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말해준 건물에 들어가 가방을 옆에 두고 홀로 자신의 몸을 묶었다.
‘이런 것에도 소원 스킬을 쓰다니…….’
밧줄을 혼자 움직여 자신을 몸을 묶는 것은 또 색다른 경험이었다. 내력 없이는 절대로 풀 수 없을 정도로 꽁꽁 묶은 후에 청 테이프으로 입을 막고 두려운 척 연기하며 가만히 앉아 있었다. 얼굴은 변혁민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몇 분간을 홀로 있었다. 혹시 경찰을 너무 빨리 불러서 발각된 것은 아닌지 걱정하고 있을 때였다.
툭!
인기척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가까이 와서 보니 검은 복장을 한 남자들이었다.
‘둘 다 절정.’
놀랍게도 천유강을 데리러 온 남자 둘 모두가 절정 초반의 무인들이었다.
이번에는 어중이떠중이가 아닌 모양이다. 드디어 꼬리를 잡았다는 생각도 했지만 이런 일에 절정의 무인들이 투입된 것을 보니 적들의 역량이 보통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천유강은 절정 후반 초절정 초반의 경지를 이룬 무인이다. 천유강이 작정하고 경지를 숨기고자 하면 저들이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변혁민 맞나?”
남자가 무심하게 묻자 천유강은 두려운 척 연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흠~ 멀쩡하군. 좋아, 데려간다.”
그들은 천유강을 둘러업고 가지고 온 차량 트렁크에 짐 실 듯이 실었다. 그리고 다시 몇 분을 차로 이동했다.
끼이익!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곳.
덜컹!
트렁크 문이 열리고 다시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내려.”
강압적인 태도에 주눅 든 척하며 조심스럽게 차량 트렁크에서 내려왔다. 내리자마자 보이는 곳은 굴뚝에서 뿌연 연기가 나고 있는 거대한 공장이었다.
“이쪽으로 걸어.”
천유강은 남자가 알려주는 곳으로 고분고분히 이동했다. 안에도 무장한 병력들이 길목마다 지키고 있었는데 그중에서 절정의 무인들도 느껴졌다.
그렇게 이동한 곳은 공장 깊숙이 있는 어느 실험실 같은 곳이었다.
“데려왔다.”
안에는 하얀 가운을 입고 있는 연구진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노인이 천유강에게 다가와 눈꺼풀을 뒤집고 눈을 살폈다.
“음……, 멀쩡하군. 좋아, 평상시처럼 집어넣어.”
그 말에 남자들은 천유강은 옆방으로 데려갔다. 그곳은 사워 시설이 있는 곳이었다.
“씻어라.”
“네?”
“더러운 몸 깨끗이 씻으라고.”
“……네.”
여기까지 데려와 놓고는 몸을 씻기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지만 그냥 고분고분하게 몸을 씻고 나왔다. 몸을 다 씻으니 다시 남자들이 손짓했다.
“따라와.”
입을 옷도 주지 않고 따라오라 했다. 가릴 것 하나 없는 알몸으로 따라가니 어떤 커다란 방이 나왔다.
“이건…….”
거대한 방 안에는 믿지 못할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방안에는 이상한 액체가 담긴 시험관들이 수도 없이 있었는데 그 안에는 벌거벗은 사람들이 산소마스크만 쓴 채로 죽은 듯이 있었다.
이들이 바로 특이 반응을 보인 사람이었다. 변혁민의 딸처럼 약물에도 아무 반응 없는 사람들을 모아서 이렇게 실험체로 쓰고 있었다.
“축하한다. 네 딸 옆에 들어가게 되었군.”
천유강을 데려간 빈 시험관 옆에는 겨우 12살 정도로 보이는 작은 소녀가 마찬가지로 벌거벗은 채로 액체 속에 있었다.
“하~”
이 모습을 보니 오랜만에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다. 아무 잘못 없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시험실의 쥐처럼 쓰고 있는 놈들을 보니 살심이 솟구쳤다.
“뭐해! 빨리 들어가!”
남자 중이 하나가 천유강을 억지로 집어넣으려 손을 뻗었을 때 천유강이 그 팔을 잡았다.
우두둑!
“어?”
악력만으로도 절정 무인의 팔뼈가 으스러져 버렸다. 의문이 먼저였고 고통은 나중이었다.
“아아악!”
퍽!!!
소리 지르는 자의 턱을 강타해 쓰러트렸다. 이가 모두 나가고 턱뼈가 모두 으스러졌으니 앞으로 고기 먹을 때에는 이날이 생각날 거다. 그리고 천유강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퍽!
