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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여류화가 홍다연
작가 : 은비랑
작품등록일 : 2017.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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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림경매 - 1
작성일 : 17-11-18     조회 : 489     추천 : 1     분량 : 5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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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그림경매

 

 1.

 

 “주윤군 어린 병아리처럼 꽁무니 쫓지 말고 집에 가라니까.”

 “시류를 아실 것 같은 집의 어르신께 가르침을 받고 싶군요.”

 “어허, 난감하네. 퇴근했음 집에 가서 씻고 자는 게 도리 아닌가?”

 “제가 술 한 잔 사겠습니다. 명월관 좋으십니까?”

 

 명월관이라는 말에 문우의 발걸음이 멈춰 섰다.

 

 “좋지. 명월관 홍주가 맛있긴 하지.”

 

 

 

 명월관은 기녀들의 웃음소리로 시끌벅적했다.

 

 “나리, 오셨습니까?”

 “운향이구나. 잘 있었느냐?”

 “나리만 기다렸습니다.”

 

 문우는 싱긋 웃으며 저벅저벅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 분은 누구십니까?”

 “음... 꽉 막힌 사간원.”

 

 주윤의 표정이 좋지 않았지만 문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리 오셨습니까?”

 

 멀리서 청월이 다가와 인사했다.

 

 “조용한 자리 좀 주시게. 아이들은 필요 없고. 홍주나 넉넉히 줘.”

 “네, 알겠습니다.”

 

 청월이 안내해준 깊은 방으로 들어온 문우는 익숙하게 홍주를 따랐다. 주윤을 보더니 잔을 채워주었다.

 

 “뭐, 나한테 무슨 가르침을 받는다고. 권력욕의 화신 풍양 조씨한테…….”

 “적어도 집의께서는 그렇게 보이진 않습니다.”

 “그런가?”

 

 문우는 명월관 오기 전에 사온 모란도를 펼쳤다. 밝은 곳에서 보니 더욱 그림은 멋있었다. 조선팔도 화공들을 후원하는 집안에서 그림 감식안이 뒤떨어진다면 말이 안 되는 것이다. 문우는 문중에서 가장 감식안이 뛰어났다. 조선 팔도 제일이라고 할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으로 이름을 높이지 않는 것은 화공은 천한 직업이기 때문이다.

 

 “역시 미래가 기대대는군. 이정도 실력이면 이미 도화서 화원인가.”

 

 주윤은 자신을 앞에 두고 없는척하는 문우의 태도에 화가 났지만 소리를 낼 입장도 아니었다. 명월관으로 가자 한 것도 자신이었다.

 

 “주윤군. 자네는 왜 과거를 봤지? 아아, 입신양명하는 게 효니까? 그런 틀에 박힌 말 하려면 홍주나 마시고 집에 가게. 내가 생각했을 때 조정에 있어야 할 사람은 딱 한 부류면 되네. 조선을 부유하게 하고 싶은 자. 그런 사람들만 있으면 된다는 말이네.”

 “그 말은 성리학을 부정하는 것입니까?”

 “유학자의 입에서 성리학을 부정하고서도 조선에서 살아남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내가 사문난적인지 아닌지는 주윤군, 자네가 판단하고, 나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아.”

 

 문우는 홍주를 들이키며 안주로 올라온 전을 집어먹었다.

 

 “지금 조선은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왜놈이나 청나라놈이 아니라, 양놈들에게 먹혀버릴 것이네.”

 “생각하는 바는 있으십니까?”

 “……난, 우리 가문을 뜯어 바꾸고 싶네. 쇄국이라니, 권력욕에 찌들었으니 이렇게 되는 거지. 어디 가서 떠벌리고 다니진 말게. 주윤군. 안 그래도 집안에서 문제아로 찍혀있으니.”

 

 

 

 경매는 매우 순조로웠다. 청월에게서 연통을 받은 채경은 기분이 좋았다.

 

 “그래도 다음 문제가 남았네. 전시회.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화공이 없어.”

 “굳이 전시회를 해야 합니까?”

 

 홍연이 묻자 채경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냥 경매만 한다하더라도 언제까지 그림을 댈 수가 있겠어. 지금 도화서 화원들에게도 연락을 넣고 있지만 그들은 궁에 얽매인 자들이라 당당히 전시회 같은 것을 할 수가 없지. 단지 돈만 벌려고 했다면 그림 같은 거에 눈을 돌리지 않았어. 일본 우키요에를 봐. 그 그림이 바다를 건너 서역으로 건너가 재창조되는 것을. 이대로 가다간 조선보다 일본이 서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조선을 먹으로 들 거다.”

 “그것이 어찌 아가씨 혼자서 될 일입니까?”

 “그래서 너희 아버님을 그렇게 극진히 모시는 거 아니겠어. 이번 새로 오는 영국대사와 제대로 이야기가 되어야 무역도 폭 넓게 더 할 수 있을 텐데……. 그런 거야 조정대신들의 마음이지. 하나같이 권력욕에 찌들어서!”

