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놀라 말도 안 나오는 시아였다. 방금 자신의 입술을 덮은 뜨뜻한 스폰지는 분명 화장 퍼프가 아니었다. 그게 만약 퍼프였다면 여기 바로 앞에 서있는 남자가 자신이 어깨 위로 손을 올렸을리 없을 것이며, 놀라 동그래진 눈으로 자신을 쳐다볼리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게 입맞춤이었다고 확신할 수도 없었다. 어쩌면 자다가 키스하는 꿈을 꾸는 통에 현실과 착각했을 수도 있다. 괜히 섣불리 이 남자를 성추행범으로 몰다간 역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 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 자신만 가볍고 웃긴 애가 될 것이며 엉겹결에 이 남자를 짝사랑이라도 하는 스토커로 오인받을 수 있다. 시아는 이 짧은 순간 오만가지 생각을 했다. 하지만 반대로 하완은 뇌 속이 깔끔하게 전체 삭제된 듯 하얘져버렸다.
‘어? 어떡하지?’
하완은 순간적으로 판단력을 잃었다. 분명 이 여자애가 이 교실에서 큰 소동을 일으킬 것 같은데 최대한 아무 일도 아닌 척 무마해야겠다. 하지만 이 사태의 주범은 이 상황을 다 봐버렸다. 유일하 가해자이자 목격자인 이 학생의 이름은 한새파랑.
"헐...지, 지금 뭐한 거에요? 지금 교실에서 키, 키..."
하완은 뒤에서 나는 목소리의 주범에게 표범보다 날렵하게 달려들어 입을 막았다.
"으, 읍..."
"저기, 반가워. 유일한 남자네? 우리 통성명도 할 겸 밖에서 담배 한 배 피고 들어올까?"
"저 담배 안 피우는데요?"
입을 막힌 그가 우물거리면서도 말은 끝까지 했다.
"그럼, 내가 커피 한 잔 살게. 커피는 마시잖아요, 그렇죠?"
그렇게 시아를 남겨두고 하완은 새파랑을 질질 끌고 나왔다. 시아는 미완성이 된 얼굴로 그들을 쳐다봤다.
"하완씨, 다했어요? 어디가요?"
허둥지둥 나가는 그의 뒷모습으 보고 로사가 물었지만 이미 문은 닫혀버렸다.
"잉? 뭐야? 새파랑씨하고 아는 사이야?"
로사가 시아에게 물었지만 시아인들 알겠는가. 그녀는 아직 폭신한 촉감이 남아있는 입술을 살며시 만졌다.
"....아닌가?"
그렇게 갸우뚱하는 시아였다.
***
주차장으로 나온 새파랑은 모든 상황을 알았다는 듯 웃어제꼇다. 하완은 담배라도 있으면 피우고 싶은 심정이었다.
"핫, 지금 당황했죠? 그쵸? 형 몇 살이에요?"
새파랑의 옷차림을 보고 하완 역시 그가 동생이라고 여겼다. 머리는 회색으로 탈색했고 스프링 대학 노트처럼 양 쪽 귀에 잔뜩 뚫은 피어싱, 꼭 맞는 라이더 재킷을 보니 영락없는 날라리였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자기 차 옆에 대있는 오토바이가 왠지 그의 것인 듯 보였다.
"나? 24살."
"어? 진짜? 나랑 갑이네?"
"그, 그래?"
"친구네. 이름 뭐냐?"
"김하완."
"난 한새파랑."
"새파랑?"
"친구들은 보통 한새라고 불러."
"아...그래?"
"야, 너 아까 장난 아니더라? 이런 공공장소에서, 심지어 교복까지 입은 애를...걔 보니 갑자기 땡겼냐? 그렇게 이쁘지도 않더만."
"그런 거 아니야 누가 치고 지나가서 엎어진 것 뿐이야."
아직 하완은 자신을 밀친 범인을 몰랐다. 하지만 파랑은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일부러 밀었으니까. 툭 치면 둘이 딱 입을 맞출 각이었으므로 장난 한 번 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니 절대 자기 탓이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재미난 구경 좀 했으니까. 그가 흰 차 옆에 기대어 섰다. 하완은 그게 거슬렸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호기심 많은 파랑이 먼저 물었다
"너 대학생이냐?"
"뭐...그랬지."
"휴학생? 군대는?"
"아직. 넌?"
"난 20살에 갔지."
"그래? 학교는?"
"난 학생 아니야. 사회인이지."
"그래? 이거 혹시 니 바이크냐?"
하완이 오토바이를 가리켰다.
"어, 어떻게 알았어?"
"걍 느낌이...B사 2016년형네?"
주차장에 차는 두 대고 이 시간에 들어온 애는 파랑 밖에 없었으므로 그의 것임을 충분히 추정할 수 있었다. B사의 초고가이긴 했지만 사회인이라니 돈을 벌테고 할부면 사지 않겠나 싶었다.
"최신이지...넌 애마없냐? 하긴 학생이 뭐 돈이 있냐? 나중에 한 번 태워줄게. 한번에 보고 아는 거 보니 바이크 좀 아나본데..."
의기양양하게 우쭐거리는 파랑이었다. 그의 잘난 척에 풋 하고 하완이 코웃음을 쳤다.
"풋, 내 애마한테서 이제 좀 떨어져주지?"
"어? 뭐?"
하완이 리모컨으로 차 문을 열었다. 그리고 파랑을 툭 밀치며 앞좌석을 열어 안경을 꺼냈다.
"헐..."
그렇게 하완은 안경을 끼고는 다시 학원으로 올라갔다. 파랑은 그의 흰 차를 다시 봤다.
"뭐야, 저 녀석...뉘집 아들이야, 우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