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 톡-
모과차에 떨어지는 화연의 눈물방울 소리가 다른 기억을 불렀다.
청과 화연의 첫 만남이었다.
퐁- 퐁-
넓은 강에, 17살의 어린 얼굴을 한 청이 계속 돌을 던졌다.
폼을 보아하니, 필시 물수제비를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 아, 이거 아이들은 잘 하던데 어찌 나는 안 되는 것이냐? ”
“ 조금 더 판판한 돌을 골라보십시오. 그건 너무 둥그러워요. ”
청의 뒤에서 태진이 첨언했다. 둘 다 양반의 복색을 하고 있었다.
“ 세상만사 쉬운 일이 하나도 없구나. ”
청이 툴툴대며 돌을 골랐다.
비싼 비단이 몇 번이고 바닥에 닿았다. 하지만 이를 괘념치 않았다.
그쯤이면 정말 성공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 이 돌은 어떠냐. ”
“ 그 돌로 실패하신다면 도구 탓은 못 하실 듯 합니다. ”
“ 그렇지? 이거 괜찮지! ”
오랜 시간이 걸려 잡은 돌을 강가에 가져가며 청이 함박웃음을 했다.
아까 시무룩했던 이는 어디가고, 세상을 다 품을 듯 한 기백을 보였다.
“ 자세를 바로하시고, 힘을 잘 주셔서..... ”
“ 자세가 맞느냐? ”
“ 맞습니다. ”
“ 던진다.........! ”
청의 자세를 잡으며 돌을 휘두르려는데, 어디선가 다급한 발걸음 소리와 목소리가 들렸다.
“ 멈추세요!!! 던지시면 안됩니다! ”
다가오는 걸음에 청의 뒤에 위치하던 태진이 경계했다.
뛰어 온 거리가 상당했는데도 고른 숨을 뱉는 여인에게 태진이 물었다.
“ 무슨 일이오. ”
태진이 여인에게 물었다.
경계 하며 마주한 얼굴은 세상을 홀릴 미색이었다.
하나로 동여 맨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흔들리는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 어찌 그러시는지.... ”
태진이 여인에게 이유를 묻는데, 잡고 있던 돌을 버리고 청이 말했다.
“ 부끄럽구나. ”
무슨 일인가 싶어, 태진이 주위를 살폈다.
무언가를 발견한 듯, 아-하고 탄성을 터뜨렸다.
저 멀리 가고 있는 원앙 한 쌍의 모습이 보였다.
방금 전까지 청이 돌을 던지던 자리에 있었음이 분명한 거리였다.
돌을 던졌다면 분명 저들이 피해를 입었으리라.
“ 미안하구나. 내 잘 못했다. ”
“ .............. ”
화연이 말없이 뒤를 돌았다. 원앙을 구했으므로 맡은 바 일을 끝냈다는 듯 망설임 없는 몸짓이었다.
그대로 곧장 청과 태진에게서 멀어지는데, 그 때였다.
“ 저, 저기! ”
청이 화연의 뒷모습을 향해 소리쳤다.
부름에도 화연은 대답 없이 갈 길을 갔다.
멍하니 화연의 걸음을 보던 청이 화연을 따라갔다.
“ 저, 저기! ”
청이 뛰다시피 하여 겨우 거리를 좁혔다.
화연의 팔을 잡아 세우려는데, 가까이 다가오는 청의 손을 쳐내는 화연의 손길이 더 빨랐다.
“ ...................... 혹시, 낭자................. ”
짝- 하는 소리가 날 정도로 강한 뿌리침이었다.
내쳐진 건 청이었는데, 오히려 화연의 손이 덜덜 떨었다.
“ 설마- ”
화연의 하얀 얼굴이 순식간에 질렸다.
청이 그런 화연의 변화에 당황하는데, 순간이었다.
아아악--------
어디선가 절규에 가까운 울음소리가 났다. 찢어지는 음성이 다급함을 표출했다.
“ !!! ”
청과 화연의 얼굴이 동시에 소리의 근원지를 향했다.
“ 어...! ”
청이 당황한 소리를 내며 상황을 판단한 시간보다 화연의 움직임이 빨랐다.
아아악---!
원앙이었다. 절규가 날카로워졌고, 화연은 서둘러 소리를 향했다.
