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왕이 내려준 수박하나를 호탕하게 씹어 먹으며 문우는 싱긋 웃어보였다. 주윤하고는 정말 극과 극으로 다른 사내였다. 현재 대비의 가문으로 조정내 쇄국정책의 수장격이라고 할 수 있는 풍양 조씨의 실세 조광백의 장남이 맞긴 한 건지 믿을 수 없는 사내였다.
“사헌부 집의도 영국대사 때문에 왔는가? 모처럼의 수박 맛이 다 떨어지겠군.”
“영국대사 때문에 찾아온 것은 아닙니다만, 우리 조선의 내세울 문화가 무엇인지 궁금하군요.”
주윤은 정말 이 남자가 풍양 조씨가 맞는가 의문스러웠다. 그런 시선을 눈치 챘는지 문우는 비릿하게 웃었다.
“군사력 같은 건 내세울 수조차 없죠. 증기선을 만들 수 있는 기술력도 없습니다. 외교란 서로 동등할 때나 가능한 것입니다. 강대한 서구열강에 문을 열어주는 건 현재로썬 이 조선을 통째로 내주는 것과 같을 수 있다고 봅니다만, 세자저하께서 말하시는 조선의 문화는 무엇일까요?”
문우의 말은 쇄국정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의견들이 대세인데 엎을 수 있는 묘책이 있느냐. 있으면 내놔봐라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칼을 붓으로 이긴다는 말도 있지. 서구열강들의 생각을 보자면 단순히 조선이 군사력이 약해서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미개하다여기는 것이 더 큰 것이다. 동등히 말을 해서 교류를 할 수 있는 나라로 보지 않는 것이지. 소, 돼지가 사나워져서 호랑이를 공격할 수 있게 된다고 해서 호랑이는 소, 돼지를 무서워할까? 오히려 철저하게 물어뜯길 것이다. 소, 돼지가 호랑이를 이기려면 호랑이는 공격할 수 없는 것으로 공격해야한다. 전하, 소자는 조선의 정신을 보여줄 수 있는 그림에 답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림. 문우의 표정이 일순 굳어졌다. 세자의 말을 들은 왕의 표정은 표표하기만 했다. 아니, 옅은 미소가 얼굴에 감돌았다.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상대에게 조선의 정신을 보여주는 것은 말보다 그림이 더 와닿지 않겠습니까.”
왕은 호탕하게 웃었다.
“사헌부 집의. 영국대사 때문에 온 게 아니라고 하지 않았나? 용건이 무엇인가.”
“소신이 찾아 뵌 것은, 일전에 명한 불법 속신자들에 관한 건으로 온 것입니다.”
다연이 위작공장으로 돌아온 것은 오후 무렵이었다. 점심때가 다 돼서 나타나자 민찬은 걱정했었는지 보자마자 득달같이 달려왔다.
“넌 외박한다면 외박할 거라고 말이라도 하고 가야지 나랑 영규가 얼마나 걱정했는줄 알아? 어?”
“미안.”
목에 핏대까지 세우며 말하자 다연은 주눅들었다. 그 모습을 보던 영규가 뜯어말렸다.
“무사히 돌아오셨으면 됐죠. 왜 그렇게 까지 사람을 잡아먹으려 하세요. 아침은 드셨습니까?”
영규의 말에 다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그 말부터 밥을 맥여야겠네요. 여기까지 달리느라 고생했겠네.”
영규가 다연이 타고 온 말을 끌고 마굿간으로 향하자 민찬은 한숨을 푹 쉬었다. 이 콩알 같은 놈이 뭐라고 이렇게 신경을 쓰는지 몰랐다. 아니, 실력있는 화공이기에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써 아끼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신경을 쓰는 것이라고 합리화시켰다.
“볼일은 잘 해결했냐?”
“어? 어. 며칠 뒤 다시 내려가봐야 할 것 같긴 해.”
“왜? 무슨 일인데? 이 산이 동네 야산인 줄 아나보네.”
“……왜에 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어머니의 죽음을 반드시 밝혀야 해.”
다연은 그렇게 말하고는 민찬을 지나쳐 처소로 들어갔다. 민찬은 순간 다연의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어서 한참을 그렇게 서있었다.
민찬은 다연이 그려둔 그림을 팔아주기 위해 처소에서 그림을 챙겼다. 점심상을 차려온 영규는 어딜 가냐고 소리쳤다.
“도련님! 식사 하고 가시죠!”
“됐어. 콩알이나 잔뜩 맥여.”
