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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여류화가 홍다연
작가 : 은비랑
작품등록일 : 2017.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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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림경매 - 3
작성일 : 17-11-18     조회 : 489     추천 : 1     분량 : 4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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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퇴청 후 문우는 명월관으로 향했다. 명월관 정문은 양반들과 그들의 종복들로 시끌벅적했다. 저자거리마냥 복작거리니 확 짜증이 치밀었다.

 

 “이게 다 무슨 일이야?”

 

 운향이 나와 인사를 했다.

 

 “죄송합니다. 나리. 저도 며칠 새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하아, 그림경매를 명월관에서 하게 되었는데, 그것 때문인지 자신들도 보여 달라며 성화입니다. 다들 지체 높으신 양반네니 내 쫓을 수도 없고……. 사실은 거의 공명첩 사서 양반된 쭉정이들이겠죠. 다들 비단옷 걸치고 있으니 에휴…….”

 “호오? 경매는 어디서 하는데? 나도 참여할 수 없나?”

 “하아.”

 

 운향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것이 비밀제입니다. 신원이 확인된 사대부들만 입장이 허락되어서요. 출입패를 청월 행수님이 드리고 있는데. 그것이 또 소동의 근원인지라. 자기네들이 뭐가 모자라 안 되냐며 저 난리입니다.”

 “큭큭, 나도 저 시위대와 섞여서 소리라도 질러야 하는 건가? 세도가 풍양 조씨 조문우에게는 연통하나 안 오던데?”

 “나리, 참아주십시오.”

 

 문우는 씩 웃으며 운향에 허리를 감았다.

 

 “청월은 어딨지?”

 “모시겠습니다.”

 

 

 

 운향이 안내해준 안채에 청월이 있었다. 인사를 깍듯이 하는 청월을 보며 문우는 씩 웃었다.

 

 “재밌는 소문이 들리더라고.”

 “소문이 빠르긴 한가 봅니다. 나리께도 들어가고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나도 그 출입패인지 뭔지 받을 수 있나?”

 

 청월은 순간 대답을 하지 못했다. 채경은 굳이 따지면 안동 김씨의 사람이다. 엮여서 좋을 리 없는 풍양 조씨 장남에게 출입패를 선뜻 주기가 꺼려졌다. 하지만, 채경에게 직접적으로 풍양 조씨 사람에게 주지 말라고 들은 적도 없었다.

 

 “이런 것에 관심이 있으실 거라곤 차마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늘 그림은 낙서라고 하찮게 보시는 분이셨잖습니까?”

 “큭큭, 청월, 이 조문우를 도발하는 겐가?”

 “이 천것이 그럴리가요. 반다경이면 경매가 시작됩니다. 같이 가시죠.”

 

 서랍에서 출입패를 꺼내 문우에게 내밀며 청월은 온화하게 웃어보였다. 문우는 나무로 된 출입패를 한참 바라보다 집었다.

 

 청월을 따라 들어온 곳은 문우마저도 처음 보는 곳이었다. 이런 곳에 전각이 있었는지 그간 알지 못했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 전각 안에는 청월만을 기다렸는지 사대부들 모두 아우성이었다.

 

 “오늘은 무슨 그림인가? 청월.”

 “내 아는 사람도 경매장에 오고 싶어 하네. 출입패를 더 주게.”

 “거 명월관 앞에서 몰상식하게 소리 지르는 자들 처리 좀 빨리 하게. 상스러워서야.”

 

 저마다의 소리를 내는 사대부들 앞에서 청월은 고개를 깊게 숙였다.

 

 “죄송합니다. 하루 빨리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입패를 더 원하시는 분들께는 송구하지만 잠시 더 기다려주셔야겠습니다. 사안이 사안인지라 신중을 기하는 것 거듭 양해 부탁드립니다. 오늘의 그림은 이것입니다. 운아.”

 

 익숙하게 호위무사 운은 검은 장막을 거뒀다. 장막 뒤 가려져 있던 그림은 조선의 것도, 청의 것도 하물며 일본의 것도 아니었다. 바다건너 온 서역의 것이었다.

 

 “저것이 뭔가.”

 “양인의 그림인가?”

 “허허 참…….”

 

 저마다의 소리가 들리는 와중에 문우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턱을 어루만지며 앞에 걸린 동판화를 바라봤다.

 

 “호오, 제법이군. 경매의 주인은 가히 수완이 좋군.”

 

 문우는 각자 앞에 놓인 다과상의 차를 한 모금 마시며 그림을 감상했다. 시끌벅적한 사대부들 앞에서 청월은 입을 열었다.

