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무협물
권마전기(가제)
작가 : 임준후
작품등록일 : 2016.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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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마전기(拳魔傳記) 서장 운명(運命)의 날
작성일 : 16-03-23     조회 : 820     추천 : 1     분량 : 3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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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철우가 무인(武人)이 된 것은 사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효자였기 때문이다.

 

 * * *

 

 단철우가 태어난 곳은 사천성의 내륙 깊숙이 위치한 작은 산골마을이었다.

 화전민과 사냥꾼들이 모여 사는 마을로 마을 사람 전부를 세어봐야 백 오십여 명이 채 되지 않는 곳이었다.

 단철우의 아버지 단송렴은 이십여 년 전 이 마을에 흘러 들어왔다.

 그는 황하변 마을에서 대대손손 어부로 살다가 홍수 때마다 잠기는 고향이 지겨워 떠난 후 정착할 곳을 찾아 동가숙서가식 하던 떠돌이였다.

 특별하게 배운 것이 없던 그가 목구멍에 거미줄이 쳐질 상황이 되자 산속으로 들어와 화전민이 된 것도 다른 사람들과 그다지 다를 것이 없는 이유였다.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도 대부분 비슷한 이유로 이곳에 정착한 사람들이라 단송렴은 곧 마을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는 화전민촌에 정착한 지 이년이 지난 어느 해, 마을에 사는 사냥꾼 곽씨의 딸인 곽유선과 혼인을 맺었다.

 무슨 열열한 사랑을 하거나 하는 사연은 없었으나 두 사람은 꽤 행복하게 살았다.

 단송렴의 심성이 나쁘지 않았고 성실한 편인데다 그 부인 곽씨도 사냥꾼의 딸치고는 고운 얼굴에 마음씨도 고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 행복이 깨진 것은 그들 사이에 단철우가 태어나고 나서도 십 년이 흐른 뒤였다.

 

 두두두두두두

 격렬한 말발굽 소리와 거친 짐승의 숨소리가 조용하던 산골마을을 뒤흔들었다.

 장난처럼 그어지는 대두도에 비명도 지르지 못한 마을 사람들의 머리가 핏둥치를 뿜으며 몸통에서 분리되었다.

 오십여 필이 넘는 말과 그 숫자만큼의 기수들이 마을 사람들을 무차별로 도륙하고 있었다. 학살당하는 사람들에게 남녀노소의 구별도 없었다.

 살육의 광기가 작고 평화롭던 마을을 휩쓸었다. 그리고 학살은 반시진도 되지 않아 끝이 났다.

 

 마을의 입구에서 일장의 도살극을 지켜보던 삼십 대 중반의 장년인은 미미하게 눈살을 찌푸렸다.

 종류를 알 수 없는 짐승의 가죽옷을 입은 자였다.

 인세의 지옥과도 같은 광경을 보고 있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기색도 엿볼 수 없었다, 죄책감도 살육의 광기조차도.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거치도를 든 사십대 중년인이 그에게 다가와 고개를 살짝 숙였다.

 “확인은?”

 자신보다 나이가 십여 세는 연상일 듯한 중년인을 대하는 장년인의 태도는 거침이 없었다. 손끝 하나만으로 사람을 부리는 데 익숙한 자였다.

 “그는 이곳에 머물다가 닷새 전 떠났습니다.”

 중년인의 왼쪽 뺨에 새겨진 굵은 검흔이 지렁이처럼 이리저리 꿈틀거렸다.

 그가 말을 이었다.

 “이들은 촌무지렁들입니다. 아무 것도 알지 못합니다.”

 장년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툭 던지듯 말했다.

 “태워라!”

 그의 명령을 들은 자들이 마을의 초가집들에 불을 놓기 시작했다.

 화마는 순식간에 마을을 집어삼켰다.

 충천하는 불길이 모든 것을 재로 만들고 있었다.

 시뻘건 불길을 냉엄한 시선으로 응시하던 장년인이 말고삐를 잡아 당겼다.

 말이 돌아섰다.

 살육을 마치고 그의 뒤에서 함께 불길을 지켜보던 자들의 사이로 길이 났다.

