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카 후작의 충격적인 말은 들은 둘은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모니카의 예상대로 그의 호의는 주민들을 위한 일이 아니었다.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을 조사하기 위해서 주민들을 행복한 상태로 만든 거다.
알고 싶은 정보는 얻었으나 그는 강력한 악마고 주민들의 신뢰도 얻고 있다. 혼자서 상대할 적이 아니다.
“이럴 줄 알았습니다. 당장 드미트리 신부님에게 이 사실을 고해야겠어요.”
모니카의 가장 강력한 우방은 누가 뭐라 해도 드미트리 신부다. 그가 가진 성력과 검술이라면 제아무리 토스카라도 버텨낼 수 없을 것이다.
모니카는 드미트리가 머무는 방의 문을 벌컥 열었다.
“신부님!!”
병든 닭처럼 졸고 있던 드미트리는 갑자기 들려온 문소리에 겨우 잠에서 깼다. 앞에는 그의 침이 흥건한 성서가 펼쳐져 있었다.
“제가 토스카의 흉계에 대해 알아냈습니다.”
“흠냐~ 뭐라고 했지?”
모니카의 말을 듣고도 드미트리는 태연했다. 그냥 평상시처럼 안경을 바로잡고 나른하게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에 안달이 난 모니카가 책상을 두 손으로 내리치며 소리쳤다.
“신부님!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토스카는 여기 주민들을 몰살할 작정입니다. 내장을 뽑겠다는 말을 직접 들었어요.”
잔혹한 말이 나오고 나서야 드미트리가 관심을 보였다.
“그가 뭐라고 했기에 이 난리인가?”
“제가 직접 찾아가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모니카는 토스카 후작이 한 이야기를 그대로 전했다. 그의 표정까지 전하려 오만상을 썼는데 무섭다기보다는 귀여울 지경이다. 그래도 그녀는 빠트린 것 없이 모든 말은 전했는데 여전히 드미트리의 표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어쨌다는 건가?”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토스카 그 악마가 본색을 드러냈다고요.”
“자네는 내가 그 사실을 모를 것이라 생각했는가?”
“네? 그게 무슨······.”
지금의 모니카처럼 드미트리가 처음 부임했을 때, 열정적으로 토스카의 목적에 대해서 파고들었다. 오히려 모니카보다 더했는데 그의 검을 들고 당장이라도 토스카의 목을 칠 것처럼 하며 다녔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는 이 나라의 후작이야. 아무리 교단이라도 아무 잘못 없는 그를 처단할 수 없어.”
“그는 악마입니다. 당연히 사악한 일을 저지를 거예요. 실제로 실토하기도 했고요.”
“그럼 그때 처단하면 되네. 그 전에는 어떤 위해도 가할 수 없어. 보게 이 영지를.”
드미트리가 손짓한 곳에는 여전히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뛰놀고 있었다. 평민의 아이들이 저렇게 건강하게 다니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그는 주민의 민심을 얻고 있어. 여기서 우리가 갑자기 그를 처단했다고 가정해보게,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그, 그건······.”
“토스카가 죽으면 다음 영주가 부임할 거야. 그가 과연 이 정도의 치세를 보여줄 수 있겠는가? 난 아니라고 생각하네.”
정치적인 문제도 결부된 문제다. 모니카의 뜻이 어찌 되었던 지금 토스카를 제거하면 왕실에 반역하는 꼴이고 주민들의 신뢰도 잃을 거다.
자칫 잘못하면 교단에 큰 피해가 갈 수 있다. 그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모니카가 분한 듯이 주먹을 쥐었다.
“쯧쯧! 돌아가게. 만약 토스카가 정말로 사악한 짓을 계획하면 내가 막을 거야. 그러기 위해 내가 이곳에 머무는 걸세.”
그렇게 모니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물러서야 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죠? 사악한 악마가 눈앞에 있는데도 아무런 일을 할 수 없다니요.”
「······.」
낙담한 모니카를 달래줄 정도로 천유강의 입담이 좋지 못했다. 사실 최악인 편이었는데 사촌과의 대화를 제외하면 다른 사람과 대화를 전혀 하지 않기에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드미트리 신부님이라면 절 이해해줄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하아~”
아무리 드미트리가 강하다고 해도 토스카처럼 교활한 악마가 행동을 개시했을 때는 이미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한 후일 거다. 그것을 알고 있기에 드미트리의 거절이 야속하기만 했다.
