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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여류화가 홍다연
작가 : 은비랑
작품등록일 : 2017.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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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림경매 - 5
작성일 : 17-11-25     조회 : 492     추천 : 1     분량 : 5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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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경매가 끝나자 둘은 명월관으로 와 술잔을 기울였다.

 

 “좋은 구경 시켜주러 데려갔건만, 표정이 계속 그게 뭐냐?”

 “아, 미안. 좀 생각거리가 있어서…….”

 

 술을 들이키며 조현은 민찬의 안색을 살폈다.

 

 “역시 명월관이야. 정문 앞에 진을 치고 있는 자들 참으로 대단해.”

 “뭐가 대단해. 돈 받고 저러는 건데……. 완전 영업방해야.”

 “어디서 저러는 건데?”

 “아마…… 경상 쪽이겠지. 그림경매가 송상 쪽 작품이니.”

 

 안주를 집어먹으며 조현은 비릿하게 웃었다.

 

 “완전 남의 허벅지 긁듯 얘기하네.”

 “알게 뭐야.”

 “행수 경연에 졌다고 몇 년 째인데 그러는 거냐? 그래서 그간 연락도 없었고?”

 “……너는 뭐 잘 지내냐?”

 

 조현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뭐 서자가 비슷하지. 역관하고 있다.”

 “어느 나라?”

 “영국.”

 “양인들 말을 배웠어?”

 “제일 전망 있어 보이는 나라 아니냐. 나랏님께선 전면 개항을 바라시지. 잘만 되면 떼돈을 벌 수 있을 거다.”

 

 그때였다. 문이 발칵 열렸다.

 

 “누구야?”

 

 민찬이 소리 지르며 문 쪽을 바라보자 익숙한 얼굴의 사내가 서있었다.

 

 “도련님. 아가씨께서 찾으십니다.”

 “지금 친구랑 술 마시는 게 너에겐 안보이나 봐? 율.”

 “죄송하지만, 저는 아가씨의 명을 수행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조현은 율과 민찬을 번갈아 보다 호탕하게 웃었다.

 

 “가봐라. 송상의 보옥께서 찾으신다잖니.”

 “젠장. 왜 하필 오늘이야.”

 “나는 괜찮아. 우리 집이야 알 테고 담에 언제든 볼 수 있지. 패배자는 원래 말이 없는 법이지.”

 

 패배자라는 말에 민찬의 눈썹이 움직였다.

 

 “큭큭큭.”

 “……미안, 가봐야겠다. 저 자식은 나 데려갈 때까지 저렇게 병풍마냥 서있을 게 뻔하니.”

 “그래, 가보셔.”

 

 민찬은 자리에서 일어나 율을 따라 나갔다. 나오자 어머니인 청월이 서있었다.

 

 “그렇게 쳐다보지 마라. 내 고용주는 아가씨야.”

 “네네, 어머니. 다녀오겠습니다.”

 

 민찬은 명월관을 나섰다.

 

 

 

 다연은 도성에 내려와 칠복의 아들 강돌을 만났다.

 

 “막금이를 만났다며. 뭐하고 했는데?”

 “아가씨……. 막금은 아는 게 없다고 한사코 잡아 때기만 합니다.”

 “말도 안 돼. 어머니 시녀로 있던 사람이잖아!”

 “정말 모르는 것 같은 눈치는 아니었습니다. 왠지 겁에 잔뜩 질려있는 눈치라…….”

 

 겁이라는 말에 다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냥 단순한 죽음이 아닐 거란 건 짐작 했지만 실제로 드러나니 몸속에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내가 막금을 만나야겠어. 다음번 볼 때 막금도 데리고 나와.”

 “네, 살펴 가십시오.”

 

 다연이 강돌과 헤어져 공장으로 돌아가려 할 때 명월관 쪽에서 나오는 민찬과 눈이 마주쳤다. 또 그새 도성에 내려온 건지 여인 몸으로 겁도 없이 혼자 산을 내려오는 거에 괜히 화가 났다.

 

 “콩알! 이 늦은 시각에 뭐하고 있어! 빨리 안 돌아가?”

 “김민찬, 뭔데 소리를 버럭 질러?”

 

 민찬 옆에 서있던 율이 이상하게 쳐다봤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민찬은 다연의 귓가에 조심스럽게 말했다.

 

 “여자애가 이 시간에 돌아다니는 게 걱정이 안 되겠냐? 얼른 돌아가. 나는 일이 있어서 늦게 갈 거니까.”

 

 여자애라는 말에 다연은 제대로 반응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귀까지 빨개졌다.

 

 “얼른 가.”

 “응…….”

