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들과 청이 주작 사냥을 두고 기 싸움을 한 지 벌써 석 달이 지났다.
그동안 일이 몰려 청의 몸은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그런 청이 손꼽아 기다린 날이 드디어 왔다.
“ 괜찮으십니까. ”
“ 무엇이 말이오. ”
휘황찬란한 마차 안에 청과 화연이 나란히 앉았다.
고르지 않은 길을 가는 마차가 내내 덜컹거렸다.
비가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질척이는 땅과는 다르게 마차는 화려했다.
“ 늘 행궁 가실 때 멀미를 하시지 않습니까. 하필 이 때마다 바쁘십니다. ”
“ 에이- 아니오! ”
“ 이번에도 주작 사냥과 관련한 자들을 엄벌하시느라 매일 밤을 뜬 눈으로 보내시지 않았습니까. ”
“ 어허- 내가 언제 행궁 가는 길에 멀미를 했다 그러시오. ”
“ 그 거짓말에 속아드리는 게 몇 해인지 짐작이나 하십니까. ”
“ 글쎄. ”
“ 황제 즉위 하시고 내내 이러셨으니 벌써 7년이십니다. ”
“ 그걸 다 세고 있다니, 아주 나에 대한 연정이 넘치시오, 귀비. ”
화연의 말을 능구렁이처럼 받아 친 청의 귀가 붉었다.
주작 사냥, 그 소문이 무성하나 실체를 잡지 못했던 사건의 꼬리를 청이 토벌하기 시작한 지 벌써 석 달이 흘렀다.
이로 황궁에서 분 피바람 냄새가 고약했다.
대신들 앞에서는 그 위계가 그렇게 당당한 청이 자신 앞에서 귀를 붉힐 때마다 화연은 알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절대 군주도 결국에는 사내였다.
“ 이번 해는 가지 않아도 된다니까요. ”
“ 내가 가고 싶어 그렇소. 내가. ”
4월.
사과꽃의 개화가 시작되는 달이었다.
황궁에서 꼬박 하루를 달리면 사과꽃으로 유명한 행궁이 있었다.
황제는 4월마다 그 곳으로 귀비와 함께 향했다.
귀비의 생화인 사과꽃이 황제에게 애틋한 의미를 지녔기 때문이었다.
“ 안색이 좋지 않으신데... ”
“ 어허, 귀비- 가는 길 즐겁게 갑시다. 어차피 가는 길 아니오. 우욱...! ”
“ 어휴.... ”
“ 그래도 항상 다녀오면 나아지지 않소...! ”
문제는 청이 몸이 좋지 않을 때마다 행궁 일정이 겹친다는 것이었다.
늘 약속한 것도 아닌데, 1월부터 3월은 사건이 많은 달이었고 4월마다 황제의 몸은 가장 약해져 있었다.
“ 그렇지요, 다녀오시면 놀랍도록 나아지시지요. ”
“ 귀비랑 종일 붙어 있으니 그런 것 아니겠소. ”
청이 능글맞게 웃으며 화연의 손을 쥐었다.
화기를 다루는 주작인 화연의 손은 그와 반대로 차가웠다.
청이 잡은 손을 애틋하게 바라보니 화연이 고개를 숙였다.
“ 못난 손 매번 뭐가 예쁘다고 보십니까. ”
“ 못나긴. 이렇게 섬섬옥수가 어디 있다고 그렇게 말하시오. ”
“ 이렇게 상흔이 많은 여인의 손이 아리따워 보이시다니, 중증이시옵니다. 이러니 시장 아낙들이 황제를 홀렸다 제 욕을 해대도 제가 터럭만큼도 화가 나지 않는 것 아니겠습니까. ”
“ 소문은 괘념치 말라니까..... ”
“ 하나도 괘념치 않습니다. ”
“ 거짓말도 참 못하시오. ”
청이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눈을 감았다. 여전히 화연의 손을 꼭 잡은 채였다.
“ 행궁에 들러, 온천에 웬 종일 있을 것이오. ”
“ 그러세요. ”
“ 귀비 손을 꼭 붙잡고, 사과꽃을 보며 무릉도원이 여기구나- 할 것이오. ”
“ 그 또한 그러세요. ”
“ 상상만 해도 도원경이 그 곳인들 싶소. ”
청이 달콤한 상상을 하며 단잠에 빠지려는 순간이었다.
화연이 청의 손에서 손을 빼냈다. 청 또한 경계 태세를 갖춘 건 순간이었다.
“ 무슨 일이냐!!! ”
화연이 마차의 문을 열었다. 불길함을 감지한 화연의 주작이 순식간에 하늘을 날아 굉음을 질렀다.
