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로맨스
화장해 주는 남자, 머리 감겨 주는 여자
작가 : 세빌리아
작품등록일 : 2017.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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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 꿈을 향한 잔다르크
작성일 : 17-10-25     조회 : 38     추천 : 0     분량 :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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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시아, 너 학원 옮겼어? 이건 어디 있는 거야? 넌 엄마한테 말도 안 하고 학원을 혼자 옮기니?"

 

 시아가 김밥집으로 들어오자 그녀의 엄마가 김밥을 말다말고 시아를 쳐다봤다. 찌릿 소리가 날 것 같은 강렬한 눈빛이었다. 시아는 순간 뜨끔했지만 이미 문을 열기 전부터 이 상황에 대해 예측하고 혼잣말로 예행연습하며 들어오지 않았는가.

 

  "그 선생님 맘에 안 들어. 온통 머리부터 발끝까지 돈 냄새만 폴폴 풍기고...레슨비만 자꾸 올리려고 하고 별로 성의도 없고. 돈 있는 애들한테만 친절하고. 알지? 가린이한테는 얼마나 친절한데...딱봐도 내가 더 잘 하는데 걔한테만 칭찬하고."

  "이런 썩을! 그럼 엄마한테 말을 했어야지. 내가 직접 전화해봐야..."

 

 비닐 장갑도 벗지 않고 바로 수화기를 드는 엄마를 보고 시아는 화들짝 놀라 황급히 엄마를 잡았다.

 

  "아, 됐어. 내가 가만히 있을 사람이야? 내가 엄마 딸이야. 한 마디 해주고 나왔지. 엄마까지 안 해도 돼."

  "그럼, 그래서? 이 학원은 이름이...샹들리제? 뭔 이름이 양주 이름 같기도 하고 술집 이름 같기도 하고...어디 있는 거야? 잘 가르친대?"

 

 여기서 시아는 머뭇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순간의 안위를 위해 거짓말을 할 것인가, 진실을 마주하고 신나게 두들겨 맞을 것인가. 아니, 헛된 데 돈 쓴 것도 아니고 미래를 위해 과감하게 진로를 틀 일이 맞을 일인가? 오히려 일찍 바꾼 건 칭찬받을 일 아닌가.

 

  "그게...미술학원은 아니고..."

  "미술학원이 아니라고? 그럼 뭐야? 술집이야? 너 술 먹고 다녀?"

 

 술을 먹는 건 사실이지만 엄마가 알 일은 아니고, 이렇게 큰 돈을 쓰는 술집에 들어갈 정도의 베짱까지는 없는 그녀였다.

 

  "미용...학원이야."

  "뭐어?"

 

 이 순간 그녀의 꿈이 정해져버렸다. 시아 역시 놀라울 따름이었다. 호랑이를 피해 들어간 굴이였을 뿐인데...이 순간 그녀는 얼토당토않게 꿈을 사수하기 위한 잔다르크가 되어버렸다. 어영부영 장래희망이 생겨버렸다.

 

  "나, 미용사할래. 미술 싫어."

  "아니, 1년 실컷 학원 보내놨더니 왜 갑자기 미용이야? 너처럼 머리도 안 감고 다니는 애가?"

  "아, 그냥 하고 싶어졌어."

  "그냥?"

  "아니, 사실 우리집 빚도 많은데 이런 김밥 몇 줄 팔아서 언제 다 갚아? 내가 기술 배워서 일찍 취직하면 가사에 보탬도 되고 좋지 뭐. 사실 나 같은 흙수저한테는 처음부터 미술은 사치 아녔어? 화가가 되려면 언제 큰 돈 벌어? 전시회는 얼마나 돈이 든다구? 다 엄마의 욕심이었잖아. 나 소질도 딱히 없는데 그거 다 허세 아냐?"

 

 이렇게 질러 놓고 시아는 눈을 꼭 감았다. 국자든 냄비는뭔가 하나는 날아올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엄마의 자존심을 건드렸으니 엄청난 응징이 시작될 것이었다. 그런데 맞아도 속은 시원할 것 같았다. 이때껏 군말 없이 꾹꾹 눌러 참아왔던 건 사실이었으니까. 그런데 이상스리만큼 주변이 고요했다.

 

  "휴...그래, 해."

  '잉?'

 

 살며시 눈을 뜨는데 그녀의 엄마는 여전히 처음 그 자세로 김밥을 말고 있었다. 아무 말도 듣지 못한 사람처럼 일했다.

 

  "진짜? 나, 미용사...해?"

  "그래, 하라고. 하고 싶다며. 미술 싫다며."

  "..."

  "...열심히 해봐. 이번에는 끝을 보라고. 중간에 하다 말지 말고."

  "...어."

 

 얼떨떨한 그녀였다. 이렇게 방으로 들어가는게 허무하기까지 했다. 얼떨결에 꿈이 정해진 것도 아직 적응이 안 되는데 엄마의 승락은 더 믿기지 않았다. 엄마는 그녀를 미술로 명문대에 보내겠다는 허망한 꿈도 가졌던 사람이다. 미용을 한다는 건 다른 말로 대학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소리였는데 그것까지는 생각을 못 했던 건가? 시아는 엄마의 심중을 알 수 없어 시종 갸우뚱했다.

 

  "아, 몰라...해결됐으면 된 거지."

 

 그렇게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붓을 들고 다른 사람의 얼굴에 화장하는 자신을 상상해보았다. 아니면 누군가의 긴 머리카락을 말고 있는 상상을. 어울리면서 어울리지 않는 낯선 모습이었다. 문득 학원에서 봤던 그 남자가 떠올랐다.

 

  "남자도 하는데 뭐...걘 어떻게 집에 허락을 받았을까? 아, 아니지. 허락 못 받아서 전화통 붙잡고 싸우는 중이었지? 걔야말로 잔다르크네. 잔 다르크? 오...나도 제법 유식한데? 그래, 이러라고 학교가 있는 거지."

 

 그날 밤 시아는 몰랐다. 그녀의 엄마가 가게 문을 닫고 한참을 텅 빈 홀에 앉아 소주 한 병을 잔에 기울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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