓을 했다. 파디스가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리고 프리아를 따라 걸음을 옮기자, 나머지 일행도 서둘러 파디스의 뒤를 따랐다.

 안쪽을 향해 걸으면 걸을수록, 수해의 모습은 점차 흐려지고 대신 기이한 형상의 건축물들이 뚜렷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엘레나는 주변을 주의 깊게 살피고는 작은 목소리로 한 단어를 흘렸다.

 “이건.. 시공융합마법 같습니다.”

 “시공융합마법..?”

 “원래는 절대로 공존할 수 없는 두 세계를, 마법의 힘을 빌려 붙여 놓은 것입니다. 물론 아주 일부분만 붙여 놓고, 더구나 그 입구는 강력한 봉인에 의해 지켜지지만 말이죠.”

 “처음 듣는 마법입니다만.. 혹시 신전에선 그런 마법도 전해지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마법 자체는 이미 실전 된지 천년이 넘었습니다. 다만, 문서상으로 기록이 남아있을 뿐이지요. 더구나.. 인간의 힘으로 쓸 수 있는 마법이 아닙니다. 고대의 드래곤이나.. 수천 년간 마력단련에 매달렸던 리치 중 일부만이 시전이 가능했다고 적힌 고문서를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드래곤...? 그런 게 실제로 있긴 합니까?”

 “이전에는 존재했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지금 이곳을 보면.. 어쩌면 고문서에서 ‘사라졌다’ 고 증언하던 수많은 생명체들은, 어쩌면 이런 마법을 통해 단지 그들만의 세계로 옮겨가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엘프는 엘프의 차원으로, 드래곤은 드래곤의 차원으로.. 악마는 악마의 차원으로 각각 들어가 버렸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예.. 하지만 제 생각이 틀렸기를 바랍니다. 만일 정말로 드래곤이나 악마 같은 고대의 생명체들이 아직까지 존재한다면.. 더구나 이런 형태로 존재한다면 자칫 끔찍한 재앙이 닥칠 수도 있을 테니까요.”

 “입구가 열릴 것을 우려하시는 것이군요.”

 “하하하, 이거 인간들 중에도 아직까지 눈 밝은 자가 남아있었군. 하지만 그 걱정은 붙들어 매도 좋소.”

 문득, 유창한 바르토스 공용어가 들려오자 파디스 일행은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진원지를 찾았다. 아치형으로 생긴 입구에서 어깨까지 흘러내린 하늘색의 머릿결을 가진 젊은 사내 한명이 일행을 주시하고 있었다. 앞장서서 걷던 프리아가 기쁜 듯 소리를 지르며 그에게로 달려가는 모습이 눈에 띠었다.

 “할아버지!”

 “오냐, 오냐.. 다른 사자(使者)들은 모두 돌아왔는데 너만 귀환이 늦어서 걱정하던 참이었단다. 그런데.. 어째 못 보던 분들이 잔뜩 오셨구나. 어찌 된 일인지 설명해 주겠니?”

 “사정이 있었어요. 할아버지도 들어보면 납득하실 거예요.”

 프리아가 빠르게 그간의 일들을 설명하는 동안, 사리에가 파디스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뭐야, 저 여자 공용어가 꽤 유창하잖아요? 왜 공용어를 못하는 척 했을까요?”

 “아마도 속인 게 아닐 거요. 귀를 잘 기울여 보시오.”

 “귀를요? 아..! 그러고 보니..”

 파디스의 말을 듣고 나서야 사리에는 프리아의 말소리는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이상한 고대어 발음 그대로라는 것을 눈치 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뜻이 정확하게 이해되는 것이었다. 사리에가 놀란 토끼눈을 뜨고 있자니 엘레나가 사정을 설명해 주었다.

 “저 남성 엘프 로부터 강력한 마력이 느껴집니다. 우리가 서 있는 곳까지 효력이 미치는 영역마법을 쓰고 있어요. 아마도 우리의 머릿속으로 직접 의사를 전달하는 마법을 시전 한 듯합니다.”

