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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여류화가 홍다연
작가 : 은비랑
작품등록일 : 2017.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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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림경매 - 6
작성일 : 17-11-25     조회 : 478     추천 : 1     분량 : 5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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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제일 중요한건 화공의 의사겠지.”

 “도화서 생도가 아닌 것 같은데 거절할 이유가 있을까요?”

 

 정곡이었다. 민찬은 주먹을 세게 쥐었다. 홍윤은 여인이었다. 절대 도화서 화공이 될 수 없었다. 최고의 화공으로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을 지켜주고 싶었다. 무시해도 되는 약속인데 그러기 싫었다. 꼭 만들어주고 싶었다. 더군다나 인정하기 싫지만 채경은 수완이 좋았다. 아마 채경의 밑에 있다면 유명해지는 건 순식간일 것이었다.

 

 “……그 화공은 조선을 떠나고 싶어 해. 그래도 키울 생각이냐? 니 논리로 따지면 평생 뽑아먹을 수 없다.”

 “왜죠? 조선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데 뭣 하러 외국에 갑니까?”

 “……너랑 비슷하다. 여인이다.”

 

 채경은 머리를 둔기로 얻어맞은 듯 미동조차 없었다. 율이 걱정되는지 채경을 불렀지만 반응이 없었다.

 

 “나는 그 아이를 최고의 화공으로 만들어주겠다고 약조했어. 너가 그걸 보장하지 못한다면 알려줄 수 없다. 그래, 너가 마음만 먹으면 나 같은 거 그림시장에 발도 못 붙이겠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조선에서다. 어차피 일본으로 떠나려고 했어. 준비하고 있고. 이득은 못 보지만 손해도 없지.”

 “……시간을 주세요. 결심이 서면 청월을 통해 연통하겠습니다.”

 

 민찬은 고개를 끄덕이고 안채에서 나왔다.

 

 

 

 환한 보름달이 하늘에 걸려있었다. 다연은 방금 위작공장에 도착해서 한숨 돌릴겸 마루에 앉아 달을 한참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달이 환하네요. 화공님.”

 “그러게 달구경도 못 할 만큼 요즘 바빴는데…….”

 “오밤중에 달구경은 무슨, 춥거든?”

 

 채경과의 일을 마치고 이제 왔는지 민찬이 걸어오고 있었다.

 

 “남이사, 달구경을 하든 별구경을 하든 뭔 상관이야?”

 “밤바람 추워. 비리비리한 게…….”

 

 다연은 어딘가 모르게 따뜻한 말에 괜히 얼굴을 새빨 게 졌다. 밤바람이 차가워서 얼굴의 열기를 순식간에 빼앗아 갔다.

 

 민찬은 다연 옆에 앉아 무엇을 생각하는지 한참 머뭇거리다 말을 꺼냈다.

 

 “너, 위작 안 그리고 니 그림 그리면서 위작 그리는 것보다 더 벌게 해주면 할 거지?”

 “당연하지, 그걸 말이라고 하냐? 왜? 뭐 좋은 소식 있어?”

 

 얼굴을 바싹 들이대고 다연이 물어왔다. 달콤한 향기가 다연에게서 났다.

 

 “잘하면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어떻게?”

 

 아이처럼 해맑게 웃는 다연의 표정에 민찬의 눈매가 서글해졌다.

 

 “이 형님이 최고의 화공으로 만들어준다 했잖냐. 뭐, 그렇게 되면 나랑 인연을 끊어야겠지. 어땠든 위작공장이랑 엮여서 좋을 게 하나도 없으니……. 증거를 쉽게 남기면 안 돼.”

 

 민찬과 다시는 못 볼 수도 있다는 말에 다연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괜히 털끝이 올올이 서는 기분이었다. 말끝마다 콩알콩알 해대는 남자 따위 못 봐도 될 텐데 싫었다. 그건 왠지 너무 슬픈 일이었다.

 

 “……그래도!”

 “나는 약조 지키는 남자다. 뭐 틈틈이 네 근황은 들을 수 있겠지. 하지만 영규나 나나 이쪽일은 모른 척 살아가야 할 거다.”

 “너는! 그러는 너는 계속 위작 만들면서 살 거야? 나랑 같이…… 일본 가준다며! 그 약속은 약속도 아니냐?”

 

 괜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가슴에 응어리가 지는 기분이다. 이성이 끊겼다. 눈물이 툭 떨어졌다.

 

 “왜, 왜 울어?”

 

 민찬은 당황했다. 사방을 둘러봐도 아무도 없었다. 방금 전만해도 있던 영규는 자러 갔는지 보이질 않았다. 다연이 방울방울 눈물을 떨어뜨리는 게 싫었다. 민찬은 자신도 모르게 다연은 품에 안아 등을 토닥여주었다.

