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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연의 기억
작가 : 한정화
작품등록일 : 2017.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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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주작 고것들이 명기라고, 명기!
작성일 : 17-07-31     조회 : 261     추천 : 0     분량 : 4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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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 박씨 부인, 들었는가? 궁에 단단히 일이 있는 모양이여. ”

 

 “ 거참, 소문을 이제야 들은 게야? 홍씨, 아주 소식이 단단히 늦구마잉. ”

 

 아낙 둘이 빨래터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저잣거리 소문을 말하는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에 맞추어 그들이 쳐대는 방망이 소리는 일정했다.

 

 “ 어이, 박씨, 홍씨! ”

 

 나란히 앉은 박씨와 홍씨 옆으로 김씨가 와서 앉았다.

 

 한가득한 빨래를 개천 물에 헹구는 솜씨가 노련했다. 이야기에 껴드는 솜씨도 일품이었다.

 

 “ 폐하 푸른 용 비닐 벗겨 먹은 고 귀비년 얘기들 하고 있었구마잉? ”

 

 김씨의 말에 박씨와 홍씨가 웃었다.

 

 박씨가 방망이로 빨래를 한껏 세게 두드려 패더니 깔깔 웃으며 말했다.

 

 “ 어디 푸른 용 비닐만 벗겨 먹었던가! 주작은 그 기운이 너무 세서 한 번 함께 잠자리에 들면 거기가 불에 덴 듯 남아나질 않는다구 하더구만. 우리 폐하 거기, 거기도 쏙, 뱃겨 묵었겠지잉- ”

 

 박씨가 방망이로 개천에서 놀고 있는 사내 아이의 사타구니를 가리키며 말했다.

 

 박씨의 말에 김씨와 홍씨가 꺄르르 웃으며 자지러졌다.

 

 “ 우리 폐하 도적들에게 활 맞은 건 내 이 심장이 떨어질 정도로 가슴이 에린 이야기인데, 그것 때문에 폐하가 기억을 싹- 다! 잃어버려서 고 귀비년 닭 쫓던 개 신세된 건 너무 속이 씨언-하다는 거 아니여! ”

 

 웃음 사이로 박씨가 한 마디를 더 보탰다.

 

 “ 고럼고럼. 고 말이 참 참 말이제. 대체 귀비 자리가 주작에게 가당키나 했던가잉. 가만히 있어도 악령을 몰고 오는 그 불길한 기운을 품은 년이 황후 다음인 귀비가 웬 말이었어! ”

 

 박씨의 말에 김씨와 홍씨도 한 마디를 더 보탰다.

 

 “ 폐하께서 고 년의 고 미색에 홀라당 홀리셨던게지. ”

 

 “ 고런 말 있지 않던가. 주작 고 년들이 명기라고, 명기! 싸구려 기방 집에서 고 년들 부르는 말이 오죽했으면 홍가 아니겠어, 홍가! 한문으로 붉을 홍자에 우리 말로 간다 가!, 홍가! 참말로 홍씨 성 가진 홍가는 나인데 말이지! ”

 

 “ 아주 홍씨 부인이 속 씨언하게 말을 잘 하는 구마잉! ”

 

 홍씨 부인의 말에 김씨와 박씨가 자지러지게 웃었다.

 

 세 부인의 고운 목소리가 천박한 내용을 말하고 있었다.

 

 

 궁에서 일어난 일은 해국 전체에 파다하게 소문이 퍼졌다.

 

 궁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비단 이 셋뿐이 아니었다.

 

 나라 전체에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하지 못해 안달이었다.

 

 “ 근데 그 계집한테 빠진 건 둘 째 치고, 우리 폐하 참으로 참 사내시지. 어떻게 고년한테 날아오던 화살을 그렇게 턱! 하니 대신 맞았을까잉. ”

 

 “ 고 년 고거, 폐하 가슴에 활 꽂힐 때 얼-마나 가슴이 턱! 막혔겠어. 아, 난 이제 끝났구나 싶었겠지 않았겄서? ”

 

 홍씨의 말에 박씨가 대답했다. 박씨가 엄지로 자기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김씨가 얼른 껴들어 말했다.

