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가 뷰티아카데미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오세요."
남자 실장이 그녀를 반겼다.
"저...여기 다니고 싶은데요."
"대학생이에요?"
"..."
그랬다. 그녀는 노안이었다.
이미 중학교때 19세 미만 영화도 영화관에서 프리패스하던 이력이 있었다. 잠시 주춤했지만 이내 무너지는 심정을 추스리고는 또박또박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대답했다.
"아니요, 고2예요."
"입시반? 취업반?"
"어...지금 꼭 정해야해요? 해보고 얘기하면 안 되나요?"
순진한 먹잇감을 발견한 것처럼 실장은 반색을 했으나 이내 그녀의 똑부러지는 말투에 살며시 꼬리를 내렸다.
"그래도 되죠."
그녀가 천천히 사방을 둘러봤다. 인기리에 방영 중인 드라마부터 노인, 귀신, 좀비 분장에 뮤지컬에서나 볼 법한 무대 화장까지 총천연색의 포스터가 그녀의 눈을 사로잡았다.
"와...이거 배우면 이런 데서 일하는 거예요? 가수랑 배우도 만나고요?"
"물론이죠. 자격증만 딴다면 말이죠."
"아...자격증..."
쭉 둘러보던 그녀가 남자 아이돌에 눈이 꽂혔다.
"우와, 강리훈도 있네?"
"저번 드라마 사극할 때 우리 애들이 가서 도왔었죠. 엑스트라까지 100명 가까이 수염 붙이느라 소위 말하는 중노가다였지만...그것 때문에 분장 속도도 빨라지고 스킬도 늘었으니 애들도 고생했지만 덕 좀 봤죠."
"수염을 붙여요? 그렇게 가까이서?"
실장은 당연하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얼굴에 붙이고 바르는 건데 가까이서 해야지. 멀리서는 못 하죠. 가제트팔이 아닌 이상, 하하하."
그녀는 웃을 수 없었다. 시아는 가재트를 몰랐다. 실장은 30대 중반의 아재였다. 그는 농담을 날렸지만 그녀에게는 단지 한물 간 아재개그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억지로 웃었다. 최소한의 사회성은 갖춘 보통의 18살이었으므로.
"아, 네, 네..."
그렇게 썰렁해진 분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그녀가 다시 벽에 붙은 포스터로 눈을 돌리는 순간, 한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서와요, 하완이."
"안녕하세요."
쌍꺼풀이 없는 눈에 갸름한 턱을 한 하얀 피부의 댄디룩을 한 남자였다. 반갑게 인사하는 실장의 인사를 어깨너머로 대충 흘려 대답하고는 시아를 지나쳐 강의실로 들어갔다. 멋을 낸 것 같진 않은데 살짝 마른 몸매에 옷 태가 났다. 고등학생인지 대학생인지 사복만으로는 나이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얼핏 그녀 또래같아 보이기도 했다. 요즘 남자애들은 고등학생도 교복을 벗으면 대학생처럼 보이니까. 심지어 노안인 애들은 예비역이냐는 소리까지 듣기도 했다. 그가 들어간 강의실을 힐끗 쳐다봤다.
'메이크업반'
교실 앞에 써있는 문패에 그녀는 의아했다.
"저기...방금 지나간 남자는...미용사반이에요?"
"응, 잘해요. 하완이. 얼마 배우지도 않았는데 완전 잘 해. 타고 났어. 손재주며 눈썰미며."
"남자미용사?"
"요새 많잖아. 여자보다 잘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어느 순간 부터 실장은 시아에게 반말을 썼다. 하지만 그녀 역시 그게 편했다.
"메이크업이랑 헤어랑 네일까지하면 수강료를 할인해줍니당."
그러면서 돈 얘기가 나오자 다시 콧소리까지내며 아양을 떨었다. 그러고보니 말투가 일관적으로 여성스러웠다. 여기 다니는 남자는 왠지 다 그러지 않을까 싶은 의심이 들었다.
