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아아- ”
점멸된 시야에는 암흑이 가득했다. 끝 모를 어둠이 시간을 과거로 되돌렸다.
빛 한 줄기 비추지 않는 검은 공간이 비극으로 드러난 건 한 순간이었다.
풀숲에 숨은 화연의 어머니와 어린 화연이 그 속에 있었다.
어린 화연은 울고 있었다.
“ 화연아, 이제부터 어미가 하는 말 꼭 따라야 한다. ”
“ 엄마아아 ”
화연의 엄마가 어린 화연과 눈높이를 맞추려 꿇어 앉은 채 말했다.
다정한 목소리는 비명보다 끔찍한 공포를 품고 있었다.
“ 이 어미가 시간을 벌 테니, 뒤도 보지 않고 산 중으로 뛰어 가야 한다. 절대로, 절대로 뒤돌아봐서도, 망설여서도 안 돼. ”
“ 엄마, 엄마아... ”
여기저기서 청룡의 울음소리가 났다.
엄마의 말에 울먹이는 화연과는 전혀 다른 감정을 품은 울음이었다. 청룡들의 소리는 쾌락을 울부짖고 있었다.
“ 아, 이 천 것들 어디 숨은 거야- ”
청룡들의 주인들이 킬킬대며 웃는 소리가 났다. 그 숫자가 한 둘이 아니었다.
열 댓 명이 넘는 사내들이 숲에서 희롱을 뱉었다.
“ 어디 있-니, 내 너희들 미색이 도성까지 소문이 났기에 친히 품어주려 여기까지 왔거늘- ”
청룡의 주인 한 명이 노래하며 말하자 동행인들이 낄낄 거리며 말을 보탰다.
“ 엄마아아.............. ”
“ 화연아, 꼭 살아야 한다. 죽을 힘을 다 해 주작의 기운을 감춰야 한다. 이 숲을 건너가면, 마을이 있어. 그곳에 가서, ‘윤유원’이라는 사람을 찾거라. ”
화연이 울음을 터뜨리는 걸 어머니가 손으로 막았다.
소리가 새나가지 않도록 틀어막은 입 틈으로 절망이 숨쉬었다.
“ 어디 있냐, 천것들아!!!!! 내 그 화기를 가슴팍에 품어 살뜰히 보살펴 줄 것이라니까!!! 키킥. ”
청룡들이 푸른 기운으로 숲을 옥죄어갔다.
겨우 숨긴 화연과 어머니의 주작의 기운이, 청룡의 기운에 반응해 꿈틀거리는 걸, 어머니가 간신히 막고 있었다.
“ 이거, 이걸 그 분께 보여드리면, 너를 보살펴주실 것이다. ”
“ 흐읍............. ”
울음소리도 뱉지 못한 채 작은 손이 어머니에게서 노리개 하나를 받았다.
붉은색을 띄는 노리개였다.
늘 어머니 허리춤에 있던 그것이었다.
“ 가거라. ”
어머니가 화연을 떠밀었다. 화연이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지만, 어머니가 있는 힘껏 화연을 떠밀었다.
“ 어서!!! ”
그리고 순간이었다.
“ 어서 가거라!! ”
어머니가 그렇게 외치며 화연을 떠밀었다.
커다란 목소리조차도 묻히도록 주작이 크게 포효하며 숲에 불꽃이 솟구치도록 했다.
“ 어서 가거라!!! ”
성이 난 주작이 있는 힘껏 불을 뿜었다.
멈칫거리던 화연이 어쩔 줄 모른 채 자리에 서있었다.
“ 이 화마를 보아- 역시 주작은 상대를 할 수 없는 족속이구나. 교화를 시켜준다는 도움의 손길을 어찌 이런 식으로 내쳐. ”
화연 어머니가 다루는 주작이 온 숲에 불길을 만들고 있음에도, 사내들은 여유로운 얼굴이었다.
“ 시작할까- 주작사냥? ”
“ 분수를 모르고 주작을 빼들다니, 한심하군. ”
사내들이 낄길 거리며 말을 주고받았다.
필사적인 화연의 어머니와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거대한 청룡들이 주작의 몸을 휘감았다.
수적으로 열세인 화연의 어머니가 무너지는 건 필연적인 일이었다.
