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후, 이틀 내내 상처를 치료하는 데에만 시간을 온종일 쏟아 부었고, 루나 역시 피에르를 간호하는 데에만 모든 신경을 집중한 가운데, 이제 서야 정령 마력이 조금 회복되었음을 느낀 피에르가 후우- 한숨을 쉬었다.
근데 아무래도 스프링 몽키들의 수가 심상치 않게 늘어났을 때 눈치 챘어야 했던 걸까. 아님 루나가 자신의 상처 치료를 도와줬다는 용병을 소개해줬을 때부터 알아챘어야 했던 걸까.
침대에 몸을 뉘이자 마자 곯아떨어졌던 그는 사실 상 상당히 늦게 일어났고, 너무 깨어나지 않으니까 걱정이 된 루나가 아예 사람들에게 울면서 부탁했다고 한다.
...몇몇 사람들이 걱정은 해주었지만, 대부분 루나의 머리색과 눈 색만 보고 기피하는 듯했었다고...그런 와중에 짠- 하고 나타나 도와준 사람이 바로 눈앞에 있는 이 여자 용병이라는 소리...인가.
으음, 부디 루나가 저가 깨어있지 못했을 동안 용병에게 자신이 정령사라는 걸 다 까발린 상태이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조심스레 피에르가 입을 열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같은 용병끼리 돕고 살아야죠. 그나저나, 그렇게 강하다면서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설마 루나가 정령에 대한 얘기를 다 한 걸까? 걱정이 든 피에르가 조심스레 물으려 할 때, 여 용병이 말을 이었다.
"루나에게 들었어요. 사실, 강하단 것 정돈 굳이 저 아이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답니다? 가뜩이나 스프링 몽키가 증가되던 추세인데 바로 그곳에서 무사히 마을에 오셨으니 보통 강한 게 아니겠죠."
"아니...그러니까...그게...으음...루나에게 어디까지 들으셨죠?"
걱정하며 피에르가 그렇게 물었다.
"어디까지 듣다뇨? 그냥 자신을 지키려다 많이 다쳤다고만 하던데요?"
사실이었다. 어찌나 울어대는지 너무 안타까워서 도와줬던 그녀가 당연히 겉보기엔 약해보이는 피에르가 어떻게 해서 무사히 마을까지 내려올 수 있었던 걸까. 궁금해서 물어보긴 했었다.
그런데 물어볼 때마다 루나가 엉엉 울면서 얘기하는 통에 도통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솔직하게 그런 말을 여 용병이 피에르에게 전해주자, 피에르는 적지 않게 안도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랬군요. 아무튼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제 밖에 나왔다면서요? 그럼 아직도 용병 모집하고 있는 거 알고 계시죠?"
"네..."
지금 당장 여관에 용병들이 가득한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몬스터 급증으로 인한 용병 대모집. 이래서 처음 여기 왔을 때 여관 자리가 생각보다 적게 남아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피에르는 어쩐지 여 용병의 다음 말이 예상이 가서 속으로 신음을 흘렸다. 혹시 빼도 박도 없이 도움을 줘야할 판인건가 싶어 눈이 살짝 떨리는데, 여 용병에게선 의외의 말이 튀어나왔다.
"뭐... 아직 다 낫지 않으신 것 같으니까 같이 참여해달라고는 말 안할게요."
의외군. 강하다고 인식했다면 당연히 참여할 것을 권할 줄 알았는데...피에르가 그런 생각을 하는데, 타이밍 기가 막히게도 대신. 하고 말을 잇는 여 용병.
"대신! 광대 씨에게 쓴 약초들, 상당히 귀~한 거라서 말이죠~ 그러니 효과가 잘 들어서 하루 만에 밖에 나다닐 정도가 된 거 아니겠어요?"
그러면서 당당히 손을 내미는 여성. 이 빨강머리 아가씨....은근히 돈을 밝힌다던가...뭐 그런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헛웃음을 흘린 피에르가 고갤 끄덕였다.