 

 채경은 버럭 소리를 내지르고 깎아놓은 참외를 아작 씹어 먹었다.

 

 “그래서 화공을 찾아야해. 홍연아. 나가자. 다시 한 번 저자를 돌아봐야겠다.”

 

 채경은 짜증나는지 푸른 장옷을 거칠게 집어 뒤 집어 썼다. 숨 쉬는 것만으로도 얼굴과 목뒤로 땀이 흐르고 있었다.

 

 “하아, 더워. 정말이지 왜 여자가 가리고 다녀야해. 여자를 보는 사내들의 눈이 음탕한 주제에.”

 

 

 

 장옷 안에서 땀이 뚝뚝 흐르는 게 느껴졌다. 율과 홍연이 뒤 따라오고 있었다. 저자에는 남자들이 대부분이었고, 가끔 보이는 여종들이 물건을 고르고 있었다. 백주대낮에 반가의 여자가 장옷을 뒤집어썼다 해도 돌아다니는 것이 흔한 풍경은 아니었다.

 

 “하아, 홍연이는 좋겠네.”

 “왜요, 아가씨?”

 “이 더위에 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장옷 같은 거 안 뒤집어써도 되니까 말야.”

 “대신, 이 빨간 머리 때문에 원숭이 보듯 힐끔거리는데요.”

 “그게 더 나을 것 같은데. 숨도 못 쉬겠어.”

 

 좁은 시야로 지전과 화방들을 훑어보았다. 여전히 눈에 띄는 그림은 없었다. 땀이 뚝뚝 흐르는데도 멈출 수가 없었다. 최대한 빨리 화공을 찾아야했다. 이리저리로 시선을 돌릴 때 눈에 띄는 그림이 있었다. 채경은 재빠르게 그림 앞으로 다가갔다.

 

 “아가씨.”

 

 채경은 한숨을 내쉬며 그림을 찬찬히 뜯어봤다. 힘차게 요동치는 잉어 두 마리가 그려진 그림이었다. 단 한 번도 본적 없는 필체. 힘 있지만 섬세하며 유려한 붓놀림. 과연 지금껏 이런 화공이 어디 있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재빠르게 낙관을 확인했다. 처음 보는 아호. 도유.

 

 “얼마 하는지 물어 보거라.”

 

 오늘은 흥분하지 않고 침착하게 엄연한 내외법을 따르는 채경이었다. 옆에 있던 율이 말을 전했다. 그때 가게 안에서 연두빛 도포를 입은 사내가 걸어 나왔다.

 

 “너는 송상의 호위무사가 아니냐. 그렇다면…….”

 

 검은 갓이 햇빛에 빛나 반짝였다. 채경은 사내의 얼굴을 보고 숨을 들이셨다. 실수였다. 땀을 흠뻑 흘리며 그림 찾는데 열중하다보니 경쟁 상단인 경상의 화방인줄도 모르고 발을 들인 것이다.

 

 “오랜만에 뵙니다. 채경아가씨.”

 

 채경은 장옷 속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림은 안 팔 거냐고 전해라.”

 “그림 안 파실 거냐고 하십니다.”

 

 뒤에 서있던 홍연은 이 상황이 웃긴지 계속 웃고 있었다.

 

 “물론, 팔지요. 그 전에 요즘 재밌는 사업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아녀자께서 적당히 재미만 보시고 혼사를 준비하시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경강상인 강세훈이었다. 대놓고 집에서 시집갈 준비나 하라는 말에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네, 재밌습니다. 외간남자가 여인의 혼사를 걱정하는 게 좋아보이지는 않다고 전해라.”

 “네, 재밌습니다. 외간남자…….”

 “그만! 역시 송상의 보옥이십니다. 그림 값으로 200냥이면 될 것 같습니다.”

 

 채경이 율에게 눈짓을 하자 율은 전낭을 열어 송상의 어음을 줬다. 어음을 받아든 세훈은 씩 웃어보였다.

 

 “이 그림 누가 가져다 준건지 아십니까? 들으시면 놀라실 겁니다.”

 

 채경이 장옷 속에서 노려보자 세훈은 입을 열었다.

 

 “아가씨 육촌분이 주신 겁니다.”

 

 세훈의 입에서 김민찬이 튀어나오자 채경의 눈에는 불꽃이 일었다.

 

 “가자! 율!”

 

 

 

 

 칠복과 약속한 날이 되자 다연은 아침부터 준비하여 내려와 사찰에 도착했다. 사찰엔 이미 칠복이 약속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 아가. 도, 도련님.”

 “오랜만에 보네.”

 

 다연과 함께 수레를 끌고 산을 내려온 남자 둘이 있었다. 수레에는 그간 다연이 위작으로 번 돈이 실려 있었다.

 

 “수고 했어. 다들 가봐.”

 “네, 화공님.”

