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죽여주세요.”
베니트가 말했다.
아무렇지 않게… 아니, 오히려 부탁을 한 여인을 다정하게 바라보면서.
“어째…서….”
당연히 여인은 당혹스러웠다.
그녀의 이름은 레니. 레니 윈디아.
전 엘디니 백작가의 영애이자, 베니트 윈디아의 아내.
…그리고 자신의 가문을 학살한 ‘마녀’로, 처형을 하루 앞둔 지금. 베니트의 의해 탈옥하게 되었다.
“…미안해요, 레니.”
어째서 이 사람은 자신에게 사과하는 걸까……, 어째서 자신을 구해주는 거지? 그리고 왜……
나에게 자신을 죽여달라고 부탁하는 걸까.
레니는 그의 행동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레니와 베니트는 서로 사랑해서 만난 것이 아닌, 정략약혼. 자신들의 집에 어른이 멋대로 정한 것이고, 실제로 둘은 서로의 존재를 안 것은 불과 1년 전이었다.
레니는 처음부터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서로 알게 된지도 혼인 바로 몇 개월 전에 만난 여인이 뭐가 그리 좋다고 다정하게 대해준 걸까, 어째서 자신이 생명을 해친 장면을 목격했는데 경멸은커녕 자신을 걱정하는 걸까,
대체 왜…… 죽어 마땅한 자신을 구해놓은 주제에 자신을 죽여달라고 하는 걸까.
레니의 사고로는 도저히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녀는 그와 특별한 정도, 사랑도, 그 무엇도 나누지 않았다. 혼인 후에도 방은 따로 인데다 베니트가 레니를 찾아오지 않는 이상 그녀가 먼저 그를 찾는 일은 없었다.
그저 없는 사람인 마냥 조용히…… 그게 레니의 하루일과다.
저런 음침하고 기분 나쁜 여자 따위는 그냥 내버려두면 됐을 텐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매일매일 다가가 말을 걸고, 꽃을 주고…… 손을 내밀어 줬고, 모두들 마녀라고 매도하는 자신을 혼자만이 아니라며 감싸주었다.
“왜…… 당신은, ……어째서.”
떨리는 음성으로 레니가 물었다.
무감각한 그녀의 눈동자는 크게 흔들리며 이슬을 맺고 있었다.
“살아줬으면 하니까요.”
베니트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한쪽 손으로는 그녀의 손을 잡고, 나머지 손으로는 그녀의 눈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며, 아까보다 더 다정하게 그녀를 보며 말했다.
“당신이 살아줬으면 해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 가능한 행복하게. 제가…… 당신을, 레니를 지켜주고 싶지만 제가 곁에 있다면 그건 오히려 레니에게 독이 될 테니까요. 미안해요, 레니. 당신을 지켜주지 못해서, 당신의 곁을 마지막 까지 있어주지 못해서.”
그렇게 말하며 그는 한쪽 무릎을 꿇으며, 소녀의 오른손을 양손으로 다정하게 잡았다. 어두운 숲속, 달빛이 희미하게 두 사람을 비추었다.
“저를 죽여주세요. 그리고 도망쳐요. 이 나라를 떠나,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레니는 마법사니까 신분을 숨기고도 충분히 살 수 있을 거예요.”
작은 단도가 달빛에 닿아 빛을 사방으로 반사시켰다.
달빛에 비추어진 레니의 표정은 여러 감정이 섞여있었다.
그녀의 볼을 타고 눈물이 하나둘씩 떨어져나갔다.
베니트는 가만히 단도의 끝을 자신의 심장에 가져다 놓고는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고, 그녀는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 힘겨운 선택에 베니트가 웃으며 대답했다.
“고마워요.”
푹.
그 말과 함께 그의 심장에 날카로운 단도가 박혔다.
고통스러울 텐데도 그는 신음하나 흘리지 않으며, 점점 빛을 잃어가는 눈동자 안에 그녀를 담았다.
“……레니. 잠깐만 이리로….”