"가능한 빨리 갚죠."
그렇게 해서 여용병과의 대화는 일단락되었다. 아직 아침을 안 먹었기에 뒤늦게 시키려는데, 루나의 표정이 좋아 보이지 않음에 피에르가 넌지시 묻는다.
"어디 안 좋으니?"
"아니, 그렇진 않아요...그보단...여기 사람들 많아..."
대인기피증일까?. 몸을 움츠리는 루나를 보며 피에르는 생각했다. 백발 적안에 대한 근거도 없는 미신 탓에 그간 마을에서 홀대받아왔으니 그런 것이 생기는 것도 무리는 아닐 거라고.
아님 의외로 도움을 준 것이 마을 사람이 아니라 용병이었다는 점에서 여기서도 알게 모르게 백발 적안을 홀대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기실 그 미신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것이니까. 그러나 루나의 생각은 조금 다른 듯했다.
"피에르는 뭐랄까...친숙한 기분이 들어요...처음 만났을 땐 미처 느끼지 못했는데, 지금은 왠지 그런 게 느껴지는 것 같아. 뭐랄까...다른 사람들은...그러니까 여기 사람들도...뭔가 차가운 것 같은데, 피에르는 그런 느낌이 전혀 없어요. 오히려 따뜻해요. 그리고 따뜻하다고 느끼니까...어느 샌가 친숙한 느낌이 들어요. 나도 이걸 뭐라고 해야 할 지 잘 모르겠는데...아무튼 피에르는 친숙해."
"나도 그래."
빙긋- 피에르가 웃었다.
"정말?"
"흐음, 사람들이 차가운 건 잘 모르겠지만, 일단 나도 친숙함은 느꼈단다."
"정말? 정말요?"
미소 지으며 묻는 말에 그럼, 하고 대답한 피에르가 마주 미소 지었다.
"아마 정령사가 느끼는 감일 거란다."
"정령사가 느끼는 감?"
고갤 갸웃 기울이는 루나에게 피에르가 설명한다.
"정령사는 다른 정령사를 알아볼 수 있거든. 나 역시도 루나를 발견해서 왔다 기보단, 루나가 가지고 있는 정령의 자질을 느끼고 온 것에 가까워."
그러면서 스윽- 루나의 가슴 정 중앙으로 제 검지를 가져갔다. 톡- 맞닿는 촉감에 루나가 두 붉은 눈을 끔뻑였다. 피에르가 말을 이었다.
"보통은 계약까지 맺은 사람끼리만 알아볼 수 있다지만, 아직 계약 맺지 않은 사람도 조금은 느낀다고 해. 그래서 정령사는 정령사만이 알아볼 수 있다고도 하지."
"그럼, 나, 루나도 정령사 인거에요?"
초롱초롱 빛나는 루나의 눈에 빙그레 미소 지으며 피에르가 대답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정령사란다. 누구나 정령과 계약을 맺을 수가 있지.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씩 정령의 파동과 일치하는 파동을 가진단다. 다만, 사람들이 모르고 있을 뿐이지."
피에르의 말에 루나가 환-히 웃었다.
"정말? 하지만 정령사는 마법사보다도 더 보기 드물다고 했는걸!"
루나의 말에 피에르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지, 드물지. 하지만 무엇보다도 지금은 그 수많은 정령들 대부분이 사라져서 더는 모습을 보이지 않게 되었단다. 물론, 나처럼 사라지진 않았으나 극히 드문 정령사도 있긴 하겠지. 하지만, 그것 말고도 소환자와 일치하는 파동의 정령을 소환하는 고대의 정령 소환진이 지금은 소실되고 남지 않았단다."
그나마 시끄러운 한복판에서 멀리 떨어진, 구석진 자리에서 조곤조곤 얘기하는 피에르의 말은 말하는 사람이 피에르 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루나에겐 신빙성 있게 다가왔다.
"지금은 왜 소실되었어요?"