 

 수레를 끌고 온 남자들이 사라지자 칠복이 격양된 목소리로 물었다.

 

 “어찌된 겁니까? 사찰에서 내려가시고 어디서 지내시는지 제대로 말씀도 안 해주시고.”

 “미안해. 그래서 이렇게 보자고 한 거잖아.”

 

 칠복은 한숨을 쉬고 다연이 무슨 말을 하는지 기다렸다.

 

 “내가 부탁할게 있어. 망한 가게 좀 알아봐줘.”

 “망한 가게는 얻어서 어찌 하시려구요?”

 “지금껏 모아둔 돈을 보관할 곳이 제대로 있어야겠다 싶어서…….”

 

 다연은 싱긋 웃었다.

 

 “적당히 가게 하나 마련해서 돈 좀 굴려줘.”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만냥이나 되는 큰 대금을 계속 위작공장에서 보관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돈을 사용했다가는 꼬리를 잡힐 수 있었다. 안전하게 돈을 보관하면서도 돈세탁을 해야 했다. 그러나 다연은 위작공장에서 계속 그림을 그려야 했기 때문에 대신 맡아서 일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 와중에 떠오른 사람이 외거노비 칠복이었다.

 

 외거노비는 주인집 밖에서 살면서 농사를 지어 신역만 꼬박꼬박 내면 되었다. 그래서 신분상승할 기회가 많았고 칠복이 또한 돈을 벌어 신분상승을 꾀하고 있었다.

 

 

 “다 알고 부탁하는 거야. 외거노비로 신역만 도련님에게 제공하면 되잖아. 농사지어서 신역 마련하느니 가게 돌리는 게 더 편할 거야. 내가 돈 모아서 납속하려 하는 거 모르는 줄 알아? 비슷한 처지니까 부탁하는 거야.”

 “……알겠습니다. 도련님.”

 “잘 좀 부탁해. 장사 잘 되서 얻은 수익은 다 가져도 돼. 대신 보내주는 돈들 출처 좀 만들어줘. 무슨 말인지 알겠지?”

 

 다연의 말에 칠복의 눈이 흔들렸다.

 

 “돈세탁을 말씀하는 겁니까? 설마, 이 엄청난 돈들은…….”

 “그러니까 비밀로 부탁하는 거 아냐. 도련님이 노비문서 못주겠다고 하더라도 내가 강제로 뺏어서라도 주라할테니까. 잘 좀 부탁해.”

 “알겠습니다. 자리 잡으면 보름마다 이 시각 이곳으로 아들놈 보내서 연통 드리겠습니다.”

 

 수레를 끌고 가려는 칠복을 불러 세웠다.

 

 “저기……. 물어볼 사람이 없어서 그러는데. 우리 어머니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아는 거 있어?”

 

 다연의 물음에 칠복의 눈빛이 불안하게 떨렸다.

 

 

 

 

 오후 늦게 위작공장으로 돌아온 다연에게 영규가 마중 나왔다. 아침 일찍 공장의 사람들과 수레를 끌고 나간게 미심쩍었지만 물어보지 않았다.

 

 “화공님 어디 갔다 오셨어요. 일이 잔뜩 밀려 있습니다.”

 “무슨 그림인데요?”

 “이번엔, 평소하곤 다른 겁니다.”

 

 영규의 말에 다연은 긴장했다.

 

 “거 겁줄게 뭐 있어. 빨리 들어와. 콩알. 잠깐 나갔다 온다더니 지금이 몇 시야.”

 

 민찬의 말에 다연은 입이 삐죽 나왔다. 저번에 본인도 며칠씩 안 들어와 놓고 자기만 타박하는지 짜증이 났다. 그래도 마지못해 다연은 작업실로 들어갔다. 작업실 안에는 위작을 작업할 모든 준비가 갖춰져 있었다.

 

 “이건…….”

 “운격의 그림이다. 화조화지.”

 

 꽃과 새가 소담하니 화폭을 채우고 있었다. 윤곽선 없이 채색된 그림이 운격의 특징이기도 했다.

 

 “채색화라니.”

 “아아, 채색화 위작은 처음인가. 맨날 수묵화만 했으니…….”

 

 다연이 민찬을 흘기자 민찬은 멋쩍은 듯 턱을 어루만졌다.

 

 “뭐, 종이나 안료, 붓의 분석은 다 끝났어. 종이야 당연히 청나라 것이고. 시기는 대략 200여년 전 것으로 보이고. 운격이 그쯤 태생이니 당연한 건가. 아교도 미리 개어 났다.”

 

 이런 그림을 쉽게 구하는 박성규라는 작자의 실력에 번번이 감탄하는 것도 지쳤는지 다연은 자리에 앉았다.

작가의 말
 

 요즘 중국드라마에 빠졌습니다. 미미일소흔경성.. 아아아 너무 재밌네요. 끝까지 다봐서 아쉬워서 무한 ost 들으며 다연이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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