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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여류화가 홍다연
작가 : 은비랑
작품등록일 : 2017.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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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위작 - 4
작성일 : 17-11-11     조회 : 488     추천 : 1     분량 : 5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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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다연은 성규가 시킨 그림 위작에 한창이었다. 그간 몇 점을 모사했는지 셀 수도 없었다. 받는 금액이 크다 보니 처소 깊은 곳 금고에 보관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계속 처소에 둘 수는 없었다.

 

 한참 붓을 놀리다 다연이 민찬을 바라봤다.

 

 “왜에 갈려면 얼마나 모아야 하냐?”

 “일본 가려고 마음 바꿨냐?”

 “니가 청보다 낫다며?”

 

 민찬은 확대경을 내려놓고 다연을 바라봤다.

 

 “단순히 일본 건너가는 정도야 뱃삯만 있으면 되지. 근데 그게 아니잖아. 일본에서 정착하고 먹고 살아야 하고……. 못해도 백만냥은 있어야지.”

 “뭐, 뭐. 백, 백만냥!”

 

 백만냥이 얼마나 되는지 감도 안 왔다. 지금까지 모은 거 다 합쳐도 만냥 안팎이었다. 백만냥이면 백배는 더 일해야 된다는 소리였다.

 

 “당연한 거 아니냐. 당장 일본 가서 뭐 먹고 사려고. 일본에 가기만 하면 일이 당장 구해지냐? 집도 구해야지 당장 먹을 것도 사야지. 뭐, 이 형님이랑 같이 간다면 잘 이끌어주마.”

 “형, 형님은 무슨!”

 

 다연은 소리를 버럭 지르고 다시 그림에 몰두했다. 백만냥을 모으려면 금고에 모아두는 것 가지곤 택도 없었다. 아니, 얼마나 더 결려야 모을 수 있는지도 몰랐다.

 

 “에휴…….”

 

 괜한 한숨이 났다.

 

 “윤, 그만 한숨 쉬어라. 종이 뚫리겠다.”

 “김민찬.”

 “내가 너 최고의 화공으로 만들어 주마. 오늘 그 모란도 팔러 갈 거야.”

 “정말?”

 

 민찬이 낙관 찍으라 성화였던 모란도였다. 삭힌 풀로 정성스럽게 족자에 표구해주던 모습을 지켜보았었다.

 

 “팔리면 대금은 반띵이다.”

 “……그런 건 팔아보고 나서 말해라.”

 “왜 자신감이 없고 그러냐. 콩알. 넌 내가 숱한 그림을 봐왔지만 가장 잘 그리는 화공이다.”

 

 민찬이 싱긋 웃었다. 그 웃음에 지난밤 달빛에 빛나던 그가 생각났다. 화르륵. 얼굴에 열이 올라왔다.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댔다. 더위 먹었나? 왜 이러지.

 

 다연은 시선을 팩 돌려 그림에 고정시켰다. 저 자식은 왜 웃고 난리야. 그림은 눈에 안 들어오고 민찬의 미소가 화폭에 떠올랐다. 고개를 세차게 도리도리 저었다. 정신 차려, 홍다연! 백만냥 벌려면 몇 백 장은 그려재껴야 해.

 

 마음을 가다듬고 다연은 마저 그림을 그렸다.

 

 

 

 

 으리으리한 기왓집 앞에 연보랏빛 답호를 흩날리는 사내가 있었다.

 

 “아무도 없느냐.”

 

 민찬의 말에 굳건히 닫힌 대문이 열렸다. 시종은 민찬을 보더니 인사했다.

 

 “안에 주인아가씨는 계시고?”

 “네, 근데 이렇게 말없이 오시면…….”

 “잠깐만 보고 갈 거야.”

 “누군데 시끄러워?”

 

 분홍빛 치맛자락을 흩날리며 채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민찬을 보자 확 인상을 찌푸렸다.

 

 “육촌 오라버니께서 어쩐 일로…….”

 “서서 얘기하기는 그러니 안으로 들어가도 될까?”

 “……기별도 없이 불쑥 찾아오다니 예의가 없으시군요.”

 “누이님 독설도 여전하시군요.”

 

 채경은 민찬을 노려보다 안으로 들어갔다. 민찬은 싱긋 웃으며 채경을 따랐다. 채경은 자리에 앉아 민찬을 바라봤다.

 

 “그렇게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지 않아도 돼.”

 “후우……. 불쑥 찾아오신 연유가 무엇입니까?”

 “송상쪽 육의전에 그림 좀 내가 대도 될까 해서.”

 “그림이요?”

 

 민찬은 싱글싱글 웃고 있을 뿐이었다.

 

 “물건보고 결정하죠.”

 “내 감식안은 누이님도 인정하실텐데요?”

 “송상 상인이 물건도 안보고 허락하는 거 보셨나요?”

 “역시, 그렇겠지? 우리 누이님은 깐깐하셔서 그냥 넘어갈 리가 없고……. 완만하게 해결하려고 했더니 안 되겠네.”