 

 다연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성 밖으로 내달렸다. 민찬은 그런 다연이 귀여운지 흐뭇하게 바라보다 순간 당황해서 애써 표정을 지웠다.

 

 

 

 채경은 민찬이 명월관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흥분을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거래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 매우 불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무엇을 줘야 육촌이 순순히 넘겨줄까.”

 “호위무사님이 말하길 조선을 떠나고 싶다고 했잖아요. 영국행 배라도 준비하면 되지 않을까요? 곧 영국대사가 올 텐데 그편에 가면 되는걸요.”

 “그 육촌이 영국 말을 할 줄 알 리가 없잖아. 거기 가서 뭘 할 줄 안다고.”

 “아아, 그 문제가 있었네.”

 

 홍연은 그제야 깨달았는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그때 율의 목소리가 밖에서 들렸다.

 

 “아가씨, 도련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들어와.”

 

 문이 열리자 연보랏빛 도포를 흩날리며 민찬이 들어섰다. 그리고 채경의 앞에 털썩 앉았다.

 

 “웬일로 보자고 하셨습니까? 육촌 누이?”

 

 채경은 말없이 준비해둔 잉어도를 내밀었다. 순간 민찬은 당황했다. 경상 쪽에 물건을 풀었다는 소식이 들어간 줄로만 알고 왔는데 잉어도를 산 사람일 줄 몰랐기 때문이다.

 

 “저번에 양해 부탁한다는 그런 말 이걸 말하는 거였습니까?”

 “뭐, 제 청을 안 들어주셨으니 말이죠. 저는 분명 말 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어느 누가 거래를 합니까?”

 “내 안목을 믿었다면 문제없었을 텐데?”

 

 민찬이 차갑게 목소리를 내리깔자 채경은 한숨을 내쉬었다.

 

 “육촌 오라버니 안목이야 인정합니다만, 안목보다 태도의 문제였습니다.”

 “태도가 무슨 소용일까요? 육촌누이? 돈만 되면 뭔들 하는 송상이…….”

 “싸우려고 부른 거 아닙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죠. 어떡하면 이 그림그린 화공을 소개시켜주겠습니까?”

 

 전혀 생각 못한 말에 민찬은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겨우 경상 쪽에 그림 납품을 끊고 송상 쪽에 해주겠냐 정도로만 예상했었다. 홍윤을 소개시켜달라니 예상 밖의 일이었다.

 

 “소, 소개시켜달라니?”

 “휴……. 이 패는 안 꺼내려고 했지만, 오라버니의 이해력으로는 안 되겠군요. 시간이 부족합니다.”

 

 시간만 넉넉했다면 꺼내지 않을 패라는 말에 민찬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저는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명월관의 경매 그것은 시작일 뿐입니다. 경상의 방해로 지지부진하지만 금방 해결할 것이고 화공을 전문적으로 키워 송상이 그림시장을 장악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나 한채경은 이 자리에서 공언하죠. 이 화공을 키울 겁니다.”

 “뭐, 뭐?”

 “화공을 소개받으려면 제가 무엇을 드리면 좋을까요? 경매장 관리권을 드릴 수도 있습니다. 수입이 쏠쏠하거든요.”

 

 운영권이 아니라 관리권이라는 것에 민찬은 혀를 내둘렀다.

 

 “경상이 이렇게 방해를 해서야 경매장은 이점이 없는 거 아닌가? 아니, 명월관 경매장이 큰 이득이 더 없어 보이는데. 이미 명월관 말고도 도성밖에 다른…….”

 

 순간 민찬은 자신이 실수 한 것을 알았다. 눈치를 보아하니 채경은 도성 밖에 경매장이 우후죽순 생겨나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것은 자신에게 중요한 패가 될 수 있었다.

 

 “……오라버니 말은 지금 도성 밖에 다른 그림경매장이 여러 곳 있다는 뜻입니까?”

 “그래, 그렇다. 방금 전 갔다 오는 길이고…….”

 

 이왕 이렇게 된 거 패를 공개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홍윤의 위치를 아는 자신이 유리했다.

 

 “율! 그런 얘기 들은 적 있어?”

 “경상 쪽에 심어둔 자가 말하길 매번 시위에 동원되는 사람이 바뀌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 진짜 불만을 가진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아무래도 시위에 지쳤거나 다른 대안이 생긴 거겠죠. 그 다른 대안이 도련님이 말한 경매장이라면 설득력이 높지 않을까요?”

 “……그림이 그렇게 갖고 싶었다고? 아직도 거간꾼은 건재해. 정말 그림을 손쉽게 사려면 거간꾼을 이용하는 게 빠르지. 경매는 유찰될 확률이 더 많은 걸. 더군다나 조선은 아직 그림을 경매장에서 산다는 게 이상할 정도의 인식이야. 그런데 경매장이 늘어?”

