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로맨스
화장해 주는 남자, 머리 감겨 주는 여자
작가 : 세빌리아
작품등록일 : 2017.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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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회 로사, 회색 여우로 등극
작성일 : 17-10-26     조회 : 31     추천 : 0     분량 : 3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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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오빠가 설마 그런 말을 했을라구...얼마나 지적인 사람인데."

  "야, 너 친구 말 안 믿고 아말고를 믿는 거야?"

  "농담으로 한 거겠지. 난 그런 말투 들은 적 없는데?"

  "우씨, 이 인간 사람 가리네?"

  "니가 더 친해져서 그런 거 아니야? 아...내가 더 친해져야 하는데."

  "야, 친하다니? 지금 이 상황이 친한 상황으로 보이냐? 웬수지간이지?"

  "아, 뭐든 간에 그런 대화 건수가 있다는 게 부럽네. 어떻게 하면 그런 말까지 할 수 있는 관계가 되는 거지?"

  "헐...가린 완전 넘어가셨네. 너 그 인간이 자자고 하면 그런다고 할 수도 있겠다?"

  "뭐, 일찍 결혼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우리 이제 결혼 가능 연령이잖아? 요즘 의사 남편 위너비잖아? 우리 엄마도 은근 그걸 바라는 것 같던데."

  "결혼? 야, 너 너무 김칫국부터 마시는 거 아니냐?"

  "남녀사이가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 그리고 여친도 없는 거 같던데...그럼 가능성은 열려있는 거지."

  "얼마나 웃긴 사람인지 알아? 귀신 무서워한다면서 나한테는 얼토당토 않은 협박을 하는데...뭐, 성희롱? 범죄 같은 거 저지를 만큼 대범한 인간도 못 되셔. 아까도 경비 아저씨 오니까 건물에 갇힐까봐 잔뜩 쫄아가지고 얼른 나가자고 날 부추기고는...나가면서는 치사하게 차를 가지고 내 옆을 쌩하니 놀라게 비껴지나가질 않나...허세 만땅에 소심쟁이라니까."

  "그래? 범죄를 저지르지 못할 정도로 모범적인 시민이라고 들리네. 키키."

 

 린에게 하완의 욕을 하는 건 소 귀에 경 읽기였다. 어떤 단점도 장점으로 곱게 들리는 거름망을 귀에 달았는지 그녀에게 시아는 한 가지 공감도 얻어내지 못했다.

 

  "으이구...너한테 하소연하는 내가 바보지. 그래, 잘 해봐라. 나중에 행여 결혼 하게되면 피해보상 위자료는 니 축의금에서 퉁치는 것으로 알아라."

  "축의금? 하하...너도 이제 인정하는 거냐?"

  "헐, 뭐래..."

 

 그렇게 소득 없는 통화를 마무리했다.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결혼까지 혼자 가고 있대? 나참...의사? 의사가 뭐라고...성추행이나 머릿속에 있는 사람이 무슨 의사가 된다고...아말고가 병원 열면 내가 가서 일인 시위라도 할 거야. 성희롱 미수범이 하는 병원이라고 소문내고."

 

 그렇게 걸어가는데 뭔가 모르게 남은 찜찜함이 있었다. 자신의 옆을 따라오는 달을 흘끗 한번 쳐다봤다.

 

  "오늘따라 왜케 밝은 거야? 그만 따라와. 빨리 집에 들어가버려야 저 달이 안 보이려나."

 

 오늘 그와 그녀의 행각에 유일한 목격자인 달에게 괜한 화풀이를 하는 시아였다.

 

 ***

 

 다음날 평소와 다르게 메이크업반 분위기는 화사하고도 화기애애했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로사샘은 하완을 그저 여느 학생과 다름 없이 대했었다. 아니, 그를 교무실로 불러 시아와의 입맞춤 사건을 추궁한 이후로 그에 대한 실망이 컸는지 오히려 좀더 사무적이었다. 하지만 오늘 그녀는 빵빵한 가슴이 한껏 드러나는 착 붙는 니트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게다가 높은 부츠를 신고 있어 볼륨 있는 몸매가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화장도 훨씬 근사했다. 정말이지 가로수길에서 커다란 쇼핑백을 메고 돌아다닐 법한 성숙한 커리어우먼의 차림이었다.

