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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연의 기억
작가 : 한정화
작품등록일 : 2017.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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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붉은 노리개의 행방
작성일 : 17-07-31     조회 : 263     추천 : 0     분량 : 4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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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마. 황제폐하께서 곧 당도하신다 하옵니다. ”

 

 가만히 면경을 보고 있던 화연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다홍빛 저고리와 남색 치마가 화연에게 청초함을 더했다.

 

 단정히 빗어 올린 머리에는 옅은 분홍빛과 하얀 떨잠이 자리했다.

 

 “ 마마. 노리개는 무엇이 좋을까요? ”

 

 옆에 있던 상궁이 물었다. 그 물음에 화연이 골똘히 고민하다가 다른 말을 했다.

 

 “ 폐하께서 물수제비 연습을 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소? ”

 

 “ 요즘 정무가 바쁘시다 들었사옵니다. 하지만 경합을 계속 신경 쓰셨다고는 합니다. ”

 

 “ ............. 어떻게 된 일일까. ”

 

 화연이 혼잣말을 하며 고민했다.

 

 현재 청의 기억 속 사람은 물수제비를 하지 못한다.

 

 근데 어떻게 성공한 것일까.

 

 그것도 숫자마저 예전과 똑같이... 혹시, 기억이...

 

 “ 황제폐하 납시오!! ”

 

 “ 내 오늘 귀비와 긴히 나눌 이야기가 있으니, 내관과 상궁은 끝까지 물러가고 문 앞에서도 거리를 유지하거라. ”

 

 내관의 목소리와 청의 음성이 화연의 고민을 흩뜨렸다.

 

 화연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상궁들이 재빠르게 예를 갖추며 문을 열었다.

 

 “ 오늘도 참 아름답구려. ”

 

 겹겹이 열린 문 사이로 등장한 청의 모습이 보였다.

 

 “ 오셨사옵니까. ”

 

 오직 둘만이 존재하게 된 방 안에서 청과 화연의 시선이 엮였다.

 

 눈동자에 담긴 서로의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각자의 이야기를 품고 자리하게 된 밤이었다.

 

 공기 중에 주인을 잃고 떠도는 옛 세월만 구슬플 뿐이었다.

 

 “ 황공하옵게도, 일전에 보내주신 떡과 다과가 맛있어 요즘 잘 즐기고 있사옵니다. ”

 

 “ ................. ”

 

 “ 조만간 북쪽 지방에 가보아야 하는데, ”

 

 “ 김 장군이 가도 된다고 들었소만. ”

 

 화연이 말을 이으려는데 청이 끼어들었다. 화연이 옅게 웃음 지으며 말했다.

 

 “ 아시지 않습니까 폐하. ”

 

 “ 그대가 궁에서 도망가려는 걸 말이오. ”

 

 잔에 담긴 술을 한 입에 털어 넣은 청이 인상을 찌푸렸다.

 

 “ 술이 쓰구려. ”

 

 “ ......... 폐하. ”

 

 “ 왜 져주었소. ”

 

 청이 물었다. 무엇을 말하는지 화연도 뻔히 아는 소리였다.

 

 “ 무슨 소리십니까. ”

 

 “ 딱 내가 할 줄 알았던 개수에서 하나를 빼 져주다니, 참 공 들이느라 힘들었겠소. ”

 

 “ 폐하. ”

 

 “ 스무 번 넘게 거뜬히 던지는 사람이 어찌 그러셨소. ”

 

 화연이 청의 빈 잔에 술을 담았다. 액체를 따르는 손짓은 흔들림 없이 곧았다.

