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판타지/SF
디멘션 게임 : 이차원 헌터
작가 : 범미르
작품등록일 : 2017.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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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만들다 (1)
작성일 : 17-10-20     조회 : 130     추천 : 0     분량 : 8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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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이 나는 건

 

 폭발 소리

 

 신음 소리

 

 비명 소리

 

 고함 소리

 

 꺼져가는 숨소리

 

 분주하게 움직이던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

 

 그리고 끝없이 내리던 빗소리

 

 후두두둑!

 

 백두산

 

 명실상부한 세계 제일의 영산

 

 사람들의 발걸음조차 불허하여 고요하던 이곳에 정적을 깨뜨리는 불청객들이 나타났다.

 

 "서둘러! 생존자가 있을지 모른다."

 

 장대처럼 내리는 빗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잔해를 헤집으며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이게 갑자기 웬 날벼락이야."

 

 "멀쩡하던 비행기가 떨어지다니······."

 

 사람들 300명 이상을 태우고 날아가던 여객 비행기가 백두산에 곤두박질쳤다.

 

 불시착이 아니다. 떨어진 비행기는 본래의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서져 있었다.

 

 "하늘에 구멍이 뚫렸나? 비는 또 왜 이렇게 많이 오냐?"

 

 "비가 많이 와서 더 지체하면 살아있는 사람이 죽는다. 빨리 움직여!!!"

 

 수색 대장의 말에 다른 대원들이 정신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천 근을 받칠 수 있었던 철근이 마치 엿가락처럼 제멋대로 구부러져 있었고 작은 아이의 것으로 추정되는 곰 인형도 진흙탕 속에 처박혀 있었다.

 

 끊임없이 내리는 비에도 비행기 잔해를 태우고 있는 불길이 사그라질 듯이 보이지도 않아서 수색작업에 난항을 겪고 있었다.

 

 형체도 없이 산산 조각난 잔해를 보면 도저히 살아남은 사람이 없을 듯 보였지만 수색 인원들은 실낱같은 가능성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찾아다녔다.

 

 "대장님! 여기저기에 시체가 있습니다."

 

 "당연하지! 집채만 한 비행기가 떨어졌는데 시체 하나 없겠나!"

 

 수색 대장은 부하의 말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그게 아니라··· 이리와 보십시오. 누군가가 여기서 싸운 흔적입니다. 흉기에 찔린 자국이 있습니다."

 

 부하가 가리킨 곳에는 수많은 시체가 있었는데 날카로운 무언가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것으로 보였다. 절대 비행기 추락으로 죽은 것이 아니다.

 

 "제기랄! 도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전쟁이라도 벌어진 건가?"

 

 "대장님! 여기 생존자 발견했습니다!"

 

 "어디! 내가 직접 간다."

 

 비행기 잔해를 헤집고 들어간 곳에는 과연 부하의 말처럼 젊은 남녀가 쓰러져 있었다.

 

 "숨이 붙어있나?"

 

 "매우 미약하지만, 아직 죽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면 신속히 옮길 준비해! 신전에는 연락한 거 어떻게 됐어? 회복 마법이 필요해."

 

 "지금 헬기로 성직자들을 후송하고 있습니다만, 가장 가까운 마을조차 여기서 거리가 꽤 됩니다."

 

 "지체할 시간 없다. 빨리 응급 처치하고 근처 사원이나 마을에 지원 병력 더 불러 아직 생존자가 있을지 모른다."

 

 "협조는 해봤는데 다들 꺼리는 눈치입니다."

 

 "왜?"

 

 "백두산의 산신은 인간들을 배척해서 허락 없이는 사람들은 이 산에 발도 못 붙입니다. 사실, 저도 언제 산신의 불호령이 떨어질 줄 몰라서 조마조마하다고요."

 

 부하가 눈치를 살피며 하는 말에 지휘자가 열이 올랐다.

 

 "이 등신 같은 새끼야! 지금 사람이 죽어 가는데 그런 게 문제야!"

 

 "하지만······."

 

 "하지만이고 저지만이고 지랄하지 말고 연락해보고 최대한 빨리 움직여. 산신 때문만이 아니라 더 늦어지면 정말 끝이야."

 

 "대장님!"

 

 "왜!"

 

 "아까 그 남녀 사이에 갓난아이가 있습니다. 아마도 그들의 아이인 듯싶습니다."