베니트가 레니를 향해 손을 뻗으며 말했다.
이 이상 움직일 기운도 없는 그가 어쩔 수 없이 그녀에게 부탁했고,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그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는 피가 묻지 않은 손으로 그녀의 뺨을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런 상황에 할 짓은 못되지만, 봐주세요.”
라고 말하며, 그는 그녀의 뺨에 입맞추었다.
……이건 그들에게 있어서 결혼할 때를 제외한 처음이자, 마지막 애정표현이었다.
레니의 동공이 활짝 열린 채 그를 바라보았다. 베니트는 그런 그녀를 향해 인사했다.
“고마…워요… 그리고………”
말을 마친 그는 그대로 쓰러졌다.
더 이상 움직이지도, 숨을 쉬지도 않는다. 따뜻한 그의 손은 점점 차갑게 식어갔다.
레니는 그의 시체를 가만히 바라보다,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녀가 사라진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시체는 그녀를 잡기위한 수색대를 통해 발견되었다.
그 시체는 무사히 윈디아 가문에 갈 수 있었고, 머지않아 그의 장례식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장례식이 이루어진지 단 이틀 후.
『마녀, 레니 윈디아(전 레니 엘디니).
처형 하루 전 탈출한 그녀가 다시 돌아와,
이번에는 죽은 남편의 가문을 파멸시킨 뒤, 그 자리에서 자멸하다.』
원래의 윈디아 가문의 저택이 있던 장소에 모든 사람과 함께 시체로 발견되었다.
발견 당시 저택이 있던 자리는 공터가 되어버린 채, 널브러진 시체와 함께 심장에 ‘단도’가 꽂힌 채 평온한 미소로 잠들어 있었다.
그 단도는 베니트 윈디아의 심장에 꽂혀있는 단도와 똑같은 거였고, 자연스레 그의 죽음의 원인도 그녀의 짓임임을 확정했다.
사람들은 마녀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며 당장 시체를 화영하라 소리쳤고, 다른 귀족들과 왕도 그 의견에 찬성의 다음날 마을중앙에서 마녀의 화영을 집행했다.
거센 불길의 그녀의 시체가 타들어간다.
더 이상 말도, 움직일 수 없는 시체임에도 사람들은 불길하다며 손가락질하고, 돌을 던졌다.
그렇게 그녀의 두 번째 죽음은 마녀로써 죽었다.
………하지만.
첫 번째 만큼은 마녀가 아닌,
한명의 ‘소녀’로써 죽음을 맞이했다.
그것만으로 그녀는 썩 나쁘지 않은 삶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다음이란 게 있었다면 당신의, 베니트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었어.’
그렇게 생각하며, 레니는 영원히 깨지 못할 잠에. 빠져들었다.
온 세상이 새까맣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이상해.
하지만…… 따뜻해.
난 분명 죽었을 텐데.
죽음이란 게 이렇게 따뜻할 리가 없을 텐데…….
………….
이상하게, 주변이 시끄러워.
느낌이 이상해.
뭔가…… 축축하고, 비릿한 냄새가…….
웃, 분명 어두웠는데 갑자기 빛이…… 눈……부셔.
“……으앙.”
‘눈부셔’라고 말하려하자, 내 입에서는 말이 아닌,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원래와 전혀 다른 목소리와, 원래 하려던 말과 다르게 반응하는 입에 혼란을 겪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나를 안아들으며 이렇게 말했다.
“축하합니다, 어여쁜 공주님이세요.”
이건……대체……
뭐야??!!
“으아앙??!!!”
이번에도 하고자하는 말 대신, 울음소리가 나왔다.
어떤 여자가 나를 데리고 어떤 남자와 여자에게 데려다주었고, 여자와 남자는 눈물을 흘리며 나를 안았다.
뭐지? 난…… 분명, 죽었을 텐데.
왜………?
지금 상황에 혼란스러운 나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야 이게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이전의 생의 기억을 간직한 채,
다시 태어났다.
이것밖에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