“ 조심하십시오, 낭자! 그대로 가면....!! ”
청이 화연의 뒤를 따랐다.
둘을 지켜보다 놀란 태진까지 합세한 건 덤이었다.
“ 마마, 아니- 도련님! 가시면 아니 되옵니다!!! ”
태진이 애타게 만류하는데 청은 들리지 않는 듯 했다.
화연이 날세게 향하는 곳 끝에는 방금 지나갔던 원앙 중 하나가 커다란 돌 두 개 사이에 끼어 절규하고 있었다.
그 주위를 애타게 맴도는 다른 원앙도 슬픈 소리로 울었다.
“ 조심하시오, 조심! ”
“ 따라오지 마시옵소서! ”
급박한 상황에서 청은 화연을 염려했다.
강변의 언덕은 가팔랐고, 원앙이 낀 돌은 인공적으로 만든 돌다리 맨 끝에서 겨우 닿는 거리였다.
잘 못해서 빠지기라도 하면 거센 물길에 휩쓸리기 딱 좋은 곳이었다.
“ 진짜 조심하시오!! ”
화연의 뒤를 따라붙으며 청이 계속 소리쳤다.
날렵한 몸짓의 화연은 청의 걱정을 무색하게 했다.
돌다리 끝까지 빠른 속도로 건넌 화연이 몸을 날려 원앙이 낀 바위 위에 안착했다.
아아악-- 아아악---
화연이 몸부림치는 원앙의 날개를 잡았다.
화연의 손길에 원앙이 놀란 듯 사정없이 몸을 뒤틀었다.
“ 가만히, 가만히 있어!! ”
화연이 원앙을 향해 소리쳤다.
이에 아랑곳 않고 원앙은 날개짓과 부리로 매섭게 화연을 공격했다.
몸이 바위에 낀 상태라 움직임이 크지는 않았지만, 죽음을 목도한 듯 절실했다.
자신을 구해주는 이인데도 미물은 화연의 마음을 모른 채 발버둥쳤다.
“ 아윽...... ”
원앙의 부리에 화연의 소매 구석구석이 찢겨 틈이 벌어졌다.
원앙이 찢은 팔 틈 사이로 바위가 비벼져 찰과상이 생겼다.
찢겨진 다른 소매에는 원앙이 부리로 쪼아 핏빛이 맺혔다.
상처의 쓰라림에 신음을 토하면서도, 화연은 원앙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다.
“ 괜찮으시오? 내가 할 터이니...! ”
겨우 화연의 뒤를 쫓아 온 청이 말하는데, 화연이 청을 보며 경계했다.
“ 가까이 오지 마시옵소서!! ”
그렇게 말하며 원앙을 구하는 마지막 손짓을 한 순간, 원앙이 두터운 바위 틈에서 빠져나왔다.
화연의 손길로 바위 위에 올려진 원앙이 달아나려 몸을 움직였으나, 다친 몸 때문에 움직임이 불가능한 것 같았다.
“ 후.................. 어? ”
화연이 원앙을 바위 틈에서 꺼냈다는 안도의 한숨을 쉬는 순간, 당황한 소리를 냈다.
“ 어? 어!!!!!!! ”
청에게 차가움을 보였던 여인은 어디로 갔는지, 화연이 눈에 띄게 당황한 목소리를 냈다.
이상함을 눈치 챈 청이 화연의 시선을 쫓았다.
“ 아, 안 돼!! ”
넘실대는 강물에 붉은색을 띈 노리개 하나가 보였다, 잠겼다를 반복했다.
그 모습을 본 화연의 얼굴이 사색으로 물들어 갔다.
첨벙- 망설임 없는 소리가 난 건 바로 직후였다.
“ 어? 어!!! ”
청이 놀라 소리를 질렀다. 화연이 물속으로 뛰어 들었다.
돌다리는 강 중심까지 놓은 것이었다.
돌다리로 놓인 돌들은 다 그 크기가 어마무시 했다.
한마디로, 청과 화연이 선 자리는 강의 중심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수심이 낮아 보여도, 그 깊이와 물살이 엄청 나기로 소문난 강이었다.
그런데 그 강에, 화연이 뛰어 든 것이었다.
“ 도련님, 도련님!!! ”
태진이 원앙이 있는 자리에서 청을 불렀다.
그 목소리를 들은 청이 크게 대답했다.