 

 "그래? 살아있나?"

 

 "예. 아이는 이상할 만큼 멀쩡합니다."

 

 "어디 봐봐!"

 

 지휘자는 아이에게로 다가갔다. 정말 연약하게만 보이는 갓난아이가 남녀 사이에서 자고 있었다. 울다가 지친 모습이 역력했지만 놀랍게도 작은 상처 하나 보이지 않았다.

 

 기적 같은 일이다.

 

 "집에 이만한 아이가 있는데······. 좋아, 아이 체온 떨어지지 않게 조심해서 후송해. 나머지는 계속 수색해봐! 우리의 땀에 사람들의 목숨이 달렸다."

 

 "알겠습니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띠리리링

 

 띠리리링

 

 철컹~

 

 "······여보세요."

 

 "오빠! 또 늦잠 잤지! 벌써 11시야."

 

 "연아냐?"

 

 "아침 수업 없어?"

 

 "세계사 있어."

 

 "그래? 근데 목소리가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니다. 꿈이 뒤숭숭해서."

 

 "그래? 하여간 학교에 늦지 말고 가."

 

 "그래, 고맙다."

 

 사촌 동생인 배연아의 전화가 끊어지고 한참이 지나도 천유강은 일어날 수가 없었다.

 

 갓난아이일 때의 기억이다. 자신과 부모님만 살아남았던 끔찍한 비행기 사고가 천유강의 심연 깊숙이 뿌리내려 있다.

 

 정신을 짓누르는 두려움에 몸이 떨리고 있었지만 그저 공포에 몸을 맡기지는 않았다.

 

 “이럴 때가 아니지.”

 

 자리에서 일어나서 책상 위에 있는 플라스크를 집었다.

 

 이건 바로 독이다. 부모님을 잠식한 독보다는 훨씬 약하지만 한 방울로도 코끼리를 즉사시킬 수 있는 지독한 독이다.

 

 레전드 아이템 미라클로 이 독을 중화하는 연습을 하는 거다.

 

 단순히 독만 중화하는 거면 어렵지 않다. 다른 생체 조직을 상하지 않고 독만 빼내서 제거하는 것이 어려웠다.

 

 이것만 해내면 부모님을 구할 수 있다. 머리가 쪼개질 듯이 아파도 절대 멈출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도록 천유강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

 

 "끈질기시군요. 전 그쪽과 할 말이 없습니다."

 

 "내가 있어."

 

 쥬신 대학교 외벽을 넘어, 멀리 떨어진 산속에서 여성과 남성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정말 무례하시군요."

 

 "무례하다니! 내 여자와 내가 말을 하겠다는데 뭐가 무례하다는 거지?"

 

 "난 당신의 여자가 아닙니다."

 

 여자는 화난 듯 날카롭게 말했지만 남자는 막무가내였다.

 

 "누가 뭐래도 넌 내 것이다. 난 이제까지 원해서 얻지 못한 게 없어."

 

 남자의 말에 여자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정말, 당신이란 작자와는 대화할 가치도 없군요."

 

 여자는 등을 돌려 남자에게서 멀어지려 하였지만 남자는 여자의 손목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이거 놔요!"

 

 "기다려! 난 아직 가라고 허락 안 했어."

 

 "이게 무슨 깡패 같은 행동이에요!"

 

 여자가 목소리가 커지자 남자는 손목을 놓았다. 다시 여자가 남자에게서 멀어지려는 순간 남자가 입을 뗐다.

 

 "그냥 우리 집안으로 들어오는 게 좋지 않아? 당신 조부님도 대환영했잖아."

 

 "당신 집은 근처에도 안 갈 거예요."

 

 "난, 네가 나 말고 다른 남자 만나는 꼴 못 본다."

 

 남자의 말에 여자는 다시 남자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역시······, 우리 남자 조원들이 수업을 그만둔 것은 당신 짓이었군요."

 

 "분수를 가르쳐준 거다."

 

 "어쩜 당신이란 사람은······."

 

 여자는 한동안 말을 잇지도 못했고 그런 여자에게 남자가 천천히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여자는 침을 삼키며 뒷걸음질 쳤다.

 

 "난 말이야. 인내심이 크지 않아."

 

 "가까이 오지 마요."

