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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연의 기억
작가 : 한정화
작품등록일 : 2017.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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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푸른 노리개
작성일 : 17-07-31     조회 : 264     추천 : 0     분량 : 5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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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므아- 므아 "

 

 " 어, 우리 순식이 신났구나 "

 

 " 꺄아- "

 

 동네에서 조금 벗어난 개울에 사람이 많았다.

 

 부모 등에 업힌 어린 아이가 빛나는 반딧불이를 잡으려 손을 뻗었다.

 

 7살 정도 된 아이들이 저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왁자지껄 떠들었다.

 

 시야가 닿는 곳마다 호롱등불이 빛났고, 상인들이 전을 부치는 고소한 냄새가 났다.

 

 그들 속에 우뚝 선 청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 풍문으로 듣던 것보다 훨씬 아름답소.....! "

 

 " 매년 이 곳 주민들이 이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는 합니다. "

 

 솔직한 감탄이었다. 청을 인도한 화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개울이라기엔 물이 흐르는 폭이 넓고, 강이라기엔 좁은 물길을 따라 수풀이 많았다.

 

 그 군데군데가 나무다리로 연결돼 있었다.

 

 호롱등불과 반딧불이가 빛나는 밤의 색은 아름다운 군청색이었고, 그 넓은 하늘을 별무더기가 촘촘하게 메웠다.

 

 " 와- 아름답소, 정말 아름답소. 이런 축제가 매년 있는데 나는 왜 이곳에 올해 처음 왔는지 모르겠소! "

 

 청이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뜬 아이처럼 사방을 살피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훌쩍 큰 청과 화연이 지날 때마다 시선이 모였지만, 청은 전혀 상관하지 않는 눈치였다.

 

 " 마마, 시선이 모이니 조금 목소리를 낮추시는 것이 어떠실지.... "

 

 " 내 나를 마마라고 부르지 말라고 하지 않았소. "

 

 " 소인이 어찌..... "

 

 " 쉿, 잠행 중에 신분이 노출되는 건 위험하지 않소. "

 

 화연이 조그맣게 속삭였다. 그 말에 청 또한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웃으며 말하는 청에게 화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어쩔 줄 모르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성 밖에 많은데....... 응? "

 

 " 어어!! "

 

 청이 계속해서 감탄하는데 술래잡기를 하고 있던 아이들 중 하나가 청 쪽으로 다가왔다.

 

 뒤에 쫓아오는 친구를 보며 달리는 아이였다. 앞을 보지 않은 아이가 그대로 청에게 부딪혔다.

 

 " 너 이 녀석! "

 

 다행히 화연이 청과 아이가 부딪히기 전에 아이를 붙잡았으나, 아이가 청의 옷자락을 잡았다.

 

 하필이면 잡은 곳이 두루마기 고름이었다.

 

 아이의 힘에 청의 고름이 속절 없이 풀어졌다.

 

 " 아, 소, 송구하옵…… 우, 우와! 누나 저걸 봐봐요! "

 

 아이가 당황하며 청에게 사과를 하다 감탄을 터뜨렸다.

 

 화연과 아는 사이인지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화연을 부르며 말했다.

 

 두루마기 속 흰 저고리 고름 끝에 기다랗게 달려 있는 푸른 노리개가 보였다.

 

 아이가 "남자가 무슨 노리개?"라는 말이 아닌 감탄을 한 이유는 이것이 젊은 청룡의 표식이었기 때문이다.

 

 " 너 어디를 보는 거야! "

 

 " 소, 송구하옵니다... 히잉.... "

 

 화연이 화를 내자 아이가 급히 사과했다.

 

 하지만 여전히 동경의 눈빛으로 저고리를 힐끔거렸다.

 

 " 되었소. 어린 아이가 놀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 뭘 그러시오. 네 이름이 무엇이냐. "

 

 " 동희, 유동희인데..... 우-와, 청룡의 표식 멋져요! "

 

 " 하하, 고맙구나. "

 

 " 그거 줄 사람 정했어요? "

 

 " 하하, 요 녀석. 비밀이다. 비-밀 "

 

 아이가 얼굴이 상기된 채 청에게 물었다.

 

 청이 웃으며 아이의 말에 하나하나 답 해주었다.

 

 화연이 그 옆에서 어쩔 줄 모른 채 서있을 뿐이었다.

 

 " 어, 동희야 안녕! 어? 우와아아! "

 

 하지만 화연의 당황은 시작에 불과했다.

 

 지나가던 아이들의 무리가 동희에게 인사했다.

 

 아직 고름을 여미지 않은 청의 두루마기 사이 청룡의 문양을 아이들 모두 보았다.

 

 동심 가득한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였다.

 

 " 우와! "

 

 " 이거 처음 봐! "

 

 친구의 목소리를 따라 다른 아이들도 몰려왔다.

 

 꼼짝 없이 포위된 청을 보던 화연이 이마를 짚었다.

 

 아이들 틈에서 난색을 표하는 청을 보던 화연이 크게 말했다.

