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다연은 영규와 함께 붓을 씻고 있었다. 그림을 그리고 난 뒤 붓을 제때 씻지 않으면 동물 털로 만든 붓이 망가져버리기 때문이다.
“오늘 너무 덥지 않습니까?”
“그러게.”
멀리서 참외를 아그작 씹어 먹으면서 걸어오는 민찬이 보였다. 자기 집 안채마냥 저고리와 바지만 입은 채 돌아다니는 모양새에 다연은 눈살을 찌푸렸다.
“콩알, 왜 인상 쓰고 그래? 너무 더워서 답호도 못 걸치겠는데. 계속 요 며칠 안료 만든다고 아궁이에 불 때니 산이라도 덥지.”
“왜 나한테 구구절절 설명하고 그래?”
“어? 그게……. 에잇! 너도 참외나 먹어라. 어르신이 주신 거다.”
민찬은 다연에게 참외를 던지자 다연은 허둥지둥 받다가 놓쳐버렸다.
“에헤잇, 그거 하나 딱 못 받냐. 딱! 딱! 잡으란 말이다.”
“경망스럽게 먹을 걸 던지는 사람이 어딨냐! 붓이나 같이 씻을 거 아니면 저리 가.”
“아, 더워. 거 쪼그리고 앉아서 붓만 몇 십 개를 계속 씻어대니 땀 줄줄 흐르는 것 봐라. 좀 쉬었다가 하고 등목이나 하자. 어때 영규?”
“드드드드, 등목이라니!”
다연이 놀라 벌떡 일어나 말을 더듬자 민찬의 눈빛이 이상했다. 다연은 어쩔 줄 몰라 손사래를 치며 말을 이었다.
“지지지, 지금 부, 붓 씻는 거 안보여? 등목 하려면 딴 데 가서 해.”
“너, 지금 너무 이상한 거 아냐? 계집애도 아닌데 얼굴 시뻘개져서 너 왜 그러냐?”
“아니, 내 말은…….”
“여기 말고 이 산속에 우물가가 또 어딨다고 어딜 가서 등목을 하라는 거냐? 나 잰척하는 양반놈도 아니고 그냥 서출이야. 체면 차릴 것도 없어.”
민찬은 그렇게 말하며 훌렁훌렁 옷을 벗기 시작했다. 상체가 드러나자 다연은 고개를 팩 돌렸다.
두근두근. 아무리 다연이라지만 백주대낮에 햇살에 빛나 잔근육들이 탄실한 사내 몸을 보며 얼굴 안 붉힐 조선 여자는 차마 못되었다.
“거 참, 희한한 놈이야. 콩알. 영규야 물 좀 부어줘.”
“네, 도련님.”
“어르신한테 여름 보양식이라도 먹자고 해야지. 이거 원, 며칠 전에도 일본놈이랑 거래하느라 힘들었구만 신경도 안 써.”
민찬이 엎드리자 영규가 시원한 우물물은 등 뒤로 붓기 시작했다. 다연은 조심스럽게 민찬을 바라보았다. 손에 쥔 붓에서 검은 먹물이 뚝뚝 떨어지는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심장은 세차게 요동쳤다. 귀에 심장소리가 들렸다. 이러다 심장이 폭발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몸은 얼어붙어 숨을 쉬는 게 용했다.
“으으으. 시원하네. 이제 됐다.”
민찬은 몸을 일으켰다. 머리가 물에 젖어 방울방울 물방울이 떨어졌다. 쇄골을 타고 가슴을 따라 물기가 흐르고 있었다.
“야, 콩알.”
“다, 다 씻었냐? 그럼 비켜.”
다연은 다시 앉아 붓을 씻었다. 얼굴은 터질 것 같이 붉게 물들어있었다.
“샌님같이 그러지 말고 너도 좀 해봐. 엄청 시원하다?”
“저리 꺼져! 아 됐어. 내가 간다.”
다연은 붓을 내던지고 자기 처소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영규야. 내가 뭐 잘못했냐?”
“아, 글쎄요? 붓 씻는데 도련님 등목한 물이 섞이는 게 기분 더러운 게 아니실까요?”
“뭐어? 내가 더럽다고 하는 거냐? 홍윤! 나 안 더럽거든! 나처럼 깨끗한 남자가 어딨다고!”
처소로 들어온 다연은 거친 숨을 내쉬었다. 심장이 계속 요동쳤다. 귀까지 빨개져서 온몸이 뜨거웠다.
“하아……. 김민찬 저 자식은 뭐 하러 등목 같은 걸…….”