“ 내 알아서 할 터이니 오지 말거라!!! 아무 짓도, 아무 짓도 하지 말아야 한다!!! ”
태진이 청의 목소리에 멈췄다.
모신 세월이 오래돼서일까, 태진은 청이 무슨 말을 하는 지 정확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아무 짓도 하지 말라는 건, 청룡의 힘을 쓰지 말라는 의미였다.
“ 아오, 진짜!! ”
소리치며 청 또한 강물에 뛰어들었다.
거센 물살이 몇 번이나 수압으로 머리를 눌렀다.
화연은 그런 물살에 역행해도 모자랄 판에, 떠도는 노리개를 향해 물살을 따라 가고 있었다.
“ 제발 멈추시오- 그대로 가면 큰 일이 난단 말이오!!! ”
청의 발에도 바닥이 닿지 않았다.
닿기는커녕, 무거워진 옷이 자꾸 몸을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여인 치고 크기는 했어도 자신보다 작은 화연 또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 멈추고 이리오시오, 낭자, 얼른!!!!! ”
청이 있는 힘껏 소리쳤다. 화연은 들은 척도 않은 채 더 깊은 곳으로 향했다.
“ 멈추시오, 제발!!! ”
몇 번을 그렇게 부르며 소리쳤을까, 결국 청이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 어찌 이러는 것이오!!! ”
그런데도 화연은 답이 없었다. 청이 물길을 살폈다.
물이 무서운 이유는 하나였다.
수압은 지속적으로 심장을 누른다.
숨을 조이는 물의 공포는 끝내 사람의 사고를 마비시킨다.
그 전에, 물을 떠나야 했다.
“ 낭자!!!! ”
황태자의 품위, 백성을 대하는 예 따위는 버린 지 오래였다. 청이 화연을 부르며 빠르게 수영했다.
“ 놔주십시오, 이거 놔요!!! ”
화연을 따라잡은 청이 화연을 붙잡았다.
더 앞으로 나아가려는 몸을 필사적으로 끌어안아 막았다.
품 안에서 버둥거리는 여인의 몸은 명확한 목표를 품고 있었다.
“ 아오, 가만히 좀 있으시오, 가만히 좀!!! ”
“ 놔주십시오, 놔주세요!!! ”
청의 눈에 명확히 눈앞에 물이 굽이치는 곳이 보였다.
물이 휘돌아가는 모양새가 심상치 않았다.
유속이 더 급해지는 구간임이 틀림 없었다.
“ 나도 찾아주고 싶소만, 사는 게 우선이오!!! ”
청이 그렇게 외쳤다. 급박한 상황에 절로 목소리가 크게 나왔다.
“ 꽉 잡으시오. ”
“ 제발... ”
“ 아오, 내가 꽉 잡겠소. ”
정확히 셋을 세면 저 물살에 휩쓸릴 것이 분명했다.
그 전에 빠져나가야 한다.
청이 강변과 눈 앞 물살의 거리를 재었다. 그리고 속으로 수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 찾아야 합니다, 찾아야 합니다...! ”
둘,
“ 힘이 세게 압박될 것이오. 참아하오. ”
셋.
“ 억! ”
그대로 둥실, 청과 화연의 몸을 커다란 청룡이 감쌌다.
물의 흐름을 거스르는 듯, 거대한 청룡의 본체가 두툼한 장벽을 이뤘다.
용이 승천하듯 강물에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고고한 자태를 드러낸 청룡이, 화연을 안은 청을 감쌌다.
그대로 거대한 물보라를 일으키더니, 강물에서 튀어 나왔다.
“ 후......... ”
청이 숨을 몰아쉬며 화연을 강변에 내려주었다.
몸이 자유로워지자 화연이 얼른 일어나 섰다.
차가운 물에 몸을 담구고, 수압을 거슬렀기에 화연의 몸이 성할 리 없었다.
그런데도 그 움직임은 결연해 보이도록 굳건했다.
“ ....................? ”
화연의 행동을 쫓던 청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건 청과 화연에게 다가오던 태진도 마찬가지였다.
“ 어, 어디 가는 것이오!!!! ”
다시 강물로 향하는 화연이었다. 청이 기겁을 하며 그녀를 따라갔다.
빠른 화연의 발걸음이 벌써 물가에 다시 발을 잠그고 있었다.
