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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연의 기억
작가 : 한정화
작품등록일 : 2017.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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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네가 살아 있는 나를 죽일 셈이냐.
작성일 : 17-07-31     조회 : 272     추천 : 0     분량 : 4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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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연의 말과 동시에 하늘로 청룡이 솟아올라 성난 소리를 질렀다.

 

 땅이 울릴 정도로 거센 소리는 번쩍이는 번개를 부르더니, 천둥이 따라와 세상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굳은 청의 얼굴을 화연이 한참 바라보더니, 시선을 옮겨 바위 위에서 물살에 철썩이는 원앙의 사체를 바라보았다.

 

 “ 저 원앙과 닷새 전 죽어버린 저 원앙의 짝은, 황궁에서 소문이 난 금슬지락이었습니다. ”

 

 “ .................................. ”

 

 “ 궁녀들마저 저 미물들의 연모지정이 부러워 시기할 만큼, 애틋했습니다. ”

 

 “ ............................ ”

 

 “ 하지만 닷새 전 한 놈이 죽어버리니, 남은 처가 매일 슬피 울기 시작했습니다. 소름이 끼칠 만큼 애절하게. 창자가 끊어져 허물어지면 저런 소리가 나겠구나, 싶을 정도로 고통스럽게. 그렇게 매일을 죽어버린 제 짝을 그리워하며 울었습니다. 고통을 이기지 못해 바위에 몸을 내리치는 괴이한 행동을 하기 시작한 것이,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

 

 “ .............................. ”

 

 “ 저리 슬퍼할 바에는, 폐하, .... 죽는 것이 낫습니다. ”

 

 “ ............................. ”

 

 “ 저는, 저 원앙처럼 되고 싶지 않습니다. 짝을 잃은 슬픔에 먹혀 제 삶을 저버리고 싶지 않습니다. ”

 

 “ ........................... ”

 

 “ 그리하기 위해서는 폐하, 폐하로부터 멀어져야 합니다. 저를 기억하지 못하시는 폐하로부터, 죽을 힘을 다해 도망쳐야, 제가 살 수 있습니다. ”

 

 “ ............................... ”

 

 “ 폐하를 볼 때마다 저의 죄악과 짝 잃은 연정을 함께 마주합니다. 한 나라의 황제를 죽음으로 몰아 넣은 죄악, 그것을 폐하를 볼 때마다 상기하게 됩니다. 사람들 말이 틀린 것이 없었구나. 정말 주작의 존재는 청룡에게 해가 되는구나. 그렇게 매일 스스로의 존재를 탓하고 깎아내리는 짓, 그만 하고 싶습니다. 그와 동시에 왜 나를 잊었냐 타박하고 싶은 스스로의 연정 또한 구차해 참을 수가 없습니다. ”

 

 “ ............................ ”

 

 “ .................... 저 원앙처럼 슬픔의 끝이 죽음 밖에 없다면, 폐하. ”

 

 원앙을 바라보던 화연이 빗물을 머금은 긴 속눈썹을 들어 올려 청과 눈을 맞추었다.

 

 “ 살고 싶습니다. ”

 

 고운 목소리로 그리 고했다.

 

 “ ..................... 저를, ”

 

 “ ................................ ”

 

 “ 폐위시켜주세요. ”

 

 “ ..................... 귀비. ”

 

 청이 반문할 새도 없이 화연이 말했다. 청이 억지로 화를 참으며 크게 숨을 쉬었다.

 

 “ 아무래도 일단은 들어가 보는 게 좋겠소. ”

 

 “ .............. 선황께서는, ....... ‘선황’께서는. ”

 

 뒤를 돌아 걸으려던 청의 뒷모습을 화연의 목소리가 잡았다.

 

 “ 참 저들을 좋아하셨습니다. ”

 

 화연이 입에 올린 ‘선황’이라는 단어에 청의 시린 눈 위 짙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청의 매서운 눈빛이 그 색을 더하더니, 결국 노기를 그대로 담은 채 청이 말했다.

 

 “ 선황? 하, 선황이라 하였소. ”

 

 청이 그렇게 말하더니, 허탈한 듯 웃음을 터뜨렸다.

 

 청의 시린 모습은 무섭도록 세상을 때리는 빗줄기마저 그를 피하려 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화연은 강직한 얼굴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 내 아버지, 선황제이신 명 황제께서 저 원앙을 좋아했었소? 그럴 리가. 내 처음 저 원앙을 못에 들일 때 누구보다 반대하셨던 게 누구셨소. 선황이셨소. ”

 

 “ ............................... ”

 

 “ 지금, 누구를 선황이라고 부르는 것이오. ”

 

 이제 청의 목소리에 자비는 없었다.

 

 “ 고하시오. ”

 

 “ ......................... ”

 

 “ 그대의 선황. 그가 대체 누구야. ”

 

 청의 푸른 용포가 빗줄기에 절어 짙은 바다의 쪽빛이었다.

 

 더 이상 싸늘해질 수 없는 청의 목소리는 그가 다스리는 나라의 국색(國色)과 빛깔을 나란히 했다.