눈앞에 자꾸만 민찬의 상체가 아른거렸다. 생각을 안 하려고 몸부림칠수록 더욱 생생하게 떠올랐다.
“하아……. 뭔, 샌님주제 몸이……. 제, 제법인거야. 그렇지만 않았어도 이, 이러진 않아.”
다연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무릎을 당겨 끌어안았다. 여전히 몸에 열기가 가시지 않았다. 고개를 무릎에 푹 묻으며 한숨만 몇 번을 더 내쉴 뿐이었다.
다연은 벽에 세워진 해금을 한참 바라보았다. 왜에 가겠다고 돈을 모으는 것도 좋았지만 어머니의 죽음을 반드시 밝히기도 해야했다.
“안되겠다.”
결심했는지 처소에서 나오자 밖에 서있던 민찬이 어딜가냐 물었다.
“잠깐 볼일 좀.”
“너무 싸돌아다니지 마라.”
“왜?”
“그, 그거야 여기가 노출 될 수도 있으니까 그렇지!”
“어련히 알아서 할까.”
다연은 마굿간으로 가 메어진 말을 타고 재빠르게 산을 내려갔다. 민찬은 괜히 걱정 되는지 이미 보이지 않는 다연의 모습을 찾아 헤맸다.
명월관 깊은 곳, 기방 문을 연지 지금껏 단 한 번도 사용된 적 없던 비밀스러운 장소가 열렸다.
건물을 지을 때부터 고려하고 만들어진 곳으로 정문 뒷문과는 전혀 다른 출입구가 존재했고 명월관에서도 이 건물이 보이지도 않았다. 같은 곳에 있지만 같은 곳에 있지 않은 구조였다.
“오호, 명월관에 이런 곳이 있었는가. 그간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보일 리가 있겠습니까? 거대한 소나무로 가려져 보이지 않는 게 당연하지요.”
“그런가. 청월, 그런데 그 그림은 언제쯤 볼 수 있나?”
“먼저 안으로 드시지요. 다 오시면 그때 공개하겠습니다.”
청월의 말에 영감은 고개를 끄덕이며 안으로 들어섰다. 출입문에는 기방 호위무사와 기녀 하나가 서서 들어오는 사대부들에게서 패를 확인하고 출입을 허락했다. 신분이 확실한 사람들만 받기 위해 청월이 경매 참여하는 양반들에게 확인용 출입패를 보냈다. 출입패가 없으면 경매장을 알아도 들어올 수가 없다는 소리였다.
청월은 안에서 그림만 기다리는 양반들 앞에 섰다.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조선 처음으로 그림 시장을 개혁하는 기념스러운 날이 될 것이라 감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간 그림을 구하기 위해 사람을 풀고 인맥을 모아 힘겹게 구하시고 감식하시느라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이제는 그럴 일이 없어질 것입니다. 백문이 불여일견, 먼저 그림을 보시지요. 운(雲)아.”
운이라 불린 사내는 검게 쳐져 있던 장막을 걷어냈다. 검은 장막이 서서히 걷히자 자리에 앉아 있던 지체 높으신 양반들의 입에서 탄성이 나왔다.
“청, 청월 이, 이것이 진짜인가?”
“보는 눈이 높으십니다. 영감. 이 그림은 원나라 조맹부의 것입니다.”
진품이기라도 한 듯이 그림 여기저기에 붉은 인장이 찍혀 있었다. 청과 조선에는 그림을 소장한 소장가 또한 그림에 인장을 찍어 자기의 것임을 나타냈다. 수많은 소유주가 걸쳐 가기라도 한 듯이 그림 가장자리에는 붉은 인장이 즐비했다.
“이 그림은 안평대군이 소장하였던 것으로 보관 상태가 훌륭합니다. 다만, 오늘은 처음 경매를 하니 이런 인장과 제발(題跋)등이 있는 작품을 경매에 내오지만, 오늘 이 경매로 그림시장이 바뀌게 된다면 점차 이런 보관상태의 것들은 좋은 상품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청월. 인장과 제발은 그림을 향유하는 고유 문화일세.”
“인장을 찍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림 위에 찍어 헤치는 것은 점차 없어질 것입니다. 별지에 제발과 인장을 찍고 습기와 변색을 막은 보존상태의 그림들이 앞으로의 조선에선 값어치 있어질 것입니다.”
