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판타지/SF
디멘션 게임 : 이차원 헌터
작가 : 범미르
작품등록일 : 2017.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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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만들다 (2)
작성일 : 17-10-21     조회 : 78     추천 : 0     분량 : 5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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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명창에는 천유강이 소유한 아이템들이 좌르륵 나열되어 있었다.

 

 특급 균열을 두 개나 클리어한 천유강의 각인 포인트는 천만이 넘었다. 1 포인트에 1 실버 값어치의 아이템을 각인할 수 있으니 무려 십만 골드 값어치의 아이템을 각인할 수 있는 포인트다.

 

 시험해본 결과 현재 천유강이 가진 ‘바르케의 구두’라는 유니크 등급 아이템을 각인하려면 십만 포인트가 필요하다. 현재 포인트라면 이정도 아이템 100개를 각인할 수 있다.

 

 천유강이 선택한 것은 하급 상처 치료약이었다. 작게 빛이 번쩍하더니 천유강의 손에 어느새 치료약이 들려 있었다.

 

 “가만히 계세요.”

 

 천유강이 상처 치료약을 수화진의 발목에 뿌리자 순식간에 상처가 없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붓기까지 가라앉았다.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놀라운 효과였다.

 

 “엄청 시원하네요. 무슨 약인가요?”

 

 “무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치료약입니다.”

 

 베타 테스트와 각인 아이템을 설명할 수 없는 천유강은 대충 둘러댔고 수화진도 더 캐묻지 않았다.

 

 “움직이는 데 불편하신 점은 없습니까?”

 

 “네. 이 정도면 충분히 걸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수화진은 발목을 돌리고 펄쩍펄쩍 뛰기도 했는데 아무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믿을 수 없는 이적을 눈앞에서 경험했지만 자신의 상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수화진은 그냥 잘 듣는 약이라고만 생각했다.

 

 “가요.”

 

 그렇게 천유강과 수화진은 나란히 산속을 같이 걷기 시작했다. 천유강은 수화진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었는데 어려서부터 산에서 자라나서 이제까지 수화진도 발견하지 못한 길을 발견하기도 했다.

 

 "역시 잘 걸으시네요."

 

 수화진이 이마에 난 땀을 닦으며 말했다.

 

 "힘드시면 조금 쉬죠."

 

 "네, 죄송해요."

 

 "아닙니다."

 

 바위에 걸터앉으며 수화진이 숨을 골랐다. 천유강은 그 주위에서 혹시 모를 야수의 공격에 대비하여 나뭇가지로 진은 만들었다.

 

 천유강은 묵묵히 자기 할 일만 하고 자리에 앉아서 숨만 골랐다. 수화진에게 말을 걸지도 않았고 눈길조차 돌리지 않았다.

 

 맹세컨대 남자한테 이런 대접을 받은 적이 처음이다. 그것이 자존심 상하기보다는 신기했던 수화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천유강씨는 조금 다르시네요."

 

 난데없는 수화진의 말에 천유강이 이상하다는 듯이 그녀를 쳐다봤다.

 

 "네? 무엇이 다르다는 건가요?"

 

 "사실 아버지 말고 이렇게 남자와 단둘이 있어 본지도 오랜만에요."

 

 "그런가요? 왜 그렇죠? 화진 양은 인기가 많다고 들었는데요."

 

 얼마 전에 무심코 수화진이라는 이름을 말하니 사촌인 배대강과 배연아도 그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말에 따르면 수화진은 쥬신 대학교 군사학과에 최고 수재로 알려져 있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한·일 전에서 훌륭한 작전으로 유명한 수강진 장군이며 그녀도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군사학과에 들어가 참모를 꿈꾸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성적보다 더 유명한 건 그녀의 미모다.

 

 이미 인터넷에 그녀의 사진이 많이 돌아다니고 있으며 길에 걸어다니고 있으면 헌팅하는 남자들과 명함을 내미는 연예인 기획사 관계자 때문에 피곤할 지경이다.

 

 천유강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수화진은 다시 쑥스러운 듯이 얼굴을 붉혔다.

 

 "하하 글쎄요. 그렇게 물어보시면 대답하기가 민망하네요."

 

 자기 입으로 남자들이 귀찮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고 말할 만큼 낯짝이 두껍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속마음을 알 리 없는 천유강이 눈치 없이 말했다.

 

 "미인이라서 그런가요? 그렇다면 더 남자들이 더 많은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요?"

 

 천유강의 입에서 미인이라는 말을 직접 듣자 수화진의 얼굴이 더 빨개졌다.

 

 "왠지 천유강씨에게 미인이라고 들으니까 어색하네요, 혹시 좋아하는 여자 있나요?"

 

 "여자요? 사촌 동생 중에 배연아라고 있는데 좋아합니다."

 

 "그런 게 아니라 이성적으로요."

 

 "이성적이라······."

 

 주변의 여자를 떠올려보았으나 딱히 떠오르는 사람도 없었고 무엇보다도 아는 여자도 없었다.