 

 "그나마 너니까, 이런 수모를 감수하는 거야. 그러니 더 나를 자극하지 마라."

 

 "가까이 오지 말라고 경고했어요."

 

 "흥, 경고하면 어쩔 건데. 누가 도와주러 올거나 같아 이 산중에?"

 

 남자가 흥분해서 금방이라도 본성을 드러내려는 그때, 난데없이 나무 위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상일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

 

 목소리와 함께 남자와 여자 사이에 다른 남자가 툭 하고 떨어졌다.

 

 "누구냐?"

 

 "여자를 핍박하는 소인배에게 이름 따위는 알려줄 필요는 없다."

 

 "천유강 씨?"

 

 여자, 수화진은 갑자기 나타난 천유강에 깜짝 놀랐다. 천유강은 뒤돌아 수화진을 한 번 본 후 다시 남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여자가 거절했으면 남자답게 물러나라. 추하게 굴지 말고."

 

 천유강의 말에 남자의 얼굴이 추하게 일그러졌다.

 

 "네놈이 누군지는 몰라도 나를 더 화나게 하지 마라. 가뜩이나 지금은 기분이 좋지 않아."

 

 남자가 내공을 움직이자 손에 붉은 기운이 뭉치기 시작했다.

 

 단순한 위협이 아니다. 저 정도의 기운이 사람에게 닿으면 크게 다치거나 심하면 죽을 수도 있다.

 

 "이런 곳이라면 사람 한 명 없어져도 이상하지 않지. 그냥 산짐승에게 물려간 줄 알 거야."

 

 남자의 몸에서 지독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공포에 사고가 마비되겠지만 천유강의 얼굴에 나타난 건 두려움이 아니라 귀찮음이었다.

 

 남자의 실력은 잘 쳐줘봤자 절정의 초입에 불과하다. 절정을 넘어 초절정의 근접한 천유강에게는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다.

 

 "그게 당신들에게 가능할까."

 

 천유강도 손에 기를 모았다.

 

 파밧!

 

 둘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에 낙엽들이 비상하고 나뭇가지들이 꺾어지기 시작했다.

 

 둘의 기운이 최고조에 이르고 남자가 출수하려는 순간,

 

 "그만!!!"

 

 수화진이 두 사람의 사이에 끼어들면서 소리쳤다.

 

 "그만 해요, 제발······."

 

 수화진의 말에 남자는 수화진은 한 번 쳐다보고는 천유강을 쏘아보았다.

 

 으드득

 

 남자가 이를 가는 소리가 사방으로 울렸다. 금방이라도 무력을 사용할 것 같았던 남자지만 뜻밖에도 손을 내리고 기운을 풀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지. 확실히 내가 신사답지 못했군."

 

 남자가 순순히 기운을 갈무리하자 천유강도 내공을 거두었다.

 

 "······."

 

 남자는 아직 거친 숨소리를 내며 천유강을 쏘아보다가 다시 수화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도 결과는 변하지 않아. 결국, 넌 나에게로 올 거다."

 

 남자는 한마디 말을 남기고 천천히 걸어나갔다.

 

 뚜벅뚜벅

 

 그렇게 한참을 걸어 천유강으로부터 어느 정도 멀어진 곳에 가자, 남자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왜 말렸지?"

 

 남자는 허공을 향해 말을 하였는데 놀랍게도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빈 곳에서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제 존재를 알아챌 정도의 고수입니다, 도련님. 확실한 데이터 없이는 도련님의 안전을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남자의 뒤를 따라다니며 보호하는 수신호위다. 늘 그림자에 숨어 다른 이들의 눈에 띄지 않으니 돌발 상황에 대처하기 용이했다.

 

 "얼마 전에 패왕수를 7성으로 끌어올렸다. 그런데도 확신이 없었나? 너와 둘이 합쳐도 모르겠다고!"

 

 큰돈을 지급해 패왕수라는 희대의 신공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런 패왕수를 7성으로 끌어올렸다면 또래에는 적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실제로 남자의 나이에 절정에 오른 사람은 많지 않다. 다만, 천유강이 더 특별할 뿐이다.

 

 그 점을 알아차린 호위가 남자의 자신감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물론 도련님의 실력은 저도 인정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둘 중의 누구도 그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였습니다. 반면에 은신에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 저의 존재도 알아차린 자입니다. 절대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됩니다.”