 “하지만 어느 틈에..? 주문도 외우지 않았는데.”

 “놀랄 일은 그뿐만이 아니오. 방금 프리아가 저 남성 엘프를 할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소.”

 “그랬죠.”

 “잊었소? 프리아는 맨 처음 자신을 소개할 때 슈베릭 아슈프리만의 손녀라고 했었소. 슈베릭 아슈프리만이라면 바르토스 건국전설 때의 영웅 중 한명이란 말이오.”

 “건국전설..? 말도 안 돼! 그럼 지금 저 젊은 남자가 500살도 넘었단 말인가요?”

 사리에의 목소리가 너무 컸던지, 슈베릭 아슈프리만 본인이 그 질문에 답을 했다.

 “하하, 정확히는 올해로 618살이 됐소. 반 이드레이를 도울 때는 고작 114살이었는데.. 그때는 젊은 혈기를 주체하지 못해서 그만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하고 말았소.”

 “아, 인사가 늦었습니다. 저는 파디스 데 사이온. 엘라인 왕자전하의 호위를 담당한 자입니다. 이렇듯 왕자전하의 신변보호요청을 수락하여 주신 것,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파디스는 즉시 앞으로 나서 한쪽무릎을 꿇으며 예를 갖췄다. 슈베릭은 너털웃음을 터트리더니 손수 파디스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이런 예는 필요 없소. 자, 일단 안으로 드십시다. 듣자니 말괄량이 손녀 때문에 고생을 하셨다고..”

 “할아버지!”

 “오, 이런.. 아직 여기 있었니?”

 “피.. 딴전은. 물론 저도 실수하긴 했지만 제가 아니었으면 저들은 몽땅 죽을 뻔했단 말예요.”

 “그래, 알았다. 프리아도 긴 여행에 피곤할 테니 일단 안으로 들어오려무나.”

 일행은 슈베릭을 따라 마을 안으로 향했다. 엘프들의 건축물은 무척이나 특이했다. 몇 백 년을 살았는지 알 수 없는 나무들이 그들의 주거지였는데, 나무들은 하나같이 사람 대여섯 명이 팔을 벌리고 빙 둘러싸도 모자를 정도로 큼직했으며 그 내부는 텅 비어 있었다. 놀라운 것은 그렇게 내부가 비어 있음에도 위쪽의 가지에는 여전히 푸른 잎이 돋아나 있는 것이었다. 엘프들은 그런 공간에 하나씩 자리를 잡고, 그저 입구에 해당하는 부분에만 약간의 세공만을 가했을 뿐이었다. 그 외에 제멋대로 얽히고설킨 나뭇가지들 위에 지붕을 덮고 밑의 공간에는 의자와 탁자들을 놓아둔 것도 종종 눈에 띠었는데, 모양새로 미루어 볼 때 주거지는 아니고 그저 휴식을 위해 마련한 공공장소 인 듯 했다.

 “이건 무슨 동화 속에 들어온 기분이네요.”

 “잘 봐두시오. 아마 평생에 두 번 볼 수 없는 진풍경일 테니.”

 “말 안 해도 잘 보고 있다고요. 우와.. 저 나무 좀 봐. 이봐요, 엘레나 사제님. 저기 저 과일, 엄청 맛있어 보이지 않아요?”

 “예. 과일이 하나같이 탐스럽네요. 하지만 지나치게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을 거예요.”

 “하긴.. 그들의 식성이 꼭 인간들과 같을 거라고 생각할 수는 없겠죠.”

 그런데, 평생 두 번 볼 수 없는 진풍경을 맞은 것은 파디스 일행뿐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들이 마을에 들어서자, 온 마을의 엘프란 엘프는 죄다 몰려나와서 일행을 주시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나같이 갸름한 선을 지닌 미인들뿐이었는데, 특히나 인간과 확 구분되는 부분은 바로 짙은 하늘색의 머릿결과 긴 귀였다.