 

 “이 그림은 나가사키에서 네덜란드 상인을 통해 구한 그림으로 동판화입니다. 판화그림이긴 합니다만, 서역의 원근법이 도드라진 그림이죠. 서역의 풍경 또한 볼만합니다. 청에서는 서역의 화공들이 궁중에서 일한다는 걸 익히 아시겠죠? 동판화 하나 구하려면 청에 사신으로 가는 자들을 통해 얻는 정도로 귀한 것입니다. 익히 이 그림의 가치는 다들 아시리라 믿습니다.”

 “알아, 알다마다. 여기서 그런 보는 눈 없는 자들이야 있지 않네. 청월. 어서 시작하게.”

 “네, 대감님. 그러면 600냥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청월의 말에 박대감이 손을 들었다.

 

 “700냥.”

 “네, 700냥 나왔습니다. 더는 없으십니까? 700냥입니다. 없으십니까?”

 

 그때 청월에게 운이 종이를 건네주었다. 종이에는 900냥 한대감이라 적혀있었다. 경박스럽게 말로 하는 걸 거북해 하는 양반들은 가끔 종이에 값을 써서 청월에게 보내기도 했다.

 

 “네, 방금 900냥 적어주셨습니다. 900냥입니다.”

 “1500냥!”

 

 갑자기 누군가 1500냥을 부르자 다들 눈치만 봤다.

 

 “네, 1500냥 나왔습니다. 1500냥입니다. 다른 분은 없으십니까? 그렇다면 1500냥에…….”

 “2000.”

 

 조용히 손을 들고 값을 외친 자는 다름 아닌 박성규였다. 애체를 중지로 치켜 올리며 청월을 바라보았다. 박성규 그가 뒤로 위작공장을 하는걸 아는 사람은 여기 있는 사람 중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그는 겉으로 보기엔 무역으로 돈을 긁어모으는 대부호중 하나였다.

 

 경매장 출입패를 받은 사람 중에는 공명첩을 사 양반이 된 거상도 몇몇 있었다. 박성규는 그런 자중 하나였다.

 

 “……2000냥 나왔습니다. 더는 없으십니까?”

 

 청월의 말에 쥐죽은 듯 조용했다. 다들 포기한 듯 다과상의 차를 들이키기 바빴다. 청월은 둘러보더니 싱긋 웃었다.

 

 “네, 이 동판화는 2000냥에 낙찰되었습니다. 실망하지 마십시오. 곧 다음 그림을 선보이겠습니다.”

 

 운은 재빠르게 낙찰된 그림을 치우고 장막에 가려진 다른 그림을 들고 왔다. 경매장의 열기는 한층 더 뜨거워졌다.

 

 

 

 

 밤이 깊었다. 산중에 있는 모든 자들이 잠든 야심한 밤. 다연은 몰래 욕탕에 목욕물을 받아 목욕 중이었다. 사내들만 바글바글한 곳에 남장을 하고 있으니 제때 씻기란 쉽지 않았다.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숨죽인 채 몸을 씻었다.

 

 삼복더위에 제대로 씻지 못하는 게 큰 고통 중 하나였다. 마님에게 눈치는 봤지만 대감댁에 있을 때는 언제든지 목욕할 수 있었고, 고운 비단옷도 입었다. 특히 어머니가 살아계시던 어린 시절에는 어머니의 해금 소리를 늘상 들을 수 있었다.

 

 “정말, 어머니는 마님이 죽인 걸까.”

 

 물을 어깨에 끼얹던 다연은 도련님께 받은 서찰이 떠올랐다. 언젠가 반드시 어머니의 죽음을 밝혀내고 싶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문을 쾅쾅 두드렸다.

 

 다연은 놀라 욕탕 안에 몸을 더 우겨넣고 문 쪽을 바라봤다. 아슬아슬하게 꽂혀있는 숟가락이 요동을 쳤다.

 

 “야! 콩알! 너, 거기 있지? 급한 일 있다니까? 뭐하는데 여기가 문이 잠겨있어?”

 

 몇 번을 쾅쾅 두들기니 숟가락이 맥없이 빠져 문이 열렸다. 다연은 막 소리치며 손사래를 쳤다.

 

 “당장 안 나가!! 목욕하는 거 안보여?”

 

 마구잡이고 물을 뿌려대니 민찬은 팔을 허우적거렸다.

 

 “야! 그만해! 사내끼리 뭐 어때? 그만해. 아, 안 봐. 안 봐. 나갈게. 나가! 그냥 내일 얘기한다. 아우씨!”