 다각 다각.

 느리게 사내들 사이를 벗어난 장년인의 발끝이 말의 배를 찼다.

 두두두두두두.

 장년인의 뒤를 따라 함께 내달리는 말발굽 소리가 불길을 뚫고 멀리까지 퍼져나갔다.

 마을의 불길은 반 시진도 지나지 않아 사그라들었다. 대부분의 건물이 목재로 지어진 데다 숫자도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이 화전을 일구기 위해 주변을 벌목하지 않았다면 불길은 커다란 산불이 되었을 것이다.

 떠난 자들은 생존자를 확인하지 않았다.

 화전민들은 목이 잘리거나 허리가 양단된 채 불속에 버려졌다. 생존자가 있을 수 없는 살수였다. 사람을 죽이는 게 처음은 아닌 자들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생명력은 그 끈질김이 이미 역사속에서 증명된 것이다.

 이곳에도 살아있는 사람이 있었다.

 불길이 사그러들자 잿더미가 된 마을의 한 곳에서 움직임이 있었다.

 마을의 공동우물이었다.

 그곳에서 작은 머리가 솟아 나왔다.

 물에 젖은 머리카락이 얼굴에 달라붙어 있어 윤곽을 확인하기 어려운 얼굴이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눈이 크고 맑았다. 그러나 지금 그 눈은 공포로 흔들리고 있었다.

 우물을 빠져나온 소년은 이제 열 살 가량 되어 보였다.

 그의 오른손에는 일척 정도의 대나무 대롱이 꼭 쥐어져 있었다. 우물 속에서 그의 목숨을 구해준 물건이었다.

 마을을 재로 만들었던 불은 대부분 꺼져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검은 연기가 하늘을 덮고 있었고 짐승이 탈 때 나는 노린내가 코를 찔렀다.

 소년의 시선이 자신이 살던 집으로 향했다.

 우물에서 십장도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었다. 그곳에도 잿더미만이 보일 뿐이었다.

 그가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집에 도착했을 때 마당에는 사람으로 추정되는 두 개의 숯더미가 뒤엉킨 채 무너진 기둥에 깔려 있었다.

 소년은 그 숯더미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모를 수가 없었다.

 숯더미가 아니라 재가 된 다해도 못 알아 볼 리가 없었다.

 그의 부모님들이었기 때문이다.

 소년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마을의 초입에서 말발굽 소리와 비명소리가 들리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소년이 마당을 막 나서려할 때 무서운 기세로 집으로 뛰어 들어와 자신의 손에 대나무대롱을 쥐어주던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를 우물로 밀어 넣은 후 아직도 밭에서 일하고 있을 어머니에게 달려가던 아버지의 등이 생생하게 눈앞에 보였다.

 억울함과 분노로 붉게 충혈된 눈을 한 아버지가 그에게 다급하게 던지듯 했던 말이 함께 떠오르고 있었다.

 그 말이 이제는 유언이 되었다.

 

 “철우야! 나는 엄마에게 가보아야겠구나. 내가 꺼내주지 않는다면 해가 저물 때까지는 절대 이곳에서 나오면 안 된다. 내가 너를 꺼내주지 못한다면 너 혼자 힘으로 이곳에서 나와야한다. 기억해라. 나와서 어떤 것을 보더라도 꿋꿋하게 살아야한다. 그리고 나중에 크면 꼭 무인이 되어라. 사람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자들을 모두 잡아 망나니에게 던져주는 그런 무인이 되어라!”

 

 평생을 어부와 화전민으로 산 소년의 부친 단송렴이 무인(武人)이라는 존재의 정의를 제대로 알 턱이 없었다.

 그는 무인과 포두를 혼동해서 얘기했지만 상관은 없었다.

 아비가 모르는 무인의 정의를 이제 열 살에 불과한 아들이 이해하는 건 가능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소년은 숯더미가 된 부모의 유해를 수습하기 시작했다.

 눈물이 숯더미 위로 강물처럼 흘렀다.

 

 후일 일권사(一拳死)천하독존(天下獨尊)이라 불리게 될 권마(拳魔)단철우(膽鐵岳)의 운명이 결정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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