 

 “ 고 년은 주작의 화기를 무기 삼아 사내들 다 제치고 전쟁터에서 대장군까지 한 년 아니여! 근데 어떻게 그 화살 하나를 지가 못 막았을까 싶어. ”

 

 김씨의 말에 박씨가 세게 빨래를 패며 말했다.

 

 “ 그래서 주작들이 불길하다는 거 아니겠어! 폐하가 깨어나셔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고 년 사지를 육시하여 들녘에 뿌려도 모자랐을 것이어! ”

 

 “ 암, 고럼 고렇지. 그 주작년 이제라도 떵떵 거리던 기세를 잃어 다행이여! 아주 해국의 모든 금은보화가 그 년 치마폭에 쌓여 있다고 하더마잉! 그거 이제 다 내놓아야 할 것이여! ”

 

 홍씨의 말에 김씨도 박씨도 고개를 끄덕이며 빨래를 마저 팼다.

 

 일정한 방망이 소리가 투닥투닥 개천에서 울려 퍼졌다.

 

 깔깔대는 목소리는 이제 제 남편과 아이들의 이야기를 말하기 시작했다.

 

 

 

 * * *

 

 

 

 화연과 원앙을 두고 입씨름을 한 후 돌아온 청이 욕간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천청궁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젖은 몸에 물기가 흥건했다. 혹여 청이 고뿔이라도 걸릴까 곁에 선 태진만 안절부절했다.

 

 화가 단단히 난 듯 이마를 짚은 채 눈을 한참 감고 있던 청이 태진에게 말했다.

 

 “ 답답해 미칠 것 같구나. ”

 

 “ .............................. 폐하. ”

 

 “ 답답해서 정말, 미칠 것 같아. ”

 

 청이 큰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 내 청룡도 기억하는 것을, 나만 몰라. 황자도 기억하는 모든 것들을, 태진아, 나만 모르는 구나. ”

 

 “ .............................. 폐하. ”

 

 “ 내 대체 이 일을 어찌 해결해야 한다는 말이냐. ”

 

 “ ............................. ”

 

 “ 귀비가 내게 시간을 줬으면 좋겠어. 귀비가 말하는 게 무엇인지는 알겠으나, 태진아..... ”

 

 “ ............................... ”

 

 “ 그녀를 그렇게 둘 수가 없다. ”

 

 청의 짙은 눈동자가 애달픔으로 침전했다.

 

 “ 덥힌 물이 딱 알맞다고 하옵니다, 폐하. 우선 강령하셔야 합니다. 아직 몸의 회복이 완전하신 게 아닌지라...... ”

 

 “ 그래, 그래야겠지. ”

 

 태진의 말에 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청의 시선이 창호지 너머 먼 곳을 바라봤다.

 

 “ 귀비의 상궁들에게는 주의를 시켰느냐. ”

 

 “ 네, 고뿔에 들지 않도록 궁에 훈기를 유지하고 알맞은 약재를 선별하여 상에 올리라 전하였습니다. ”

 

 “ ................... 그래. ”

 

 청이 태진의 말에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이동했다.

 

 문이 열려 이동한 넓은 욕간에는 훈기와 함께 향료의 향이 가득했다.

 

 시중들던 이들을 모두 물린 채 청이 홀로 자리했다.

 

 몸에 달라붙은 용포를, 그리고 속옷을 벗어낸 청이 물에 몸을 담갔다.

 

 

 오른쪽 허리에 상처처럼 청룡의 비늘이 검지만한 길이로 돋아 있었다.

 

 청룡의 사람이라는 표식이었다.

 

 “ 후. ”

 

 청의 깊은 한숨이 쏟아졌다.

 

 허리 위 청룡의 표식, 그 표식을 비웃기라도 하듯, 왼쪽 가슴팍에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가 있었다.

