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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해 주는 남자, 머리 감겨 주는 여자
작가 : 세빌리아
작품등록일 : 2017.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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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회 그날 밤 옥상에서 그와 그녀 사이에 있었던 일
작성일 : 17-10-25     조회 : 31     추천 : 0     분량 : 3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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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엇, 야, 너, 여기...언제부터..."

 

 너무 놀라 하완은 말을 더듬거렸다. 그가 당황하는 틈을 타 파랑은 잽싸게 그곳을 빠져나갔다. 일을 일파만파 벌여놓고 생쥐처럼 내빼는 파랑이 시아의 눈에도 보였지만 지금은 그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안 그래도 노안 때문에 외모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그녀인데 엉덩이가 터질 것 같다는 말은 정말이지 상처였다.

 

  "진짜...정말..."

  "어? 어?"

  "죽여버릴 거야!"

 

 그렇게 호기롭게 내뱉는 시아의 눈에서 그는 살기를 느꼈다. 다시 한 번 머릿속이 부팅 상태가 되어버렸다. 주머니에 뾰족한 거라도 있으면 어떡하지 하는 공포감이 들었다. 이 정도 거리에서 헤어 꼬리 빗이라도 들고 내리 꽂으면 어디로 피해야하나 싶어 그는 주변 지형지물을 곁눈질했다.

 

  ‘설마...설마...아무리 그래도 내가 18살짜리 못 이기겠어? 워, 워...진정하자.’

 

 그렇게 하완은 속으로 자기최면을 거는 동시에, 6살 때 배운 합기도를 떠올리며 양손으로 티 안 나게 가드를 올리는 중이었다. 담배도 피우는 앤데 싸움도 잘 하지 않을까 싶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사실 그는 이때껏 태어나서 육탄전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순간 놀랄 일이 벌어졌다. 죽이겠다고 꽥 소리를 지르며 기선을 제압하던 그녀가 갑자기 주저앉아 우는 것이었다.

 

  "으헝헝"

 

 그의 꽉 쥔 주먹이 무색해지게 그녀는 서럽게 울었다.

 

  "잉? 야, 너...우냐?"

  "그래, 운다, 어쩔래?"

 

 울면서도 자존심은 있는지 뾰족뾰족 송곳처럼 가시를 세우며 반말했다.

 

  "으, 흠...아니, 아까 걔가 한 말은 과장된 거야. 난 그렇게 말한 적 없어."

  "그쪽 때문에 우는 거 아니거든?"

  "어? 그, 그럼 왜..."

  "내 상황이...이 상황이 진짜 거지같아서 우는 거지."

  "뭐?"

  "됐어요. 저리 가요."

  "어? 가?"

  "가, 가버려!"

 

 그녀의 비명 같은 외침에 그는 엉거주춤 아까 파랑이 도망쳤던 그 길로 나가버렸다. 하지만 우는 시아가 마음에 걸려 코너를 돈 후에도 계속 그녀를 주시했다. 그가 간 후 시아는 눈물을 닦고는 천천히 일어나더니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아, 뭐야...교실로 안 가고 왜 또 저기로 간대? 중2병이야? 질풍노도가 아주 독하게 왔네."

 

 그렇게 중얼거리며 하완은 교실로 향하는데 문득 정신과 실습 때 봤던 환자 한 명이 떠올랐다. 우울증과 분노조절장애를 가지고 있었는데 수시로 자해를 해 입 퇴원을 반복하던 중년의 부인이었다. 그 사람의 눈빛이 시아의 것과 비슷했다. 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 설...마."

 

 그는 그대로 돌아서서 냅다 뛰었다. 그리고 그녀가 나갔던 비상계단으로 가 옥상으로 두세 칸씩 뛰어올라갔다. 옥상은 문이 열려져 있었다. 그는 불안한 예감은 언제나 옳다는 걸 재차 확신하며 바깥으로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시아가 난간 앞에 서있었다.

 

  "야, 너 그만둬!"

 

  순간 시아의 몸이 움찔 놀라는 게 멀리서도 보였다.

 

  "니가 하는 짓이 어떤 짓인지 너도 잘 알 거야."

 

 시아는 순간이 얼음이 되었다. 발꼬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녀는 들고 있던 걸 보이지 않게 가슴께로 모아 쥐었다.

 

  "다시 한 번 생각해봐. 뭔가 일을 벌이기 전에 3번은 생각해봐야 후회가 없다고 했어. 어...누가 그랬냐면...위인전에 나온 말일 텐데 내가 읽은 건 아니고...내가 존경하는 유일한 교수님이...아, 암튼 좋은 말이니까 한 번 들어보라고 하는 얘기야."

 

 그에 목소리에 놀란 시아의 심장이 벌렁거렸다.

