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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연의 기억
작가 : 한정화
작품등록일 : 2017.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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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돌아갈 수 없는 기억
작성일 : 17-07-31     조회 : 263     추천 : 0     분량 : 5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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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말 들었어? 폐하께서 오늘 아침 정무를 보시고 또 귀비마마 궁에 가서 점심을 함께 하셨다는 거? ”

 

 “ 와, 하긴 기억 잃었어도 그 미색을 다시 보았으니 사내라면 마음이 동하지 않았겠어? ”

 

 “ 거기에 다시 정까지 나누었으니 머리는 기억 못해도 몸이 기억하고 있겠지. 킥킥. ”

 

 아무리 황궁이어도 말이 퍼지는 속도는 빨랐다.

 

 모두의 이목이 집중됐던 황제와 귀비의 합방이었으니 놀랍도록 소문이 무성했다.

 

 “ 귀비마마께서 파란 노리개를 하셨다며. 거기서 이미 기억이고 뭐고 끝난 거 아니야? ”

 

 “ 신나 있던 황후궁 나인들만 죽을 상이지 지금. ”

 

 “ 권력은 진짜 알다가도 모른다니까. ”

 

 “ 왜 몰라- 미색은 거짓말을 안 하는데. ”

 

 “ 키키킥. 하긴 그건 그래~ ”

 

 하지만 소문의 내용은 모두 같았다.

 

 황제가 귀비의 방에서 한참을 나오시지 않더라, 회포를 푸는 밤이 그렇게 뜨거웠다더라 류의 이야기였다.

 

 통속적인 얘기들이었지만 동시에 귀비의 위신을 높게 하는 말들이었다.

 

 “ 오랜만에 귀비마마 궁 나인들 얼굴 쫙- 폈겠네! ”

 

 하지만 언제나, 소문과 진실은 다른 법이었다.

 

 

 

 * * *

 

 

 

 “ ....................... 저를 파하여 주소서. ”

 

 “ 귀비! ”

 

 화연의 말에 청이 언성을 높였다. 청의 노기에도 화연은 흔들림이 없었다.

 

 한동안 정적이 맴돌았다.

 

 청이 화연에게 푸른 노리개를 받았다가 다시 다과 옆에 두었다.

 

 “ 후............. ”

 

 화연을 응시하던 청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말했다.

 

 “ ................ 내가 나의 사초를 보게 된 걸, 소식을 들어 알 것이오. ”

 

 화연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 참 기가 막힌 노릇이지. 살아 있는 황제가, 기억이 없어서 자신의 기록을 보는 지경에 이르다니 말이오. ”

 

 “ ............................................ ”

 

 “ 그런데 참, 신기하더구려. 그래 솔직하게 기가 막혔소. ”

 

 “ ................................... ”

 

 “ 모든 순간에 그대가 없는 때가 없더구려. 정사를 돌볼 때마저 말이오. ”

 

 화연이 다시 술을 채운 잔을 들어 청이 마셨다.

 

 비운 잔을 내려놓자, 화연이 다시 잔을 채웠다.

 

 곧게 뻗은 손이 청의 이어진 한 마디에 움찔 거렸다.

 

 “ 내가, 그대를 많이 연모하였다 들었소, .......... 그리고 보았소. ”

 

 “ ............... 폐하. ”

 

 “ 사초에 따르면, 내 그대에게 한 눈에 마음을 빼앗겼다- 하더구려. ”

 

 화연이 가득 채운 잔을 잡았다. 그리고 청이 말릴 새도 없이 단숨에 잔을 비웠다.

 

 “ ............... 귀비. ”

 

 “ .............. 폐하, 각득기소(各得其所)라는 말을 아실 것이옵니다. ”

 

 화연이 결연한 얼굴로 청에게 말했다.

 

 “ 모든 것은 그 자리가 있다, 분수와 이치에 맞게 그 자리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말이지요. ”

 

 “ ...................... ”

 

 “ 애초에 이 자리는 제 자리가 아니었다고, 저는 그리 생각하고 있습니다. ”

 

 “ ....................... 귀비. ”

 

 청의 목소리에 만류가 담겨 있었다.

 

 난색을 표하는 청에게 화연이 다시 말했다.

 

 “ 이제 이 자리가 더는 맞지 않는 이유는 폐하, 귀비의 자리는 폐하의 총애를 받는 자리옵니다. ”

 

 “ 내 어찌 그리도 연모했다 모든 이들이 말하는 귀비와의 연정을 단숨에 끊겠소. ”

 

 “ ............... 다시 지속될 수 없는 연정이기에 이리 말씀 드리는 것이옵니다. ”

 

 “ 어찌 그리만 생각하오. ”

 

 청으로서 말할 수 있는 최대한의 호의였다.

 

 청의 모든 말이 자신을 배려하는 말임을 화연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모질어 져야만 했다.

 

 “ 그럴 수 없을 것입니다. ”

 

 “ 어찌 단정을 하오. ”

 

 “ 폐하께서 먼저 말씀해주시지 않았습니까. ”

 

 “ 무엇을. ”

 

 청이 하문하면서 동시에 깨달은 듯 얼굴을 굳혔다.