 

 그 말에 잠시 멈칫한 남자는 곰곰이 생각했다. 비록 자신이 흥분을 많이 한 상태였다곤 하지만 천유강의 기척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을 삼킨 남자가 팔짱을 끼고 천유강과 수화진이 있는 쪽을 쳐다봤다.

 

 "······그 자식 누구야. 화진이도 아는 기색이었는데."

 

 "아가씨와 같은 조가 되었다던 남자 중의 하나입니다."

 

 "그 남자들이라면 사람들을 보냈다고 하지 않았나?"

 

 "그들 중 두 명은 다시는 수업에 얼씬도 못하게 만들었습니다만, 한 명에게 간 인원들이 모두 당하였습니다."

 

 예전 천유강에게 정체 모를 습격자가 온 적이 있었다. 대부분 쓰러트릴 수 있었지만 능숙하게 도망쳐서 끝내 정체에 대해 알지 못했다. 애꿎은 다넬의 윤세원까지 의심했었지만 사실은 이들이 보낸 해결사들이었다.

 

 수화진과 같은 조에 남자가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한 그가 사람을 보낸 거다.

 

 "그런데 왜 보고를 하지 않았나?!"

 

 "죄송합니다. 먼저 보낸 놈들은 수준이 낮은 놈들인지라 오늘쯤에 설영조를 투입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어쩔 생각인데?"

 

 "데이터가 많이 부족했습니다. 일단 뒤를 파고들겠습니다."

 

 "······좋아. 처리는 그다음에 해도 늦지 않겠지."

 

 남자는 신경질적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수화진, 더 기다려주지."

 

 한편, 수화진은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눈으로 천유강을 보고 있었다. 나무 위에서 갑자기 등장해서 자신을 구해준 건 눈으로 보지 않았으면 믿기 힘든 일이다.

 

 "여기서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군요."

 

 "그렇습니다."

 

 남자가 떠나간 자리에 수화진은 나무를 등지고 서 있었다. 찬란한 햇빛 속의 수화진의 모습은 그야말로 천사가 강림한 것 같은 모습이었지만 천유강의 마음을 흔들지는 못하였다.

 

 "실례지만 여기서 무슨 일을 하고 계셨나요?"

 

 "잠시 자고 있었습니다."

 

 천유강은 자신이 자고 있었던 높은 나무의 가지를 가리켰다.

 

 "잠이요? 이런 데서요?"

 

 수화진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물었다. 올려다봐도 까마득히 보이는 높은 곳에 있는 가지다.

 

 보통 사람이라면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공간에서 태평하게 잠을 잤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예. 아직은 이곳이 집보다 더 편합니다."

 

 "오늘 수업이 있었던 건 알고 있었나요?"

 

 오늘 세계사 수업이 있었지만 천유강을 비롯한 남자 조원들이 모두 나오지 않았다. 이상하다는 마음은 들었지만 아까 남자의 말을 듣고 천유강도 무슨 변고를 당한 줄만 알고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고작 잠을 자느라 못 왔다고 하니 황당할 수밖에 없다.

 

 "몸이 좀 안 좋아서······."

 

 "그런 것 치고는 멀쩡하신 것 같은데요."

 

 수화진이 질책하듯 쳐다보자 천유강은 할 말을 잊었다. 사실 아침의 뒤숭숭한 꿈 때문에 머리라도 식힐 겸 산에 온 것이었다.

 

 물론 수업에 빠지고 잠을 잔 것이 잘한 일은 아니었지만 도와주고 나서 이런 대접을 받는 것이 억울한 천유강이었다.

 

 "그런데 아까 그 남자는 누구입니까?"

 

 "그 남자요? 아마 유강 씨도 이름을 들어본 적 있을 겁니다. 마준환이라고 칠성 그룹의 후계자죠."

 

 수화진은 아직도 치가 떨린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 평소에도 얼마나 많이 시달리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마준환?"

 

 천유강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확실히 배연아로부터 들은 적이 있었다.

 

 항상 세황 기업의 신지후라는 인물과 비교되는 인물로 두 기업이 항상 선두 싸움을 하는 것처럼 둘도 묘한 경쟁 관계에 있는 사이였다.