 

 민찬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예의상 한성 송상 육의전을 꽉 잡고계신 누이님께 말은 꺼냈으니 너무 화내진 말아라.”

 “뭘, 어쩌시려구요.”

 “이래 뵈도 나도 나름 안동 김씨 찌끄래기이긴 하니까. 내 힘으로 해 볼라고 하는 거지.”

 “뭐라구요?”

 “그럼 이만.”

 

 민찬은 싱글싱글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채경은 기가 막혀서 한참을 사라진 민찬만 바라보다가 율을 불렀다.

 

 “율!”

 “네, 아가씨.”

 “요즘, 저 짜증나는 육촌이 뭐하는지 들은 거 있어?”

 “그 일 이후로 연락 끊긴지 한참 됐지 않았습니까. 신경 쓰이시면 알아볼까요?”

 

 채경은 넌더리난다는 듯이 손사레를 쳤다.

 

 “됐어. 뭘 하든 나한테 다 보고되게 되어있는데. 그림 챙겨둔 거나 조심히 명월관으로 갖다 줘.”

 “네, 아가씨.”

 

 

 

 민찬은 저녁 무렵에야 위작공장으로 돌아왔다. 뒤늦게 온 민찬을 맞이한 건 영규였다.

 

 “다녀오셨습니까?”

 “시켜둔 거는 어찌 됐어?”

 “거의 완성돼갑니다. 보시겠습니까?”

 

 민찬은 답답한지 갓끈을 풀면서 손을 저었다.

 

 “나중에 보자. 피곤하네.”

 “그럼 쉬십시오.”

 “윤은 어딨어? 그림 그려?”

 “아아, 화공님은 잠깐 다녀오실 곳이 있으시다며 도련님 나가고 금방 나가셨습니다.”

 “왜 아직까지 안와?”

 

 민찬은 아는 상인에게 모란도를 잘 맡겼다고 보고하려고 했는데 막상 윤이 없으니 심통이 났다.

 

 “기껏 사람이 생각해서 그림 팔아준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었더니 코빼기도 안보이냐.”

 

 처소 안에 들어가 갓을 던져놓고 피곤한지 대자로 누워버렸다. 오랜만에 도성에서 이러저리 돌아다녔더니 지쳤다. 누구 때문에 그렇게 고생을 했는데 정작 당사자는 부재중이었다. 왜 자꾸만 얍실얍실한 윤의 얼굴이 떠오르는지 몰랐다.

 

 “에잇, 짜증나. 영규야! 술 좀 내와라!”

 “술이라니요. 저번에 화공님이랑 다 비우셨잖아요.”

 “내가 그세 다시 채워놓은걸 모르는 줄 알아? 빨리 갖구와!”

 “에휴. 잠시만 기다리세요.”

 

 영규가 술을 가지러 가자 산에는 정적이 찾아왔다. 낮에 본 육촌 한채경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아아, 짜증나네.”

 

 민찬은 송상 차기 행수 자리를 둘러싼 싸움에서 대패했다.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단지 서자라서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그것도 처가쪽 서자한테 맡기느니 직계인 여자가 낫다는 결론을 송상은 내린 것이다. 여자, 한채경. 6촌에게 자리를 뺏기다 시피했다. 한홍윤의 딸이라는 것도 한 몫 했을 것이었다.

 

 민찬을 벌떡 몸을 일으켰다. 멀리 봇짐을 메고 서있는 윤이 보였다.

 

 “윤! 너 어디 갔다 이제와. 이 콩알이. 이 형님이 니 모란도 잘 팔아주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다연은 망건 밖으로 머리카락이 삐쭉삐쭉 튀어나온지도 모르는 채 소리를 지르는 민찬을 보니 어이가 없었다.

 

 “상투 다 틀어졌거든?”

 “상투가 문제야? 내가 너 때문에 고생했다는 게 중요하지. 영규 이 자식은 술을 만들러 갔나.”

 “만들러 간 거 아닙니다. 여기 술상 봐왔습니다.”

 

 영규가 방안 떡 하니 술상을 내려놓자 민찬은 다연에게 오라고 손짓했다.

 

 “멀뚱하니 서 있지 말고 와.”

 “내가 왜…….”

 “너 때문에 고생했으니까 술 좀 따라줄 수도 있는 거지.”

 

 다연은 마지못해 민찬 앞에 앉았다. 술병을 들어 자기 잔에 채우는 민찬이었다.

 

 “며칠 내로 팔릴 거야. 넌 어디 갔었냐?”

 “여기 올 때 제대로 짐도 못 챙겼으니까. 짐 챙기러 갔지.”

 “그러냐?”

 

 민찬은 술잔을 들이켰다. 매끈한 턱선, 움직이는 목울대가 보였다. 다연은 괜히 얼굴이 달아올라 고개를 돌렸다.

 

 “덥냐? 하긴, 삼복더윈데 더울 만도 하지. 자 한잔 쭉 들이켜라. 맛있네.”