「미안한 말이지만 제가 맡은 이 일은 결코 쉽게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전에도 숱한 어려움을 넘고 겨우 문제를 해결했어요.」
하급 정도의 균열이라면 모니카의 생각처럼 쉽게 해결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특급 균열이다. 모니카의 말을 들은 드미트리가 단숨에 해결한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휴우~ 좋아요. 그럼 이제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방법은 있을 겁니다. 수고스럽겠지만 조금 더 돌아다녀서 단서를 얻는 편이 좋겠어요. 말했다시피 제가 온 것은 조만간 무슨 큰일이 벌어진다는 뜻입니다. 근래에 토스카가 원하는 것을 얻고 주민들을 학살할 수도 있어요.」
“그런 일이 발생해서는 결코 안 될 겁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제가 막을 거예요.”
「좋습니다. 그 기세라면 충분합니다. 또 저의 힘이 도움이 될 겁니다.」
저번 균열에서 얻은 특성이 모니카의 능력에 더해졌다. 모니카를 슈퍼우먼으로 만들지는 못해도 위험에서 벗어나게 할 정도는 될 거다. 특히 300이 넘는 행운 스탯은 디멘션 월드에서도 찾을 수 없는 높은 수치다.
다시 둘의 탐색이 시작되었다. 만약 토스카가 마을에 무슨 짓을 했다는 증거를 찾으면 교단을 움직일 수도 있을 거다.
한참을 돌아다녀서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갈 무렵이었다. 갑자기 누군가가 은밀하게 다가와 모니카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모니카 사제님이시죠?”
“네? 제가 모니카입니다.”
“사악한 악마 토스카를 몰아내려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네, 맞아요. 그런데 당신은 누구시죠?”
“당신과 같은 생각은 가진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더 알고 싶으시다면 저를 따라오시죠.”
그렇게 말한 남자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마을 골목으로 사라졌다. 잠시 고민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는 모니카는 잠시 후 일정 거리를 두면서 그를 따랐다.
그는 목적지에 바로 가지 않고 마을을 돌고 또 돌았다. 그러다가 성의 구석, 외성에 붙어 있는 어느 농가에 도착했을 때였다.
“어? 이건······.”
농가 옆, 허름한 창고에서 나오는 기운에 모니카가 신경을 집중했다.
「왜요? 무슨 기운이라도 느껴집니까?」
“신성력이요. 이 안에서 거대한 신성이 느껴집니다.”
「신성력이요?」
창고로 보이는 보잘것없는 건물이다. 마을에서도 멀리 떨어진 곳이라 사람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주변을 유심히 살피니 몇 가지 흔적이 드러났다.
「최근까지도 많은 사람이 드나든 흔적이 보입니다. 교묘하게 위장하려 했지만 제 눈은 속일 수 없습니다.」
천유강의 말을 들은 모니카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창고 문을 열었다.
끼이익~
예상대로 창고는 잠겨있지 않았다. 안은 겉과는 다르게 깔끔했는데 농기구는 하나도 보이지 않고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조심하세요. 뭐가 있을지 모릅니다.」
천유강이라면 옆에서 기관총을 쏘아대도 피하거나 막을 수 있다. 성력은 누구보다 충만하지만 몸 쓰는 것에 젬병인 모니카가 악마보다 무서워해야 하는 것이 바로 함정이다.
걱정과는 달리 계단에는 아무 장치가 없었다. 내려간 곳에는 방금 만난 남자처럼 두꺼운 후드를 눌러 쓴 사람들이 방안 가득 있었다.
“어서 오세요. 태양 교단의 성녀여.”
말을 하며 후드를 걷자 그 안에서 기품 있는 얼굴의 중년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모습을 드러낸 그들은 하나같이 신성력이 충만한 성직자들이었다.
태양 교단 사람이 아니다. 서로 다른 교단의 연합이 한자리에 있었다.
“궁금하실 것이 많을 겁니다.”
“아······, 그렇습니다. 조금 당황스럽네요.”
“일단 저에 대해 소개를 하겠습니다. 저는 루나치오 신을 모시는 에디아라고 합니다.”
“루나치오 교단의 에디아라면······, 그··· 예언을 받는 분이지요?”
“예언이 아니라 신탁입니다.”
에디아라는 사제는 루나치오 교단에서 큰 힘을 가진 주교급의 인물이다. 그녀에게 내려온 신탁 덕에 대륙의 위기를 많이 넘겼다고 한다.
“만나게 돼서 영광입니다. 모니카라고 합니다.”
“당신에 대한 소문은 들었습니다. 성실하고 모범적인 분이라고 칭찬이 자자하더군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좋습니다. 잡담은 여기까지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죠. 우리가 여기 모인 이유를 짐작하시겠죠?”
“토스카 후작 때문입니까?”
토스카라는 이름이 나오자마자 방안에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그만큼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렇습니다. 10년 동안 그의 악행에 대한 증거를 잡지 못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설마 악행을 발견했습니까?”
그들이 증거를 잡았다면 왕실을 도움도 받을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대신 신탁을 받았습니다.”