 

  "아, 와우...안녕하세요?"

 

 적응이 안 되는 건 하완도 마차가지였다.

 

  "어서와요."

 

 목소리 역시 꿀 바른 듯 매우 상냥했다. 하완의 뒤를 따라 들어온 린 역시 로사샘의 자태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와, 선생님 다른 사람인줄...못 알아봤어요?"

  "그래? 그 정도는 아닌데..."

 

 하며 눈웃음을 쳤다. 아이라인 끝을 자연스러운 곡선으로 5mm 정도 올려 인위적인 눈웃음을 조장했다. 린이 보기에 그건 의도한 분장이었다. 그리고 유독 하완을 그윽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여자의 직감이 발동했다. 린은 그녀를 경계했다.

 

  "어제 하완씨 늦게 집에 갔죠?"

  "아, 네. 어떻게..."

  "어제 이 근처에서 친구를 만나고 있었는데 학원에서 나오는 차에 하완씨가 보이더라고요. 차에 창문을 열고 있어서 봤지요."

  "아, 네. 두고 온 게 있어서 다시 들렀었어요."

  "차 예쁘던데요?"

  "네, 애마에요."

  "무슨 일 했었어요? 여기 오기 전에?"

  "오빠는 의대생이에요."

 

 린이 톡 튀어나와 아는 척 했다. 마치 이 사람에 대해 자기가 더 잘 안다는 걸 굳이 드러내고 싶어하는 사람처럼. 그 말에 로사는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아, 그래요?"

  "에, 네에..."

 

 그때 파랑이 춤 추듯 미끄러지는 몸놀림으로 열린 문틈을 비집고 교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로사를 보자마자 눈이 부신다는 듯 손으로 눈을 가렸다.

 

  "오늘 무슨 날이세요? 밤에 약속이라도 있으심? 로사샘 클럽 가세요?"

  "아니요. 출근했잖아요."

  "오늘 그러고 강남을 활보하면 명함 좀 받으시겠는데요?"

  "어릴 때 많이 받았어요."

 

 겸손이란 말이 실종된 반이었다.

 

  "아, 네..."

 

 머쓱하게 돌아서는 파랑이 돌아섰다. 하완은 이미 자신의 메이크업 도구를 펼치고 있었다. 로사는 하완에 대한 호기심을 멈출 수가 없었다.

 

  "오늘은 하완씨가 파랑씨에게 메이크업 할께요."

  "네? 저 있잖아요."

 

 린이 불쑥 나섰다. 오늘도 당연 자신이 하완에게 받을 거라 생각하던 그녀였다.

 

  "린은 저번에 받았으니까 이제 바꿔가면서 해야지. 한 사람한테만 자꾸 하면 다른 얼굴에 대해 경험을 못하잖아?"

  "네? 그래도..."

  "나도 별론데..."

 

 파랑도 입을 삐죽거렸으나 로사는 그대로 진행했다. 하완에게 관심이 생긴 로사는 여자를 그에게 굳이 붙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 알겠습니다."

 

 못마땅한 표정으로 파랑이 그의 앞에 앉았다.

 

  "나도 그렇게 반갑지만은 않거든?"

  "누가 뭐랬냐?"

 

 그렇게 수업은 시작되었다. 유독 남자 팀 근처를 자주 와서 보는 로사였다. 오늘은 펑키스타일이었다. 칼날 같은 눈썹을 표현하는게 하완은 어려웠다. 그러자 로사가 친절히 그의 옆으로 와 펜슬을 잡은 그의 손가락을 살짝 잡았다. 그리고 바짝 붙어 파랑의 눈썹을 같이 칠해줬다. 하완은 자신의 등 위로 밀착된 그녀의 가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향수와 그의 귀를 스치는 긴 머리카락 냄새도 같이 맡아졌다. 심장이 뛰었다. 그때 창 너머로 그녀의 행각을 보던 시아는 기가 찼다.

 

  "헐...회색 여시네."

 

 살며시 눈을 뜬 파랑 역시 깜짝 놀랐다. 그녀의 가슴골이 떡 하니 눈 앞에 드러나있는 게 아닌가. 그는 순간 얼굴이 붉어지면서 배 밑이 뜨끈해지는 걸 그는 주체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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