 

  "나도 뭐, 그렇게 심리 상담을 잘 하거나 그런 타입은 아닌데...뭐, 니가 고등학생이니까 고민과 갈등이 진로나 친구 관계나, 가족 사이에서나..."

 

 그는 ‘가족’이라는 단어에서 잠시 멈칫했다. 이 말은 사실 자기 자신에게 해당되는 말이었으니까. 의대를 포기하겠다고 가족에게 선언했을 때 입을 다물지 못하며 침통해하는 부모님의 표정이 떠올랐다.

 

  "나도...선택을 잘 하는 사람은 아니야. 현명했다면 니 나이 때 제대로 된 내 길을 찾아갔을 거야. 이렇게 많은 걸 포기하고 돌아가지 않고..."

 

 그는 지금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인지 잊어버렸다. 갑자기 고해성사의 장이 되어버렸다.

 

  "넌 아직 18살이니까 지금 포기할 때가 아니라고...지금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는 나이라고. 이런 선택 말고."

 

 그의 말을 듣고 시아는 갸우뚱했다. 그러다 스멀스멀 손에 쥔 돌멩이 두 개 중 하나를 최대한 소리 나지 않게 바닥으로 떨궜다.

 

 투두둑.

 

 얼핏 어떤 소리가 난 걸 하완도 들었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등에 땀이 삐질삐질 났다. 꽤 긴장을 하고 있는 터였다.

 

  "나, 남일에 신경 잘 쓰지 않는 마이웨이형인데...내가 오늘 너한테 한 짓이 있어서...그래서 그게 찔려서 이러는 거야. 행여나 니가 지금 나쁜 마음을 품고...아, 아니...죽는다는 얘기하려는 아니고, 암튼 그렇게 되면 나도 영 찜찜하니까..."

 ‘그럼 그렇지...내가 자살이라도 하면 지 마음이 불편할까봐 그래서 날 말리러 왔단 소리구만. 참 뼛속까지 싸가지시네.’

 

 그녀는 지금 과녁처럼 내려다보고 있는 그의 흰 차를 보며 혀를 찼다.

 

  "야, 내 말 다 들었지. 너 그래서 가만히 있는 거지? 내가 지금 한 발짝 앞으로 간다."

 

 시아는 급하게 고민이 들었다. 지금 들고 있던 돌멩이를 바닥에 버리고 순애보 영화 속 순결을 잃은 여자처럼 울어버릴까, 아니면 그의 차를 향해 던지고 있던 돌멩이 하나를 마저 던지고 도망쳐버릴까. 이때 것 3개나 던졌지만 그 중 하나도 그의 차에 흠집을 내지 못했다. 차가 단단한 건지 돌멩이가 작은 건지 알 수 없었다. 그 흔한 벽돌 한 장 보이지 않게 관리가 잘 된 옥상에서 이런 짱돌 몇 개 얻은 것도 큰 수확에 속했다. 그런데 한 발만 온다던 그가 갑자기 와다다 뛰더니 그녀를 뒤에서 풀썩 안아버렸다.

 

  "으악!"

 

 갑작스런 백허그에 그녀는 쥐고 있던 돌멩이를 옥상 바닥에 떨어뜨렸다.

 

  "잡았다!"

  "아, 뭐하는 거예요?"

  "일단 잡았으니까 뛰어내리진 못할...어?"

 

 그때 하완은 그의 발 옆으로 굴러 떨어진 돌멩이를 보고야 말았다. 자살을 시도하기엔 주먹보다 작고 동글동글했다.

 

  "깜짝이야, 난 혹시 커터칼이라도 들고 있는 줄...이런 건 왜 들고 있..."

 

 그리고 그녀를 안은 채 난간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보이는 건 자신의 차뿐이었다.

 

  "너, 설마 이 짱돌을 가지고..."

 

 순간 그녀는 그의 팔뚝을 이빨로 꽉 물어버렸다.

 

  "아, 악!"

 

 그는 붙잡고 있던 시아의 허리를 놓았다. 그리고 밀치듯 그녀를 뿌리쳤다. 시아 역시 그의 손에서 벗어나자마자 출구로 질주했다.

 

  "야! 와...저거 진짜...너, 내 흰둥이에 기스라도 났으면 너 진짜..."

 

 하지만 이미 그녀는 그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잡히면 내가 진짜 신고할 거야. 혹시 날 고소한다면 나도 맞고소 할 거라고...지가 미성년자면 다야? 내가 어리다고 호락호락하게 안 넘어 가. 재물손괴죄가 얼마나 큰지 내가 제대로 쓴 맛을 보여줄 거야. 아, 아파...광견병 걸린 개도 아니고 아, 침독...빨리 가서 드레싱해야..."

 

 그렇게 투지를 다지며 아픈 팔을 움켜쥐고 옥상 문고리를 돌리는데,

 

  "어? 어?"

 

 마치 벽인 양 손잡이는 돌아가지 않았다.

 

  "헐...이건 또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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