“ 어, 엄마.............. ”
높이 떠있는 주작의 온 몸을 청룡들이 꽁꽁 묶었다. 죄여오는 숨에 주작이 굉음을 질렀다.
청룡들이 주작을 희롱하며 긴 혀를 내밀었다.
용이라기 보단 뱀처럼 간사한 눈빛이 주작을 훑었다.
“ 하으윽............ ”
주작의 숨이 조여 오자 화연의 어머니도 고통을 뱉었다.
청룡들이 내민 혀로 주작의 살갗을 쓸었다.
주작의 목덜미에 비벼지는 혀의 표피가 끔찍했다.
“ 하윽.... ”
저항하려 불을 뿜어 청룡의 살갗을 지졌지만 청룡들은 가소롭다는 듯 주작에게 동시에 이빨을 박았다.
“ 엄마!!!!!!!!!!! ”
끼아아악-
괴기한 주작의 울음소리는 죽음을 부르는 소리였다.
“ 엄마아아아아!!!!! ”
아이의 비명을 숨기려는 듯, 주작이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하지만 곧, 불꽃보다 진한 핏물이 사방에 튀어 끈적한 비를 내렸다.
“ 엄마아아아!!!!! ”
붉은 노리개를 쥔 아이의 손이, 새하얗게 질렸다.
* * *
“ 엄, 엄마아.... ”
“ 어떻게 하면 좋겠소? 열이 펄펄 끓는데. 차가운 강물에 쫄딱 젖어 고뿔이 심하게 들린 것 같소만. ”
“ 단순한 고뿔이긴 한데.... 오히려 몸의 병보다는 악몽이 심한 것 같사옵니다. ”
훈기가 도는 방안에 화연이 누워있었다.
그녀를 둘러싸고 의원 박씨와 청, 태진이 앉았다. 박씨의 대답에 청이 재차 물었다.
“ 진정 괜찮은 게 맞는 것이오? ”
“ 네. 그런 것 같사옵니다. ”
청이 눈에 띄게 초조해 했다.
이불에 누운 화연의 얼굴이 야속하리만큼 새하얀 탓이었다.
청이 불안한 속내를 감추지 못하는데, 그때였다.
“ 엄마아............ 엄마!!!! ”
화연이 절실한 목소리를 내지르며 벌떡 깨어났다.
“ 헉....... 헉...... 헉......... ”
화연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가슴께의 옷을 부여잡았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듯 헛기침을 하니, 박씨가 금방 붙어 말했다.
“ 화연아, 화연아 괜찮느냐. ”
“ 아............ ”
화연이 박씨를 돌아보았다. 여전히 힘들게 숨을 쉬었다.
“ 하.... 하아......... ”
“ 숨을 깊게 내쉬거라- 깊게- 후우. ”
박씨의 말대로 호흡을 뱉은 화연이 말했다.
“ 하아... 의원 어른 오셨습니까. ”
제 복색과 주변에 앉은 사람들을 화연이 훑었다.
무슨 상황인지 짐작이 가지 않아 당황하는데, 청이 말을 건넸다.
“ 강에서 쓰러져, 가까운 마을에 오게 됐소. 다행히 낭자가 사는 곳이라 많은 사람들이 낭자를 알아보았고, 이렇게 집까지 낭자를 옮길 수 있었소. ”
화연이 청을 보았다. 다정한 눈동자는 화연이 행여라도 놀랄까 걱정하는 눈치였다.
조근조근 따뜻하게 상황을 설명하는 청의 모습에, 화연은 잠시 눈을 감았다.
“ 감사합니다. ”
화연이 청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아직 떨치지 못한 악몽, 아니 과거 속 청룡의 울음소리가 환청처럼 귓가에 맴돌았다.
그와 대조되는 눈앞의 청룡은 따뜻하기 그지없었다.
그 후로 박씨는 화연을 다시 진단했고, 간단한 고뿔 탕약을 처방하고 방을 떠났다.
태진이 청이 언질한 대로 박씨에게 사례를 한다며 그를 따라 나갔다.
입 단속을 하러 간 것이 분명했다.
방에 단 둘이 남은 청과 화연이었다.
어색한 정적을 먼저 깬 건 청이었다.