 

 “……울지 마, 좋은 일이잖아.”

 “그렇지만…….”

 “……너만 생각해. 여기 사내들 속에 있는 거 힘든 거 알아.”

 

 다연은 놀라 고개를 올렸다. 민찬은 서글하게 웃고 있었다.

 

 “너, 너…….”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다연은 그저 고개만 주억거렸다. 자신이 여인인 걸 분명 목욕 사건 이후 아는 것이다. 민찬의 배려에 그저 고개만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오늘 조정의 제일 큰 안건은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그림경매장에 관한 것이었다.

 

 “전하, 사대부들이 소리 지르며 경매를 하는 모습은 결코 조선 유학에 맞지 않는 일입니다. 더군다나 그것은 사치를 조장하는 일입니다. 사대부가 나서서 사치를 조장하는 폐단을 바로잡아야 할 것입니다.”

 

 여기저기서 도성밖에 생겨난 경매장에 대하여 철폐해야한다 주장하기 바빴다. 임금은 골치가 아픈지 관자놀이를 매만졌다.

 

 “도성밖에 그런 곳이 다 생겼소?”

 “전하! 소신이 듣기로는 파악된 곳만 열군데도 더 된다 하옵니다. 제대로 조사하셔서 폐쇄해야할 줄 아옵니다.”

 “다짜고짜 폐쇄라니, 무슨 문제라도 생겼는가? 물건을 제값주고 산다는 게 무엇이 문제인가. 물건의 안목이 없는 자는 그 경매라는 것도 제대로 참여하지 못할 텐데…….”

 “지금 도성은 제발이 없고 별지에 따로 첨부되어진 그런 그림들이 값을 높게 치는 풍조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선비의 덕목수양의 수단인 그림이 천한 돈으로 환산되는 풍조는 이 나라 조선의 근간을 흔들 겁니다.”

 

 임금은 비약이 지나치다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쉽게 그럴 수도 없었다.

 

 “지금은 곧 온다는 영국대사에 대한 준비가 더 급한 게 아닌가? 경매와 관하여 더 직접적인 문제가 터졌는가?”

 “사대부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명월관이라는 기방에서 시위를 하는 게 하루 이틀째가 아닙니다. 도성 내 치안을 위해서라도 확인하셔야한다 사료됩니다.”

 “그래? 검토해 보겠네…….”

 

 머리가 지끈지끈 울리는 게 짜증이 났지만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는 것으로 참는 임금이었다.

 

 “시찰에 대해서는 세자에게 일임하도록 하겠네. 그림에 관련하여 세자가 조예가 있으니 잘 해결할 거라 믿네. 다음 안건은 무엇인가?”

 “다음 안건은 몇 주 째 비가 내리지 않아 가뭄의 기미가 보인다는 상소가 경상도에서 올라왔습니다.”

 

 

 

 채경은 아침부터 서찰을 써 율을 통해 강세훈에게 보냈다. 이유를 알았으니 해결하면 되었다. 강세훈이 장사치라면 결코 거절하지 못할 제안을 준비하고 있었다.

 

 “눈 밑이 시커매요. 밤에 잠 안 잤죠?”

 “강세훈에게 뭘 줘야 좋을지 생각하느라 잠 잘 수가 없었어.”

 “좋은 Idea 나왔어요?”

 “그렇다고 생각은 하는데…….”

 

 채경은 잉어도를 만지작거리며 말을 흐렸다. 아직 결단이 서지 않았다.

 

 “후우……. 우선 만나보는 게 좋으려나.”

 “네?”

 “잉어도의 주인을 만나보려고…….”

 

 

 율은 채경이 준 서찰을 들고 강세훈을 찾아왔다.

 

 “아가씨께서 보낸 연통입니다.”

 “흐음…….”

 

 세훈은 하얀 서찰을 받아들었다.

 

 “바로 답을 받아서 오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내용이기에 즉답을 하라고 해?”

 

 툴툴대며 서찰을 펼쳤다. 내용은 간단했다.

 

 내용은 ‘왜 방해하는지 알고 있으니 그만하시지. 치안문제로 조정이 나서면 서로 골치 아파지니 휴전을 제안한다. 경성에 좋은 제안거리가 있으니 궁금하면 나 좀 보지?’ 정도의 뜻이었다.

 

 “좋, 좋은 제안?”

 “네, 아가씨께서 더 말씀하셨습니다. 고민하는 것 같으면 이렇게 전하라고 하시더군요. 호호호호. 나는 망하면 시집이나 가버리면 되지만 그쪽은 사람 쓰신 비용 본전도 못 찾으실 텐데요. 라구요.”

 

 율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채경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말하자 세훈은 왠지 등골이 송연해졌다.