공력을 운용해서 남자의 단전을 망가트렸다. 부서진 단전을 복구하려면 엄청난 영약과 운이 필요할 거다. 그렇게 복구해도 본래의 무위의 반도 찾지 못하니 무인으로서의 생명은 끝난 것과 다름이 없다.
남자 하나를 패인으로 만든 시간이 0.2초도 걸리지 않았다. 다음 타겟은 상황 파악을 하고 천유강에게 봉을 내지르고 있는 다른 남자였다.
퍽!!!!
천유강의 주먹이 남자의 봉을 부수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다시 남자의 안면을 뭉개버렸다. 죽지는 않았어도 안면 뼈가 함몰되는 공격이었으니 얼굴에 철판을 깔아야지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할 거다.
남자가 쓰러지기 전에 다시 천유강의 주먹이 남자의 단전을 향했다.
펑!!!
역시 단전을 파괴하니 남자가 힘없이 쓰러졌다. 남자의 입장에서는 기절해서 고통을 못 느끼는 것이 오히려 다행일 수도 있다.
“이제 어떻게 한담.”
이곳에 보이는 사람은 대충 세어도 몇백은 된다. 천유강 혼자서 짊어지고 갈 숫자가 아니다.
“일단 숨어야겠지.”
이곳으로 오는 차량에 휴대폰을 몰래 숨겨 놓았다. 정부 요원에게 사정을 설명했으니 핸드폰의 GPS를 찾아오면 이곳을 찾아낼 수 있을 거다. 그때까지는 숨어있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일은 역시 천유강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위잉~ 위잉~
공장 안에 시끄럽게 경보가 울리기 시작한 거다.
“칫! 카메라가 있었나 보네.”
이곳 어딘가에 CCTV가 있어 천유강의 행동이 모조리 파악된 거다. 이러면 또 말이 달라진다.
“농성해야 해.”
여기는 막다른 곳이니 뒤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단지 이곳에서 싸우다가는 시험관 안의 사람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으니 하나 앞의 복도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화기를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긴 복도는 천유강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으나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다.
역시나 발소리가 들리더니 무장한 병력들이 우르르 쏟아지기 시작했다.
“웬 놈이냐!”
“쏴!”
두두두두두!!!
총알들이 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는데 일반적인 총알이 아니었다. 날아오는 총알이 모두 철판도 종잇장처럼 뚫는다는 철갑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물론 총알에는 내기를 담을 수 없기 때문에 절정 무인의 방어를 뚫을 수는 없지만, 막기 위해 들어가는 마나 소비가 일반탄보다 몇 배는 더 많이 필요하고 강한 물리력을 지니고 있어 상대를 뒤로 밀리게 한다.
천유강도 피부에 내기를 담아 방어하는 경기공의 달인이기도 하지만 저 많은 철갑탄을 몸으로 받아낼 생각은 없다.
천유강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것은 경기공이 아니라 빠른 발이다.
파밧!
천유강은 쏟아지는 총알을 피해 빠르게 앞으로 이동했다. 옆의 벽뿐 아니라 천창도 마치 스파이더 맨처럼 타고 총알의 피해를 최소로 했다.
“괴물이다!”
총으로도 따라가지 못하는 속도로 오는 무인이다. 자신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천유강의 신형이 코앞까지 당도한 후였다.
퍼버벅!!!
총을 들었지만 이들도 최소 이류고 대부분은 일류에 근접한 무인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눈 깜박할 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위잉~
“저기다!”
다음에 도착한 자들은 공장 안을 지키고 있던 절정의 무인들이었다. 검은 무복을 입고 각자의 무기를 착용한 인원 6명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앞에 해치운 둘을 합하면 절정의 무인만 총 여덟이나 모여 있는 셈이다. 치열하게 싸우는 전장의 한복판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많은 고수들이 모이기도 쉽지 않다.
“어디서 온 놈이냐!”
열 받은 듯 보이는 무인들이 무섭게 들이닥쳤지만 천유강은 냉정하게 적들의 구성을 살펴보고 있었다.
‘검 세 명, 창 두 명, 나머지는 하나는 단봉.’
적들이 냉정해지고 합공하기 시작하면 불리한 건 천유강이다. 적들이 정신없을 때 공격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다. 디멘션 게임에서 항상 혼자 적들을 상대했었던 천유강이기에 때문에 판단도 빠를 수 있었다.
적들이 진영을 갖추기 전에 한 걸음 더 나아가 진각을 밟았다.
쿠웅!!!!
바닥이 가뭄의 논바닥처럼 갈라지며 충격을 그대로 전달했다. 그리고…….
싹둑!