"글쎄, 그것까진 나도 잘 모르겠구나. 어쩌면 우리에게만 사라진 것처럼 보일 뿐, 다 아직 살아있고, 우리들이 계약을 맺을 수 없게 된 건지도 모르지."
"그럼...나도 정령 소환할 수 있어...? 피에르처럼 정령과 계약 맺을 수 있어요...?"
루나의 물음에 피에르는 재차 빙그레 웃었다. 곧 주문한 식사가 나옴에 따라 식사를 하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반 정령 소환 진은 현재에도 있단다."
"앗, 그럼 할 수 있는 거죠?"
초롱초롱해진 루나의 붉은 눈을 보며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을 슬쩍 지어보이자, 부정적인 답을 직감한 듯 표정이 서글퍼지려는 루나.
"현재 일반 정령은 대표적으로 4대 원소 정령이 있지만...루나는 그보단 다른 정령과의 파동이 더 잘 맞는 것 같구나."
"다른 정령과의 파동이요? 정령사는 그런 것도 느낄 수 있어?"
"보통은 느낄 수 없지만, 정령사가 아닌 정령이라면 느낄 수 있는 것이 있지. 사실 일반 4대원소라면 메를린과 프리드가 모를 리가 없거든. 그들도 루나가 정령사여서 아늑한 느낌을 받긴 한다고 하는데...4대 원소 정령 중 하나일 경우 유독 그 색이 짙어서 아직 계약을 맺지 않은 사람이라도 알 수 있다고 하는구나."
피에르의 말이 어려운지 으음...하며 연신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은 루나가 곧 질문한다.
"그 색이 뭐에요?"
"정령이 바라보는 세상은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과는 상당히 틀리다고 해. 그리고 실제 색이 보인다더구나. 아마 그 색을 얘기하는 걸 거란다."
이마저도 추측일 뿐 확실하지 않았다. 그만큼 정령이나 정령 계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적었다. 심지어 루나가 질문한 것들은 사실 상 그 자신밖에 모르는 내용이기도 했다. 적어도 '인간' 중에서는 말이다.
"그렇구나..."
루나는 주문한 음식으로 나온 계란찜을 마저 먹으면서 생각에 빠졌다. 하지만 이내 빙긋 웃었다. 자신도 정령과 친구가 될 수 있다니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그렇지. 스마일, 스마일. 웃으니까 얼마나 보기 좋아?"
빙글빙글 웃은 피에르가 그렇게 얘기하자, 루나가 "피, 언젠 내가 안 웃었나" 하고 작게 투덜거렸다. 식사를 마저 하면서 루나가 힐끗 주변을 다시 둘러봤다. 모르는 사람들 투성이었다.
저마다 갑옷을 입고 있거나, 아니더라도 여행자 복장을 입은 사람들 서로 이야길 나누는 모습들. 그 중 여성은 매우 찾기 힘들 정도로 보기 드물었는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저들 모두 피에르나 자신에게 눈길 한 번 주지도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즉, 뭐라 얘기하든 관심이 없다는 말. 관심 끌 만한 일을 벌이면 관심이야 갖겠지만, 루나는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던 차, 피에르가 물음을 던졌다.
"뭐 찾는 거라도 있니?"
"으응...아니, 여기까지 소리가 들려서 자꾸 돌아보게 돼는 것 같아."
"이런, 남 얘기 엿듣는 거 아니란다."
피에르가 짐짓 진지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자, 그런 거 아니라고 루나가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다행히 그 소리는 용병들의 목청 큰 목소리들에 금세 묻혔지만, 루나의 존재를 알게 된 일부 사람들은 연신 루나를 힐끔 힐끔 바라봤다.
"쟤, 쟤, 처음에 여기저기 부탁하고 다니던 꼬마지?"
"맞아, 근데 저 사람은 왜 저런 꼬마랑 같이 다니는 거지? 지켜주면서 여행하는 것도 힘들 텐데."