민찬은 말을 타고 산을 내려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영규는 혀를 찼다.
제대로 얘기도 안하고 불쑥 외박을 해버린 홍윤이 뭐라고 이렇게 화가 나는지 민찬은 몰랐다. 호리호리해서 계집 여럿 울리게 생긴 그런 놈이 뭐가 그렇게 걱정 됐던 건지 더욱더 거칠게 말을 몰았다.
“내가 저딴 놈이 뭐가 좋다고 이렇게 그림 팔아주는지 모르겠네. 맨날 산에 박혀서 그림만 연구하니까 이 김민찬이 단단히 미쳤나보다.”
땅거미가 질 무렵 도성 육의전에 도착한 민찬은 익숙한 듯 그림을 화방 주인에게 내밀었다.
“이렇게 정말 그림 가져다 줘도 괜찮은 거 맞으십니까?”
화방 안쪽에서 젊은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민찬은 콧방귀를 끼며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 나는 그냥 고객 중 하나일 뿐이니 뭔 문제라고. 경상은 경상으로써 책임지고 팔아주시기나 해.”
“화공 실력이 제법이더라구요. 다음 작품도 기대하겠습니다.”
“너 좋으라고 가져다주는 거 아니니까 착각은 적당히 하면 좋겠군.”
“잘 알고 있습니다.”
민찬은 화방 안에서 얼굴도 안보여주는 사내의 표정이 안보고도 알겠는지 팩하니 돌아서서 명월관으로 향했다. 하늘은 어느새 어둠으로 물들고 있었다.
명월관에선 경매가 한창이었다.
“2000냥! 2000냥 나왔습니다. 더 없으신가요?”
청월의 말에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그렇다면 이 그림은 2000냥에 낙찰 되었습니다.”
그림을 낙찰 받은 양반은 신이 났는지 쾌재를 질렀다.
“축하드립니다. 대감.”
“큭큭큭, 다음번 경매 때도 꼭 연통 주시게. 재밌구만.”
“네, 제일먼저 연통 드리겠습니다.”
청월이 운에게 눈짓을 하며 그림을 갈무리하여 건네 드리고는 연회가 펼쳐지는 명월관 마당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당에는 아들 김민찬이 서있었다.
“니, 니가 여긴…….”
“아들이 어머니 보러 와서는 안 되는 법도 있나?”
“그렇게 멀뚱히 서있지 말고 안채로 들어 오거라. 연락도 하나 없더니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지내던 거야.”
“어머니는 좋으신가봐. 김씨 집안사람으로 인정은 못 받는데 새파랗게 어린년을 주인으로 모시는 게.”
“그딴 소리 할 거면 나가거라!”
민찬은 히죽 웃으며 익숙하게 안채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청월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민찬을 뒤따라 들어갔다.
“비아냥거리려고 왔으면 잘못 왔구나.”
“뭐, 어머니는 만족하시니까 상관없으시겠지. 아들인 내가 만족을 못하니 문제지.”
“그동안 어디서 뭘 했니? 저번 송상 행수시험에 떨어지고선 연락 한통도 없고.”
“수행에 떠났습죠. 일본놈들이랑 거래도 좀 하고. 돈 모으고 있어요. 조선 뜨려고.”
“뭐, 뭐라고?”
청월은 기가 막혀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가 않았다. 첩살이를 거부한건 오히려 청월이었다. 애가 덜컥 들어섰어도 거절했다. 그 대단한 가문 안동 김씨 사람이 되겠다고 고생하면서 평생 한 맺혀 살다가 죽기는 싫었다. 채경이 명월관 주인이 되어서 이리저리 지시하는 것도 거리낄 것이 없었다. 하지만 민찬은 달랐다. 아버지라고 제대로 부를 수도 없고, 족보에도 오르지 못하고, 서출이니 제대로 된 관직에 나갈 수도 없었다. 그것도 모자라 채경과의 경합에서도 졌다.
이러고도 속이 멀쩡하면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게 한씨 집안 양자로 가라할 때 갈 것이지. 이제 와서 심통일 거면 청이든 일본이든 맘대로 떠나거라.”
“채경이랑 남매로 사느니 이대로가 낫습니다.”
“그러면 오늘은 왜 온 것이냐? 어미 속 긁으러 온 거냐?”
“뭐, 그건 아니고. 도성에 볼일이 있어서 숙식비 아끼려고 왔죠.”
“명월관이 주막인줄 아니?”
“내가 쓰던 방 있죠?”
“에휴, 니 맘대로 하거라.”
