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그림자가 별똥별에 쫓기며 저무는 밤, 추락하는 빛을 가르고 아이들이 산둥성이를 오르고 있었다.
둥그런 반원의 동산 위에 걸린 밤별이 흔들리며 그 소리를 들었다.
‘ 오래 전부터, 아주 오래 전부터- 깊은 녹음 틈으로 사과꽃이 피는 황궁이 있었다네- ’
깔깔대는 아이들의 소리는 보화 속에 숨겨진 옥구슬이었으나, 수상할 만큼 처량했다.
‘ 짝을 잃은 주작이 슬피 울며 자신과의 기억을 잊은 청룡을 그리면, ’
‘ 아아, 슬프도다- 사과꽃의 언약을 어이 잊으셨을꼬. ’
오르막길을 끝낸 아이들이 마을로 가는 길에 발을 디뎠다.
‘ 아아, 슬프도다- 사과꽃의 언약을 어이 잊으셨을꼬. ’
* * *
청의 보폭을 따라, 걸음마다 푸른 청룡의 기운이 대지 위에 자수를 놓았다.
“ 어디냐. 귀비께서 울고 계시다는 곳이...! ”
청이 물었다. 태양도 그 기세를 꺾지 못한다는 청룡의 나라 해(海)국, 그 해국의 황제인 청의 음성이 공기 중에서 낮게 울렸다.
푸른 용포. 그 위엄을 나타내는 화려한 금빛의 자수들.
기백은 강인했으나, 어린 무수리에게 묻는 소리는 다급했다.
무수리를 바라보며 청을 따르는 자는 호위무사 담휘와 책사 태진 뿐이었다.
최소한의 인원만 곁에 둔 모양새가 상황의 급박함을 대변했다.
“ 그, 그것, 그것이........ ”
“ 어서 말해보아라. 어디냐. ”
황제가 가장 총애한다는 귀비, 윤화연. 그녀가 울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던 무수리가 청의 하명에 고개를 숙였다.
말을 심하게 더듬는 건 긴장한 탓이 아니라, 본래의 천성인 듯 했다.
“ 어디냐. ”
청의 몸속에 꿈틀거리는 청룡이 애타게 짝을 찾았다.
빛을 내는 청의 눈빛은 간절함 이상이었다. 단순히 연정을 그리는 눈이라기엔 수상했다.
그것은 마치,
“ 폐...폐하... 주, 죽여 주, 주, 주시옵소서...!!! ”
“ ......................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
“ 소, 소녀, 거, 거짓을 고, 고했나이다...! ”
제 수족을 잘라낸 원수를 수소문하듯 치밀했다.
별안간 청의 앞에 납작 엎드린 무수리가 벌벌 떨며 말했다.
“ 소, 소녀가... 거짓을, 거, 거짓을 고했나이다, 귀, 귀비께서는 지, 지금 이, 이쪽에 계, 계시지 않습니다, 귀, 귀비께서는, 사...사현궁에...! 악! ”
신병에 걸린 마냥 떨며 제가 고한 말을 뒤집는 무수리가 단말마의 비명을 질렀다.
“ 아... 아아...! ”
덜컥, 잘려나간 것은 뱀 마냥 또아리를 튼 무수리의 쪽진 머리였다.
지푸라기처럼 추락한 머리카락을 보며 무수리는 그게 제 모가지인 냥 떨었다. 무수리의 낯빛이 사색으로 물들었다.
호위무사의 검을 청이 뽑았다. 머리카락을 자른 것도 모자라 날선 검을 서서히 무수리의 목에 비볐다.
살짝 비친 혈흔이 하얀 목덜미 위에서 길을 헤매기 시작했다.
“ 네가 감히 황제에게 거짓을 고하느냐. ”
“ 폐, 폐하... 제, 제발 이, 이곳으로 해, 행차하지 마, 마시옵소서.......! ”
“ 네가 죽고 싶은 모양이구나. ”
“ 폐, 폐하, 제발..... ”
“ 내가 기억을 잃었다고 귀비를 향한 네 충정까지 모르는 것 같으냐? ”
“ 폐하....! 흡... ”
청의 불호령에도 궁녀는 눈물로 호소했다.
청이 한참을 말이 없다가 입을 열었다.
