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시선을 한꺼번에 받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녀는 담담하게 앉아있었다.
"오늘은 첫 수업이니 수업은 없고 대신 조 사람들이랑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게만 해라. 대신 조별 과제는 오늘은 없다."
교수가 나가자, 다시 강의실은 소란스러워졌다. 서로 자기소개를 하고 연락처를 주고받기 시작한 거다.
천유강은 아직도 어색하게 앉아있는 조원들을 바라보았다. 여자 세 명에 남자는 천유강까지 합쳐 3명이었는데 남자 둘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반쯤 정신을 놓은 것처럼 멍하게 앉아 있었다.
'왜 이러지?'
아직도 교실에 있던 남학생들이 모두 자신의 조를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여자들은 늘 있는 일이라는 듯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자기소개를 했다.
"안녕하세요. 한 학기 동안 같이 수업해야 할 조원들이니 일단 통성명이나 하죠. 저는 국문학과 2학년 김미려라고 합니다."
"전 경제학과 2학년 정연실입니다. 우리 셋이 모두 친구예요. 잘 부탁드려요."
"그리고 전······."
세 번째 여자가 말을 꺼냈을 때 주변에 남자들이 모두 침을 삼켰다.
"군사학과 2학년 수화진이라고 합니다. 한 학기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수화진이라는 여자의 말이 끝나자 다른 남자 조원 둘의 내색을 애써 하지 않았지만, 얼굴이 새빨개지며 좋아 죽으려고 했다.
“아, 안녕하세요. 전 정한성입니다. 정치외교학과 3학년 2학기에요.”
“전! 박준영입니다! 경영학과 4학년입니다.”
남자들은 기합이 팍팍 들어가 있는 목소리도 크게 말했다. 아무래도 기쁜 감정을 숨길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다음은 천유강 차례였다.
"전 2학년 천유강이라고 합니다."
천유강의 말에 김미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느 계열이세요?"
"무과입니다."
"그래요? 문과 계열처럼 생겼었는데?"
그때 수화진이 말을 했다.
"저기, 미안한데 자리를 옮기자."
"응? 아~ 미안."
"아니 미안할 건 없고······, 저기 죄송한데 자리를 옮기죠, 마침 점심시간이 됐으니 식사라도 하면서 얘기해요."
수화진의 말에 다른 두 남학생은 말도 못 하고 고개를 끄덕였고 천유강 역시 긍정을 표했다.
여자들이 인도한 곳은 사방이 꽉 막혀 있는 음식점 건물이었다. 막상 음식점 안에 들어와도 이름을 서로 알고 전화번호를 주고받는 것밖에 할 것이 없어서 어색하게 밥만 먹었다.
'밥은 맛이 있군.'
천유강은 밥을 게눈 감추듯이 먹어 치워버렸고 그 모습을 보던 김미려가 웃으며 말을 했다.
"천천히 먹어요, 체하겠어요."
"습관이 돼서 이렇습니다."
"습관이요?"
"네."
천유강은 말을 최대한 짧게 하고 밥을 먹는 데에만 집중했다.
사실 사교성이 적은 천유강으로서는 이렇게 처음 보는 사람들과 오래 자리에 앉아 있는 거 자체가 고역이었다.
"······."
여자들이 자신을 동물원의 원숭이 보듯 신기해하자 천유강은 밥이 소화가 안 되는 것 같았다.
"저, 죄송한데."
"네?"
"제가 무슨 결례를 했나요?"
“네? 그게 무슨 말이죠?”
천유강에 말에 놀란 건 오히려 여자들이었다.
“아까부터 계속 저를 의식하고 계신 것 같아서요.”
여자 조원들이 천유강을 힐끗거리며 봤지만, 무공도 익히지 않은 여자들의 시선을 천유강의 기감이 잡아내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것이 불편하다기보다는 혹시 또 자기가 무슨 잘못을 하지 않았는지 걱정했다.
“제가 사람들과 교류하는데 서툴러서 제가 혹시 예의에 어긋난 행동을 해도 이해해 주세요.”
아직 사람들과의 교류에 서투른 천유강이다. 최대한 정중하게 행동하려 노력하지만, 또래 여자들과 친밀감을 유지하는 건 늘 어려웠다.
"아~ 절대 아니에요. 그냥······, 약간 신기해서요."
"뭐가 신기한 거죠?"
정연실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 그러니까. 혹시 남자를 좋아하시나요?”
“네?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정연실의 말에 김미려는 킥킥대며 웃기 시작했고 수화진은 난감한 듯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어······, 그러니까 남성을 이성적으로 좋아하시는지······.”
상황에 맞지 않는 질문이었지만 천유강은 담담히 대답했다.
“아닙니다.”
“아니면, 시력이 매우 안 좋거나······.”
“그만해!”
참다가 지친 수화진이 정연실의 말을 막아서기 시작했고 영문을 모르는 천유강은 묻는 대로 순순히 대답했다.
“전 시력이 좋은 편입니다. 어려서부터 산에서 살다가 중학교 때 도시에 와서 눈이 나빠질 틈이 없었습니다.”