저마다 수군거리는 이도 있었다. 실제로 루나 같은 어린 아이를 데리고 여행가는 것은 매우 드물었기 때문에 힐끔, 힐끔 보는 사람은 은근히 많은 편이었다.
아마 귀족 가의 자제라면 분명 마차에 호위기사들 등도 대동하고 갔을 테지만, 루나의 모습은 그런 것조차 아니었으니까. 이는 여기에 도착하고서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런 시선이 반복된 거지만, 루나는 아직도 익숙해지지 못한 듯했다.
한편 피에르는 내심 놀리듯 얘기한 것을 후회했다. 이목이 쏠릴 때는 자신이 묘기를 보여줄 때만으로도 족했다. 하지만 다행히 오래도록 계속 시선을 주는 이는 없었다. 다들 금세 저마다 얘기하는 것이 아무려면 뭐 어떠냐는 식이었다. 루나는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된 이후 얼마 안 가 이미 피에르의 뒤에 숨은 지 오래였다.
잠시 후, 아침 식사를 다 마친 그들은 창가 쪽 자리로 옮긴 뒤, 불과 아까까지만 해도 시끌벅적했던 식당을 둘러보았다. 그렇게 시끄러웠던 곳이 지금은 한산했다.
갑자기 수가 급증한 스프링 몽키들. 이들의 토벌에 동참할 용병을 모집한다는 내용이 중앙 광장 게시판에 기재되어 있었다. 어제 상처를 치료하고 밖에 나가서 그것을 확인했던 피에르는 고민에 빠졌다.
예정에 없던 루나가 일행으로 되면서 추가비용이 들 것을 생각하면 돈이 보다 금세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진 돈이 넉넉한 편이니 이 부분은 당장 신경 쓸 부분은 아니었다. 문젠 정작 루나가 정령과 계약을 맺는 일이었다. 먼저 소환하기 전에 필수적으로 배워야 할 것. '마나 느끼기'가 있지만 그것도 배우면 그만.
문제는 자신이 메를린을 소환했던 그 정령 소환 진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프리드와 계약하는 데에 정령석의 힘을 빌렸다. 이마저도 파동이 그만큼 잘 맞아서 프리드가 나타났던 거였지, 루나는 어떨 지 확신할 수 없었다.
문양을 기억하고 있기라도 한다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일부는 그가 모르는 언어가 적혀져 있었던 데다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처음에 고대 마법진일 지도 모른다며 저마다 연구하고 자료 찾아보던 사람들도 자료로는 찾을 수 없음, 연구는 연구 조건 부족으로 금세 포기되었다.
연구를 하는 데에도 조금이라도 그 연구할 것에 대한 정보가 필요한 법인데, 그것조차 없기 때문에 '연구 조건 부족'인 것이다.
그렇게 판명 난 것을 그가 무슨 수로 기억을 한단 말인가? 심지어 소환진 자체도 작지 않고 커다랬기 때문에 따로 외우지 않는 이상 기억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서 결국 홀 바닥에 커다랗게 그려져 있던 마법진 같은 기하학적인 문양의 늪은 그저 실제론 별 의미 없는, 상징적인 것으로 굳혀졌다. 그리고 지금은 그마저도 볼 수 없었다.
제국이 그 자릴 갈아치우고 왕궁을 공사하면서 문양도 함께 사라져버리고 말았으니까.
그러고 보면 제 2의 고향이나 마찬가지인데도 가기 가장 꺼려지는 장소가 되었구나. 원래 왕궁이 자리해 있던, 지금은 탑지대로 바뀐 그곳. 문득 왕국 막내 공주에게 묘기를 보여주면서 즐겁게 웃었던 기억까지 떠오른 피에르의 눈은 차츰 아련함에 젖어갔다.
"피에르? 피에르!"
퍼뜩 루나의 부름에 정신을 차린 피에르가 뒤늦게 물었다.
"응? 왜 그러니?"
"피에르는 갈 거냐고 물었잖아...그..용병 모집하는 곳이요..."