“ 내 아까는 고마웠소. 낭자 아니었으면 살생을 할 뻔 했소. 내 어리석어 옆에 있던 키가 큰 나무에 시야가 가려 원앙을 보지 못한 채 돌을 던질 뻔 했구려. ”
노리개에 대한 말을 하기도, 강물에 뛰어든 얘기를 하기에도 어색할 것 같기에 청은 우선 화연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 .............................. ”
그럼에도 한참을 화연이 말이 없었다.
고개를 떨어뜨린 채 눈을 맞추지 않는 화연이었다.
걱정하는 얼굴로 청이 화연을 보았다.
하지만 곧 굳은 얼굴로 입술을 움직이려는 화연에게 청이 긴장했다.
붉은 입술이 무엇을 말할까 싶었다.
하지만 새어나온 말은 예상 밖의 것이었다.
“ ............. 원앙은 어찌 됐습니까? ”
말에 비장함이 묻어 있었다.
본인이 혼절한 후 깨어나 묻는 것이 원앙에 대한 것이라니, 청이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 하, 하하하. ”
“ 어찌 웃으십니까? ”
“ 하하하하. ”
청 자신조차 모르는 이유였다. 딱히 연유도 없이 웃음이 나왔다.
세상에서 제일 차가운 얼굴을 하면서도, 이리 미물을 챙기는 여인이라니.
이상하게 심장 부근이 간지러운 것이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청의 웃음에 화연이 이상한 사람을 보 듯 했다.
“ 하하하. 괜찮다, 괜찮아. 물론 피를 흘리며 다쳐 아무는데 시간이 걸릴 것이다. 물살이 급한 강가에 돌아가는 데는 시일이 걸릴 것이지만, 상처가 완전히 나을 때까지 내가 돌볼 작정이니, 걱정 말거라. ”
“ 어떻게 원앙을 돌본다 하십니까. 원앙을 둘 수 있는 연못이라도 있으신 겝니까. ”
화연의 눈에 불신이 가득했다.
그 눈빛에도 청이 얼굴의 미소를 거두지 못했다.
입꼬리를 올린 채 큼큼, 기침을 하며 말했다.
말하는 투가 보물을 자랑하는 어린 아이 같았다.
“ 내 집이 아-주 다크오. ”
화연은 청의 말을 여전히 믿지 못하는 듯 했다.
청을 담는 맑은 두 눈 깊숙한 곳에 의문이 맺혀 있었다. 그런데 순간이었다.
세상을 다 가진 사내처럼 우쭐하던 청이 갑자기 풀이 죽더니 말했다.
“ ...... 미안하오. 간절히 찾으려던 것을 찾지 못하게 말려서. ”
“ ........................... ”
“ 그건 정말 미안하오. ”
뜬금 없는 말과 갑자기 바뀐 태도였다.
하지만 청이 무슨 말을 하는 지 화연은 명확히 알고 있었다.
청도 화연을 따라 강에 몸을 던졌었다.
연유도 모르고 책임감으로 물에 함께 뛰어든 사람이었다.
죽을 뻔 했다 경을 쳐도 화연이 할 말이 없을 텐데, 청은 화연에게 사과를 하고 있었다. 참, 따뜻한 사람이었다.
“ 정말 미안하오.... ”
엄마에게 혼나기 전 아이처럼 말하는 청에 화연이 피식 웃었다.
“ 어? 웃었소? ”
“ 아니옵니다. ”
“ 어, 웃는 것 맞지 않소! ”
화연의 웃음을 놓치지 않고 청이 말했다.
화연이 부정했지만 입꼬리의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 모습이 흐뭇한 듯 따라 웃으며 청도 함께 웃었다.
“ 아까는 정말 감사....... ”
화연이 말을 이으려는데, 예상치 못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 아가씨, 도총관 어른 오셨습니다. ”
몸종이 고하는 소리였다. 그 말에 화연이 대답했다.
“ 아, 손님이 있어 지금은 뵙기 어렵다고..... ”
“ 화연아, 괜찮다. 들어가겠다. ”
하지만 화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굵은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끼어 들었다.
화연이 무슨 상황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데, 그대로 문이 열렸다.
“ 아버지, 손님이 드셔서...... ”
“ 인사가 늦어 황공하옵니다. 황자마마. ”
화연의 말을 자르고 화연의 아버지가 바닥에 엎드려 예를 갖추었다.
강직한 목소리가 방 안에 울림을 만들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화연의 얼굴이 당황에서 경악으로 물들었다.