 

 " 어, 개울 너머에 반짝이는 게 떨어졌는데? "

 

 " 응?? "

 

 아이 하나가 화연의 목소리를 듣고 반응했다. 나머지 아이들은 여전히 관심이 없어 보였다.

 

 " 필시 저것을 확인해봐야 하는데! 반딧불이가 가장 밝은 날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진 빛을 잡으면 천수를 누린다는 얘기가 있던데 말이야... "

 

 화연이 자신 앞에 온 아이 하나에게 말했다. 모두 들으라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 누나 그 말이 참 말 인겨? "

 

 아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 진짜지 그럼! "

 

 " 야, 춘식아, 즈 짝에 별 하나 떨어졌다는데 가보지 않컸냐? "

 

 " 무슨 소리 하는겨. 그게 가능키나 하던가잉? "

 

 화연의 앞에 아이가 하나에서 둘로 늘었다.

 

 " 모르겠는데 가보자잉! "

 

 " 야 서춘이, 너도 가보련? "

 

 두 아이가 한 아이를 더 불러 길을 나섰다.

 

 " 오잉, 즈그들 어디 가는가? "

 

 " 저 쪽에 별이 떨어졌다는데? "

 

 아이들을 바라본 한 아이의 말에 화연이 웃으며 대답했다.

 

 " 오매, 나도 보고잡다!! "

 

 " 뭔데 뭔데- "

 

 " 글씨 하늘에서 뭐가 뚝 떨어졌다는디? "

 

 " 반딧불이 아닌가? "

 

 " 모르갔어, 일단 가보자!! "

 

 세 아이가 떠난 길을 여러 명의 아이들이 우르르 쫓아갔다.

 

 삼인성호라더니, 눈 앞에서 눈망울을 빛내던 아이들이 떠나갔다.

 

 그 틈에서 한 숨 돌린 청이 눈 앞에 남은 단 한 명의 아이를 보았다.

 

 " 그거, 근데 어디다 쓰는 거에요? "

 

 오빠 손을 잡고 따라왔던 여자 아이 하나였다.

 

 청이 고름을 매며 아이의 눈높이에 맞게 몸을 숙였다.

 

 쑥 눈 앞에 다가온 청이 무서운 듯 아이가 두 발자국 뒤로 움직였다.

 

 " 하하, 겁 먹을 것 없다. "

 

 " 다시 한 번 보여주면 안 돼요? "

 

 아이가 손가락으로 청의 고름을 가리켰다. 청이 고민하더니 다시 고름을 풀었다.

 

 화연은 그 모습이 민망한 듯 고개를 돌렸다.

 

 " 이거, 뭐에 쓰는 거에요? "

 

 아이의 고운 목소리에 청이 웃었다.

 

 " 청룡에 대해 아니? "

 

 " 이 나라의 대장인 사람들이요! "

 

 청의 물음에 아이가 자신있게 대답했다. 하지만 청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 아니야. 틀렸어. 이 나라 대장은 청룡들이 아닌 만 백성이야. "

 

 " 흐음...? "

 

 " 우리 꼬마 아가씨가 이 나라의 대장인 셈이지. "

 

 " 그럼 오빠도 이 나라 대장이에요? "

 

 " 그렇지? "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아이의 얼굴에도 청이 말을 이었다.

 

 " 청룡의 혈족들은, 그냥 그 만 백성 중 일부일 뿐이란다. 다만 사방 신 중 하나인 청룡의 은혜를 입어 조금 더 타고난 힘이 센 사람들이지. 그 힘으로 다른 백성들이 조금이라도 더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 자들이란다. "

 

 " 으응... 그럼 다른 사방신들도 백성이에요? "

 

 청이 아이에게 대답하기 전에 화연을 바라봤다.

 

 알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자신을 보는 화연과 눈이 마주쳤다.

 

 " 당연하지. "

 

 청의 말에 화연이 울 것 같은 얼굴을 했다.

 

 굳게 다물린 입술이 일자를 그리다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빛나는 눈망울이 한탄의 세월을 담은 눈물을 머금었다.

 

 " 그럼 이건 뭐에요? "

 

 아이가 다시 푸른 노리개를 가리켰다.

 

 " 청룡은 자라면서 한 번 크게 허물을 벗는단다. 그 허물이 곧게 비단처럼 정돈되어 이렇게 노리개의 형태를 하지. 청룡끼리도 그 색과 모양이 모두 달라. 어린 시절을 품은 것이니까. 이걸 정인을 만나면 준단다. 그리고 그 정인이 갖고 있는 새로운 노리개를 받아 이 자리에 달아. "

 

 " 이거 오빠거에요? 아님 정인인 다른 청룡거에요? "

 

 " 내 것이다. "

 

 " 그럼 오빠는 아직 정인을 못 만났어요? "

 

 " 하하, 뭔 말을 못 하게 하는구나. "

 

 " 못 만났구나! "

 

 " 글쎄............... "

 

 청이 말꼬리를 늘이는데 아이가 물었다.

 

 " 근데 정인이 뭐에요? "

 

 " 하하하. 그래 아직 모를 나이이긴 하구나. "

 

 청의 말에 아이가 볼을 부풀렸다. 어리다는 말에 기분이 상해 토라졌다.