 

 "마준환이라······, 전에 신지후라는 사람도 만나봤었습니다. 확실히 강한 인상을 남기던 사람이었는데 마준환이란 인물도 강한 인상이 남겠군요."

 

 신지후가 냉철한 대랑을 상기시켰다면 이번 마준환은 흉포한 흑곰과 같은 이미지를 지녔다.

 

 오만하고 잔인하며 욕심이 많은 흑곰은 자신의 영역에 아무도 허락하지 않아서 대랑과도 자주 시비가 붙었었고 심지어는 백두산의 산신과도 대립하였다.

 

 남의 아래에 한 번도 서 있어본 적이 없는 극히 이기적인 모습, 남의 감정 따위는 그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듯했다.

 

 "그런데 화진 양은 이런 곳까지 무슨 일이시죠? 아무리 금강산 산신이 인간에게 호의적인 편이라고 해도 화진 양 같은 사람이 혼자 다닐 곳은 못 됩니다."

 

 쥬신 대학과는 가깝다고 해도 이곳은 인적이 전혀 없는 산길이다. 확실히 무공 하나 없는 여자가 홀로 다니기에는 너무나도 위험한 곳이다.

 

 언제 어디서 흉포한 육식 동물이나 자신의 보금자리를 지키려는 멧돼지, 뱀의 공격이 온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곳이다. 천유강은 누구보다도 산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오셨나요?

 

 천유강의 말에 수화진은 약간 주저하다가 말을 꺼냈다.

 

 "사실, 전에 우연히 이곳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다친 사슴을 봐서 그 사슴을 찾으러 왔습니다."

 

 "사슴이라고요?"

 

 "네. 하얀 사슴이었는데 다리가 불편한 듯싶어서 자주 먹이를 주러 오곤 했어요."

 

 "하얀 사슴?"

 

 "예. 눈처럼 하얀 사슴인데, 아주 예쁘답니다. 불쌍하게도 다리를 다쳐서······."

 

 "흠."

 

 수화진의 말에 천유강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설마······."

 

 "네?"

 

 "아니, 아닙니다."

 

 "저, 죄송한데."

 

 수화진은 약간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와 같이 그 사슴이 있는 곳으로 가주실 수 있나요?"

 

 "같이 말입니까?"

 

 "네. 사실 혼자 가기는 조금 무서웠거든요."

 

 천유강은 다음 수업이 가까워져서 슬슬 학교로 가려는 찰나였다.

 

 세계사는 그렇다 치더라도 다음 수업은 배 씨 남매와 같이 듣는 수업이다. 빠지면 배연아에게 무슨 말을 들을지 몰랐다.

 

 정중히 거절하려는 순간 뇌리를 스치는 말이 있었다.

 

 「남자는 매너야 매너. 홀홀~~」

 

 배연아와 같이 갔던 사주카페 점쟁이의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왜 자꾸 그 점쟁이의 말이 지워지지 않지?"

 

 "안 되나요?"

 

 “······알겠습니다. 수업도 없으니 같이 가 드리지요."

 

 사실 1시간 후에 수업이 있었지만 수화진이 미안한 감정이 들지 않게 둘러댔다.

 

 "감사합니다. 그럼 저쪽으로 가시면 돼요. 아앗!"

 

 걸음을 옮기려던 수화진이 갑자기 인상을 찡그리며 주저앉았다.

 

 “무슨 일입니까?”

 

 “아아~ 모르겠어요. 갑자기 다리가 아파서.”

 

 “잠깐만요. 제가 아픈 부위 좀 살펴보겠습니다.”

 

 바지를 살짝 걷으니 퉁퉁 부은 발목이 나타났다.

 

 “왜 이렇게 부었지?”

 

 “아마도 뭔가에 긁힌 것 같습니다.”

 

 숲속을 걷다가 날카로운 무언가에 찔린 상처로 보였다. 상처 틈으로 세균이 들어가서 금방 곪아 부풀어 올랐다. 심각하지는 않지만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며칠은 앓아누울 거다.

 

 “치료해야겠네요.”

 

 천유강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약을 뒤지는 척했다. 상비약이 품속에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믿는 구석이 있었다.

 

 ‘각인.’

 

 천유강이 속으로 명령어를 외치니 눈앞에 자신만 보이는 투명판이 등장했다. 바로 베타 테스트 플레이어의 특권인 각인 메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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