 

 민찬을 물에 빠진 생쥐 꼴을 하고 겨우 나와 문을 쾅 닫아 버렸다.

 

 “뭔, 사내놈이 저래? 계집애처럼.”

 

 흠뻑 젖은 저고리를 털어내며 툴툴댔다. 문득 다연을 떠올리자 달빛에 빛나던 뽀얀 어깨가 떠올랐다. 사내치고는 너무 보드라운 속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물에 젖은 어깨며 머리카락이 떠오르니 얼굴이 벌게졌다.

 

 “김민찬.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아무리 그래도 사내놈을 보고 흥분하다니…….”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처소로 돌아갈 때 쯤 뭐에 얻어맞은 듯 민찬은 하얗게 질렸다. 그리고 조용히 고개를 돌려 목욕하던 다연이 있는 곳을 보았다.

 

 “사내가 무슨 가슴띠를 해…….”

 

 민찬은 괜히 주변을 샅샅이 둘러보았다. 적막한 밤의 산은 쥐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민찬은 숨을 내쉬었다. 목욕하던 다연을 떠올리자 민찬은 몸이 뜨거워졌다.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댔다.

 

 

 

 다음날 아침 민찬은 잠을 설쳤는지 눈 밑이 퀭했다. 다연과 눈이 마주치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으흠, 흠흠…….”

 

 민찬이 괜한 헛기침을 하자 다연은 노려봤다.

 

 “그 밤에 뭐 때문에 왔던 건데?”

 “으흠, 흠. 그, 그게 어르신이 경매에서 낙찰 받았다는 그림 보여주려고 그랬지.”

 

 민찬은 방에서 그림을 갖고나왔다.

 

 “봐봐.”

 

 다연은 민찬이 내민 그림을 받아들었다. 하얀 화폭에는 지금껏 본적 없는 그림이 있었다.

 

 “이게 뭐야?”

 “물 건너 온 양인 그림이다. 동판화라는데…….”

 

 판화로 찍은 그림이 이렇게 섬세할 수 있다니 충격 그 자체였다.

 

 “이게 판화라고?”

 “멋있지 않냐? 서역의 풍경화 같은데……. 이걸 얻은 어르신도 대단하지.”

 

 그림에는 원근감이 살아있었다. 조선에도 서역의 원근법이 들어와 책가도를 그릴 때 사용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 조선의 그림은 바뀌지 않았다.

 

 “도유, 맘에 드는가?”

 

 뒤에서 박성규의 목소리가 들리자 다연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애체를 고쳐 끼며 싱긋 웃는 사내가 서있었다.

 

 “제 맘에 들고 안들고가 중요한 것입니까?”

 “큭큭큭. 틀린 말은 아니지만, 서역 그림에 관심이 많은 듯하니 몇 점 구해다 줄 수도 있다. 서역 그림에 대해선 민찬이도 관심 있어 하는 것 같고…….”

 “네에?”

 “적당히 보고 잘 놔두어라. 김민찬.”

 “네네, 알겠습니다. 어르신.”

 

 

 

 

 칠복이는 다연이 시키는 대로 착실히 일을 하고 있었다. 유기전을 열어 기방에서 쓰는 유기를 수거 다시 녹여 파는 일을 시작했다.

 

 “그릇 갖고 왔습니다요.”

 “거기다 두시오. 어디 물건이오?”

 “명월관입니다요.”

 

 명월관이라는 말에 칠복은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하셨소.”

 

 짐꾼은 칠복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빠르게 사라졌다. 칠복은 익숙하게 유기를 옮기기 시작했다. 칠복 옆에서 일을 돕던 칠복이 아들 강돌은 칠복에게 얘기를 하고 바삐 어디론가 가기 시작했다.

 

 강돌은 도성 밖 삼나무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자 한참뒤 막금이 나타났다.

 

 “아주머니.”

 “갑자기 여기까지 불러내고 그래.”

 “아주머니, 아주머니는 아시죠? 별채마님일.”

 

 별채마님이란 얘기에 막금은 새파랗게 얼굴이 질렸다.

 

 “난 몰라! 갑자기 그 옛날 일은 왜 묻고 지랄이야! 그, 그렇게 할 일이 없어?”

 

 막금은 뒤도 안돌아보고 돌아가려 했다. 그때 강돌이 손을 덥석 잡고 조용히 귓속말을 하자 막금의 눈빛이 바뀌었다.

작가의 말
 

 막금은 무엇을 아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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