 

 청의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으며 귀비가 말했다.

 

 “ 사초에 기록되었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해국 백성들도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

 

 “ ................ 귀비. ”

 

 “ 황공하옵게도, 폐하께서는 제게 첫 눈에 첫 정을 주셨습니다. ”

 

 “ .............................. ”

 

 “ 폐하. ”

 

 “ ...................... ”

 

 “ 그것이 제가 이 자리에 더는 머물 수 없는 이유입니다. ”

 

 화연이 다과 옆에 자리한 푸른 노리개를 다시 집었다.

 

 애틋한 손길이 결심의 깊이를 말해주었다.

 

 “ 지금은 아니지 않습니까. ”

 

 “ ..................... 귀비. ”

 

 “ 여인의 투기라고 생각해주십시오. 저는 예전의 저와 폐하의 연정을 상대로 투기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

 

 “ ............................. ”

 

 “ 소첩이 모자라서 그렇습니다. ”

 

 “ ........................... ”

 

 “ 더 제가 비참해지기 전에, 흉해지기 전에 폐하. ”

 

 화연이 반쯤 일어나 자세를 고치더니, 두 손을 모아 청에게 큰 절을 올렸다.

 

 푸른 노리개를 잡아 청에게 건넸다.

 

 “ 폐위를, ”

 

 “ .............................. ”

 

 “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

 

 “ .............................. ”

 

 “ 간청 드리옵니다. ”

 

 청의 다음 말이 떨어지기 전까지 화연의 자세에는 변함이 없었다.

 

 잘 빗어 넘긴 화연의 머리에서 움직임에 따라 흔들린 떨잠이 애처로웠다.

 

 “ 불허하오. ”

 

 청이 한참이 말이 없다 말했다.

 

 “ 폐하. ”

 

 화연이 몸을 일으켜 허망하게 청을 바라봤다. 청이 그런 화연의 시선에도 모질게 답했다.

 

 “ 내 기억은 귀비도 알다시피 황태자 시절, 열 일곱까지가 전부이오. ”

 

 “ .......................... ”

 

 “ 귀비를 만난 것도, 귀비가 대장군인 것도, 그래 그 기억 무엇도 내게 없소. 그런데도 내가 귀비를 이리 보낼 수가 없는 까닭은, ”

 

 “ ....................................... ”

 

 “ 적어도 나는 그 시절의 나를 기억하기 때문이오. ”

 

 화연이 고개를 숙였다.

 

 “ 나는, 황태자 시절, 섣불리 행동하는 군주가 되기를 두려워했소. ”

 

 청의 목소리는 진심이었다.

 

 “ 선황이신 명 황제는 이름이 난 성군이었고, 그 대를 이을 적통자는 나 혼자뿐이었지. 그래서, 그래서 선황을 따라 성군이 되야만 한다는 소망이 늘 마음에 자리 잡고 있었소. ”

 

 “ ............................. ”

 

 “ 그런 내가, 귀비. ”

 

 “ .............................. ”

 

 “ 귀비와의 일들에 참 많은 노력을 쏟은 것을 사초에서 보았소. ”

 

 “ ................................... ”

 

 “ 그것들이 무엇이었는지, 나는 찾아야만 하오. 내 기억의 조각에 너무 많은 것이 귀비와 연관이 되어 있소. 내, 단순히 연정으로 움직이진 않았을 것이오. 그 이유를 찾아야 앞으로 정무에도 탈이 없을 것이니, ”

 

 “ ............................ ”

 

 “ ................................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 주시오. ”

 

 청이 푸른 노리개를 쥔 화연을 애틋하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어진 화연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 아니요. ”

 

 “ 귀비. ”

 

 “ 그런 이유라면 더더욱 제가 이 자리에 있으면 아니 됩니다. ”

 

 “ ................... 무슨 뜻이오. ”

 

 단호한 화연의 목소리에 청이 물었다. 화연이 청을 보며 대답했다.

 

 “ 소첩은 폐하의 연정이, 늘 두려웠습니다. 그 은혜가 너무 커서, 소첩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

 

 “ .......................... ”

 

 “ 폐하는 많은 일들을, 저 때문에 행하셨습니다. 심지어 옥체를 던지며 저를 구하시기까지 했습니다. 이 모든 일의 심각성을 폐하께서도 더 잘 아실 것이옵니다. ”

 

 “ ............................. ”

 

 “ 부디, 해드린 것이 없는 부족한 정인으로서의 간청을, 해국의 무인으로서의 직언을, ”

 

 “ ................................. ”

 

 “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

 

 화연이 다시 한 번 노리개를 내밀었다. 청이 노리개를 한참을 보더니 그것을 받았다.

 

 “ 가만히 있으시오. 황명이니. ”

 

 그렇게 청이 선전포고를 하고는 굵은 손마디로 화연의 붉은 비단을 쥐었다.

 

 최대한 몸에 손을 대지 않으려 노력하며 손을 놀렸다.

