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 IN》
강해지기 위해서는 승급이 필요하고 승급하기 위해서는 종족을 선택해서 얻어야 한다.
노비스가 아닌 다른 종족으로 환생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퀘스트를 수행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한 모든 것들이 준비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뜻밖의 상황이 발목을 잡았다. 대륙 간 포탈을 사용하기 위해 간 도시가 전쟁 중인 것이다.
유저들이 점유한 성이 아니라 NPC가 점유한 성이라도 가끔 이렇게 이벤트로 전쟁이 일어나는데 퀘스트에 정식으로 참가한 플레이어가 아니면 도시 내에 들어갈 수도 없다.
포탈이 있는 다른 도시에 가려면 또 한참을 이동해야 한다. 하루 디멘션 월드에 접속할 수 있는 시간 7시간을 오로지 환생 퀘스트에만 쏟아부어야 하는데 이렇게 시간을 지연한다는 것은 오늘은 퀘스트를 진행할 수 없다는 말과 같다.
“하루 연기해야겠네.”
부모님을 구하기 위해 한시가 급한 천유강이다. 단 하루라도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은 원치 않았지만 다른 방도가 없다.
“오늘은 레벨이나 올려야겠네.”
예전이었다면 캐릭터 레벨을 올리는 것에는 아무 관심도 없었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나중에 테스트 서버라는 곳에서 활동할 때도 레벨이 중요하고 게이머라는 특성을 얻어 캐릭터 능력의 20%를 현실의 능력에 더할 수 있다.
특급 균열이라고 하지만 균열 두 개를 깨고 얻은 것이 너무 많았다. 앞으로도 이렇게만 진행된다면 부모님을 구하는 것도 꿈만은 아닐 거다.
균열에서 얻은 모든 힘은 현실만이 아니라 게임 안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현재 입고 있는 상의도 균열에서 얻은 브류나크고 특성 게이머도 적용되어서 총 스탯이 20% 올랐다.
덕분에 사냥의 속도가 어제보다도 비약적으로 올랐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직업 레벨이 올랐습니다》
《스킬 획득》
퍼져나가는 어둠
(패시브)
능력 : 근접 공격 시 주변 5m의 모든 적이 어둠에 감염되어 그중 하나가 받는 데미지의 15%를 같이 받게 된다.
액티브 스킬은 스킬북등을 통해서 얻기도 하지만 패시브 스킬은 오직 직업 레벨을 올려서만 획득할 수 있다. 보통 한 직업을 마스터하면 4개의 패시브 스킬을 얻는데 승급한 직업과 스페셜 직업에는 얻는 스킬은 일반 직업 스킬보다 좋은 게 일반적이다.
어느덧 레벨이 430이 넘었고 직업 레벨도 50이 되었다. 짧은 시간 얻어낸 결과라고는 믿을 수 없는 빠르기다. 자신보다 월등히 레벨이 높은 적을 처치하고 균열 클리어 경험치를 얻은 덕분이다.
다른 마을로 가는 김에 주변에 있는 몬스터들을 모두 제거하며 나아갔다.
퍽!
“끄르륵!”
450 레벨 몬스터 ‘플르다’가 급소에 명중되자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이제는 같은 레벨의 몬스터는 가볍게 툭 쳐도 쉽게 쓰러진다. 경험치를 적게 주는 편은 아니지만 최근 광렙을 한 천유강에게는 조금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목표로 했던 마을에 거의 다 왔을 때다. 한국인으로 보이는 중년의 남성이 갑자기 천유강에게로 헐레벌떡 뛰어왔다.
“자, 잠시만요!”
“저한테 하는 말인가요?”
“네, 노비스시죠?”
남자는 천유강의 위아래를 훑어본 뒤에 조심스럽게 물었다.
“맞습니다.”
“마침 다행입니다. 죄송하지만 저희 좀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사례는 충분히 하겠습니다.”
“제가요?”
일반적으로 종족을 결정하지 않은 노비스면 파티에도 끼어주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노비스니 자신들을 도와달라고 하는 건 수상쩍었다.