 

 채경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뭔가 놓치는 게 있을 것이었다. 단순히 그림을 소장하고 싶은 게 아닐지도 몰랐다. 경매장이 주는 이점이 있을 것이다.

 

 처음에 불만을 가진 자들은 돈으로 매수되지 않았다. 몇몇은 경상에서 매수한 사람이었지만 다수는 직접 와서 난동을 부리는 자들이었다. 그자들은 왜 명월관 경매장에 집착했던 것일까.

 

 “……율. 너는 처음에 시위했던 자들의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해? 단순히 그림이 사고 싶어서?”

 “그거라면 아가씨 말대로 거간꾼을 이용했겠죠. 그 편히 확실하고 번거롭지도 않으니까요.”

 

 어느새 대화에 빠지게 된 민찬은 채경의 안색을 살폈다. 초롱초롱한 눈빛. 진지하게 반짝이는 눈빛은 홍윤과 똑같았다. 윤을 떠올리자 민찬은 얼굴이 더워지고 심장이 쿵쾅댔다.

 

 “오라버니 더우십니까? 여기 화채나 하나 드시죠.”

 

 채경의 말에 민찬은 화채를 쭉 들이켰다. 속이 시원해졌지만 얼굴의 열은 전혀 사그라 들지 않았다.

 

 “오라버니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순순히 화공을 소개시켜주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왜 내가 그래야하지?”

 “그것이 오라버니께 이익이 되니까요.”

 

 민찬은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채경은 그런 민찬을 보자 머리를 붙잡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철저하게 시국을 바라보는 눈이 낮으면서 자기에게 졌다는 걸 죽어도 인정하지 않다니 한심할 뿐이다.

 

 “지금 경상은 돈으로 계속 사람을 매수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가능할까요? 저들이 시끄럽게 떠들수록 명월관의 입지는 높아집니다. 이번 달 매출 장부를 봐도 그렇죠. 술장사가 방해는 받지만 그 대신 경매장 수익이 더 높습니다. 적자를 메우고도 남는 수준이죠.”

 

 채경은 장부를 민찬에게 보여줬다. 내역을 살펴보던 민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경상의 방해는 실질적이지 못했다.

 

 

 “오히려 이렇게 계속 시위를 할 경우 치안의 목적으로 단속에 들어갑니다. 그러면 저보다 경상이 더 타격을 입겠죠. 돈도 회수 못했는데 강제 해산인 겁니다. 그러니 그 전에 더 큰 수를 쓰려고 하겠죠.”

 “그렇겠지.”

 “그 수가 뭔지 모르겠지만, 병법에 이르길 이럴 경우 적장의 목을 베는 게 제일 빠르죠. 저 개인에 대한 공격이 들어올 겁니다. 저를 건드리는 건 송상을 건드리는 것이구요.”

 “송상은 은혜도 잘 갚지만 복수도 철저합니다. 저야, 뭐 행수자리에서 내쫓기고 그림사업을 접고 어디 정략결혼해서 방구석에 앉아 수나 놓아야하겠지만, 조선 땅이 그런 곳이니 포기하고 살아야겠죠. 하지만, 오라버니는요?”

 “……내가 아무것도 건지는 게 없어진다. 그림 팔 곳이 없어진다는 군.”

 “그렇죠. 송상은 불행하지만 오라버니를 인정하지 않고, 경상은 처절하게 부서져 재기 불능이 되겠죠. 경상의 약점이야 진작 쥐고 있었고. 그것은 경상도 마찬가지지만 이럴 땐 먼저 공격한 자가 이기는 겁니다. 오라버니는 화공이 있어도 돈 벌 곳이 하나도 없어지는 거겠죠? 아아, 도성 밖 경매장이요? 화공으로 돈을 벌려면 시장을 자신이 장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쯤 아실 텐데요……. 빈손으로 오라버니가 장악하기엔 몇 년이 걸릴까요?”

 

 채경은 씩 웃으며 당신은 졌다라는 듯이 의기양양하게 민찬을 바라봤다. 민찬의 표정은 침울했다. 뭐라도 준다고 했을 때 말했으면 이익이었는데 지금은 협박이었다. 말하지 않으면 얻는 건 손실뿐이었다.

작가의 말
 

 소설 배경은 조선중기 이후입니다. 소헌세자가 살아있으면 개항이 빨리 이뤄지지 않았을까하는 대체역사 배경이라고 생각해주세요. 상업도 훨씬 발달했을 것이고 물가 규모도 더 크게 성장했을것이다 라는 상상의 날개를 전제로 하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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