 

 "없는 거 같군요."

 

 "저······"

 

 수화진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이건, 정말 궁금해서 하는 말인데요."

 

 "괜찮으니 말해보세요."

 

 "저를 보면 예쁘다는 생각은 하시나요?"

 

 자신이 말하고도 부끄러웠는지 얼굴이 폭발할 것 같았다. 천유강은 느닷없는 말에도 놀라지 않고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봤다.

 

 168의 늘씬한 키에 허리까지 내려오는 검은 생머리를 하고 있으며. 흑요석을 박아 넣은 것처럼 반짝이는 두 눈과 이목구비도 뚜렷하다. 얼굴, 몸매 모든 것이 완벽해서 가까이에서 봐도 인형으로 착각할 정도의 완벽한 미모다.

 

 하지만 천유강에게는 그저 눈, 코, 입 제대로 달린 여자 사람일 뿐이었다.

 

 "글쎄요? 확실히 피부는 좋아 보이는군요."

 

 산속에서만 살다가 중학생 때에 도시로 올라온 천유강이다. 미에 대한 기준이 다른 사람과 달랐고 무엇보다 아직 이성에 대한 호기심도 없었다.

 

 한 마디로 그냥 무술밖에 모르는 바보다.

 

 "역시 그렇군요."

 

 천유강의 모호한 말에도 수화진은 기분 좋은 듯이 빙긋 웃었다. 그 속뜻을 알 리 없는 천유강은 그냥 머리만 긁적였다.

 

 '여자들은 정말 속을 모르겠군.'

 

 예쁜지 잘 모르겠다는 말에 사탕을 얻은 어린아이처럼 웃는 수화진을 보며 천유강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다시 걷죠."

 

 부끄러운 듯 황급히 일어서서 가는 수화진의 뒤를 천유강은 천천히 따라갔다.

 

 다시 걷기 시작했을 때는 아까와는 달리 어깨를 나란히 하고 말을 하며 걸었다.

 

 "마준환 같은 놈들만 있었나요?"

 

 마준환의 말이 나오자 수화진의 얼굴에서 다시 불쾌감이 나타났다.

 

 "남자들은 독점욕이 너무 강한 것 같아요."

 

 "확실히 수컷들은 정복욕이 강하죠. 그래서 인기 있는 암컷에게 더 호감이 가는 것 같아요."

 

 "풋~"

 

 수화진이 웃자 천유강이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왜 웃죠?"

 

 "산에서 살아서 그런지 사람보다는 동물들의 예를 드는 것 같네요."

 

 "사실 사람들보다는 동물 쪽의 생리를 더 잘 알긴 하죠. 하지만 사람도 동물입니다. 모든 본능은 동물의 그것과 다르지 않아요. 단지, 이성으로 본능을 자제할 줄 안다는 것 정도가 다르지요."

 

 “그런가요?”

 

 “제가 파악하기론 그런 것 같아요.”

 

 자신에게 흑심을 보이지 않은 남자라서 그런지 남자와의 대화도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다. 여자들과는 다른 사고방식이 신기하기까지 했다.

 

 나이 21살에 처음으로 진지하게 또래 남성과 이야기하는 수화진이다. 그래서 이야기가 더 재미있었다.

 

 "평소에도 이렇게 편하게 사담을 나눌 수 있는 남자 친구를 가지고 싶었어요. 남자와 수다를 떠니 여자 친구들과 얘기하는 것과는 다른 재미가 있네요."

 

 "그런가요? 저도 사촌들과만 이야기하다가 다른 사람과 이렇게 긴 이야기를 한 것은 처음인 것 같군요."

 

 거의 처음 보는 상대와 이렇게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은 사촌 동생인 배연아가 봤으면 기겁할 일이다. 그것도 상대가 학교는 물론이고 쥬신 대학 퀸카로 인터넷에서도 유명한 수화진이다.

 

 수화진은 천유강과의 인연을 이렇게 짧게 끝내기가 아쉬워졌다. 그래서 조금은 쑥스러운 얼굴로 천유강에게 제안했다.

 

 "그럼······, 우리 친구 할래요?"

 

 "친구요?"

 

 "네. 가끔 연락도 하고, 밥도 먹고, 심심하면 전화도 하는 그런 친구요."

 

 "친구라······."

 

 처음에는 상대하기 어려웠지만 대화를 나누다 보니 생각도 깊고 착한 심성을 지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문득, 그녀가 인기 있는 이유가 단지 미모에 있지 않겠다고 생각도 들었다.

 

 다른 사람에 비해 사교성이 심하게 떨어지는 천유강도 왠지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좋아요. 그럼 이제 우린 친구예요. 자 손가락 걸어요."

 

 "손가락이요?"

 

 "네 이제 우리가 친구라는 약속이에요."

 

 "그런 것도 있나요?"

 

 배연아를 통해서 알고 있었지만 여자들은 이상한 의식을 남자들보다 훨씬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대놓고 그것을 거절하면 불평불만이 많은 놈으로 낙인찍힌다. 순순히 따르는 게 이롭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다.