“신탁이요? 어떤 내용이죠?”
“거대한 악이 이 도시에 내려온다는 신탁입니다. 그 때문에 각 교단의 협조를 구했고 이곳에 교단을 대표하는 분들이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포스가 남달랐다. 모르긴 몰라도 에디아만큼이나 강하고 유명한 사람들이 분명했다.
모니카가 주변을 둘러보니 그 사람들도 가볍게 눈인사를 건넸다.
“태양교에는 처음에 드미트리 신부님께 연락했습니다만, 그분이 거절하셨습니다. 모니카 사제님도 같은 의견이었지만 거절당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드미트리 신부님은 원리원칙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의 뜻도 이해가 안 되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번 신탁은 그 정도가 심각합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토스카 후작이 여기 주민들을 죽이겠다고 한 걸 직접 들었습니다.”
모니카가 조금 흥분해서 말했지만 어쩐지 주변의 반응은 싸늘했다. 자기가 뭔가 잘못 말했나 싶어서 에디아를 쳐다보자 그녀는 작게 한숨을 쉰 후 말했다.
“신탁이 내려올 정도의 일입니다. 여기 주민들이 살해당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을 겁니다.”
얼음이 된 모니카에게 에디아의 말이 송곳처럼 박혔다.
“대륙의 모든 생명이 위험합니다, 모니카 사제.”
신탁의 내용은 여기 주민에 국한되지 않았다. 대륙의 모든 사람은 물론이고 작은 생명체들까지 몰살당할 수 있다는 경고를 담고 있었다.
“어, 어떻게 그런 일을 벌인다는 말이죠?”
모니카의 물음에 에디아가 고개를 저었다.
“정확한 방법은 저희도 아직 모릅니다. 하지만 그게 무엇이 되었든 간에 토스카와 연결된 건 분명합니다. 그 전에 우리가 그자를 해치워야겠죠.”
여기 모인 이들도 순수하지만은 않다. 고위직까지 오르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이해타산들을 적절히 다루고 때로는 타협하며 분쟁을 피하거나 최소화해야 했다.
정치를 모르는 이들이 아니다. 신탁이 아니었다면 모니카처럼 열정적으로 돌아다니지 않았을 거다. 오히려 드미트리처럼 가만히 앉아서 때를 기다렸을 거다.
그래도 대륙의 위기는 막아야 했다.
“일주일 뒤에 토스카를 죽일 겁니다. 뒤처리는 걱정하지 마세요. 도적 길드에서 우리를 도와주기로 했어요.”
그 말에 옆에 있던 사내가 모니카에게 인사했다. 여기 있는 사람 중에서 유일하게 신성력이 느껴지지 않은 사내였다.
“헤헤~ 다른 악마가 쳐들어와서 그를 죽였다고 조작할 겁니다. 악마 사이에서 드문 일도 아니죠.”
악마는 같은 악마를 흡수해서 힘을 키우기도 한다. 토스카는 충분히 강한 악마지만 인간계에 오래 있어서 상당히 약해진 상태다. 그 틈을 타서 다른 악마가 쳐들어왔다고 꾸밀 예정이다.
“모니카 사제님은 후방에서 지원만 해주시면 됩니다. 그럼 저희를 도와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제 힘이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허름한 창고에서 은밀한 협약을 맺은 모니카는 조용히 신전으로 돌아왔다. 이미 늦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평소처럼 기도를 마치고 잠자리에 든 모니카는 문득 천유강 생각이나 물었다.
“그자가 죽으면 당신은 떠나게 되나요?”
「아마 그렇겠죠.」
퀘스트가 정확히 뭔지는 알 수 없지만 토스카가 이 균열의 핵심 인물인 것은 분명하다. 그가 죽으면 달성도를 모르지만 퀘스트가 끝나긴 할 거다.
다만, 꺼림한 부분도 분명 있었다. 에디아가 모니카에게 준 임무는 어렵지 않았다. 성력은 누구 못지않게 강력했지만 아직 경험이 적은 모니카를 배려했기 때문인데 그래서 더 마음에 걸렸다.
특급 균열인데 구경만 하다가 깨는 일은 없을 거다. 아스의 경우를 생각하면 최강 기사와 일대일로 대결해 겨우 균열을 클리어했다. 그것에 버금가는 위험을 각오해야 한다.
한참을 고민하던 천유강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모니카 부탁이 있습니다.」
“네? 부탁이요? 그게 뭔가요?”
이제는 천유강의 존재를 무서워하지 않는 모니카다. 오히려 친밀감도 상당히 쌓아서 과한 것이 아니면 부탁을 들어줄 용의가 있었다.
「당신의 몸을 제게 주십시오.」
과한 것만 아니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