조선의 그림은 소장자가 그림위에 그림과 어울리는 시구를 적는 제발과 소유자를 나타내는 인장을 찍는 것이 관습이자 문화를 즐길 줄 아는 사대부의 표상이 된지 오래다. 그 덕에 그림에는 수십 개의 제발과 인장들이 덕지덕지 붙어 정작 그림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림이 있기도 했다. 청월은 그 점을 꼬집은 것이다. 자기 것이라고, 자기는 학식 높고 그림 보는 안목이 있다고 자랑을 하더라도 다른 종이에 써서 첨부해야할 것이다. 기존의 사대부들의 허영심 높은 대목을 단번에 꺾어버리는 발언이기도 했다.
제발은 원래 원나라 이후 생긴 문화다. 화공이 그림과 어울리는 글을 짧게 쓰거나 그것도 그림을 헤칠까 자신의 이름조차 숨겨서 썼던 것이다. 그것이 언제부턴가 자기의 지위를 나타내기위해 여기저기 도장이나 벌겋게 찍어대는 볼품사나운 문화로 전락했다. 물론, 그런 경향이 많은 것은 청나라지 조선은 적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없잖아 있었다.
“어허, 그것이…….”
“나중에는 그 그림보다 별지가 더 좋아 값이 뛰는 그림도 나올 것입니다. 오늘은 우선 이 조맹부의 그림을 살펴보시죠.”
하얀 종이 위해 먹으로 그려진 그림은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담백하게 그려진 풍경이 앉아있는 사대부의 소장욕을 들끓게 했다. 더군다나 소장자들의 인장만을 보아도 모두 걸출한 인물들이었다. 이 그림을 가진다면 저런 사람들과의 반열에 같이 오른다는 것이기도 했다.
“시작은 먼저 50냥부터 할까합니다.”
조선 최초의 그림경매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밤늦게 사찰에 도착한 다연은 효원동자승을 찾았다.
“스님, 칠복이에게 닷새 뒤 이 시간에 이곳에서 보자고 연통 좀 넣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오늘은 많이 늦었는데 여기서 머물고 가시는 게 어떠신지요?”
다연은 한참을 고민했다. 이미 어슴푸레 땅거미가 진작 져 다시 돌아가기는 어려웠다. 민찬이 걱정하던 것을 생각하면 빨리 돌아가야 했지만 정말로 너무 어두워져서 다연은 머물기로 했다.
“그럼 오늘밤 묵었다 가겠습니다.”
“방은 전에 쓰시던 곳으로 쓰시면 되십니다.”
친절하게 안내해준 동자승에 다연은 가볍게 인사를 하고 처소로 들어갔다.
조선의 최초의 경매가 시작된 다음날 아침 궁도 시끄러웠다.
“전하, 곧 영국대사가 온다고 합니다.”
“알고 있네. 자네는 알고 있는 것을 뭣 하러 떠벌리나.”
궁궐 내 만들어 놓은 소박한 정자에서 연못을 바라보던 임금이 질책을 하자 사간원 헌납 홍주윤은 눈만 동그랗게 떴다.
“세자, 잘 알고 있지? 영국대사가 온다는 군.”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정5품 주윤이 왕과 왕세자 사이에 껴 있으니 온몸이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거기다 두 사람의 행실이 너무 격이 없이 자유분방하니 더더욱 예의 차리기 어려웠다.
“주윤, 자네는 너무 딱딱한 것이 문제네.”
“그렇지만, 전하. 영국대사가 오는 것으로 조정 분위기는 심각합니다. 아시다시피 풍양 조씨는…….”
“그만, 그만하고 수박이나 하나 먹게. 더워서 머리가 안 돌아가면 큰일이야. 그런 소리 하라고 비싼 녹봉 주는 게 아니니 말일세.”
왕이 수박 한 조각을 집어 주윤에게 내밀었다. 주윤을 어쩔 줄 몰라하며 상선 눈치를 보다 수박을 두 손으로 잡았다.
“먹어봐. 수박이 달아.”
“전하!”
“큭큭큭, 세자. 이 꽉 막힌 사간원이 영국대사를 어찌 할 것이냐 묻는다. 세자는 어떻게 하면 좋다고 생각하느냐?”
“전하께서는 개항을 바라십니다. 하지만 풍양 조씨 일파는 쇄국정책을 계속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 조선은 아직 많이 서구열강에 비해 국력은 약합니다. 하지만, 아직 대사가 오기 전까지는 시간이 있습니다. 영국대사가 감탄할 만한, 조선이 서구열강의 문화보다 뒤떨어지지 않음을 보여줄 수만 있다면 승산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는데? 사간원 헌납은 이의가 있는가?”
주윤이 수박을 들고서 머뭇거릴 때 뒤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그 조선만의 문화가 무엇인지가 관건이 아닐런지요.”
주윤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사헌부 집의 조문우가 서있었다.
“저도 수박하나 내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