“ 귀비께서는 분명 너로 하여금 나를 데려오라 했다. 맞느냐. ”
“ 폐, 폐하 제, 제발...................... ”
“ 하지만 귀비에게 충정이 가득한 네가 나를 가로막는 건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음에도 남음이야. 맞느냐! ”
“ 폐, 폐하........... ”
“ 이번에는 어떤 방법으로 황궁을 나가겠다, 폐위를 해달라 하는 것이냐, 대체. ”
“ 흐윽..... 마마는, 마마께오서는.... 흑.... ”
“ 약조하마. 내 너의 충정을 봐서라도 귀비에게 경을 치지 않으마. ”
“ .................... 폐, 폐하, 부, 부디.............. ”
“ 고하거라. 이 황궁 안에서 내가 너 하나 없다고 귀비를 찾지 못할 것 같으냐? 그렇다면, 다른 누구보다 빨리 내가 귀비를 찾는 게 좋겠지. 누군가 귀비를 먼저 찾기 전에! 그래서 너도 나를 찾아온 것이 아니냐. ”
“ ................................................ ”
무수리는 태풍 속 어린 입새처럼 떨면서 결국 팩 울음을 터뜨렸다.
“ 야... 약조, 약조 해주, 주셔야 합니다.... 흐윽..... 폐, 폐하... 마, 마마를... 우, 우리 마, 마마를 살려주세요.... 도, 도저히 제 힘, 제 힘으로는, 우, 우리 마마를 지켜드릴 수가, 없, 없사옵니다.... 흐윽.... ”
“ 내, 반드시 약조하마. ”
적은 양의 선혈이 무수리의 옷을 적셨을 쯤, 청이 칼을 거두었다.
때를 맞추어 무수리가 이마를 땅에 대며 고했다.
“ 마, 마마는... 마마께오서는... 해, 해연지, 해연지에 계시옵니다....! ”
단박에 청이 호위무사에게 눈짓했다. 호위무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무수리를 잡아 일으켰다.
그녀를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지는 호위무사의 뒷모습을 따라, 갑자기 투둑,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 폐하, 비님이 오시는데 잠시 내관을 불러....... ”
“ 그냥 가자. ”
책사 태진의 권유를 무르고 청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 하지만, 고뿔이라도 드시면.................... ”
“ ..................... 왠지, 귀비는 이 비를 다 맞고 있을 것 같구나. 참으로 독한 여인이니... ”
“ ............................. ”
“ 귀비가 고뿔이 들기 전에, 어서 가자꾸나. 황후가 귀비를 먼저 찾기라도 한다면 큰일이야. ”
“ ........................ ”
“ 그리고 너도 눈치 채지 않았느냐. 사실, ”
“ .......................... ”
“ 귀비는 채연이를 황후에게 보낼 작정이었을 것이야. 채연이가 충정으로 나를 찾아온 것일 뿐. ”
“ ............................. ”
“ 귀비도 참, 독하구나. 대체 나로부터 얼마나 벗어나고 싶은 것이기에.... ”
청이 말을 한 번 멈추었다. 태진이 걱정하며 청을 살폈다.
“ ........................ 폐하. ”
“ ................ 가자꾸나. ”
황제가 옮기는 걸음마다 물기가 몸에 스몄다.
뺨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는 날렵한 턱에서 갈 길을 잃다 땅으로 추락했다.
황제가 가는 걸음마다, 어쩐지, 서글픈 용의 울음이 창공으로 흩어졌다.
태양도 그 기세를 꺾지 못한다는 해(海)국 청 황제 7년이었다.
* * *
비가 퍼붓는 매서운 기색이, 사람들로 하여금 ‘하늘이 원래 먹색이었나-’ 생각하게 만들었다.
비구름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새까만 하늘, 그 속에서 근원을 알 수 없는 굵은 빗줄기가 세차게 쏟아 내렸다.
“ ................................... ”
며칠 전 비에 이어, 다시 내리는 빗줄기에 청이 내려다보는 천(川)의 흐름이 거세졌다.
물이 바위에 굽이치는 소리와 함께 괴기한 울음소리가 세찬 빗소리에 먹혔다.
사람의 비명소리 같은, 짐승의 소란이었다.
- 아아아아아아아악
해연지는 청국에서 가장 은밀한 곳에 숨어 있다는 계류였다.
산으로부터 이어진 세찬 물줄기가 절경을 이루는 곳으로, 황제가 가장 사랑한 곳이자.
“ ..................... ”
청 황제의 정인인 귀비 윤화연이 가장 그와 함께 동행하기를 좋아했던 곳이었다.
- 아아악!
그 순간, 단말마의 비명이 하늘로 흩어졌다.
하지만 곧 짐승의 괴기스러운 소리는 거짓말처럼 뚝, 끊겨 사라져 버렸다.