 

 천유강이 손가락을 걸자 수화진이 빙긋 웃었다.

 

 "이제 되었나요?"

 

 "네. 앗! 어느새 이곳까지 오게 되었네요."

 

 짧은 외침과 함께 수화진이 어느 곳으로 빠르게 달려나갔다.

 

 "와~ 흰둥아, 오랜만이야."

 

 수화진의 자취를 따라간 곳에는 이미 그녀가 다리를 절룩거리는 흰 사슴을 껴안고 쓰다듬고 있었다.

 

 부스럭~

 

 갑자기 나타난 천유강을 보고 사슴이 놀라 일어나려 했지만 수화진이 사슴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말했다.

 

 "괜찮아. 저 사람은 너를 해치지 않을 거야."

 

 수화진의 말대로 눈처럼 하얀 사슴이었다. 생김새도 일반적인 사슴보다 훨씬 또렷하고 예쁘게 생겼지만 어쩐지 천유강은 사슴을 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어때요? 참 예쁘죠? 흰둥이에요. 인사하세요."

 

 수화진이 사슴을 소개하자, 천유강의 표정이 더욱 묘해졌는데 이상하게도 사슴은 천유강 쪽으로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설마 했는데······."

 

 "네?"

 

 "아닙니다. 참 예쁘군요. 흰.둥.이."

 

 천유강은 또박또박 발음하자 사슴이 한 차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수화진이 신이 나서 사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여태 잘 있었니? 혹시 사나운 늑대를 만난 건 아니지?"

 

 열심히 사슴을 쓰다듬던 수화진이 준비했던 사슴 먹이를 내밀었다. 아침서부터 정성스럽게 준비했던 음식이다.

 

 "신선한 완두콩과 채소야 맛있게 먹어."

 

 사슴이 수화진이 준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있자, 더는 못 보겠다는 표정을 지은 천유강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꺼냈다.

 

 "저기······."

 

 "네?"

 

 "전 잠시 저쪽에 있겠습니다. 사슴과 볼일이 끝나면 말해주세요."

 

 "예? 아~ 네. 그럼, 그렇게 하세요."

 

 수화진을 남겨두고 천유강은 숲속 저편으로 사라졌고 한참 후에야 수화진이 사슴과의 볼일을 끝내고 나왔다.

 

 "다 끝나신 건가요?"

 

 "네, 이제 가요."

 

 "그러죠."

 

 다시 길을 돌아가는 천유강의 머릿속에 귀에 익은 음성이 울렸다.

 

 「네가 어째서 여기에 있는 거냐?」

 

 「글쎄요. 그건 제가 하고 싶은 말이군요. 흰.둥.이.님」

 

 「큼, 너 이거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오늘 일은 기억하기도 싫습니다. 자식도 이미 수십 마리나 있으면서 이게 무슨 추태입니까, 금강산 산신님.」

 

 사실 수화진이 돌보던 흰 사슴은 이 거대한 금강산을 책임지고 있는 산신이었다.

 

 대재앙 이후에 마나의 축복을 받은 것은 비단 인간만이 아니었다. 동물들 중에도 마나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개체들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그중에 특별한 것은 산이나 특정 지역을 다스리기도 했다.

 

 이래 보여도 이 사슴은 무인으로 따지면 화경에 경지에 이르는 엄청난 힘을 가졌고 특히 그가 다스리는 이 산에서는 정말로 신과 같은 권능을 뿜어낸다.

 

 하지만 산신이라고 모두 철이 든 건 아니다.

 

 「오래간만에 어여쁜 처자잖아.」

 

 「그녀는 인간이지 않습니까? 종족도 다르면서.」

 

 「임마! 같은 포유류니까 그런 건 상관없어. 근데 혹시 네 짝은 아니겠지?」

 

 「······아닙니다.」

 

 「흥, 역시 너 같은 놈팡이가 가질만한 아이가 아니다.」

 

 「그래서 다리 저는 연기까지 한 겁니까? 산이나 잘 관리하시죠. 금강산 산신님!」

 

 「그건 이미 다 애들이 잘 관리하니깐 난 특별할 일 없는 한은 신경 안 써도 된다.」

 

 「체통 좀 지키세요. 그러니깐 다른 산신들이 손가락질하는 거 아닙니까?」

 

 「누가 감히 어느 놈이 그래!!!」

 

 「백두산 산신입니다.」

 

 「······.」

 

 「백두산 산신입니다.」

 

 「큼! 그냐? 에······, 그 산신은 거리가 머니까 가만히 있는 거다. 계봉산만 되도 가만히 안 있었어.」

 

 「어련하시겠어요.」

 

 「그럼, 너 약속은 꼭 지켜라.」

 

 "유강 씨?"

 

 천유강이 멍하니 걷고 있자, 이상함을 느낀 수화진이 물었다.

 

 "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내가 먼저 찜했으니깐 건들지 마.」

 

 「더 다가오면 아주머님에게 이르겠습니다.」

 

 「큭~ 너!」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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