"글쎄, 아니, 토벌에 동참하는 거라면 가지 않을 거란다."
"왜? 피에르 능력이면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아요?"
"조금 더 정확힌 내 능력이 아니라, 정령들의 능력이지."
피에르가 정정해주자, 루나가 그것을 또 정정했다.
"하지만 그 정령들이 힘을 쓰는 것도 결국 피에르가 써달라고 얘길 해서 쓰는 거잖아."
"그렇...지..."
얼떨떨한 얼굴로 피에르가 대답하자 루나가 방긋- 웃으며 얘기했다.
"그러니까 피에르의 힘이야. 피에르의 마법. 피에르는 광대니까, 피에로의 마법이 되려나?!"
"저기, 저기 잠깐만요. 방금 뭘 쓰고 뭔 능력이라고요?"
종업원으로 일하던 주근깨가 인상적인 소년이 다가와 물음을 건넸다. 제 또래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을 뿐인 소년이 뭐 어떻다고 또 제 뒤로가 쏙- 몸을 숨기는지. 낯가림이 심한 것 같은 루나를 보며 고개를 절레- 저은 피에르가 소년의 말에 대꾸한다.
"마법사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단다. 그러다 보니 그런 소리가 나온 거야."
"으음, 듣기론 분명 정령이란 말을 들은 것 같은데요."
"루나가 마법사와 정령사를 해깔려 하는 것 같아서 말이다."
"아아..."
그러면서 고갤 주억인 소년이 루나를 보며 역시 싱긋- 웃었다.
"네 이름이 루나라고 하는구나, 이름 정말 예쁘다. 난 체루라고 해."
말을 하며 피에르의 뒤에 숨어 있던 루나를 향해 슬쩍- 고개를 내밀어 확인해보려 했던 체루였으나, 루나는 그럴 때마다 연신 그를 피해 피에르의 몸을 결국 한 바퀴 돌았다.
"체루, 어제 나올 때 마구간 정리하고 나온 거 맞니? 평소보다 더 지저분해 보이는데!"
조금 높은 톤의 음성이 이 때 날아왔고, 그 말에 체루가 큰 소리로 대답했다.
"분명 다 정리하고 나왔는데요?"
"으이구, 한 번 더 정리해야겠다!"
아차, 하며 체루가 물었다.
"지금요?"
"나중에 한다면서 결국 잊어 먹잖니? 그럴 바엔 지금 해!"
한숨을 쉰 체루가 나중에 다시 보자는 말을 남기고 총총 마구간으로 향했다. 체루가 얼굴을 치우자마자, 찡그렸던 인상을 핀 루나는 빼꼼- 피에르의 옆으로 고개만 내밀었다. 그리곤 체루의 뒷모습을 향해 베- 하고 혀를 쏙 내밀었다.
"하하, 루나는 체루가 싫은가봐?"
"...여자 애면 몰라도 남자 앤 싫어요, 마을에서 걔네들이 얼마나 날 놀리고 괴롭혔는데!"
으음...혹시 루나를 좋아해서 괴롭힌 건 아닐까. 라는 허무맹랑한 생각을 한 것도 잠시였다. 이내 그런 미신까지 퍼진 마을에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다는 것에 헛웃음을 지은 피에르가 말을 꺼냈다.
"괜찮으면 마을의 다른 애들과 어울려보지 그러니?"
"응? 왜요? 피에르 어디 가게?"
"어디 갈 건 아니고...음...길거리 공연?"
그 말에 앗- 하고 외마디를 내뱉은 루나가 투지를 불태우듯 두 눈에서 불꽃마저 일으키며 얘기했다.
"나도 갈래!"
"...나 혼자 하는 거야."
"어차피 나도 구경만 할 거인걸!"
후우- 하고 한숨을 쉰 피에르가 단호히 얘기했다.
"안 돼."
거절당한 것이 다소 충격적이었던 듯, 단호한 피에르의 말에 루나는 충격 받은 얼굴로 멍-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