“ 위험하오!! 대체 어찌...! ”
청이 화연의 팔을 잡아 세웠다. 청의 손길에 순간 화연이 놀랐지만, 곧 그 손길을 뿌리치며 말했다.
차가운 손에 힘이 실렸는데, 여인의 것이라기엔 묵직함이 달랐다.
“ 놓으십시오. ”
물 속에서 이성을 잃은 모습을 했던 여인은 사라졌다.
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한 화연의 목소리가 단단했다. 하지만 맹목적인 눈빛이 제 정신은 아닌 듯 했다.
청이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자 다시 그녀가 걸음을 옮겼다.
다시, 강으로- 화연이 향했다.
“ 안 된다고 말하지 않았소!!! 지금부터 유속이 빨라질 것이 뻔한데 어찌 위험하게 이러시오! ”
청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강으로 걸음을 던져 화연 앞을 막아섰다.
팔을 벌리고 소리치는데 화연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청을 지나 더 깊은 물로 향했다.
“ 안 된다고 말하지 않았소! ”
“ 저랑 무엇이 상관 있다 이러십니까. ”
“ 어찌 백ㅅ... 아니, 사람이 죽게 생긴 꼴을 보고도 그냥 지나친단 말이오!! ”
청의 말에 화연이 청을 바라봤다.
“ 말씀은 감사하오나, 비켜주시지요. ”
“ 그럴 수 없소. ”
“ 비켜주십시오. ”
“ 그럴 수 없다 하지 않소! ”
화연과 마주하는 청의 눈빛이 강직했다. 하지만 화연은 그 시선을 무시한 채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더 깊이, 깊이 향하는 발걸음에 물길이 치마폭을 잡아 먹기 시작했다.
폭격처럼 화연을 감싸는 액체가 죽음의 그림자와 색을 같이 했다.
“ 절대 아니되오!! ”
청이 화연을 따라 붙었다. 팔을 잡아 화연의 몸을 돌려 세웠다.
“ 놓으십시오!!! ”
더 깊은 물에 가려는 화연과, 그녀를 말리는 청의 대립이었다.
청은 잡은 팔을 놓지 않았고, 화연은 그 손길을 쳐내기 바빴다.
“ 낭자가 아무리 놓으라 해도, 나는 놓을 수가 없소!! 끝까지 막을 심산이니 포기하시오!! ”
“ 놓으세요, 이거 놓으세요!! ”
흡사 몸싸움과 비슷한 움직임에 불을 붙인 건 청이었다.
“ 대체, 주작의 몸으로!!!!! ”
“ ...................... ”
“ 어찌 성난 물과 운명을 겨루려 하는 것이오!!!! ”
스스로 말을 뱉고도 청이 괴로운 얼굴을 했다.
그랬다. 화연은 주작의 여인이었다. 아까 처음 보고 손을 맞댄 순간 청은 화연의 정체를 눈치 챘다.
필사적으로 물에서 화연을 구한 것도, 지금 이렇게 그녀를 말리는 것도 같은 맥락의 이유였다.
엄청난 힘을 가진 주작이 유일하게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물 속이었다.
그런데 물에 쫄딱 젖어 힘을 잃은 채로 다시 물에 들어가겠다니, 이건 자살 행위나 다름 없었다.
“ ...... 아무것도 모르면서 함부러 말하지 마십시오. ”
화연이 힘껏 청의 손을 쳐냈다. 뒤도는 몸을 다시 청이 돌려 세웠다.
“ 정신 차리시오! 대체 어떻게 하려고.............! ”
청이 화가 나 돌아 세운 화연의 양 어깨를 잡아 흔들며 소리치는데, 순간이었다.
“ ................... 아............... ”
돌아세워진 고운 여인의 깊은 눈에서
“ .................. 놓아주십시오. ”
뜨거운 눈물 줄기 하나가, 갈 길을 잃은 채 또륵- 뺨을 타고 굴러 내렸다.
“ 이거, 놓으십시오. ”
청의 손을 뿌리치며, 화연이 다시 뒤를 돌았다. 소리 없이 눈물을 훔치는 몸짓에, 청이 할 말을 잃었다.
그런데 순간이었다.
“ 어...? 어!!!!! ”
점점 깊어지던 물에 사라지던 몸이, 스르륵, 주저 앉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청이 서둘러 그녀를 품에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