'그럼 방금 지나간 저 남자도?'
수강료가 싸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결제했다. 엄마 카드로. 좀 이따 엄마에게 고지 문자가 가면 뭐라고 변명을 해야하나 고민을 할 무렵 그가 강의실 밖으로 핸드폰을 들고 나왔다. 그래서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실장실에서 나온 그녀와 살짝 부딪쳤지만 그는 신경도 안 쓰고 복도로 나와 통화했다.
"이번 학기만 다니고 휴학할 꺼야. 더는 못 다니겠어. 피 보는 건 내 적성이 아니야."
그러자 수화기 너머로 터져나오는 앙칼진 목소리에 그나 귀에서 전화기를 뗐다. 그리고 다시 전화를 받고 또 상대방이 상욕을 하면 전화기를 떼고 그랬다. 자주 해본 듯 능숙했다. 그녀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그의 대화가 궁금해 층수만 올려다보며 계속 듣고 있었다.
'휴학? 대학생인가? 피? 무슨 피? 사람 피?'
그렇게 여러번 하던 그가 마지막엔 화가 난 듯 전화가에 대고 소리쳤다.
"몰라, 맘대로 해. 그렇게 학교 다니고 싶음 엄마가 다니라고!"
그리고 그가 돌아섰다. 깜짝 놀란 그녀는 순간 얼음이 되었다. 그렇게 꼼짝도 않고 엘리베이터 문만 쳐다보고 있는데 강의실 안으로 들어가려던 그가 그녀 뒤에 걸어와서 멈춰섰다. 그리고는 그녀의 어깨 위로 팔을 뻗어 내려가는 버튼을 눌렀다.
"남 통화 듣는 거 재밌어요? 버튼은 누르지도 않고..."
들켰다. 그녀는 뜨끔해 들고 있던 핸드폰을 쳐다봤다.
"드, 들은 거 아니에요. 핸드폰 보느라 몰랐던 거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대거리했다.
"이제 핸드폰 쳐다봤으면서..."
"아니, 모든 사람이 관음증 환자는 아니잖아요? 왜 혼자 착각이에요?"
그렇게 그의 눈을 쏘아봤다.
'어? 훈남데쓰네...'
아까는 옆 얼굴만 봐서 몰랐는데 그는 훈남이었다.
"아님, 말구..."
'뭐? 아님, 말구? 사람을 스토커로 만들어놓고 아님 말구라는 무책임한 발언이 어딨어? 우이씨.'
그렇게 대꾸를 하려는데 그가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녀는 어이가 없었다.
"우와...진짜 웃긴 사람네? 왕자병도 가지가지야. 진짜..."
그렇게 중얼거리는데 그가 다시 밖으로 나왔다.
"뭐? 왕자병? 너 몇 학년이야?"
그가 시아의 위아래를 훑으며 물었다.
"나, 2학년. 넌 몇 학년인데?"
시아의 쌈닭본능이 발톱을 드러냈다. 대강 대학생이라고 추정하고는 있지만 모르는 척 반말을 질렀다. 싸움은 뭐니뭐니해도 기선제압이므로 처음부터 나이에 주눅들면 안 되느니. 그런데 그가 주춤했다. 일단 성공.
"2, 2학년?"
"그래, 넌 몇 학년인데?"
"...나도 2학년이긴 한데..."
잉?
그는 고등학생이었던 건가.
"뭐, 암튼 아님 말고."
그러면서 그가 다시 들어갔다. 순간 그녀는 어이상실이었다.
"뭐야? 고딩이었어? 교포야? 고딩이 휴학이 어딨어? 그리고, 이름이 '아님, 말고'야? 말끝마다 아님, 말고 하며 사라져?"
그때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그녀는 타면서도 혼자 울분을 토했다. 왠지 속은 기분이어서 더 짜증났던 것이다.
"아님, 말고...그래, 앞으로 내가 널 '아말고'라고 불러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