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니 내 주작은 불길하다 하지 않았습니까!! ”
“ 태황태후마마 고정하소서...! ”
“ 역도들이 주작의 떼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귀비와 그 족속이 같이 않습니까? 황후, 내가 어떻게 지금 고정을 하겠어요!! ”
청의 어머니, 태황태후 민씨가 청의 두 여인, 황후와 귀비의 앞에서 소리를 질렀다.
앞에 화연이 있음에도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
“ 그래서 내 무어라 했습니까!! 폐하께서 귀비를 맞이한다고 하실 때, 내 귀비에게 무어라 말했었는지 기억은 하십니까!! ”
민씨가 화연을 보며 힐난했다. 화연은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 도망가라고 했지요. 멀리!! 멀리 도망가라 했지요, 내가!! ”
“ ................ 송구하옵니다. ”
“ 어떻게 폐하를 사지로 몰아갈 수가 있습니까!! ”
“ 마마, 고정하소서, 귀비, 귀비는 천청궁으로 가 폐하를 뫼시고 있으세요... ”
“ 황후! ”
“ 그래도, 그래도 폐하께는 귀비가 필요합니다, 마마. 귀비의 잘 못이 아니지 않습니까... ”
민씨를 말리며 황후 소진이 화연에게 눈짓했다.
하지만 화연이 그 눈짓에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 귀비, 어서요! ”
“ 허어...... 황후, 황후도 그러는 것 아니오! 어찌 주작의 여인을 매번 감싸실 수 있단 말입니까! ”
화연이 버티고 앉아있자, 소진이 경을 쳤다.
“ 귀비, 제 명을 거역해 저를 욕 보이실 심산이십니까! 어서 폐하를 뫼시러 가세요! ”
그제야 화연이 일어나 민씨와 소진에게 극진히 예를 갖추어 절을 한 후, 자리를 비웠다.
나가는 귀비를 보는 황후의 눈빛이 애틋했다.
화연이 태궁에서 나와, 궁을 돌아보았다. 그 눈길에 쓸쓸함이 감돌았다.
“ 귀비마마, 괜찮으십니까.... ”
무수리 채연이 화연 옆에 붙었다.
긴 머리를 쪽진 모습이 그녀를 더 어려 보이게 했다.
“ 괜찮다. ”
“ 천청궁으로 뫼실까요...? ”
“ 그래. ”
화연의 길을 잡는 채연의 눈빛은 충성스러운 신하의 그것이었다.
화연이 채연과 나란히 서서 걸었다.
“ 나쁜 생각 마시어요. ”
“ 무슨 생각. ”
“ 뭐, 마마 때문에 폐하께서 화를 입으셨다... 하는 류의 생각이요. ”
채연이 말했다. 화연은 그 말에 대답이 없었다.
“ 내 탓이 맞다. ”
“ 마마. ”
“ 그 분의 정인으로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알지 않느냐. ”
어느새 화연을 따르는 모두의 발걸음이 해연지를 지나고 있었다.
황제와 귀비가 좋아하던 물가에는, 평소처럼 원앙 부부가 사이좋게 떠다녔다.
그 모습을 보던 화연이 걸음을 멈추었다.
“ 해국의 대장군으로서, 그 분을 지키지 못 했다. ”
“ ............... 마마. ”
“ 무인으로 이보다 큰 죄가 어디 있단 말이냐. ”
“ ..................... ”
“ 그 분이 깨어나 나를 찾을 것 같기에 내 차마 죽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 .................. 마마, 그런 소리 마시어요. ”
“ 그렇지 않았으면 진즉에 내 손으로 이 목숨을 ........ 저버렸겠지. ”
“ 마마........... ”
화연의 말에 채연이 대신 울음을 삼켰다.
화연은 담담한 얼굴로 원앙 부부를 바라보았다.
‘ 언젠가, 내 이 무거운 자리를 떠나 자유로워 질 수 있다면, 귀비. ’
‘ 저 원앙 부부가 하루종일 물줄기를 따라 가며 나란히 행복에 겨워하는 것처럼, ’
‘ 저리 삽시다. ’
화연은 청의 목소리를 기억했다.
