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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해 주는 남자, 머리 감겨 주는 여자
작가 : 세빌리아
작품등록일 : 2017.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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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회 여고괴담처럼
작성일 : 17-10-25     조회 : 28     추천 : 0     분량 : 3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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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씨 어디 간 거야?"

 

 문 밖으로 뛰쳐나간 시아를 찾기 위해 하완은 여기저기 두리번거렸다. 건너편 헤어반에는 없었고 화장실에도 얼핏 쳐다봤는데 사람이 있는 것 같진 않았다.

 

  "그 자식은 생긴 것도 양스럽게 생겨가지고 하는 짓도 무진장 가볍네. 남자 자식이 입이 무거워야지."

 그렇게 툴툴거리며 시아 찾기를 포기하고 하완은 다시 메이크업 교실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를 보는 학생들의 시선은 아까와는 이미 달라져있었다. 그의 등장으로 수근거림은 멈췄지만 왠지 모를 따가운 시선은 여전했다. 어떻게 이 상황을 돌파해야할까 고민이 들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던 일을 하기에 파트너는 사라지고 없으니 더 뭘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그때 파랑과 눈이 마주쳤다.

  "너 나하고 얘기 좀..."

 

 하면서 파랑에게 다가가려는데 로사가 가로막고 그를 불렀다.

 

  "좀전에 교실에서 무슨 일 있던 거에요? 왜 시아가 갑자기 나간 건가요? 난 못 봤지만 다른 사람 말로는 울면서 뛰쳐나갔다던데..."

 하완은 기가 막혔다. 누가 이렇게 이야기를 부풀렸을지 뻔하지 않은가.

  "울다뇨? 울지는 않았어요."

  "그럼 왜 그렇게 나간 거에요?"

  "아...그건..."

  "왜 말 못해요? 내가 여기 교실 책임자인데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아야죠? 그래야 혹시 시아 부모님께 전화가 오더라도 하완씨가 결백하다면 피해가 가지 않게 잘 설명할 수 있죠. 지금 시아 전화도 안 받는다던데요?"

  "겨, 결백이요? 와...나 진짜...아니, 그건 그저 실수였어요."

  "실수?"

  "그러니까...아니, 여기서 말하긴 좀 그렇고 다른 데 가서 말씀드릴게요. 잠깐 나오시죠."

 

 이렇게까지 일이 커질지 알았다면 절대 벌이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스스로 벌인 일도 아니고 그건 분명 접촉사고였을 뿐이다. 자신도 어떻게 보면 피해자 신분일 따름이었다. 교통사고, 바로 그것이었다. 로사는 그를 빈 교무실로 안내했다. 그리고 둘은 마주 앉았다.

 

  "절대 하고 싶어서 한 거 아니고요. 고의가 아니었어요. 제가 안경을 안 가져온 바람에...저, 참고로 시력이 마이너스에요. 눈 앞 30센티도 잘 안 보이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꽤 가까이에서 메이크업해주다가...립을 그리는 순간, 누군가 치고 지나간 힘에 밀려서 걔 앞으로 고꾸라진 거에요."

  "그래서요? 시아가 다쳤어요?"

 

  예쁜 얼굴에 비해 생각보다 순진한 그녀였다. 남녀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전혀 상상 못하는 눈치였다. 안그래도 땡그란 눈을 더 크게 뜨고 자신을 쳐다보는 그녀에게서 약간의 백치미마저 느끼는 하완이었다. 그러고보니 좀더 매력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그 아이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행여 미성년자 성희롱범으로 몰고 가기 전에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했다. 자칫 돈을 뜯어내려할지도 모를 일이므로.

 

  "입술만 살짝 닿았어요."

  "헉!"

 

 그녀가 두손으로 입을 막으며 화들짝 놀랐다. 그녀가 놀라는 소리에 하완이 더 놀랐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래서 시아가 아까 딥키스...뭐라 했던 거에요? 아니, 애 데리고 너무 한 거 아니에요? 아무 것도 모르는 애한테 접근해서 이런 저런 시도를..."

  "네? 아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에요? 사람을 어떻게 보시고...그리고 딥키스 얘기는 걔가 먼저 꺼낸 거에요. 걔가 어딜 봐서 아무 것도 모르는 순진한 애로 보세요? 걔 입고 다니는 교복 치마 못 보셨어요? 그거 손바닥 한 장 만한 거 언제 터질 지 모르게 아슬아슬 하거니와 심지어 주차장에서는 혼자 담..."

  "터진다고요? 그런 표현 너무 노골적인 거 아니에요? 그럼 이제껏 걔 엉덩이만 봐왔던 거에요?"

