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궁과 아이가 사라진 자리를 보던 청이 대신들에게 말했다.
“ 내 특별이 임무를 맡긴 이가 주작 사냥을 직접 목도하고, 피해자인 저 아이를 구출해내 여기까지 왔소. 아이를 겨우 달래 상황을 다 듣고 나니 기가 막히더이다. 그 이야기를 아이의 입에서 함께 들으면 좋았으련만, 아이가 청룡이라 하면 기겁을 하니 잠이 들었을 때 겨우 보여주게 되었소. 여기 청룡들이 이렇게 많은데 아이가 얼마나 놀라겠소. 기운을 숨겨도 한계가 있지. 함께 듣지 못한 건 다들 이해해주시길 바라오. ”
영의정 기현의 낯빛이 처음으로 어두워졌다.
“ 대신, 아이가 말한 것을 내가 대신 전하겠소. ”
“ .................................... ”
“ 이제 짐은 이 일을 헛소문이라 넘길 수 없으니, 경들도 함께 들으시오. ”
“ ........................... ”
“ 확실한 건, 이 주작 사냥이라는 해괴망측한 일에 범인은 청룡인 무관들이 아니란 것이오. 아이도 직접 말했소. 그동안 변방에 살면서 무관인 청룡들은 항상 주작을 잘 대해 주었다고. 그렇다면, 범인은 변방에 사는 청룡 중 무관이 아니란 소리인데, 변방에 사는 무관이 아닌 청룡. ............... 그런 청룡이 얼마나 된다고 보시오? ”
“ 아이가 무관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없지 않습니까. ”
영상이 말했다.
“ 아니, 아이 입으로 먼저 말하더이다. 그들의 몸에 무관임을 증명하는 문신이 없었다고. ”
“ ............................. ”
“ 그래서 참 이상했지. 무관이 아닌 청룡이 변방에서 주작 사냥을 한다-라. ”
“ ................... ”
“ 그런 청룡이 거기 있을 리가 없는데. ”
청의 눈빛이 더 없이 차갑게 바뀌었다.
하지만 입에 조소를 달고 있었다.
눈이 매서워지며 빛난 게 시작이었을까, 마치 광대처럼 웃으며 청이 한 발자국 씩 걸음을 옮겼다.
앞에 서있는 대신들 하나하나에게 얼굴을 가져다대며 물었다.
“ 영상의 친척 중 변방에 사는 이가 있소? ”
청이 눈을 빛내며 영상에게 물었다. 조소를 머금은 입이 괴기스러웠다.
“ ............... 없습니다. ”
“ 좌상의 인척은? ”
한 발짝 더 떼며 좌의정에게 청이 물었다.
“ 없습니다. ”
“ 허어, 참 이상하지? 그럼 좌찬성께서는 어떻소? ”
“ ........... 없습니다, 폐하. ”
“ 그럼 참찬께서는? ”
한 걸음, 한 걸음, 청이 하문했다.
마치 이는 희롱 같았다.
“ 폐, 폐하.... 어찌 하문을 하십니까. ”
“ 대답하시오, 참찬께서는 어떻소? ”
청이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참찬이 고개를 깊게 숙이며 대답했다.
“ 모, 모든 인척이 변방에 살지 않사옵니다.... 일가 대대로 청룡의 황족을 모신 문인 집안의 소생이라 변방에는 발도 들인 적이 없습니다....! ”
강한 부정이었다.
한 명 한 명, 직급을 부르며 청이 똑같은 질문을 했다.
청의 희번뜩이는 눈빛은 분명 범인을 알고 있는 게 틀림 없었다.
설마,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대신들이 몸을 깊이 숙였다.
“ 임무를 맡았던 이가 범인들은 인도하고 있다고 하오. 워낙 난리판이었다고 하더군. ”
청이 다시 걸음을 옮겨 계단을 올라 자신의 옥좌에 앉았다.
누구보다 기품 있게 그 자리의 주인임을 뽐내고 있었다.
“ 아무튼! 범인들을 문초하는 것도 시급하지만, 주작 사냥이 일어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도 참 궁금했소. ”
“ ........................... ”
“ 아이의 증언과 지금까지 뜬소문으로 돌았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답이 간단히 나오더이다. ”
“ ........................ ”
“ 주작 사냥의 이유는. ”
“ ................................ ”
“ 주작이 자신들의 힘을 발휘하는 걸 보기 위해서. 애초에 주작의 혈통은 화국이 붕괴되며 힘이 많이 약해졌소. 사냥을 나서는 다수의 청룡들에게 힘을 발휘해봤자, 소수로 이길 수가 없지. 그런데도 생명이 위협 받고, 더 나아가 자식이 간음 당하고 살해 당하는 걸 보니, 주작의 아이들은 물론, 다 큰 주작들까지 숨기고 살던 힘을 발휘해 불을 일으키지오. 그래봤자, 이길 수가 없겠지만. ”
“ ................................ ”
“ 그리고 주작 사냥 후 청룡들이 이렇게 얘기한답디다. ”
“ ......................................... ”
“ 거봐라!! 주작은 불길하다. 이렇게 화염을 일으켜 위험하다!!! ”
청이 분노를 감추지 않고 소리쳤다.
옥좌 옆에 가득 쌓인 상소문을 청이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청의 몸에 또아리를 틀었던 청룡이 푸른 기운을 내뿜으며 그 아가리로 종이를 모조리 씹어 삼켰다.