"혹시 그러면 여기 제 친구 잘 모르세요?"
김미려가 수화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왜 이래? 하지 마."
"신기하잖아. 이런 남자, 너하고 같이 다닌 이후에 거의 처음인데. 혹시 모르세요?"
"예?"
천유강은 수화진의 얼굴을 보며 내가 알아야만 하는 사람인가? 라고 생각하며 눈을 가늘게 떴다.
"글쎄요. 처음 보는 얼굴인 것 같은 데요. 혹시 수업 같이 듣는 것이라도 있나요?"
"아니네요. 제 친구 말에 신경 쓰지 마세요."
수화진은 황급히 손을 내 저었다.
"와~ 천유강 씨는 여러모로 신기한 면이 많네요. 여자인 저도 가끔 화진일 보면 떨리는데, 아앗~ 왜 그래?"
수화진에 꼬집힌 김미려는 아픈 옆구리를 문질렸다.
"그만해."
수화진이 짐직 화난 기색이 보이자 김미려는 혀를 날름 내밀었다.
"히히 알았어."
"저······, 죄송하지만 저 수업이 있어서 가봐야겠습니다."
다음 수업 시간이 되었기에 천유강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벌써 가세요?"
"예. 다음 수업에 다시 뵙지요."
천유강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모두 인사를 나누고 자리를 떴다.
세 시간 후
수업을 모두 마친 천유강은 집에 돌아갈 채비를 했다.
쥬신 대학교의 안쪽, 인적이 뜸한 곳을 지나고 있을 때, 천유강은 수상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인기척?'
보기에는 아무런 사람이 없었지만, 분명히 나무 위와 땅 아래에서 숨어서 기척을 지운 인기척이 여럿 느껴졌다. 공교롭게도 그 위치는 천유강이 지나가야 하는 길에 있었다.
꺼림칙한 면이 없지는 않았지만,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기고 천유강은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천유강이 사람들이 은신하고 있는 곳의 정중앙을 지났을 때, 숨어있는 자들이 날카로운 기세를 내뿜는 것을 느껴졌다.
더 모른척하기도 힘들어지자 그 자리에 우뚝 서서 말했다.
"혹시 저에게 무슨 용무라도 있으신가요?"
그러자 주변이 술렁거렸다.
"들켰다. 쳐라!"
한 남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나무와 땅속에서 숨어 있던 사람들이 한순간에 뛰쳐나왔다. 그들의 손에는 모두 험악하게 생긴 둔기들이 들려 있었다.
아무래도 좋은 의도로 찾아온 것은 아니라 생각된 천유강의 급히 내공을 전신에 두르기 시작했다.
‘살기는 없는데.’
습격자들이 노리는 것은 천유강의 팔이나 다리 부분이다. 가지고 온 무기들도 칼 같은 날붙이가 아닌 조잡하게 생긴 몽둥이 같은 둔기다.
그들은 모두 일류가 넘는 무위를 지닌 이들로 암습 실력도 수준급이었지만 그 정도에 당할 만큼 녹녹한 천유강이 아니다.
일단 천유강은 지둔술로 땅속을 통해 슬그머니 다가온 사람이 나오지 못하게 땅을 강하게 밟았다.
쿵!!!
딱딱한 대지를 통해 천유강이 내뿜는 기파가 땅을 타고 사방으로 스며들었다. 곧, 땅이 거세게 울리고 땅이 지진이라도 난 듯 갈라졌다.
"악~"
땅 밑에 숨어있던 습격자들은 사방에서 조여 오는 기파에 내장이 뒤틀리고 파열되었다. 그들은 무력한 상태 그대로 생매장이 되었다.
땅에 있던 자객들이 아무도 움직이지 못하자 이번에 몽둥이와 봉을 든 습격자들 네 명이 나무 위에서 떨어져 내렸다.
자객들이 천유강의 사방을 포위하고 타이밍도 절묘했기 때문에 천유강이 꼼짝없이 당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천유강은 급박한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대응했다.
천유강은 뻗어오는 봉의 창대를 손으로 잡아 날아오는 힘을 이용하여 야구 방망이처럼 옆에 다른 두 명을 향해 휘둘렀다.
퍽!
"크악!"
서로 몸이 부딪친 세 명이 땅으로 굴렀다. 몸을 숙여 날아오는 몽둥이를 피한 후에 그것을 잡고 있던 손목을 발로 차버렸다.
"큭!"
손목을 부여잡고 있는 남자의 명치를 발로 차서 앞으로 고꾸라트렸다.
"으악!“
어느새, 공원에 서 있는 사람은 천유강 혼자였고 나머지는 모두 공원에서 구르고 있었다.
천유강은 아직 정신이 있는 습격자의 목을 잡고 들어 올렸다.
"켁~ 켁~"
"왜 나를 공격했지?"
"켁~ 몰라~ 켁~ 난 명령만 받았······, 켁~ 이것 좀 놔줘."
그 말을 들은 천유강은 손의 힘을 약간 풀어 말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무슨 명령?"
"몰라~ 그냥 혼만 내주랬어. 죽일 생각은 없었어. 정말이야."