 

 청이 웃으며 아이에게 말을 이었다.

 

 " 가슴 깊이 연모하는 사람. 그게 정인이다. "

 

 청이 힐끔 화연의 눈치를 살폈다.

 

 화연의 얼굴에는 미동조차 없었다. 그 얼굴에 괜히 심통이 났다.

 

 자신조차 그 행동의 원인을 알지 못했다.

 

 " 연모는 뭔데요? "

 

 " 글쎄, 나도 아직 해본 적이 없어 모르겠다만... 너희 어머니 아버지가 서로 은애 하는 것이 연모란다. "

 

 " 우리 엄마랑 아빠는 맨날 싸우는데? 그게 연모에요? "

 

 " 하하, 모르겠다. 나도- 무엇이 연모이고 은애일까. "

 

 " 뭐에요- 어, 엄마가 부른다. 나 갈게요!! "

 

 많은 아이들이 그렇듯 흥미가 떨어지자 아이는 자신의 엄마에게 달려갔다.

 

 그 뒷모습을 청이 흐뭇하게 바라봤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가던 아이가 우뚝 서더니 청에게 소리쳤다.

 

 " 꼭 빨리 정인을 만나요!! "

 

 목소리를 높인 아이가 다시 달렸다. 청이 그 뒷모습에 손을 흔들었다.

 

 아이가 엄마를 만난 모습을 보고 청이 멀찍이 선 화연에게 다가가 말했다.

 

 " 여기서 그대가 생각할 때 가장 아름다운 곳이 어디인지 물어도 되겠소? "

 

 풀어졌던 고름은 어느새 단정히 제자리를 찾았다.

 

 화연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길을 잡기 시작했다.

 

 " 감히 앞장 서도 되겠사옵니까. "

 

 " 내 길을 모르는데 물론이지요. "

 

 화연의 공손한 물음에 청이 웃었다. 하지만 화연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신하로서 황자를 모시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그 모습을 보는데 괜히 청의 가슴이 아렸다. 박동하는 심장을 누군가 틀어쥔 듯 숨이 조였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화연을 만나고 청은, 모르는 게 참 많아졌다.

 

 " 이 쪽입니다. "

 

 하지만 그 고운 목소리에, 그리고 앞장 서는 화연의 뒷모습에 웃음이 새어나왔다.

 

 등불로 빛나는 온 경치가 예쁜 꽃물에 물들어 있었다.

 

 

 * * *

 

 

 " 와....... "

 

 청이 감탄했다. 속 깊이 우러나온 진심이 공기 중에 터져나왔다.

 

 청이 고개를 들어 사방을 살폈다.

 

 " 정말 아름다운 곳이오. "

 

 시선이 닿는 곳마다 나무의 꽃송이가 가득했다. 은은한 향이 공간을 가득 메웠다.

 

 청과 화연이 선 반원의 다리 아래로 강물이 흘렀다.

 

 잔치를 하는 곳과 거리가 있어 사람이 없었다.

 

 물이 흐르는 소리가 선명히 들렸다.

 

 바람이 불 때마다 떨어지는 꽃송이가 눈 앞에 아롱거렸다.

 

 " 마음에 드신다니, 황송하옵니다. "

 

 " 우리 빠져 죽을 뻔한 곳 근처 다리가 이렇게 아름다웠다니...... "

 

 " 소, 송구하옵니다... "

 

 " 하하, 그렇게 당황하라고 한 말이 아니오. "

 

 " .................. "

 

 반원의 다리 아래로 흐르는 강물은 청과 화연이 처음 만난 강물과 같은 물줄기였다.

 

 사실 그곳과 많이 가까운 곳이었다.

 

 " 역시 황궁 밖을 나오면 참 내가 모르던 많은 세상이 있소. 경치뿐만 아니라 참 많은 것이 보기 좋은 곳이요, 여기는. 아까 아이들을 보고 놀랐소. 전혀 다른 지방의 것들이 섞인 말씨를 보고 말이오. 너, 나를 가르지 않고 함께 그렇게 잘 어울리는 것이... 참 내가 바라는 해국의 미래와 닮은 점이 많았소. "

 

 감화에 젖은 청을 바라보던 화연이 고개를 숙여 말했다.

 

 " 마마, 이제 사람들이 없사옵니다. 말씀을 낮추시옵소서. "

 

 "진짜 그래도 되겠소?"

 

 청의 물음에 화연이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 당연한 것입니다. 말씀을 낮추시옵소서. ”

 

 “ 흠... 방금 나보러 말씀을 낮추라 말했소. ”

 

 청의 화연에게 닿은 눈빛이 아까 풍경을 바라보던 것과 색이 달랐다.

 

 얼굴을 굳힌 청이 말했다.

 

 화연이 영문을 모른 채 대답하는데 그에 대고 청이 언성을 높였다.

 

 “ 그러하옵니다. ”

 

 “ 무엄하도다! ”

 

 황자의 위엄을 담은 말에 화연의 얼굴이 굳어졌다.

 

 무언가, 실수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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