 큰 나무의 구멍이란 구멍에서 두세 명의 엘프들이 고개를 빠끔히 내밀고 일행을 바라보는 모습은 어찌 보면 우스꽝스럽기까지 했다. 속닥거리는 소리와 키득 이는 웃음소리가 커져가는 가운데, 슈베릭이 엘프들을 향해 불벼락을 내렸다.

 “이놈들!! 무슨 구경거리라도 났나? 얼른들 들어가서 할 일이나 마저 해! 원, 800년 만에 손님이 찾아 왔는데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에이, 족장님. 간만의 인간손님인데 구경 좀 하게 해 주세요! 이야기로만 전해 들었지 실체는 처음 본단 말이에요. 어이, 인간 아저씨!! 그 검 멋진데!”

 “아스타, 이놈! 손님이 무슨 구경거린 줄 아느냐! 나중에 정식으로 소개해줄 기회가 있을 테니 궁금한 것은 그때 물어보도록 해라. 자, 알아들었으면 썩 들어가!”

 파디스 일행은 뜻밖의 장면에서 족장의 권위를 엿볼 수 있었다. 슈베릭의 말 한마디에 몰려들었던 엘프들이 군말 하나 없이 흩어진 것이었다. 파디스가 속으로 혀를 내두르고 있을 무렵, 슈베릭이 점잖게 사과했다.

 “이런.. 실례를 용서하시오. 요즘 엘프들은 원체 버릇들이 없어놔서..”

 “아닙니다. 따지고 보면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온 저희 쪽에 더 책임이 있습니다.”

 “하하하, 말투를 보아하니 기사 인 듯 한데.. 맞소?”

 “예. 바르토스 왕실의 호위기사입니다.”

 “음.. 깍듯한 말투로 미루어 그러리라 짐작했지. 자, 저기에 보이는 곳이 내 거처요. 사실 프리아와 단 둘이 사는 살림이라 저만한 곳은 필요 없지만, 족장이 사는 곳은 저곳으로 정해져 있어서 말이오. 하하하!”

 슈베릭이 가리킨 방향에는 하늘을 찌를 듯 거대한 나무가 한그루 서 있었다. 아니, 거대하다는 말만으론 부족했다. 나무의 둘레는 웬만한 성 하나쯤은 통째로 수용할 수 있을 만큼이나 넓었고, 길이는 고개를 쳐들어도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사람몸통보다도 더 굵은 가지가 사방으로 솟아 하늘을 가리며 푸른 잎을 무성하게 피운 모습은 말 그대로 장관이었다.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그 웅장함에, 파디스 일행의 걸음이 그 자리에서 딱 멎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들의 입에서 한 단어가 흘러나왔다.

 “이그드라실..”

 “오호? 인간 세상에 아직 그 단어가 전해 졌던가? 하하하, 맞소. 그것이 바로 저 나무의 이름이오. 지하와, 지상과, 천상을 하나로 잇는 거대한 나무.. 라고 알려져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맞소?”

 “아.. 맞습니다.”

 “후후후, 하지만 실제로 그렇지는 않소. 아무튼 인간들은 말을 정말 잘 꾸며낸 다니까. 저건, 그저 무식할 정도로 오래 산 나무영감일 뿐이오. 자, 이쪽이 입구요. 모두 따라 들어오시오.”

 슈베릭이 말하는 입구로 발을 들이는 순간, 일행은 마치 몸이 붕 뜨는 듯 한 느낌을 받았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을 때는 이미 타원형의 탁자가 놓인 커다란 방으로 이동한 뒤였다. 마치 파디스 일행이 올 것을 미리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탁자에는 6명분의 가벼운 다과와 음료가 준비되어 있었는데, 음료에서는 나무의 수액과 같은 싱그러운 냄새가 풍겼다.

 동화책 속에 갑자기 끌려 들어온 어린아이처럼 파디스 일행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자니, 어느 틈에 하얀 예복으로 갈아입은 슈베릭이 탁자에서 몸을 일으키며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자, 앉으시오. ‘엘-하슈브’의 장, 슈베릭 아슈프리만은 진심으로 그대들의 방문을 환영하오. 모쪼록 편안한 시간을 보내시길 빌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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