플레이어 킬, 일명 P.K을 하면 플레이어가 가진 아이템 중에서 가장 높은 등급의 것을 얻을 수 있다. 몬스터를 죽이는 것보다 오히려 효율이 높으니 어딜 가나 P.K범은 존재한다. 이렇게 사람을 꾀어낸 다음에 매복하고 있던 다른 일행과 함께 습격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다른 플레이어가 알 리는 없겠지만 천유강은 레전드 등급 아이템인 미라클을 가지고 있다. 만약 천유강이 죽기라도 하면 이 아이템을 떨어트릴 거고 다른 균열을 클리어하거나 부모님을 회생하는 것에 큰 차질이 일어날 거다.
천유강의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자 그 뜻을 알아차린 남자가 손사래를 쳤다.
“그,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저희 파티가 중요한 퀘스트를 얻었는데 아무 종족도 없는 노비스가 필요하다고 나왔습니다. 그래서 급히 찾아봤는데 어딜 가도 노비스가 보이지 않아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렇습니까?”
이 지역은 500레벨이 훌쩍 넘는 적들이 다니는 ‘헤븐’이다. 천유강처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노비스가 돌아다니는 지역이 아니다. 그러니 천유강의 간신히 찾은 남자도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의심스러우면 선금을 드리겠습니다. 부디 저와 같이 가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남자는 품을 뒤지더니 100골드가 들어있는 주머니를 꺼냈다. 현재 환율로 1골드에 십만 원이니 100골드는 천만 원 정도 되는 큰돈이다. 그걸 단지 하나의 퀘스트를 위해 선뜻 내민 거다.
“저희에게는 너무 중요한 퀘스트입니다. 부디 부탁드립니다.”
돈도 돈이지만 아버지뻘 되는 중년의 남자가 고개를 숙여 부탁하니 매몰차게 거절할 수 없었다. 어차피 오늘은 환생 퀘스트도 물 건너갔으니 퀘스트 해결하고 경험치 획득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돕도록 하죠.”
천유강이 허락하자 남자가 크게 좋아하며 허리를 90도로 숙여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어려서부터 할아버지와 살아서 그런지 어른들에게 약한 천유강이다. 너무 깊이 허리를 숙이는 남자를 부담스러워하면서 그를 따라갔다.
도착한 곳은 신전처럼 보이는 어느 던전의 입구였다. 그 앞에서는 남자의 일행으로 보이는 많은 사람들이 초조한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가씨! 찾았습니다.”
“정말인가요?”
남자를 맞이한 것은 아직 천유강 또래 정도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귀까지 내려오는 짧은 단발머리를 한 그녀는 과학 대륙 특유의 전투 슈트와 기관 권총을 들고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쉰 그녀는 정중하게 인사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미르 길드를 이끄는 전미린이라고 합니다.”
“천유강이라고 합니다.”
“던전 하나를 공략해야 하는데 노비스를 포함한 6개의 대륙 사람이 모두 필요합니다. 사전 정보를 알 수 없었기에 이렇게 급하게 찾게 되었습니다.”
디멘션 월드에 있는 대륙은 총 7개다. 그중 하나는 모든 대륙이 섞여 있는 중앙 대륙이니 노비스를 포함하면 일곱 대륙이 맞다.
대충 들어도 복잡한 퀘스트인 것을 알 수 있다. 중요한 건 천유강의 역할이다. 도와줄 수는 있지만 괜한 데 말려들어 희생하는 건 사양이다.
“죄송합니다. 저희도 안에 뭐가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손님이신 만큼 무슨 일이 있어도 저희가 지켜드리겠습니다.”
아가씨라고 불린 것과 기품이 느껴지는 외모로 보아 사회적 지위가 낮은 여성은 아닐 거다. 하지만 천유강의 대하는 자세에는 그 어떤 결례를 찾아볼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저도 제 몸 건사할 정도는 되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때였다. 그들 중에 유일하게 무리에서 떨어져 서 있던 남자가 빈정거리며 말했다.
“큭! 노비스가 뚫린 입이라고 잘도 말하네.”
명백한 조롱에 천유강보다 전미린이 더 불같이 화를 내며 쏘아봤다.