불을 내뿜는 주작의 노기를 향해, 새까맣게 도적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 아악- 어, 엄마 저게 뭐야?! ”
“ 폐하!!! 폐하!! 폐하를 엄호하라!!! ”
자신을 둘러싸는 황군들 틈에서 청이 어린아이의 목소리를 들었다.
몸이 피곤하여 몰랐는데, 도적떼가 덮친 지금이 하필이면 산 속 군락의 초입이었다.
“ 꺄아아악-!!! ”
화연의 주작을 비롯해, 황군들의 청룡이 도적떼를 덮쳤다.
순간이었다.
“ ............................... 폐하를 엄호하라, 폐하를!!! ”
화연이 소리쳤다.
도적들에게서 거대한 화기가 발현되었다.
이것은 필시, 주작이었다.
“ 엄마, 엄마!!! ”
청이 아이의 소리에 돌아보았다. 도적떼이 일으킨 불길에 한 아이의 어미가 먹히기 직전이었다.
도적떼에 대항해 청을 감싸던 청의 청룡이 순식간에 날아 그 어미를 보호했다.
화기를 뚫고 푸른 빛깔이 치솟았다.
“ 대장군!!! ”
도적떼의 틈에서 주작 여러 마리가 화연을 덮쳤다.
대장군의 칭호를 얻은 그녀의 주작은 쉽게 당하지 않았다.
정신 없이 싸우는 화연의 머리 장신구는 바닥에 구른지 오래였다.
붉은 비단에 수놓은 금실이 공기 중에서 펄럭였다.
휘두르는 칼에 맞춰 성난 붉은 봉황이 나무가 우거진 수풀에서 분노해 악을 질렀다.
“ 한 놈도 살려두지 말고, 모조리 포위하라!! ”
화연이 소리쳤다. 황군들이 화연의 목소리에 기개를 높였다.
그 후로 칼과 활의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사방을 쑤시고 다니는 청룡과 주작이 뒤엉겨 흑빛을 냈다.
청의 청룡이 결계를 치며 군락을 보호했다.
나무가 타들어가는 연기 속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 역도들을 모조리 잡아라!! ”
화연의 고함에 맞춰 무관들이 칼춤을 췄다.
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복면의 역도들 또한 만만치 않았다.
무관 하나가 역도와 칼을 맞대 악을 쓰며 힘을 겨루면서도 화연에게 소리쳤다.
“ 대장군!! 폐하와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세요!! ”
귀비인 화연의 신분은 칼과 활이 있는 곳에서는 유효하지 않았다.
오직 피바람 속에서는 청국 제일의 활인 대장군 윤화연일 뿐이었다.
화연을 노리는 칼과 활이 사방에서 쏟아졌다.
화연의 붉은 봉황이 숲을 모두 태울 기세로 불을 뿜었다.
“ 대장군!!! ”
그 때, 순간이었다.
천공을 가르고 활 하나가 날아오며 큰 봉황의 날개를 펼쳤다.
날카로운 화살촉이 검은 독을 뿜었다.
“ 앗! ”
그것은, 정말 순간이었다.
검은 봉황이 도적들의 붉은 봉황과 단합하여 순식간에 화연을 덮쳤다.
그 정도로 대장군인 화연에게 치명상을 줄 수는 없었지만, 순식간에 화연의 주작에게 작은 틈이 생겼다.
“ 대장군!!! ”
그리고 활 하나가 연기를 가르고 그 틈으로 날아왔다.
“ 대장군!!!!!!!!!!!!!!!!!!!!! ”
화연이 활을 막으려 하였으나, 이미 늦었다.
화연이 그 찰나의 순간, 속으로 화살을 막지 못했음을 한탄하며 화살이 꽂힐 것을 예견했다.
화연의 주작이 그녀를 구하려 굉음을 내뿜으며 달려왔지만, 이미 늦었다.
“ 아.......................? ”
하지만 그 찰나의 순간 보인 건, 활이 꽂힌 자신이 아니었다.
“ 폐하..............? ”
화연이 놀라 입을 벙끗 거렸다.
마을을 지키던 청룡을 그대로 둔 채, 청이 전장터에 뛰어 들었다.
화연에게 날아 오는 화살보다 빠르게 목숨을 갉아 먹으며 달렸다.
감히 황제는 그러해서는 안 됐다.
하지만,
“ 폐하!!!!!!!!!!!!!!!!!!!!! ”
연모하는 정인을 전장터에 둔 사내로, 청은 화연을 대신해 활을 맞았다.
화연의 주작이 포효하며 화연과 청을 감쌌다.
빗발치는 화살에서 주작이 그들을 지켰다.
피눈물 흘리는 주작을 바라보며 청의 청룡 또한 굉음을 질렀다.
여전히 마을을 지키느라 제 주인에게 달려오지 못해 원통함을 삼켰다.
황제가 역도들의 활에 맞아 쓰러졌다.
청 황제 7년, 새로운 국면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