낮은 저음으로 연정을 고백할 때, 그 분은 얼마나 큰 진심을 보여주셨던가.
화연이 울지 않는 낯빛을 한 채 속으로 통곡했다.
‘ 귀비는 괴로울 때 좀 울기라도 하시오. ’
‘ ....... 괜찮습니다. ’
‘ 어허, 귀비. ’
또 다시 떠오르는 다른 목소리.
슬퍼도 울지 못하는 화연을 애틋하게 청이 바라봤던 기억.
손을 잡아오는 온기는 뜨거웠다.
믿음직한 목소리로 청은 말했었다.
‘ 내가 괜히 천자인 줄 아시오. ’
‘ 또 무슨 말씀을 하시려 그러십니까. ’
진득이 화연을 본 채 청익 뜸을 들였다.
능글맞게 대화의 여백을 조정했지만, 귀는 새빨게져 있었다.
‘ 다- 들립니다, 나는. ’
‘ 무엇이요. ’
‘ 그대가 무슨 생각을 하든, 나는 다- 들린다 이 말이오. ’
‘ .................... 참, 폐하도 농이 지나치십니다. ’
‘ 진정이오? ’
‘ 제가 살면서 그런 이야기는 또 처음 듣습니다. ’
‘ 하하- 원래 너무 사랑하면 다- 들리는 법이 아니겠소! ’
기억을 더듬으며 화연이 마지막으로 원앙 부부를 바라보았다.
화연이 푸른 하늘로 시선을 옮겼다. 시원한 하늘의 빛깔에 청룡의 색이 겹쳤다.
화연이 속으로 닿지 못할, 하지만 간절한 연서를 썼다.
- 폐하, 들리십니까. 제 말이면 무엇이든 들린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화연이 결국 고개를 떨어뜨렸다. 울지 못하는 얼굴이 애처럽게 일그러졌다.
오똑한 콧날 밑에 자리한 붉은 입술이 슬픔을 물었다.
- 제발, 제발 일어나세요.
화연의 길게 드리운 검은 속눈썹이 눈물을 가리며 떨렸다.
- 제발, 제발 저를 이렇게 혼자 두지 마시옵소서.
그렇게 닿지 못할 연서가 하늘에 흩날렸다.
다시 하늘을 바라보는 화연의 눈꼬리만 애절할 뿐이었다.
* * *
“ 귀비 오셨습니까. ”
태황태후의 침전에 화연이 들었다.
화연을 대하는 민씨의 어투가 며칠 전과 사뭇 달랐다.
화연이 공손히 절을 올리고 자리에 앉았다.
“ ................ 내가 며칠 전에 또 귀비에게 큰 누를 끼쳤다고 들었어요. ”
“ 아니옵니다, 마마. ”
민씨가 시름에 잠긴 얼굴로 말을 건넸다. 며칠 전과 전혀 다른 사람 같은 말이었다.
“ 미안하고, 또 미안합니다. ”
“ 아니옵니다, 정말 아니옵니다, 마마... ”
민씨가 자리에서 일어나 화연의 곁에 앉았다.
윗옷 아래 감추어진 화연의 손을 끌어 민씨가 잡았다.
“ 내 늙어 망령이 들어 그런 게지요. ”
“ 마마, 이렇게 말씀하시면 소첩, 차마 황망하여 고개를 들 수가 없사옵니다. ”
“ 얼마나 가슴이 아팠습니까... 지금 누구보다 힘든 것이 귀비일진데... 내 정말 그래서는 안 됐는데... ”
민씨가 울음을 삼키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 미안합니다. 귀비, 정말 미안합니다. 내 정말 이제 귀비를 귀하게 여기는데, 그 때, 폐하와 처음 혼인하실 때 미워했던 그 이는 아직도 내 속에서 귀비를 미워하나봅니다... ”
“ 마마, 마마께서 이리 말씀하시면 정말 소첩,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부디 미안하다 하시는 말씀을 거두어주세요... ”
“ 늙은이가 망령이 들어 자꾸 오락가락 합니다... 이러다 내 영영 그 망령에게 잡아 먹히면 어쩌나 걱정될 뿐입니다... 미안합니다, 귀비. ”
화연이 민씨의 손을 꼭 잡았다.