“당신! 도와주러 오신 분에게 그게 무슨 무례한 언사인가요?!”
“뭐래? 당신 손님이지 내 손님은 아니잖아?”
이상한 일이었다. 그의 말에 다른 모든 길드원들이 이를 갈며 분해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의 행동을 제지하지는 않았다. 그는 다른 이들이 노려보건 말건 휘파람까지 불어가며 험담을 멈추지 않았다.
“꼴에 남자라고 여자한테 잘 보이고 싶은가 보네? 하긴, 노비스가 이런 곳에 온 것도 보통 허세가 아니면 불가능하지.”
그의 입이 멈추지 않자 전미린이 천유강의 눈치를 보며 그를 쏘아붙였다. 간신히 데려온 노비스 플레이어인데 오늘 하루가 공으로 돌아가게 생겼다.
“닥치세요!”
다른 사람이라면 이런 대접을 받고도 이곳에 남아 있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천유강은 욕에 화를 내기보다는 저 사람이 왜 자신에게 이렇게 행동하는 지가 더 궁금했다.
‘경쟁 상대인가? 아니면 일행들끼리 다투었나?’
모욕을 주어도 천유강이 안색 하나 변하지 않자 남자는 눈을 찡그렸다. 이상한 일이었다. 남자는 마치 천유강이 끼어들어서 이 퀘스트를 완료하기를 원하지 않는 눈치였다.
이제는 다른 사람들이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험악한 분위기를 풍기자 남자는 두 손을 드는 제스처를 취했다.
“알겠어, 알겠다고.”
그가 조용해지자 다시 전미린이 천유강에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저 남자의 무례는 제가 대신 사과하겠습니다.”
누가 봐도 남자와 이 일행의 사이는 좋아 보이지 않았다. 좋아 보이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마치 원수지간 같았다. 다들 그를 노려보면서도 차마 쫓아내지는 못했다.
‘뭔가 사연이 있나 보네.’
일단 도와주려고 마음을 먹었으니 이상한 남자에 휘둘리지 않을 생각이었다. 천유강이 담담하게 움직이자 남자가 다시 혀를 찼으나 상관하지 않았다.
그러자 남자는 이번엔 타겟을 바꿔서 전미린에게 퉁명스럽게 말을 뱉었다.
“상납 일은 오늘이야. 오늘까지 성과를 내놓지 않으면 물건은 없어.”
“알고 있어요. 당신만 방해하지 않으면 문제없습니다.”
천유강에게는 상냥하던 전미린이지만 남자에게는 가시가 돋친 듯 까칠하게 굴었다. 그 모습에 남자는 놀라는 척하더니 다시 능글거리며 말을 걸었다.
“뭐~ 나하고 하룻밤만 재미있게 놀면 그냥 약을 줄 수도 있지. 아껴서 쓸 데도 없지 않나?”
전미린의 위아래를 훑어보며 음흉한 말투로 말했다. 명백한 성희롱에 다른 길드원들이 그를 때려죽일 것처럼 노려보았지만 전미린은 표정 변화 없이 쌀쌀한 말투로 대꾸했다.
“당신 같은 하급 관리자가 물건을 참도 구하겠군요. 헛소리하지 마세요. 당신 따위에게 그런 결정권은 없다는 것은 이쪽도 잘 알고 있으니까.”
“큭!”
“한 번만 더 방해하면 위쪽에다가 보고하겠어요. 그쪽도 당신 같은 발정 난 망나니는 좋아하지 않을 텐데요.”
전미린의 말에 남자는 자존심이 상한 듯이 얼굴을 구겼지만 전미린을 비롯한 길드원들은 싸늘한 표정으로 상대하지 않았다. 결국 이를 악문 남자는 뒤로 물러났다.
“쳇!”
‘원하는 물건은 있어서 저 남자와 함께해야 하지만 굳이 잘 보일 필요는 없다는 건가?’
마치 사채업자가 빚 독촉을 하는 모양새다. 전미린은 아까보다 두 배는 더 피곤한 얼굴로 천유강을 신전 안으로 안내했다.
“이쪽으로 와 주세요.”