 

 민찬은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왜 그렇게 빤히 봐. 하긴 내가 좀 잘생기긴 했지.”

 “잘, 잘생기기긴 개뿔.”

 “그럼 말은 왜 더듬냐? 나한테 반했냐? 형님은 그런 취향 아니다.”

 “무, 무슨!”

 

 다연은 벌컥 술잔을 들이켰다. 급하게 들이킨 술 때문에 더욱 몸이 더워졌다. 얼굴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았다. 그때 민찬이 다연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뭐, 뭐하는 거야.”

 

 민찬은 말없이 다연에게 가까이 왔다. 둘의 거리는 어느새 심장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가까워졌다. 민찬은 다연의 얼굴을 스쳐지나가 왼쪽 어깨의 나뭇잎을 때주었다.

 

 “칠칠맞게 온 산을 다 헤집고 올라왔냐?”

 

 민찬의 체취가 숨결이 다연의 코끝을 간질었다.

 

 “헉. 뭐, 뭐가…….”

 “뭘 그렇게 놀라? 너 괜찮냐? 어디 아프냐?”

 

 민찬이 다연의 이마에 손을 덮었다. 느닷없는 행동에 다연은 더욱 놀래 숨 쉬는 법도 까먹은 것 같았다. 남녀유별한 조선 땅에서 외간사내와 말을 하는 것도 금지되어 있는데 이렇게 몸이 닿다니 아무리 다연이라지만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괘, 괜찮아.”

 “열은 없는 것 같은데…….”

 

 고개를 갸웃거리며 멀어지자 안도했는지 다연은 한숨을 내쉬었다.

 

 “너 오늘 이상하다.”

 “내가 뭐 어때서.”

 

 달빛에 빛나는 다연의 모습이 너무 인상 깊어 민찬은 눈을 땔 수가 없었다. 괜히 목이 탔다.

 

 “으흠! 왜, 왜 이렇게 더워.”

 

 

 

 

 

 

 같은 시각 채경은 율이 내민 서책을 훑어보고 있었다. 다름아닌 경매에 참여할 사대부들의 명부였다.

 

 “아아, 이제 경매 진행하려고 하세요?”

 

 홍연이 싱긋 웃으며 묻자 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명부를 펼쳐 내용을 살펴보았다. 걸출한 사람들 이름이 수두룩했다.

 

 “제법이군. 역시 청월이야.”

 “그렇게 대단한 사람들이 와요?”

 “뭐, 나름 조선에서 그림 보는 눈 있는 사람들로만 추린 거니까. 거기다 재력도 있어야 하고…….”

 “그런 메추리 그림 파는 거예요?”

 

 채경은 어이가 없는 눈빛으로 홍연을 바라봤다.

 

 “메추리 그림이라니……. 단순한 새 그림이 아니라니까.”

 “어쨌든 그런 그림 파는 거잖아요.”

 “아니, 경매에 오를 그림은 그런 그림이 아닌데.”

 

 홍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채경은 미소 지을 뿐이었다.

 

 “아, 맞다. 아버지한테 들은 얘기지만 곧 새로운 영국대사가 올 것 같아요.”

 “온다니? 어딜? 조선에?”

 “지금 대사는 영국으로 곧 돌아가니까요. 새로 오는 거죠.”

 

 채경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졌다. 조선은 지금 개항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의 갈림길에 놓여있었다. 지금 동래에 개항된 것조차 반대하는 유생과 사대부들이 적지 않았다. 왕은 전면개항을 하고 싶어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새로 오는 대사는 어떤 사람이래?”

 “일본으로 가고 싶어 했는데 조선으로 가게 됐다며 굉장히 투덜댔다나 하는 소문이 있어요. 동양인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고요.”

 “그런 사람이 조선에 와?”

 “그러게요. 영국에서 그래도 이름난 noble이에요.”

 “노블, 귀족. 어디든 귀족출신은 자존심이 높다는 건가.”

 

 채경은 왠지 불안했다. 불안을 말로 표현하는 것은 힘들었다. 다만, 새로 온다는 영국대사가 돌풍을 일으킬 것 같은 예감이 자꾸 든다.

 

 “그래도 오겠다고 결정했으니까 오는 거겠지?”

 “말로는 동인도회사랑 연결 돼있다고도 하고……. 몇 달 후면 조선에 도착할 거예요.”

 “흐음…….”

 

 채경은 생각에 깊게 빠졌다. 홍연은 채경을 바라보다 소반에 올려진 약과를 주워 먹기 시작했다. 달콤 쫀득한 약과가 입맛에 맞는지 입가에 미소가 잔뜩 걸려있었다.

 

 “조선 쿠키 맛있어요! 아가씨는 안 드세요?”

 “약과겠지. 난 됐어, 아까 먹었어. 너 많이 먹어.”

 “약가?”

 “됐다, 그냥 조선 쿠키라고 해. 산자나 유과도 있는데 전부 쿠키라 통칭하면 이상하겠지만.”

작가의 말
 

 약과는 맛있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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