“ 내 망령이 무어라 귀비를 욕 보여도, 늙은이 망령 들어 그렇구나, 하고 넘기세요. 내가 아무리 무어라 귀비를 힘들 게 해도, 나는 압니다. 귀비는 우리 폐하께 꼭 필요한 사람이에요. 이 늙은이가 귀비가 처음 황궁에 들어오던 날처럼 귀비를 미워하더라도, 사라지라, 사라지라 저주를 퍼부어도, 귀비는 폐하를 위해 그 옆에 꼭 붙어 계셔야 합니다. 부탁입니다. ”
“ 망극하옵니다.................. ”
민씨의 진심 어린 말에 화연이 애틋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함께 폐하께 가십시다. 귀비가 폐하의 손을 잡고 있어야, 폐하도 얼른 이 곳으로 돌아오시고 싶지 않겠습니까. ”
“ 망극하옵니다....... ”
민씨가 화연에게 손을 건넸다. 함께 일어나 천청궁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정다웠다.
* * *
화연이 여전히 의식이 없는 청의 손을 잡은 채 곁에 있었다.
태황태후 민씨와 황후 소진의 권유였다. 민씨와 소진은 정답게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벌써 일주일을 넘기는 황제의 부재였다.
“ 얼른 깨어나셔야 할 진데... ”
“ 너무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우리 폐하 강령하실 것입니다. ”
민씨의 걱정에 소진이 대답했다.
아무리 소진에게서 소생한 어린 황자가 있다 해도, 황제의 공백은 치명적이었다.
이것을 황후와 소진이 모를 리 없었다.
“ 이때다 싶어 대신들 사이에서 많은 말들이 오간다 하옵니다. ”
“ 다 헛말들이에요. ”
“ 그렇겠지요... ”
“ 그럼요, 황후. 이럴 때일수록 나라의 안주인인 황후께서 강건하셔야 합니다. ”
소진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귀비를 공격하는 대신들 중 소진의 아버지인 영의정이 속해 있는 건 모두가 아는 일이었다.
“ 폐하께서 깨어나시면............. ”
“ ................ 폐하? ”
민씨가 말을 이으려는데, 말없이 청의 손을 잡고 있던 화연이 입을 벙긋거렸다.
본체의 힘이 약해져 소환되지 못하고 사라졌던 청의 청룡이 청의 가슴팍에서 단숨에 솟아 오른 건, 화연의 말과 동시였다.
“ .............. 윽........ ”
“ 폐하...! ”
민씨와 소진이 곁으로 달려오려다 멈추었다.
세상을 떠난 지 한참된 청룡이 세상으로 다시 소환되었다.
돌아온 기백, 그를 보고 반가워야 했으나 모두가 일순간 충격에 빠졌다.
청룡이 화연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청과 화연이 맞잡은 손의 바로 위에 섰다.
청룡은 명백한 경계를 보이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눈을 뜬 청이 화연을 바라보았다.
그가 아무말도 없더니 화연과 잡은 손을 내려다 보았다.
“ ............................ ”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그가 화연을 다시 보았다.
그리고 쭉 사방을 돌아보다 민씨를 보고 말했다.
“ ..................... 황후마마.................. ”
명백히 민씨를 보고 청이 한 말이었다.
그 말의 의미를 모두 단박에 알아 차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 ............................. ”
다시 청의 눈이 화연을 향하고, 그의 입이 열렸다.
그제야 모두가 사건을 헤아릴 수 있었다.
“ ................... 여인은, ”
그 순간 화연이 두 귀를 의심했다.
“ ................. 누구시오. ”
청답게 사람을 배려하는 물음이었다. 허나 화연은 느꼈다.
잡고 있을 때 따뜻하던 청의 손이, 차갑게 식어버린 것을.
누구냐 하문하는 제 지아비는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화연이 그 때 깨달았다.
화연이 놀라, 잡은 손을 놓쳐버렸다.
당황하는 화연을 신경 쓰지 못한 채, 민씨와 소진은 어의를 독촉할 뿐이었다.
그것이, 사랑하던 지아비를 잃은 화연의 이야기, 그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