 

 “ 그러는 폐하께서는. ”

 

 “ ............ ”

 

 “ 어찌 모든 걸 기억하는 사람처럼 다 알고 계신 것입니까. 제가 몇 개를 던지는지, 폐하께 일러드렸던 던지는 법은 무엇이었는지, 폐하께서 잃어버린 세월 때 얼마를 던지셨는지. ”

 

 “ .............. ”

 

 “ 연습 하는 것을 본 이도 없다 합니다. 보지 못한 게 아니라, 보지 못할 곳에서 하셨겠지요. 예전에 저를 이기겠다 말씀 하시고는 몇 번이나 아무도 모르게 잠행을 나가 연습하셨던 것처럼요. ”

 

 “ .................. ”

 

 “ 어찌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까. 마치 기억을 하고 계신 분처럼. ”

 

 하지만 화연의 손이 마지막 말과 동시에 떨리기 시작했다.

 

 손을 맞잡아 긴 저고리에 숨기며 화연이 말했다.

 

 청이 가만히 화연의 말을 듣다 대답했다.

 

 “ 그럼 더 기억을 가진 사람처럼 이야기 해볼까요. ”

 

 “ 폐하! ”

 

 화연의 높아진 목소리를 무시한 채 청이 술을 한 잔 더 입에 댔다.

 

 한 모금으로 모두를 삼키더니 탁, 하고 소리가 나도록 세게 내려놓았다.

 

 “ 노리개, 어디다 숨겼소. ”

 

 화연의 커다란 눈을 응시하며 청이 물었다.

 

 “ 다시 한 번 묻소. 그대의 노리개, 어디다 숨겼소. ”

 

 “ 하. ”

 

 청의 말에 기가 막힌 듯 화연이 혀를 찼다.

 

 황제의 앞에서 무엄한 행동이었지만 참을 수 없는 감정의 표현이었다.

 

 “ 어떤 노리개를 말씀하시는 것이옵니까. ”

 

 “ 그대와 내가 정인이 되었을 때, 그대가 푸른 노리개의 대가로 나에게 주었던 붉은 노리개 말이오. ”

 

 “ 지금 기억이 있는 것처럼 구는 폐하라면 저보다 더 잘 아시겠습니다. ”

 

 “ 그래, 그 때 행궁 길의 습격 때 나는 그 노리개를 하고 있었고, 분명히 그 때 사라졌소. ”

 

 “ 근데 그걸 왜 제게 찾으십니까? ”

 

 화연이 적대감을 담으며 말했다. 마주해 화연을 응시하는 청의 눈빛이 매서웠다.

 

 “ 내 분명 그 때 잃어버린 모든 것을 내게 바치라 공표했소. ”

 

 “ 맞사옵니다. ”

 

 “ 그래서 그 때 입었던 옷들, 마차에 있던 짐들, 모든 것들이 혈흔이 그대로 남은 채 내게 돌아왔소. ”

 

 “ .............. ”

 

 “ 아시잖소. 그 때 나를 공격한 자들은 산적들이 아니오. 분명 나와 그대를 노린 자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때 사라진 노리개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소. 그들이 가져갔거나, 불구덩이에 타버렸다고 막연히 생각했었소만, 얼마 전에 증언 하나를 듣게 되었소. ”

 

 “ 폐하. ”

 

 “ 돌려주시오. 나의 붉은 노리개. 나의 정인이 주었던 증표를. 사사로운 정을 떼고서라도 그 때 있었던 모든 물품들은 내게 돌아와야만 하오. ”

 

 청의 말에 화연은 입을 닫았다.

 

 결코 답을 주지 않을 것이란 걸 청 또한 눈치 챈 지 오래였다.

 

 청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움직이기 시작했다.

 

 “ 그래, 결코 주지 않으려 할 것이란 걸 모르고 온 건 아니니. ”

 

 “ 폐하, 이 무슨...! ”

 

 청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큰 농의 문을 열었다. 화연이 따라 일어서 그를 말렸다.

 

 하지만 농 속의 물건이 쏟아지는 쾅, 쾅 거리는 소리만 요란했다.

 

 “ 폐하!! ”

 

 “ 내 확신하는 것이 하나 있소. 그게 어디 있을지. ”

 

 “ ................... ”

 

 “ 어떻게 기억이 있는 사람처럼 구냐고 물었소? 그럼 그대가 잡고 사는 과거의 정인에게 물어보오. ”

 

 “ 폐하!! ”

 

 농에 담긴 이불을 청이 모두 쏟아냈다.