남자는 새빨개진 눈으로 천유강에게 자비를 구했다. 습격했다가 오히려 역습을 당했으니 상대의 손속에 따라서 목숨까지 위협받는 상황인 것이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의뢰를 받을 때는 의뢰자들의 정체나 사정 같은 건 전혀 모른단 말이야. 단지 푼돈을 벌려 했을 뿐이야. 진짜라고.”
남자의 말에 천유강은 기운을 담아 남자를 쳐다보았다. 어지간한 사람은 그 기세를 받는 것만으로도 숨이 멎을만한 강렬한 기운이었다.
다시 남자의 정신이 혼미해졌고 아는 모든 것을 말하려고 했을 때, 다시 뒤에서 강력한 기운이 느껴졌다.
"누구냐?!"
잡은 습격자를 놓고는 급히 옆으로 피하자 날아온 비수가 천유강을 스치고 땅에 박혔다. 이번에 느껴지는 기세는 전의 습격자와는 질이 달랐다. 최소 절정의 기운이다.
날카로운 비수가 다시 사방에서 날아왔다.
'둘.'
절정의 고수가 둘이나 천유강을 노리고 있다. 혹시 다른 누군가가 있는지 기파를 흘리려고 할 때, 둘이 동시에 천유강에게 쇄도했다.
팟!
둘은 모두 혹독한 훈련을 겪은 자들이었다. 한 뼘의 단도를 들고 있었지만 그것으로 펼치는 단도술은 비범했고 금세 천유강의 손발이 어지러워졌다.
엄밀히 따져서 천유강과 두 명의 암습자 모두 절정의 고수다. 하지만 같은 절정의 기량이라도 그 안에는 천지 차이만큼이나 커다란 간격이 있다.
퍽!!
천유강이 단도를 맨손으로 잡고 동시에 팔꿈치로 한 명의 명치를 뚫을 듯이 찔렀다.
"우윽!"
괴로워하며 뒤로 물러나는 자를 뒤로하고 나머지 암습자의 가슴을 손톱으로 그었다.
팟!
암습자의 검은 무복이 찢어지고 네 줄기의 상처가 크게 났다. 조금만 깊었다면 내장까지 나올 만한 상처다.
커다란 고통에 신음을 내며 뒤로 물러났으나 천유강이 더 빨랐다. 다리를 휘둘러 습격자의 갈비뼈를 부쉈다.
"크악!!"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며 크게 휘청거렸으나 용케 넘어지지 않았다. 역시 고도의 수련을 겪은 자들이다.
"칫!"
명치를 맞고 뒤로 물러난 습격자가 품에서 주먹 크기의 무언가를 꺼내서 바닥에 던졌다.
퍽!
동그란 물체가 깨지면서 하얀 연기가 사방으로 뿜어져 나왔다. 사람에게 해로운 독일지도 모르니 천유강은 일단 물러서서 내기를 몸 안에서 돌렸다.
소주천을 하면 미량의 독도 몸 밖으로 내보낼 수 있다. 하지만 몸에서 느껴지는 불순한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연막탄이었나?"
흰 연기가 사라졌을 때는 이미 천유강을 습격했던 암습자들의 모습이 사라진 뒤였다. 아까 천유강에게 당한 자도, 땅속에서 기절한 자들도 찾아볼 수 없었다.
"누구지?"
일류의 무인들이라면 길거리에 흔한 경지는 아니지만 돈을 준다면 고용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처음에 천유강이 제압한 자는 그의 말대로 몇 푼 받고자 벌인 일일 거다.
하지만 뒤에 나타난 자들은 수준이 달랐다. 문제는 이들이 단지 뒤처리 조라는 거다.
'도저히 습격자들의 의도를 모르겠네.'
둔기를 든 처음 습격자들의 말대로 천유강을 단지 혼내 줄 생각으로 온 거 같다. 하지만 천유강은 다른 사람과 직접적인 악연을 맺은 적은 없다.
‘없진 않나?’
국정원에서 전화로 윤세원에게 자신들이 한 일을 알려주었다. 듣기로는 고문하는 시늉만 했는데도 오줌을 지리며 아는 모든 것들을 토해냈다고 했다. 사실 겁주려 했지 정말 고문할 생각은 없었다.
더 조사했지만, 정말 디멘션 월드의 사소한 악연 때문에 벌인 일이었다. 재벌 2세의 치졸한 복수가 전부다. 천유강이 풍신의 아들이라서 행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해지자 훈방 조치했다.
호되게 혼났으니 앞으로 천유강 쪽으로는 오줌도 안 쌀 거다. 그가 이런 일을 벌일 리 없다. 만약, 천유강의 정체를 알고 있는 자라면 고작 저런 실력의 자들을 보내지 않았을 거다.
천유강의 세계 최강의 무공으로 꼽히는 천부경을 염제에게 직접 사사 받았다. 만약, 천유강을 노린 거라면 지금 습격자보다 훨씬 더 많은 수를 동원해야 했다.
복잡해진 머리로 집을 갔을 때 TV 뉴스에서 요즘 들어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