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락하면”
“...”
“넌 다시 떠날거잖아”
“...”
“이번에 널 놓치면 다시는, 널 찾을수 없을거 같으니까”
“...”
“거절하는 거야”
“제가 무슨 말을 할 줄 알고요”
“황비폐위잖아”
이런 다 알고 있었잖아. 품에 묻혀 흘러나온 소리지만, 똑똑히 들렸다.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그의 검은 머리카락을 살짝 휘저었다. 그러자 그가 작게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내가 너무 많이 휘저은 탓인지 머리카락이 헝클어 졌지만 그는 그저 좋은지 그대로 나를 껴안았다.
“이대로 있고 싶어”
“어..”
“내 욕심이 너무 과한건가”
그러겠지. 하즈가 작게 중얼거리며 날 안고 있던 팔에 힘을 풀었다. 나는 그대로 하즈를 쳐다보았다. 그의 미소는 밝았지만, 매우 슬퍼보였다.
그리고 난 아무 소득도 없이 집무실을 나갔다.
“...황제폐하”
“어 엘리니아”
다시 돌아온 집무실은 아까의 화목함이 거짓이었다는 듯이 쌀쌀했다. 엘리니아는 한숨을 쉬고는 다기를 치우기 시작했다.
“황비전하께서 폐위를 요구하셨나봐요”
“...”
“항상 있던 일이면서 오늘은 왜 그런대요 못마시는 술도 마시면서”
엘리니아는 일부러 하즈에게 짓궂은 농담을 건냈다. 하즈는 씁쓸하게 웃으면서 술을 마셨다.
아름답게 장식된 유리컵에 있던 술의 양이 점점더 줄어들다가 마침내 마지막 한방울까지 없어질때까지 하즈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엘리니아”
“예”
“엘리니아는 내가 매력적이다고 생각해?”
이건 또 무슨 뜬금포래. 엘리니아가 김빠지는 소리를 냈다. 다기를 치우고 그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던 참이여서 가만히 기달리고 있었는데 이런 소리가 나올줄은. 그녀는 황제가 만만치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인식했다.
“전하께선 폐하가 매력적이지 않다고 하셨나요”
“아니 그냥...”
하즈가 우는듯한 표정을 지으며 책상에 엎드렸다. 눈물한방울도 않는 냉혈한이 이런다니 뭔가 새롭지만 엘리니아는 그냥 넘어 갔다.
“내일 못과 망치를 준비해 달라고 해야겠어”
하즈의 눈이 순간 살기로 번득였다. 요즘 잠잠한가 싶더니 또다니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내일 회의에서 건의서를 낸 대신들 모두를 귀에 못을 박도록 시킬거야.아니, 황비폐위에 대한 얘기를 꺼낸 자라면 다 못을 박아야지. 하즈가 살짝 웃었다.
엘리니아는 그런 하즈를 보고 미간을 찌뿌렸다. 평소에 황비폐위에 관한 얘기는 나오지만 요즘처럼 심하진 않았다. 오죽하면 요즘 회의 내용 일순위가 황비폐위에 관한 얘기인가. 전속시녀이긴하나 시녀인 엘리니아가 알 정도면 황궁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는 소리다. 그리고 그 소식은 황제인 하즈가 가장 민감한 부분이기도 하니 그걸 말한 이들의 귀가 안쓰러워질 정도다.
실제로 그것을 발언하는데 가장 앞선 이가 황실 모독죄이자 본보기로 귀에 못이 박혔다. 당연히 얼마못가 죽어버렸고, 그 영향으로 황궁에선 황비폐위가 금기어였는데, 그일이 일어난 이후 황궁이 한번 세대교체를 했으니 어리석은 젊은이들이 그런 말을 막 뱉는 것이었다.
내일 황궁 상황이 걱정되네. 집무실을 나온 엘리니아가 작게 말하곤 유유히 사라졌다.
*********
“윽...”
아무도 없는 적적한 궁에 앓는 소리가 났다. 소리의 주인은 다름아닌 설궁의 주인이자 황비인 나. 내방에서 일기를 쓰고있다가 갑자기 심장이 아파 끙끙대자 내방어딘가에 무언가가 꾸물꾸물거리며 내곁으로 모여들였다.
[무슨 일?]
[괜찮은거야?]
내 주위에 여러 가지 말하는 무언가가 둥둥 떠다녔다. 동글동글한 모양에 색이 있는 무언가들은 에게 우려의 말을 내뱉었다.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인 다음 심장부근에 손을 댔다.
‘마나가...’
[어 마나가 이상한데]
[영감좀 불러봐!]
무언가들은 내주위에서 허둥지둥거렸다. 나는 그들을 지켜보다가 심장의 고통이 더한 것을 느끼며 일기장을 덮고 침대로 걸어갔다. 침대에 가는 것도 버거웠다. 무언가들은 그것을 알았는지 여럿이서 내가 침대까지 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마나가 다시 역류했퐁]
급하게 온듯 부르르 떤 영감이 심장부근에 닿은뒤 그대로 멈추었다. 내상태를 말한 영감은 다시 떠오르더니 내 앞으로 날아왔다.
[다시 약을 지어주겠퐁]
퐁퐁거리며 뛰어오른 영감은 한바퀴 회전하더니 그대로 바닥에 들어가고 몇분있다 다시 모습을들어냈다. 영감은 나에게 흰색약과 근처에 있던 물을 주었다. 나는 그것을 받아먹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이건 말하지마”
[말 않해도 다 않다퐁 몸건강이나 챙기라퐁]
영감은 툴툴거리며 책상에 주먹만한 주머니를 놨두고 쉬라는 말을 남기고는 다른 무언가들이랑 같이 돌아갔다.
“...”
머리가 지끈거렸다. 한동안 발병하지 않았기에 없어진줄만 알았기에 잠시 긴장을 풀었더니 바로 발병할줄은 몰랐는데. 나는 거친 숨을 몰아 쉬었다. 직속시녀를 부를까 생각했지만 별로 좋은 방법은 아니었기에 잠을 청했다.
그렇게 밤이 지고 아침이 떠오르는가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