 

 주인을 떠났던 노리개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붉은 비단포를 더 빛나게 해줄 뿐이었다.

 

 “ ........................... 폐하. ”

 

 “ 우선 눈을 좀 붙이는 게 좋겠소. 내 오늘은 여기서 나갈 생각이 없으니. 더 할 말이 있더라도 포기하시오. ”

 

 화연의 말을 끊는 마지막 말이었다.

 

 일방적인 통보였음에도 청은 화연의 잠자리를 직접 살폈다.

 

 “ 그리고, 떠도는 이야기들, 신경 쓰지 마시오. ”

 

 끝까지 정성스런 배려였다. 청이 먼저 불편한 차림을 정리했다.

 

 옷가지는 신경 쓰이더라도 그대로 입었다.

 

 “ 가만히 있으시오. ”

 

 그리고 귀비의 머리에 불편하게 자리한 장신구를 하나 하나 해방시켜 주었다.

 

 마지막으로 곱게 꽂은 비녀가 사라지자, 검은 머리카락이 붉은 비단결 위로 촤르륵 흩어졌다.

 

 미색은 더욱 짙어졌다.

 

 “ 아마 옷을 벗는 건, 오히려 신경이 쓰이는 일일 것이니 그냥 이대로 잠을 청하십시다. ”

 

 청이 그렇게 말하며 먼저 자리에 누웠다. 빈 옆자리를 가리키며 화연을 불렀다.

 

 절대 황제가 뜻을 거둘 일이 없다는 걸 깨달은 화연은 그저 앉은 채 자리를 지켰다.

 

 명백한 거절의 표시였다.

 

 “ .................. 참으로 강한 여인이구려. ”

 

 청이 그렇게 말하며 더는 화연에게 말을 하지 않았다.

 

 “ 내 함께 뜬 눈으로 밤을 지낸다 겁박을 해도, 아마 그대는 여기 눞지 않겠지. ”

 

 화연은 말이 없었다.

 

 청이 천장을 바라보며 한참 있다 자리에 일어나 앉았다.

 

 “ ...................................... 그래, 한 번 이대로 고요한 밤을 함께 보내보자꾸려. ”

 

 그렇게 뜬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하룻밤을 보낸 것이, 이야기의 진실이었다.

 

 뜨거운 것과는 거리가 먼, 서로에게 상처를 내는 이야기만 가득한 밤이었다.

 

 점심 또한 마찬가지였다.

 

 폐위를 바라는 화연의 간청과는 다르게, 귀비의 지위가 다시 상승하고 있음은 역설적인 이야기였다.

 

 

 

 * * *

 

 

 

 “ 하, 정말 독한 여인이더구나. ”

 

 “ 괜히 대장군을 했겠습니까. ”

 

 점심을 귀비와 함께 하고 천청궁으로 돌아 온 청이 말했다.

 

 책사 태진이 청의 말에 대답했다.

 

 화연에게 보였던 청의 엄한 얼굴이 한 꺼풀 사라졌다.

 

 “ 무섭도록 진정이었어. ”

 

 “ 무엇이 말입니까. ”

 

 “ 다 알면서 모르는 척이냐. ”

 

 청이 다시 자신의 사초를 집어 들었다.

 

 “ 연정, 충심. 모두가 진정이었다. 누가 황제가 꼭두새벽을 뜬 눈으로 함께 하도록 한단 말이냐. 목이 날아가고 싶지 않으면 못 할 짓이지. ”

 

 “ 참 본심을 재단하는 방식이 특이하시옵니다. ”

 

 태진의 말에 청이 눈을 흘겼다. 그 눈빛을 바라보던 태진이 말했다.

 

 “ 소신이 폐하께서 귀비마마와 함께하는 밤에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명을 내리시지 않았습니까. 사초에도 없고, 소신도 알지 못하는 기억의 이야기를 더 해줄 인물을 구하라는 하명 말입니다. ”

 

 “ 그래. 청룡이 모든 것을 알고 있겠지만, 이 아이는 말을 할 줄 모르니. ”

 

 보이지 않는 청룡을 아껴주듯, 청이 용포 아래 왼족 가슴에 손을 올렸다.

 

 “ 무엇이냐. ”

 

 청이 물었다.

 

 “ 대신 폐하께서 연기를 잘- 하셔야 하옵니다. ”

 

 “ .................... 어떤 비책이기에 그리 웃으며 말하느냐. ”

 

 청이 불안한 얼굴로 태진을 바라봤다. 태진이 웃으며 문 너머 상궁에게 말했다.

 

 “ 도착하면 뫼시거라. ”

 

 그 말이 떨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궁 안에 도도도-, 경쾌한 걸음 소리가 울렸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빨라지며 걸음소리가 마지막 문 코 앞에 이르렀다.

 

 마지막 문이 열리고, 문이 완전히 열리기도 전에 틈을 비집고 나타난 어린 몸이 있었다.

 

 “ 아바마마아아아! ”

 

 그대로 청을 끌어안으며 품에 등장한, 황자 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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