분이 풀리지 않은 듯 그르렁 거리는 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 이게 정상이라고 생각하시오? 이래도 주작이 불길하고, 위험한 것이오! 아니요, 이제 그들은 그저 해국에서 핍박 받고, 박해 받는 유일한 종족일 뿐입니다. ”
“ .................................. ”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대신들을 바라보는 청의 눈이 매서웠다.
“ 다들 잘 들으시오. ”
“ ................................. ”
“ 해국은 청룡의 나라. 그리고 천자인 나의 나라요. 하지만 동시에, 모든 종족과 백성을 위해 군림하는 나라요. 나는 그것을 수호할 것이고, 이에 반하는 모든 자들을 역도라 부를 심산이오. ”
“ ................................ ”
“ 주작 사냥에 관련된 자들은 모두 해국의 뜻을 거스르는 자들. ”
“ .................................. ”
“ 해국을, 그리고 나를 거스르는 자가 여기에 있다면. ”
“ ....................................... ”
“ 지금 당장 나와, 내 목을 베시오. ”
“ ..................................... ”
청이 옆에 있던 호위 무관의 칼을 빼들어 대신들 앞에 던졌다.
“ 나 말고 여기 무관도, 누구도 반격하지 않을지니. ”
“ ..................................... ”
“ 지금 나올 수 없다면, ”
“ ........................ ”
“ 내 앞으로 이 일을 좌시하지 않으리란 걸 똑똑히 기억하시오. ”
황제의 단호한 태도에 당황한 대신들이 서로 눈치를 봤다.
영의정 기현이 입술을 꾹 깨물다 신음처럼 말을 토했다.
“ 황제 폐하....................... ”
그 운을 시작으로 약속한 듯 모두 만세를 외치기 시작했다.
“ 황제 폐하, 만세! ”
“ 만세! ”
“ 만만세! ”
“ 천세를 누리시옵소서! ”
그대로 모든 대신이 바닥에 납작 엎드려 만세를 외쳤다.
청이 그들을 벌레보듯 내려보다 웃었다.
세상을 모두 가진 사내의, 자신감이었다.
그리고 만세 삼창이 끝날 때 쯤, 청이 준비한 마지막 행사가 시작됐다.
“ 밖에 들리느냐. ”
“ 예- 폐하. ”
몇 겹의 문 너머로 환관이 대답했다.
“ 귀비는, 아니 대장군은 오셨느냐. ”
“ 예- 안 그래도 고할 참이었사옵니다. ”
“ 안으로 뫼셔라. ”
그렇게 한 겹, 두 겹, 여러 겹의 문이 동시에 열리더니 갑옷을 두른 여인이 등장했다.
중간 크기의 함을 들고 오는 여인의 자세는 강경했다.
대신들은 여전히 납작 엎드린 채였다. 그 사이를 걸어오는 화연이 웃음 지었다.
“ 승전을 감축드리옵니다, 폐하. ”
화연이 무릎을 꿇어 함을 진상하려는 것을 청이 말렸다.
“ 귀비, 아무리 대장군이라지만 내 귀비라는 걸 잊지 마시오. 부부는 한 몸인데 어찌 내 앞에서 무릎 꿇는단 말이오. 법도는 그렇지 않다만, 내게는 나보다 귀한 귀비라는 걸 잊지 마시오. ”
청이 영상에게 들으라는 듯 그를 주시하며 말했다.
화연이 그런 청의 모습에 피식 웃더니 함을 내밀며 고개를 숙였다.
땅을 짚은 영상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예상은 했지만 분명했다.
“ 폐하, 오는 길에 변고가 있어 좀 늦었나이다. ”
주작 사냥의 진상 조사를 맡은 이는 분명, 윤화연이 틀림없었다.
그 태생이 주작이자, 전장마다 승전을 주도하는 이였다.
귀비로서 얻는 총애는 황궁에서 제일이었다.
영상이 당했다며 속으로 한탄하는데, 화연이 말했다.
“ 주작 사냥의 공범자들.................. ”
“ 그래. ”
“ 도망을 꾀하던 자들을 그 자리에서 사살하였습니다. ”
“ ....................... ”
“ 저항이 너무 강해 생포하지 못했음을 용서하시옵소서. ”
화연이 들어오며 함께 가져온 상자를 청 앞에 바쳤다.
“ 괜찮소. 무엇이오. ”
“ 입에 담을 수 없는 악행을 꾀하고, 폐하의 부름을 거역하고 도망가려던 자들 중 하나의 목이옵니다. ”
“ 열어보시오. ”
화연이 허리를 굽혀 예를 취하더니 상자를 열었다.
얼굴임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새까맣게 탄 형상이 상자 안에 있었다.
“ 범인들의 신원은 찾았소? ”
“ 찾았습니다. ”
“ 내가 알만한 이가 있는가. ”
“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이 상자 속 처형당한 이가........ ”
화연이 말끝을 흐렸다.
주저함이 아닌 준비된 머뭇거림이었다.
짧은 적막이 대신들을 희롱하듯 공기 중으로 흩날렸다.
좌우에 대신들이 화연의 목소리에 주먹을 움켜 쥐었다.
“ 고하거라. ”
화연이 무릎을 굽혀 앉아 예를 갖추었다.
붉은 끈으로 야무지게 또아리를 튼 머리카락, 그 아래 굵은 철심이 박힌 갑옷은 영락없는 대장군의 기백이었다.
적당히 높은 음조에 품위 있는 화연의 말씨는, 대신들을 향해 청이 준비한 최고의 무기이자, 경고였다.
“ 의금부사 송하식의 조카, 송승진입니다. ”
그것이, 피눈물로 얼룩질 역사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