  "네에? 내가 언제 걔 엉덩이를 봤다고 하세요? 저 그런 변태 아니에요. 그리고 걔 엉덩이가 그렇게 이쁘지도..."

 

 대꾸를 하면 할수록 점점 개미지옥처럼 끌려들어가는 것 같아 그만 하려했지만, 자꾸 오해만 하는 것 같아 항변을 안 할 수도 없으니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그럼...보긴 봤네요."

  "아니, 사람이 눈이 있는데 그럼 아무 것도 안 볼 수는 없잖아요?"

  "아까는 눈 앞 30센티 밖에 안 보인다면서..."

 

 하완의 인내가 정점을 찍었다. 역시 신은 공평했다. 한 사람에게 미모를 줬다면 뇌는 가져가신다는 만고불변의 법칙을 다시 재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아니, 아예 장님은 아니잖아요. 이거 한 번 선생님이 껴보세요."

 

 답답한 하완은 자신의 안경을 벗어서 로사의 손에 억지로 쥐어줬다. 그렇지만 뭔가 께름칙한 로사는 받기를 거부했다.

 

  "아, 아니에요. 뭐 굳이 그럴 필요까지야."

  "한번 보시라니까요? 그래야 제가 얼마나 눈이 나빠서 그랬는지, 이 상황이 조금이라도 참작되실거에요."

  "아, 아니요."

 

 그렇게 로사와 실랑이를 벌이다 그가 그녀의 손을 살짝 잡게 되었다. 그 때, 로사가 한참동안 교실에 들어오지 않아 상황이 궁금해진 파랑이 교무실로 왔다 이 사태를 보고야 말았다.

 

  "야, 너 뭐하는 거야?"

 

 하완이 로사에게 찝적거린다고 여긴 파랑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이거 완전 상습범이네? 어리고 늙고를 가리지 않는구만?"

  "뭐?"

  "뭐라고요? 내, 내가 늙어요?"

 

 정의의 사도로 등장하고 싶었지만, 순간 이 둘에게 공공의 적으로 탈바꿈된 파랑이었다.

 

  "아니, 선생님 그런 뜻이 아니고요. 이 녀석 버릇 좀 고쳐주려고..."

  "이제껏 날 노인으로 봤단 얘기죠?"

  "상습범? 내가 파렴치한이냐? 와, 진짜 얘 골때리네."

 

 호기롭게 하완의 멱살을 잡았으나 이윽고 자신의 멱살 역시 되잡혔다. 되로 주고 말로 받은 꼴이랄까. 로사가 이렇게 히스테릭하게 나오지만 않았어도 폼나게 하완을 제압하고 그녀에게 영웅 대접을 받았을 것이었다. 이건 분명 그의 시나리오가 아니었다.

 

  "그래, 너였지? 니가 난 민 거지? 내가 물증은 없고 심증만 있었는데...너 맞지? 아까부터 내 뒤에만 있는 거 같던데...너 스토커냐? 남자한테 관심 있어?"

  "뭐? 야, 나 그런 취향 아니거든?"

  "아, 됐어요. 그만들 해요! 여기가 학교 운동장도 아니고 교무실에서 이게 무슨 난동이에요? 둘 다 나가요!"

  "..."

 

 로사의 앙칼진 소리에 그들은 밖으로 쫓겨났다. 다시 교실로 들어가기도 뻘쭘해 그들은 잠시 복도에 서있었다. 그때 하완은 눈치를 채버렸다.

 

  "아...알겠다. 너, 로사샘 좋아하는 구나?"

  "뭐, 뭐?"

 

 속마음을 들킨 파랑은 과장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이내 반격을 시도했다.

 

  "그럼 넌 그 손바닥 치마 고딩 좋아하냐?"

 

  하완은 문득 그 말투가 기분 나쁘게 들렸다.

 

  "손바닥 치마라니...걔도 이름있거든?"

  "쳇, 맞네. 걔 안 좋게 말하니까 발끈하는 거 봐. 탱탱한 손바닥 치마 표현은 니가 먼저 꺼낸 거잖아."

  "야, 그건 내가 로사샘한테 한 말인데 니가 왜...아, 아니다. 더 얘기해봐야 내 입만 아프지. 됐어, 비켜."

 

 그렇게 그가 파랑을 밀치고 나가려는데 그의 뒤로 보이는 장면에 하완은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시아가 복도 끝편에 떡 하니 서서 그를 노려보고 있는 게 아닌가. 마치 여고괴담처럼.

 

  "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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