전미린이 인도한 한쪽에는 퀘스트와 관련되어 보이는 특이한 문이 열려있었는데 사람이 들어갈 크기의 일곱 개의 구멍이 있고 그 위에는 각 대륙을 상징하는 표시가 있었다. 마지막 입구에는 아무 표시도 없었는데 저것이 노비스를 위한 구멍일 거라 추측되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퀘스트가 발동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저희도 알지 모릅니다. 단, 우리가 지켜드릴 수 있으면 반드시 천유강 님을 보호할 것을 약속드리죠.”
“알겠습니다.”
“그럼 들어가 주세요.”
일곱 구멍에 플레이어들이 차례로 들어갔는데 그 안에는 아까 무례한 남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감시를 위해 같이 가는 것으로 보였다.
마지막에 천유강이 들어가는 순간,
위잉~
어디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면서 순식간에 시야가 반전되더니 다시 눈을 떴을 때, 낯선 공간에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긴 또 어디지?”
분명 구름 섬 위에 있는 신성 대륙에서 왔는데 이곳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는 배의 한복판이었다.
문제는 거센 바람과 파도가 밀려와 배가 뒤집어지기 일보직전이라는 점이었다. 비바람을 뚫고 온 어느 선원이 천유강에게 소리쳤다.
“선장님!! 파도가 너무 큽니다. 이러다가는 모두 죽게 생겼습니다. 결단해야 합니다.”
선장이라고 지칭하는 말에 무심코 손을 봤는데 한쪽 손이 갈고리로 되어 있었다. 어느새 선장의 몸으로 바꿔 있던 것이다.
“선장님! 어떻게 할까요?”
《퀘스트 - 풍랑을 뚫고》
태풍을 피해 다음 항구에 도착해라.
보상 - 100골드
운반한 모든 물자
경험치 100,000
사망 시 보상 획득 불가
분명 퀘스트의 시작이다. 천유강은 우선 빠르게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배를 안정시키기 위해서 애를 쓰는 선원들이 보였고 선창 안에는 불안한 표정으로 밖을 보고 있는 승객들도 있었다.
배의 바깥에는 구명보트도 있었는데 넉넉하게 있는 것은 아니어서 10명 안팎의 사람만 탈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현재 인원 구성이 어떻게 되지?”
“승객 50명 선원 30명, 총 80명입니다.”
“물자는?”
“다음 항구에서 팔 많은 상품들이 있습니다.”
선택지는 많지 않았고 시간도 충분하지 않았다. 여기서 천유강의 선택에 다른 결과가 나올 거다. 일단 우선순서를 정하기로 했다.
“일단 돛을 내리고 짐을 모두 바다로 버린다!”
퀘스트 보상에는 분명히 가진 짐을 소유할 수 있다고 했다. 한 달간 항해하며 팔기로 한 상품이니만큼 값비싸고 귀중할 것이 분명하다. 앞의 선원이 그 사실을 일깨우려 소리쳤다.
“네? 하지만 이 짐을 모두 버리면 한 달간의 항해가 헛수고일 뿐 아니라 우리는 빈털터리가 됩니다.”
“죽을 때 저 짐을 짊어지고 갈 생각인가? 그렇지 않을 거면 모두 버려!”
“······알겠습니다.”
천유강의 명령에 한쪽에서는 분주하게 짐을 밖으로 내던지기 시작했고 다른 쪽은 돛을 내리고 있었다. 폭우 속에서 많은 일을 하다 보니 많은 문제가 발생했는데 가장 높은 곳에 달린 돛을 내릴 방도가 없었다.
“선장님! 이대로는 배가 뒤집힙니다! 무게를 더 줄여야 합니다.”
“짐은 저게 전부 아닌가?”
선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인 결과 거의 모든 짐을 바다 밖으로 던졌다. 남은 짐이 몇 개 안 남았으니 더 줄일 무게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선원의 생각은 달랐다.
“승객을······, 승객을 던져야 합니다.”
“뭐?!”
천유강이 인상을 썼지만 선원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대로는 모두 죽습니다. 우리라도 살아야 합니다. 아니면 우리는 구명보트를 몰고 빠져가고 남은 사람들의 목숨은 운명에 맡겨야 합니다.”