천유강의 검을 들고 있는 팔 두 개가 동시에 허공으로 날아갔다. 처음부터 천유강이 독하게 마음을 먹은 것이다. 여기서 조금만 더 살심을 품었으면 팔이 아니라 목이 날아갔을 거다.
적을 죽이는 것이 무력하게 만들기보다 더 쉽다. 그런데도 천유강이 절제하는 것은 적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을 위한 거다.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그 자체로 무거운 업을 짊어지는 것과 같다. 살인에 무뎌지고 짊어진 업이 감당할 수 없어지면 영혼이 오염되어 혼탁해진다.
그렇게 마인이 되는 거다. 그러면 무공 자체도 잔인해지고 파괴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물론 승려가 아니니 모든 살생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천유강의 무술은 냉정한 판단을 바탕으로 적의 급소를 공격하는 방식이니 절제할 수 있으면 최대한 절제하는 것이 좋다.
팔이 날아간 둘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고통은 둘째치고라도 평생 동안 함께 했던 수족이 날아간 것만으로도 이미 패닉 상태에 빠졌다.
‘남은 건 넷.’
기습을 당했지만 적들도 천재 소리를 듣던 절정의 고수들이다. 둘이 무력화된 것을 보고 신중하게 천유강을 견제했다. 이미 기습의 효과는 끝났다.
“베버! 막스!”
“둘 신경 쓸 때가 아니야! 보통 놈이 아니잖아!”
창을 든 둘이 뒤에서 견제하고 검과 단봉을 든 이들이 앞으로 나섰다.
타다다당!!!!
천유강의 손과 적들의 무기가 어지럽게 얽혔다. 금속과 사람의 육체가 부딪치는 데도 불꽃이 튀며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적들은 어떻게든 천유강의 손에 피해를 주려 했지만 아무리 세게 공격해도 천유강의 손에는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 오히려 공격한 쪽의 손아귀가 찢어질 지경이었다.
적들도 천유강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었다. 자신들보다 최소 한 단계 윗줄의 무공이다. 작은 깨달음의 차이지만 자신들이 목숨을 잃기에는 충분한 차이다.
자신도 모르게 공포가 육신을 지배하기 시작하니 움직임이 더뎌지기 시작했다. 특히 이런 합공에서 한 사람이 빼기 시작하면 대열이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이 경우에는 검과 단봉을 들고 앞에 선 남자들이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뒤로 빼기 시작했다.
그때를 천유강이 놓치지 않았다.
퍼벅!
“커억!”
“아, 안 돼!”
순식간의 둘의 단전이 파괴되었다. 무인들에게 단전을 잃는 것은 목숨을 잃는 것보다 더한 고통이다.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충격이 합쳐지니 둘은 혼절하고 말았다.
“안 돼! 싫어!”
둘의 단전이 파괴된 것을 본 둘은 수치심을 버리고 뒤로 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넷이서도 못 이긴 상대를 둘이 이길 리 없다. 빠르게 포기하고 창까지 내던지면서 도망쳤다.
하지만 속도로 천유강을 이길 수는 없었다.
퍼버벅!
둘 역시 멀리 도망가지 못하고 천유강의 공격에 당해 단전을 파괴당했다.
“휴유~”
아무리 천유강이라도 절정 무인들 6명을 동시에 상대하는 것은 정신적으로 무리를 주는 일이었다. 처음에 판단을 빨리하고 둘을 무력화하지 않았더라면 쓰러진 것은 자신일 수도 있었다.
“설마 절정 무인이 또 있는 것은 아니겠지?”
지금도 충분히 많은 숫자지만 이들의 행태를 보고 있으면 더 있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그 때문에 천유강은 앉지도 못하고 서서 소주천을 해야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니 밖이 소란스러워진 것이 느껴졌다. 총소리와 칼 소리 같은 교전 소리가 들렸다.
“왔구나.”
다행히 정부와 경찰 병력이 늦지 않게 온 모양이다. 천유강이 숨겨둔 전화기를 통해서 많은 병력들이 이곳에 올 수 있었다.
“이제 좀 쉴 수 있겠네.”
밖에 병력들이 왔다면 자신에게 신경 쓸 여유는 없을 거다. 이제 시험관 속의 사람들만 건져내면 된다고 생각하고 안심하고 있을 때였다.
쿠궁!!!!!!
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펑!! 펑!!!!! 펑!!!!!
갑자기 공장 안에서 폭발이 일어나기 시작한 거다.
“설마, 붕괴하려 하는 건가?”
놀랍게도 이 단체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공장 곳곳에 자폭용 폭탄까지 심어 놨다. 여기서 일어났던 모든 것들을 지우려 한 거다.
“안 돼!”
천유강은 재빨리 사람들이 누워 있는 시험관이 있는 곳으로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