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냄새 가득한 바람이 갑판위에 불었다. 고운 비단치마가 펄럭였다. 여인이 장옷을 벗었다.
“이딴 거 이제 필요 없어!”
푸른 장옷을 바다에 내던졌다. 그것을 여인은 한참 바라보았다.
이제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조선 땅. 여인의 표정은 의연했다.
“누가 여장부 아니랄까봐. 쯧쯧……. 적당히 해 홍다연. 아직 바다다.”
옆에 서있는 사내가 말을 꺼내자 다연은 한참 노려보다 싱긋 웃었다.
“뭐 어때? 이제 왜(倭)의 앞바다인데. 이곳에는 날 조이던 성리학도, 조선의 경국대전 따위도 없는 자유라고! 너는 내가 자유를 얻은 게 불만이냐?”
“그, 그건 아니고……. 그래도 감사는 해야하지 않나? 이렇게 배편까지 마련해 주셨는데…….”
“정당한 대가야! 너나 왜로 가면 뭐할지나 생각해. 김민찬. 뭐 하러 따라와서는.”
한껏 소리를 내지른 다연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짠 바다냄새가 콧속으로 잔뜩 들어왔다. 눈을 감았다. 이제 곧 왜에 다다를 것이다. 이제 다시는 조선 땅을 밟지 못할 거라 생각하니 좋았다가도 슬펐다.
여자의 몸으로 태어나 그림의 재능이 뛰어나다는 이유만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날들이 잠시 그리워졌다. 다시는 못 볼 내 고향.
“홍다연, 너 우냐?”
“……기뻐서.”
다연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보았다.
아스라이 조선의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