금방이라도 배가 뒤집힐 것 같은 상황이었다.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판단한 선원의 말도 아주 완벽히 틀리지는 않았다. 살 사람이라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천유강은 고개를 저었다.
게임이니 사람들이 죽여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 없을 것도 같지만 전 균열의 사람들이 단지 가상현실의 NPC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천유강이다. 이 사람들도 진짜 살아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균열을 통해 배운 것이 있다. 이 디멘션이라는 게임은 주어진 답을 선택하는 것이 꼭 좋은 것이 아니다. 뻔히 보이는 답 말고 다른 해답을 찾는 것이 중요할 때가 있다.
“다른 방도가 있을 거야.”
지금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꼭대기에 펼쳐져 있는 돛이다. 저것 때문에 배가 바람의 영향을 더 심하게 받는다.
“모두 자리를 지켜! 승객은 한 명도 포기하지 않는다.”
선원은 승객에게 돈을 받고 그들의 안전을 책임지기로 약속한 사람들이다. 자신만 살겠다고 시도하지도 않고 승객을 팽개쳐버리는 것은 계약위반이다. 아니, 꼭 계약이 아니더라도 해서는 안 되는 짓이다.
천유강은 물이 젖어 미끄러지는 돛대를 잡고 오르기 시작했다. 한쪽 손이 없고 바람도 세차게 불어서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는 일이지만 다행히 힘은 좋았다.
돛대에 달린 밧줄을 잡고 차근차근 오르다가 배가 기울어져서 미끄러지기도 몇 번인가를 반복했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벌린 입으로 들어간 물 때문에 배가 불러오고 숨도 쉬기 힘들어질 때야 겨우 목표로 했던 돛에 가까이 붙을 수 있었다.
‘조금만 더······.’
이제는 더 오를 힘도 없었다. 돛을 지탱하고 있는 밧줄만 끊으면 자연스럽게 분리될 거다.
손이 아슬아슬하게 닿을락 말락 하자 천유강은 마지막 힘을 내서 뛰었다.
투툭!
갈고리의 끝에 겨우 밧줄이 걸렸고 모두 절단하지는 못했지만, 강풍의 힘 덕분에 나머지 밧줄도 끊어졌다. 결국, 돛은 바람에 저 멀리 날아갔다.
쿵!!!
그 높은 곳에서 떨어졌으니 천유강도 무사할 리 없었다. 겨우 낙법을 사용해서 죽는 것은 면했지만 엄청난 고통과 함께 어깨뼈가 골절되었다.
“크윽!”
지금은 뼈를 맞출 시간도 없다. 아직 배가 무사한 건 아니니 빠르게 지휘하지 않으면 배가 뒤집힐 거다.
“절대 키를 놓치지 마!”
천유강의 투혼을 본 선원들도 더는 승객을 버리거나 구명보트를 사용하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천유강에게 감화되어서 더 큰 힘을 내서 배를 이끌었다.
“우리도 할 수 있다!”
“모두 살아서 돌아간다.”
풍랑에 이리저리 움직이는 배에서 조금만 발을 헛디뎌도 바다로 빠질 수 있는 상황이지만 누구도 겁을 먹고 선창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천유강이 뼈가 부러져 퉁퉁 부은 팔을 부여잡고 가장 열심히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파도가 온다!”
“모두 난간을 꽉 붙잡아!”
선원들은 하나가 되어서 똘똘 뭉쳤다. 위험한 동료가 있으면 다른 선원들이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도우니 안심하고 작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육지다!”
지옥 같은 시간이 흐르고 겨우 폭풍의 범위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아직 파도가 심하지만 배가 뒤집힐 정도는 아니다.
“살았다!”
“우리가 해냈어.”
바로 앞에 항구가 보였다. 단 한 명의 희생 없이도 무사히 빠져나온 거다. 물론 보상인 물자는 하나도 얻지 못하겠지만 후회는 없었다.
《퀘스트 클리어》
천유강이 눈을 떴을 때는 다시 신전으로 돌아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