아버지의 모습을 봐서는 이건 꿈이 아니라 명백한 참이었다.
“ 소신, 도총관인 윤가 유원입니다. 제 여식이 지은 죄가 많다는 걸 방금 듣고 왔사옵니다. ”
“ 하하, 이렇게 예를 갖출 필요는 없소. ”
“ 송구하옵니다. ”
쐐기를 박는 유원의 말에 화연이 벌떡 일어나 유원의 옆에 납작 엎드렸다.
당황함에 떨리는 손이 화연의 심정을 반영하고 있었다.
“ 화, 황자마마를 뵈옵니다. ”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여인의 당황한 목소리에, 청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아주 따뜻하고, 포근한 미소였다.
“ 도총관은 아주 훌륭한 여식을 두었소. ”
“ 황공하옵니다, 마마. ”
“ 주, 죽을 죄를 지었사옵니다, 마마. 제가 어찌....... ”
화연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지금까지 청에게 행했던 모든 일들이 아찔했다.
다른 건 몰라도 청이 자신을 따라 물에 뛰어들도록 했다.
황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역적이라 해도 할 말이 없었다.
“ 진정 그렇게 생각하오, 낭자. ”
“ 죽을 죄를 지었사옵니다, 마마. ”
죽음으로 내몰 뻔 한 것도 모자라 감히 그 얼굴과 눈빛을 똑바로 마주했었다.
화연이 눈을 질끈 감는데 청이 말했다.
“ 낭자, 정말 그리도 잘 못 했다 생각하오. ”
청이 물었다. 웃음을 짓고 있으면서도 목소리로는 심각한 체를 했다.
“ 물론이옵니다. 하명만 하시면 그 어떠한 죄도 달게 받겠사옵니다.... ”
달라진 화연의 목소리에 청의 입꼬리가 더 올라갔다. 연유는 알 수 없었다.
다시 심장 부근이 간질거리며 얼굴에 웃음이 만발하도록 했다.
“ 흠...... 그리도 지은 죄가 많다 하니 내 벌을 내려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이오? ”
“ 어떠한 벌이라도 받겠사옵니다. 죽여주시옵소서. ”
화연의 말을 들으며, 청이 손으로 자신의 턱을 쓸었다.
아찔하게 날이 선 턱선도 웃음으로 볼록해지는 볼을 숨길 수 없었다.
“ 그럼 내 벌을 내려야 겠소. ”
화연이 일어나더니 엎드린 화연의 앞에 손을 내밀며 말했다.
“ 고개를 드시오. ”
유원과 화연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내민 청의 손에 당황한 건 유원과 화연뿐만이 아니었다.
화연이 고개를 들자 검은 머리카락이 스르륵, 움직임을 따라 흘러내렸다.
물기가 말라 결이 빛나는 흰 피부에는 열이 완전히 내리지 않은 듯 연분홍빛 홍조를 담고 있었다.
흑요석처럼 빛나는 검은 눈동자는 가련했다.
미안함을 속삭이는 붉은 입술은 그 어떤 말을 하더라도 세상을 홀릴 법 했다.
그 순간, 두근.
두근.
두근.
아까 간질거리던 청의 심장이 갑자기 세차게 방망이질을 시작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에 청이 당황했다.
뻗은 손이 긴장해 떨리려는 걸 청이 가까스로 다잡았다.
“ 이 주변에 밤이면 반딪불이가 별처럼 수놓아 지는 절경인 곳이 있다고 들었소. 마을에서 잔치를 함께 한다고 했는데 맞소. ”
“ 마, 맞사옵니다. ”
여전히 겁 먹은 화연의 목소리였다. 그런 화연에게 손을 더 가까이 뻗으며 청이 말했다.
“ 벌이오. 내 아주 괘씸하여 큰 벌을 내려야겠소. ”
앞뒤가 맞지 않는 말에 화연이 의아해했다.
그때였다.
“ 낭자, 나와 오늘 거기에 함께 가주오. ”
청이 고개를 떨어뜨린 화연의 시선에 맞게 손을 더 가까이 뻗었다.
“ 이것이 황자로서 내가 내리는 벌이오. ”
내밀어진 큼지막한 손에 화연이 당황한 채 청을 바라봤다.
그 눈앞에, 환하게 웃는 청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