 

 핏덩어리와 숯처럼 까만색이 섞인 기분 나쁜 빛깔의 상흔이었다.

 

 “ 기억............ 잃어버린 기억............. ”

 

 청이 날카로운 턱이 잠길 정도로 깊게 몸을 담갔다. 눈을 감고 천천히 자신의 세상을 회상했다.

 

 ‘ 폐하, 제발. 이 지옥 같은 황궁에서 저를, 나갈 수 있도록 윤허해주세요. ’

 

 화연의 목소리가 청의 귓가에 내내 맴돌았다.

 

 ‘ 폐하께서는 그 분이 아니시지 않습니까. 제발, 제가 그 분만을 그리며 이 황궁을 나갈 수 있도록, 제발............ ’

 

 애처로운 화연의 목소리와 새하얗게 질린 얼굴이 떠올라 청이 눈을 더 꾹 감았다.

 

 기억을 잃은 지, 2달이 되는 날이었다.

 

 

 

 * * *

 

 

 

 

 “ 정말 보면 볼수록 어이가 없구나. ”

 “ 폐하. ”

 

 목욕을 끝낸 청이 다시 청천궁 자신의 자리에 앉아 태진이 가져온 사초를 들여다보았다.

 

 명 황제의 사초에 적힌 이야기들은 청이 황자였던 때의 것들이었다.

 

 “ 어찌 내 모든 순간에 귀비가 함께 했을 수 있단 말이냐. 몸이 떨어져 있어도, 마음만은 항상 그녀를 품고 있었다. 어찌 이 아이를 품지 않았던 순간이 없어. ”

 

 “ ........................... ”

 

 “ 내 나인데도 이해가 가지 않아. ”

 

 기억을 잃은 황제.

 

 청은 앞으로의 정사를 위해서도 기억의 조각을 맞춰야만 했다.

 

 그를 위해 가장 필요한 건 사초였다.

 

 명 황제의 사초는 물론이오, 개국 이래 최초의 기억 상실 황제라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이용해 본인의 사초를 열람할 수 있는 최초의 황제가 되었다.

 

 “ 그리고 제일 이해가 되지 않는 건. ”

 

 너털웃음을 지으며 명 황제 실록 속 자신의 행동을 회상하던 청의 눈빛이 바뀌었다.

 

 서릿발 떨어질 듯 냉철한 시선이 새로 쥔 사초를 향했다. 청 황제, 자신의 이야기였다.

 

 “ 기억을 잃게 되었던 그 날, 그리고 그 날로부터 가까웠던 시일의 이야기들인데........ ”

 

 “ ............................ ”

 

 “ 내 이것들이 수상해서라도, 귀비의 뜻을 들어줄 수가 없다. ”

 

 청이 경건한 얼굴로 자신의 사초를 넘겼다. 들여다보는 표정이 예사롭지 않았다.

 

 청이 종이 속 자신, 청 황제의 역사를 곱씹기 시작했다.

 

 

 청이 펼친 종이 속 내용은 정확히, 청 황제 7년, 지금으로부터 다섯 달 전의 이야기였다.

 

 어떤 집단의 습격을 받아 귀비 대신 활을 맞고 쓰러진 날로부터는 석 달 전의 일이었다.

 

 청이 글자를 따라 손가락을 옮기며 입으로 소리를 냈다.

 

 “ 청 황제께서 현천관 유생들의 상소문을 대신들 앞에서 펼치시며 노기를 감추지 않으셨다. 유생들의 상소문에는 하나같이 이(異)종족 금지안에 대한 유생들의 비판적 시각이 담겨 있었다. ............................ 결국 이종족 금지안의 쟁점은, 귀비 윤씨의 출생에 관한 문제였다. ”

 

 청이 힘을 주어, 같은 대목을 다시 읽었다.

 

 " 결국 이종족 금지안의 쟁점은, .......... 귀비 윤씨의 출생에 관한 문제였다, 라- "

 

 청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그를 지켜보는 태진이 황망하여 고개를 깊게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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