 

 서릿발이 내리는 청의 목소리에도 화연은 담담히 말을 이었다.

 

 “ ................................... 제 선황은, ”

 

 “ ............................. ”

 

 “ 저를 대신해 활을 맞아 스스로 죽어 버리신......... ”

 

 “ ............................... ”

 

 “ 이 청. 청 황제, ”

 

 “ ............................... ”

 

 “ 그 분께서 유일한 제 주군이시고, 태양이시며, ...... 지아비이십니다. ”

 

 “ ................. 귀비.......... ”

 

 화연이 고했다. 누구도 꺾을 수 없는 절대 권력의 현신인 청 황제의 앞에서, 읊조렸다.

 

 청 황제가, 선황이라고. 그 말에 청의 말문이 막혔다.

 

 “ 제 대신 활을 맞아 숨을 놓아가시면서도, ”

 

 “ ........................... ”

 

 “ 다 괜찮을거라, 다 괜찮을거라 저를 안심시키려던 이가, ”

 

 “ ............................ ”

 

 “ 저의 선황이십니다. ”

 

 추운 비를 맞아 화연의 하얀 피부가 허옇게 질렸다.

 

 그녀의 흑색 눈은 먼 기억을 바라보고 있었다.

 

 “ 독이 잔뜩 묻힌 활에 피를 토하면서도!!! ”

 

 “ ................................. ”

 

 “ 제 손을 꼭 잡고, 괜찮다 웃으시던 분이 제 선황이십니다. ”

 

 “ ................................... ”

 

 “ 폐하, ”

 

 “ ............................... ”

 

 “ 기억을 잃은 폐하께서는 그 분이 아니시지 않습니까. ”

 

 “ ............................. ”

 

 “ 놓아주세요. 폐하. ”

 

 “ ......................... ”

 

 “ 제발, 제가 그 분만을 그리며 이 황궁을 나갈 수 있도록, 제발........ ”

 

 화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청이 성난 손길로 그녀의 손에 들린 활을 뺏었다.

 

 그녀가 입은 비단 자락처럼 붉은 활 끝에는 누군가 선물한 것처럼 귀한 옥의 장신구가 달려 있었다.

 

 청이 활을 빼드는 손길에 장신구가 한 번 크게 휘청였다.

 

 청이 화연이 근처에 둔 활을 잡아들었다.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활시위가 당겨졌다.

 

 날카로운 금속의 화살촉이 잠시 옅어진 빗줄기를 갈랐다.

 

 ‘투두둑’

 

 화살촉이 나무를 가르는 소리가 선명하게 울렸다.

 

 나뭇잎이 흩날리더니 처참하게 피로 얼룩진 원앙의 시체를 덮었다.

 

 화연이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 멀쩡하게 살아있는 황제를 앞에 두고, 선황이라니. 그대가 언젠가는 이 활로 원앙이 아닌 나를 가르고도 남겠구려. 기억을 잃었다고 나의 모든 존재가 부정 되는가 보구려. ”

 

 “ .................................... ”

 

 “ 그대가 살아 있는 나를 죽일 셈이구려. ”

 

 청이 바닥에 그대로 활을 내동댕이쳤다. 화연의 감은 눈은 떠질 줄을 몰랐다.

 

 “ 귀비. ”

 

 “ .................................. ”

 

 “ 시간을, 시간을 주시오. 제발 혼자 서두르지 마시오, 제발. ”

 

 “ ........................................ ”

 

 “ 내 먼저 갈 테니, 오늘과 같은 일을 또 다시 행하지는 말기를 바라오. ”

 

 “ .................................... ”

 

 “ 그 때는 나도 어떻게 할 지 모르겠으니. ”

 

 청이 그대로 뒤 돌았다.

 

 비에 흠뻑 젖은 모습이 황망한 듯 책사 태진이 서둘러 길의 방향을 잡았다.

 

 청의 뒷모습이 멀찍이 사라졌을 때, 그제야 화연이 눈을 떠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 .............................. ”

 

 담담한 듯, 청과 논쟁을 했던 여인은 사라졌다.

 

 화연이 청의 뒷모습을 길게 바라보더니, 그대로 울컥, 커다란 눈망울에서 감정을 토해냈다.

 

 한방울을 시작으로, 빗줄기와 함께 울음이 시작됐다.

 

 “ 마, 마마!!!! ”

 

 채연이 몸뚱아리보다 큰 커다란 우산을 들고 저 멀리서 화연을 부르며 뛰어왔다.

 

 우는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 화연이 뒤를 돌아, 죽은 원앙을 바라보았다.

 

 처참한 모습에 박힌 활과 무덤처럼 덮인 나뭇잎이 의미하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 언젠가, 내 이 무거운 자리를 떠나 자유로워 질 수 있다면, 귀비. ’

 

 ‘ 저 원앙 부부가 하루종일 물줄기를 따라 가며 나란히 행복에 겨워하는 것처럼, ’

 

 ‘ 저리 삽시다. ’

 

 화연이 그대로 눈을 감았다.

 

 울음을 삼킨 입술만이 애처로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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