 

 아무것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옆에 농을 열었다.

 

 순식간에 깔끔했던 방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 과거의 내가 쓰던 일기가 있던 걸 찾았소. 실록에는 담기지 않았던 깊은 속 이야기들. 겉모습에서는 알 수 없었던 많은 감정들이 거기 있었소. ”

 

 “ 폐하, 제발! ”

 

 옥체에 함부로 손을 댈 수 없어 발만 동동 구르는 화연이었다.

 

 농 하나를 털어낸 청의 시선이 궤짝 하나로 향했다.

 

 그 눈빛을 감지한 화연이 서둘러 그 앞에 서 두 팔을 뻗어 청을 막았다.

 

 “ 안 됩니다. 폐하. ”

 

 화연을 내려다보던 청이 그대로 화연의 팔을 잡아 벽에 밀어 붙였다.

 

 힘을 주지 않아도 황제를 거부할 수 없는 화연이기에 그의 팔 안에 갇히는 건 한 순간이었다.

 

 “ 그래, 농을 뒤지지 않아도 됐었소. 어디 있을지 이미 거기 써있었으니까. 그래도 이러면 직접 내어줄 줄 알았지. 설마 끝까지 버틸 줄 몰랐소. ”

 

 숨이 닿을 듯 좁은 거리였다.

 

 진홍빛 저고리의 가슴 위로부터 길게 뻗은 옷고름 자락을 청이 잡았다.

 

 별 힘을 들이지 않아도 손길 한 번에 고름이 풀어졌다.

 

 그대로 청의 손이 쳐들어오더니 흰 속저고리의 매듭도 풀어버렸다.

 

 화연은 그대로 눈을 감았다.

 

 속치마를 묶은 매듭 위로 드러난 뽀얀 가슴골.

 

 그 옆으로 하얀 피부와 대비되는 붉은 실 하나가 정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 그래, 여기부터는 그대의 정인과 그대의 이야기겠지. 내 더 이상은 무례를 범하지 않겠소. ”

 

 “ ............................. ”

 

 “ 내일 직접 내게로 와 전해주시오. 아시잖소. 황명을 거스른 것은 형태와 이유를 불문하고 반역이오. 설마 끝끝내 내가 그대를 내치지 않으면 이걸 빌미로 죽어서 황궁을 나갈 생각은 아니었겠지. ”

 

 “ ...................... ”

 

 “ 가져오시오. 내일 아침에. ”

 

 청이 화연의 옷을 여미게 만들고는 자리에 앉았다.

 

 입술을 깨물며 옷고름을 다시 묶는 화연의 손이 애처로웠다.

 

 그 모습이 안타까워 청이 애꿎은 술을 마시려는데 밖에서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났다.

 

 “ 폐, 폐하!!! 귀비마마!! ”

 

 황제와 귀비의 밤을 방해하는 건 큰 죄였다.

 

 하지만 황실의 법도를 거스르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발걸음이었다.

 

 오히려 발걸음은 더 큰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 폐하. 태진이옵니다. ”

 

 방정맞던 내관의 발걸음 소리가 쥐 죽은 듯 사라지고 없었다.

 

 밖에서 고하는 소리가 났다. 화연이 옷단장을 마친 것을 확인한 청이 말했다.

 

 “ 들어라. ”

 

 겹겹이 닫힌 문을 직접 열며 태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화연과 청의 낯빛이 좋지 않음을 확인한 태진은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중한 사태에 무릎을 꿇으며 그들에게 비보를 알렸다.

 

 “ 폐하. ”

 

 “ 무슨 일이냐. ”

 

 “ 황자마마께서........ 황자마마께서 사라지셨사옵니다...! ”

 

 쨍그랑.

 

 화연이 들고 있던 잔이 다과 그릇 위로 떨어지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의 청과 화연에게 태진은 다시 한 번 비참한 현실을 고했다 .

 

 “ 황자마마께서.... 사라지셨사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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