수상한 소리를 벗 삼아 청이 마지막 걸음을 옮겼다.
긴 생머리를 내린 채, 가지런히 머리 장식을 올린 여인의 뒷모습이 폭우 속에 산란되듯 아득했다.
“ ........................... ”
청이 시선을 둔 곳은, 그녀의 손이었다. 귀비라고 하기엔 손에 상흔이 가득했다.
상처와 어울리지 않는 얄쌍한 손이 커다란 활을 쥐고 있었다.
“ ............................... ”
깊은 적막을 유일하게 채우는 건 소란스러운 빗줄기뿐이었다.
청의 걸음 소리가 하늘의 눈물에 가려 들리지 않았을 텐데, 화연이 말했다.
“ .......................... 결국 폐하께서 오셨나이까. ”
“ .................. 귀비. ”
“ ......................... 어찌 오셨습니까. ”
“ ............................... ”
“ 폐하, ................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시면서 어찌 이곳에 오셨습니까. ”
천천히, 화연이 뒤돌았다.
빗줄기에 온 몸이 젖어, 그녀가 입은 적색의 비단이 더욱 거멓게 물들었다.
치장 없는 얼굴에 연신 흐르는 물방울이 속눈썹 끝에서 파르르 흩어졌다.
어떤 사내라도 달려가 안아주고 싶을 만큼 처연한 얼굴이었다.
추위에 얼굴이 허옇게 질려가도, 붉은 입술이 매혹을 담았다.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는, 그야말로 빼어난 경국지색이었다.
하지만 그 얼굴을 바라 본 청이 분노했다.
“ 어찌 하여 죽인 것이오. ”
청의 하명에 물줄기가 한 번 크게 굽이쳤다. 청의 뒤로 성난 청룡이 그르렁 대는 소리가 났다.
하연은 달리 대답 없이 청이 원앙을 바라보는 시선 끝에 함께 눈을 두었다.
“ 물었소. 어찌 하여, 저 미물을 죽인 것이오! ”
굽이치는 계곡, 큰 두 개의 바위틈으로 활이 꽂인 원앙이 있었다.
눈을 감치 못한 채, 물이 철썩일 때마다 핏빛으로 물든 깃털이 붉은 선혈을 토했다.
“ 황후를 이곳으로 인도하여, 저 원앙을 죽이며 보이고 싶었던 게 대체 무엇이오. ”
화를 참아 누르며 청이 말했다. 비에 젖은 황제를 따라 청룡이 그르렁 거렸다.
화, 명백한 분노였다. 그런 청의 모습을 화연히 멍하니 바라보다 물었다.
“ 그리도 내 곁에서, 이 황궁에서 나가고 싶었던 것이오! ”
“ ................... 제가, 그것을 폐하께 고해야 합니까? ”
아이가 처음 보는 빗방울의 정체를 묻듯 순수한 물음이었다.
화연의 대답에 청이 허, 하고 헛웃음을 쳤다.
“ ................. 대체 저 미물이 무슨 죄가 있다고 귀비의 활에 맞아 스러져가야 하오. ”
“ ................................... ”
“ 더 이상 책망하지 않을 테니 돌아가십시다. ”
표정을 굳힌 청이 화연이 앞까지 다가와 긴 소매에 가린 화연의 팔목을 잡았다.
힘을 주어 끌지는 않았으나, 황제로서 보인 의지는 선명했다.
하지만, 화연은 자신을 잡은 청의 손을 풀어냈다.
“ ............. 참 많은 것이 달라지셨습니다. ”
빙하마냥 차가운 물속에서 피를 토하는 원앙은 처연했다.
빗줄기마저 생명을 잃은 새가 가여워 하늘은 굵게 빗물을 쏟아냈다.
“ 폐하. ”
화연이 청을 불렀다. 귀비로서 모시는 지아비, 청국의 황제인 그에게 감히 말했다.
“ 놓아주십시오. 저를. ”
“ ............................. ”
“ ...... 황궁에서 ”
“ ............................... ”
“ .......................... 나가게 해주세요. ”
청이 성이 난 얼굴로 화연을 바라보았지만, 화연은 강직했다.
“ 무어라 고하고 있는지 아시오. ”
“ ............................ 폐하, 제발. ”
“ ................................. ”
“ 정인을 잃은 채 살아야 하는 이 지옥 같은 황궁에서, 저를, ”
“ ...................................... ”
“ ............. 나갈 수 있도록 윤허해주세요. ”
그 고운 얼굴로, 화연이, 청에게 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