 

 “젠장, 알았네. 언제 어디로 가면되나?”

 “제가 술시에 모시러 오겠습니다.”

 “그래, 알겠네.”

 

 율은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동궁전의 부름을 받고 문우는 도착했다.

 

 “세자저하, 사헌부 집의 들었사옵니다.”

 “어서 들이세요.”

 

 나인이 문을 열자 문우는 신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놀랍게도 꽉 막힌 사간원 홍주윤이 있었다. 당황도 잠시 문우는 예를 갖췄다.

 

 “찾으셨다 들었습니다.”

 “네, 두 분 다 아시겠지만 전하께서 그림경매장에 대해 나에게 일임하셔서 말이죠. 홍헌납이 말하길 그림에 대해 조집의께서 안목이 높다 해서요. 아니, 문제의 경매장을 잘 알 거라고 하던데요.”

 

 세자는 싱긋 웃었다.

 

 문우는 당황한 듯 주윤을 바라봤지만 주윤은 미동도 없었다. 머리가 지끈지끈 울리는 것 같았다.

 

 “제가 말입니까?”

 “틀렸습니까?”

 “……잘 알거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따라 다르겠죠. 저하.”

 

 말에 가시가 있었다. 그럼에도 세자는 여전히 싱글벙글이었다.

 

 “집의께서는 어떤 식으로 잘 아십니까?”

 “크흠……. 한 번 가본 적이 전부입니다. 홍헌납이 어떻게 말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소신 또한 잘 알지는 못합니다.”

 “그래요? 그래도 한 번 가본 적이 있다니 다행입니다. 날을 잡아 한번 가보도록 합시다.”

 

 마치 동네 주막 한 번 들려봅시다. 라고 말하는 듯했다. 문우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그게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습니다.”

 “왜죠?”

 “그 경매장에 들어가려면 출입패를 받아야하는데, 그것이 신원이 확실한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

 “하하하, 내가 세자이란 것을 밝혀야 한다는 일이 된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저하.”

 

 문우는 그것 말고도 어려운 점이 더 있었다. 불법 속신자 관련으로 할 일이 많은데 경매장까지 쫓아다닐 여력이 없었다. 속으로 제발 딴 사람 찾으세요. 저하. 라고 외쳤다.

 

 “그럼 뭐, 까짓것 밝히죠. 경매란 거 나도 참여해보고 싶군요.”

 

 문우는 순간 꽁꽁 언 얼음처럼 온몸이 굳었다.

 

 

 

 

 어둑어둑 술시가 되어가자 율은 세훈을 데리러 갔다. 세훈은 인상을 구긴 채 율을 따라가고 있었다.

 

 “아직 멀었느냐?”

 “다 와갑니다. 저기 모퉁이만 돌면 됩니다.”

 “크흠.”

 

 세훈은 헛기침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통금시간이 되어서인지 사람이 주변에 없었다. 어느덧 모퉁이를 돌자 기와집이 보였다. 율은 익숙하게 대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리자 세훈을 안채로 안내했다.

 

 달밤에 채경은 안채 마당에 서서 세훈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야심한 밤에 안채에서 보자고 하시다니 여인으로써…….”

 “언제, 어디서 보는 게 중요합니까? 만나는 이의 마음에 음탕한 생각이 없다면 어디서 무얼 해도 괜찮은 것이겠죠.”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인지 채경은 그나마 챙기던 내외법도 내던졌다. 세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안채로 들어갔다.

 

 “무슨 제안할 거리가 있으신지요?”

 

 채경은 씩 웃으며 장부를 하나 보여줬다. 장부 내용은 그림경매 수익내역이었다. 세훈은 왜 장부를 보여주는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경매장에서 낙찰 된 그림 값을 어떻게 지불하는지 아십니까?”

 “……액수를 보아하니, 어음이나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네, 짐작대로 그렇습니다. 경매장을 시작하기 전에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막상 운영해보니 여간 힘든 게 아니더군요. 저는 그림을 가지고 오는 것만으로도 벅찹니다. 저 한채경은 경상에게 경매장 환전권을 드리고 싶습니다만.”

 

 세훈의 눈이 흔들렸다. 장부를 보여줬던 것은 얼마나 큰 금액이 경매장에서 오가는지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경상은 도성 내에서 가장 큰 환전객주를 운영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만한 거래라면 명월관의 시위대를 철수시켜 주시겠지요?”

 

 채경은 세훈은 바라보았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보름간 객주에서 벌어들이는 금액이 이 경매장에선 하루치도 되지 않았다.

 

 “좋습니다. 계약서를 쓰도록 하죠.”

작가의 말
 

 요즘 중드 삼생삼삼세 십리도화를 보고... 선협물에 다시 꽂혔네요.. 언제 선협물을 나도 써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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