“근데, 오늘 명월관 분위기 평소랑 다르던데 무슨 일 있어요?”
민찬의 말에 청월은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림 경매가 시작됐지. 니가 싫어하는 채경아가씨의 첫 사업이다.”
문우는 퇴청하는 길이었다. 주윤도 마침 퇴청하는지 궐 밖에서 둘이 만나게 되었다.
“아, 꽉 막힌 사간원.”
“……사간원 헌납 홍주윤입니다.”
“뭐 어때.”
“뭐 어떠냐니요. 엄연한 이름이 있는데. 꽉 막힌이 뭡니까?”
“그런 구석이 꽉 막혔다고 하는 거지.”
주윤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님 일은 안 되었네.”
“…….”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말게. 풍양 조씨면 뭐 다 불구대천의 원수로 보는가? 이러니 꽉 막힌 사간원이지.”
“홍주윤입니다.”
문우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그래, 홍헌납. 됐지?”
주윤은 왠지 그것도 어감이 싫어 고개를 저었다.
“이름으로 불러주시죠. 차라리.”
“예를 지켜야 하지 않겠나. 그래. 나이도 비슷하니 주윤군. 호칭은 이걸로 더 이상 번복하지 마시게.”
“……하실 말씀이 뭡니까?”
주윤은 포기한 듯 물었다. 문우는 싱긋 웃었다.
“시류에 흘러가지 않았던 대쪽 같은 사람. 이라하면 대제학 홍석주 대감이셨지만, 시류에 흘러가지 못했던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주윤군, 자네처럼.”
“듣기 거북하군요.”
“듣기 거북하라고 하는 소리지.”
“무례합니다!”
문우는 고개를 들어 둥근 보름달을 올려보았다. 달은 차면 기우는 법이다. 거대한 시류 앞에서 흘러가지 못했던 거목은 댕강 부러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앞으로의 세상은 더 거센 시류가 밀려올 것일세. 풍양 조씨가 불구대천의 원수로 보이나? 아니지, 안동 김씨도 불구대천의 원수로 보이겠지. 홍가는 그 어디에도 타협하지 않았으니까. 자네 아버님은 쇄국도 개항도 이렇다 말하신 적이 없지. 뜻을 알 수 없는 자는 이 나라 조정에서 적이다. 공공의 적이 되었으니 정쟁에서 밀려나신 것이다.”
“조문우!”
“나에게 이빨 들이대서 달라지는 것이 있나? 자네 아버지처럼 안 되려면 자네도 뜻을 정해야 할 것이야.”
주윤은 숨을 삼켰다. 요즘 자신이 조정에서 떠다니는 것쯤 자각하고 있었다. 어딜 가든 개항이니 쇄국이니 떠들었지만 답을 몰랐다. 그런 건…….
“그런 건 사서삼경에 나오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얼굴이군.”
“그걸 어떻게!”
“어떻게 아냐고? 주윤군. 난 자네같이 사서삼경 달달 외웠다고 입신양명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제일 싫네. 자네와 국정을 논하느니 안동 김씨랑 하고 말겠네.”
문우는 관복을 흩날리며 걸어갔다. 도성 육의전이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했다. 멍하니 서있던 주윤이 바짝 문우의 뒤를 쫓아왔다.
“집에 가지? 주윤군.”
“그런 소리 듣고 집에 간다니 참을 수 없습니다.”
“못 참으면 어떡하려고 그러시나?”
그때 달빛에 빛나는 그림 한 점이 문우의 눈에 들어왔다.
“여보게 자네.”
“네?”
화방주인은 문을 닫으려는지 한창 정리중이었다.
“저 그림. 처음 보는 자의 것인 듯 한데…….”
“며칠 전에 들어온 것입니다. 저도 처음 듣는 아호이긴 합니다.”
“호오?”
문우는 호기심이 동하는지 그림을 가까이에서 봤다. 달빛에 빛나는 모란도는 향기를 내뿜는 듯 했다.
“도유라…….”
“그래도 제법 그렸습니다. 제가 그림 팔아 먹고산 지가 얼만데요.”
“큭큭, 미래가 기대되는 화공의 그림을 좀 사볼까? 얼마 하는가?”
“20냥만 주십쇼.”
“화공이 그리 달라더냐?”
문우는 전낭을 열어보더니 통째로 주인에게 넘겨주었다.
“대충 100냥은 될테다. 화공이 오거든 이리 전해주거라. 미래가 기대되니 더욱 정진하라.”
그리 말하고는 모란도 족자를 받아들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주윤은 문우의 뒤를 여전히 뒤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